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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한국 축구를 지탱했던 56년의 소중한 역사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의 2010 남아공 월드컵 목표는 원정 첫 16강 진출 입니다. 지금까지 원정 월드컵에서 토너먼트 진출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지금의 대표팀은 2006년 독일 월드컵 세대보다 공수 양면에 걸친 전력이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해외 언론에서도 한국의 16강 진출 전망을 밝게 바라보는데다 이영표가 얼마 전 "이번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 멤버가 역대 최강이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하면서 16강 진출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역대 월드컵 본선 성적이 4승7무13패라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한국은 월드컵 본선에서 승리 및 무승부 횟수보다 패배한 횟수가 더 많았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3승2무2패, 2006년 독일 월드컵 1승1무1패를 기록했지만 그 이전인 20세기에는 4무10패로 부진했습니다. 비록 한국 축구의 역사가 축구 강국들 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거듭된 패배와 시련 속에서도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의지를 키웠고 힘차게 정진한 끝에 지금의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부터 지금의 남아공 월드컵에 이르기까지 한국 축구를 지탱했던 56년의 소중한 월드컵 역사를 소개하겠습니다.

(1)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세계의 벽을 실감했다

한국은 1950년 6.25 전쟁의 시련을 겪었지만 1940년대 부터 국제 대항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명맥을 유지하며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동아시아 예선 일본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유형 감독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일본에게 패하면 선수단이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는 출사표를 던졌을 만큼 일본을 꺾겠다는 의지가 대단했습니다. 결국 한국은 1차전 5-1 승, 2차전 2-2 무승부를 거두고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따냈습니다. 

그런 한국은 월드컵 본선 맹활약에 기대감을 품으며 조국을 떠났지만 스위스로 향하는 여건이 좋지 못했습니다. 여행사의 실수 및 어려운 경제 사정까지 겹쳐 미군 전용기와 열차를 포함해 60시간 넘는 여정 끝에 경기 하루 전 스위스에 도착했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우승후보 헝가리와 대결했으나 0-9로 대패했고 골키퍼 홍덕영의 온 몸은 멍투성이가 됐습니다. 3일 뒤에 열린 터키전에서는 0-7로 참패해 1라운드에서 탈락했고, 당시 대회 규정상 서독(독일)과의 3차전을 치르지 못한채 쓸쓸히 짐을 싸고 조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세계의 벽이 높다는 것을 실감한 순간 이었습니다.

(2) 1986년 멕시코 월드컵, 32년 만의 월드컵 출전

한국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1954년 이후 32년 만의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습니다. 서독 분데스리가를 주름잡은 차범근의 월드컵 대표팀 합류로 전력 향상을 꾀했으나 평가전을 제대로 가지지 못했습니다. 멕시코에 입국했으나 현지 프로팀과의 평가전을 주선했던 현지 프로모터와의 연락이 두절되면서 끝내 추진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연습 상대 없이 월드컵에 나선 끝에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이탈리아 같은 강팀들과 상대하면서 메이져 국제 대회 경험 부족의 약점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본선 첫 경기 아르헨티나전에서는 '축구황제' 디에고 마라도나 봉쇄에 주력했지만 발다노-루게리에게 총 3골을 내준 끝에 3-1로 패했습니다. 후반 28분 박창선의 골로 월드컵 사상 첫 골을 넣은 것에 만족했던 경기였습니다. 불가리아전에서는 전반 11분 게토프에게 실점했으나 후반 25분 김종부가 동점골을 넣으며 1-1로 비기고 월드컵 사상 첫 승점을 따냈습니다. 16강 진출의 결정판이었던 이탈리아전에서는 후반 중반까지 1-1 접전을 벌였으나 후반 28분 실점 및 37분 조광래의 자책골로 1-3이 됐습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만회골을 넣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은 끝에 허정무가 골을 기록했지만 끝내 2-3 패배에 그쳤습니다.

(3)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현지 적응 부족으로 3전 3패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을 제외하고, 한국이 역대 월드컵에 진출했던 대회 중에서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그 이유는 현지 적응 부족 때문입니다. 이탈리아는 한국과 다른 기후 조건을 지닌데다 시차가 7시간 거리 였습니다. 그런데 한국 선수단이 불과 6일전에 입국하면서 시차 극복 및 현지 적응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고, 벨기에와의 첫 경기에서 0-2로 완패했습니다. 이회택 감독은 경기 종료 후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을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스페인과의 2차전에서는 황보관이 전반 42분 0-1로 뒤진 상황에서 빨랫줄 같은 35m짜리 중거리슛을 성공시켰지만 후반전에 2골을 허용해 1-3으로 패했습니다. 우루과이와의 3차전에서는 골키퍼 최인영의 번개같은 선방으로 실점 위기를 막았고, 벨기에-스페인전에서 부진했던 김주성이 원래의 폼을 되찾아 승리를 노렸습니다. 하지만 후반 45분 폰세카에게 통한의 실점을 허용해 3전 3패로 본선에서 탈락했습니다. 한국과 같은 조에 속한 세 팀이 모두 16강에 올랐음을 상기하면 이탈리아 월드컵에 대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4) 1994년 미국 월드컵, 불굴의 투지 보여줬다

한국은 1994년 미국 월드컵 16강 진출을 위해 그동안의 월드컵 실패를 만회하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미국 전지훈련 및 여러차례의 평가전 개최를 통해 국제 경기에 대한 자신감을 키웠고 같은 조에 속한 스페인-볼리비아-독일 전력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했습니다. 스페인전에서는 후반 40분까지 0-2로 뒤졌으나 홍명보의 프리킥골과 서정원의 극적인 동점골로 2-2로 비겨 월드컵 16강에 대한 기대가 부풀었습니다. 하지만 볼리비아전에서는 한 수 위의 경기를 펼치고도 황선홍이 몇 차례 결정적인 골 기회를 놓친 끝에 0-0으로 비겨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리고 '디펜딩 챔피언' 독일전에서는 골키퍼 최인영이 불안한 선방을 거듭한 끝에 전반전에 3골을 허용하고 교체됐습니다. 0-3으로 후반전을 맞이하면서 패색이 짙었으나, 선수들은 불굴의 투지를 과시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집념을 발휘했습니다. 볼리비아전에서 침묵했던 황선홍이 후반 7분 추격골을 넣었고, 홍명보는 후반 18분 30m 지점에서 중거리포를 발사하여 독일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비록 2-3 패배에 그쳤지만 독일과의 후반전에서 팽팽한 접전을 펼쳤던 장면은 온 국민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월드컵은 당시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대회로 평가 받았습니다.

(5) 1998년 프랑스 월드컵, 통한의 0-5 참패

차범근 감독이 이끌던 한국 축구 대표팀은 멕시코-네덜란드-벨기에와 같은 조에 속했습니다. 당시 한국 여론은 '조편성이 무난하다'며 미국 월드컵에서 이루지 못했던 1승 달성 및 16강 진출에 대한 기대를 안고 프랑스행 비행기에 탑승한 차범근호를 주목했습니다. 한국은 첫 상대였던 멕시코전에서 전반 27분 하석주의 선제 프리킥골로 월드컵 사상 첫 승을 눈 앞에 두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3분 뒤 하석주가 백태클로 퇴장당하면서 수적 열세에 빠져 후반전에 내리 3실점을 범한 끝에 1-3으로 패했습니다.

멕시코전 패배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네덜란드전에서는 더욱 참담한 아픔을 겪었습니다. 공수 양면에 걸쳐 네덜란드에 몇 수 아래의 경기를 펼치는 졸전을 치렀습니다. 결국, 전반 37분 코쿠의 선제골을 시작으로 5골을 내주면서 통한의 0-5 참패를 당했고 차범근 감독이 현지에서 경질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김병지가 없었다면 10골을 내줬을 것이다"고 국민들이 입을 모을 만큼, 무수한 위기 상황 속에서 5실점으로 줄인 김병지의 선방이 돋보였지만 0-5 참패의 분위기가 매우 무거웠습니다. 벨기에전에서는 이임생의 붕대 투혼으로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1-1로 비겨 16강 진출이 좌절 됐습니다.

(6) 2002년 한일 월드컵, 역대 최고 성적을 내다

안방에서 치러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불운의 월드컵 역사를 뒤로 하고 역대 최고의 성적을 냈습니다. 월드컵 첫 승과 16강 진출의 목표를 초과 달성하여 4강 진출 신화를 달성했습니다. 4년 전 한국에게 0-5 대패를 선사했던 네덜란드 출신 히딩크 감독을 영입해 전면적인 체질개선에 돌입했고 장기적인 기초 훈련에 매진한 끝에 경기력이 크게 향상 됐습니다. 히딩크 감독에 의해 네덜란드 축구의 상징인 토탈사커가 한국땅에 이식되면서 조직력 강화, 강력한 압박, 체력 향상, 다양한 전술 변화 속에서 전력이 급성장 했습니다. 여기에 강팀과의 끊임없는 평가전을 통해 강팀을 이길 수 있는 자신감을 키우며 월드컵에 나섰습니다.

한국은 본선 1차전 폴란드전에서 2-0 완승을 거두고 월드컵 사상 첫 승을 거두었습니다. 2차전 미국전에서 1-1로 비겼고 3차전 포르투갈전에서는 박지성의 결승골로 1-0 승리하여 조 1위로 16강에 올라 국민들이 오랫동안 간절하게 원했던 꿈을 이루었습니다. 16강 이탈리아전에서는 연장 접전 끝에 안정환의 결승 헤딩골로 2-1로 승리하여 8강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8강 스페인전에서는 120분 동안 0-0 무승부를 기록한 뒤 승부차기에서 5명의 키커가 골을 모두 성공시켜 4강에 올랐습니다. 비록 4강 독일전 0-1 패배로 결승 진출에 실패했지만 'PRIDE OF ASIA'의 저력을 보여준 한국의 붉은 열정은 지구촌을 열광 시켰습니다.

(7) 2006년 독일 월드컵, 원정 첫 승...그러나 16강 진출 실패

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과도기에 빠졌습니다. 거듭된 졸전 끝에 히딩크 감독 체제에서 다져진 조직력이 무너졌고 두 번의 사령탑 교체로 침체기를 겪는 시련에 빠졌습니다. 독일 월드컵에서는 토고-프랑스-스위스와 같은 조에 속한데다 4년 전 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했던 경험에 힘입어 원정 첫 16강에 오를 것이라는 여론의 반응이 우세했습니다. 토고전에서는 전반전에 0-1로 뒤졌으나 이천수와 안정환이 각각 후반 9분과 27분에 상대 골망을 흔들며 역전에 성공해 월드컵 원정 첫 승리를 기록했습니다. 프랑스전에서는 박지성이 후반 36분 0-1로 뒤진 상황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승점을 챙겼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전술 이었습니다. 아드보카트 감독 체제에서 4백 정착의 실패로 토고전에서 3백으로 돌아섰으나 수비수들이 발이 느린 약점이 노출되면서 후반전에 다시 4백을 쓰는 혼란을 겪었습니다. 월드컵 본선 이전까지는 패스 위주의 경기를 펼쳤으나 조재진의 머리를 노리는 롱볼 축구로 전환하면서 경기력 부진을 키우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박지성과 이천수를 제외한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운 문제점까지 노출 됐습니다. 이러한 전술적인 문제점에 직면했던 한국은 결국 스위스전 0-2 완패로 1승1무1패를 기록했으나 16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8)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새로운 신화 창조를 꿈꾸며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남아공 월드컵에서 원정 첫 16강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부터 지금까지 월드컵 56년 역사 속에서 환희의 기쁨보다 뼈아픈 실패와 좌절의 순간이 많았지만, 그 시련은 월드컵에서의 절치부심 끝에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및 2006년 독일 월드컵 원정 첫 승의 결과물을 거두었습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6번째로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업적을 달성했고 많은 선수들이 해외에 진출하여 국제적인 경쟁력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축구 저변의 확대로 한국 축구의 내실이 튼튼함을 거듭 중입니다.

한국은 남아공 월드컵에서 그리스-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와 맞붙습니다. 세 나라 모두 만만찮은 전력을 갖췄지만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여러 가지 약점을 노출하며 한국의 16강 가능성에 무게감을 실어줬습니다. 더욱이, 남아공 월드컵은 고지대에서 열리는 특성 때문에 이변이 속출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국이 강호 아르헨티나를 제압하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부푼 기대감고 설레임을 가지게 됩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강호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4강에 올랐던 저력을 남아공 월드컵에서 재현하여 새로운 신화를 창조할지 주목됩니다. 한국 대표팀의 선전을 바라며 '대~한민국' 구호를 목청 높여 응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