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무적함대' 스페인과의 평가전을 통해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을 위한 자신감을 성취할 계획입니다.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후보로 평가받는 스페인을 상대로 선전하면 월드컵 선전에 탄력이 붙을 것입니다.
한국은 오는 4일 오전1시(이하 한국시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티볼리 누 스타디움에서 스페인과 평가전을 치릅니다. 월드컵 본선이 앞으로 8일 남았기 때문에 양팀 모두 정예멤버를 총출동하여 평가전에 임할 것입니다. 한국이 경기 결과와는 상관없이 스페인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월드컵 행보가 밝아지겠지만 실력 차이를 드러낸 끝에 무기력하게 패하면 후유증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입니다.
1. 스페인, '우승후보' 저력 과시할까?
스페인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위지만 지난 3월까지는 1위를 달리며 브라질과 세계 최고를 다투었습니다. 유로 2008 우승, 남아공 월드컵 유럽 예선 10전 전승 28골 5실점이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올리며 이번 대회 우승을 노리고 있습니다. 1950년 브라질 월드컵 4강 진출 이후 지금까지 월드컵 4강 무대에 올라오지 못했지만 이번 남아공 월드컵은 다릅니다. 1982년 이후 실시했던 칸테라 정책(유소년 투자 정책)이 근래에 결실을 보면서 수많은 축구 인재들이 쏟아졌고 그 결과 스페인 대표팀에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 선수들이 많이 결집되었고 프리미어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선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스페인의 강점은 선수층이 화려하다는 것입니다. 레알과 바르사에서 뛰는 선수가 23명 중에 13명이고 아스날의 파브레가스는 바르사 유스 출신입니다. 리버풀에서 활약하는 토레스-레이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손꼽히는 공격수와 골키퍼입니다. 그래서 공수 양면에 걸쳐 변화무쌍한 전술을 앞세워 세계 최고의 패스 게임을 구사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비야-토레스로 짜인 '영혼의 투톱'을 앞세운 4-4-2를 가동했지만 지난 사우디전을 비롯해 최근에는 4-2-3-1의 비중을 높이고 있습니다. 최대 강점인 미드필더진을 강화하여 비야에게 양질의 골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스페인의 월드컵 전략입니다.
2. 한국, 8년 전 프랑스전 교훈 떠올려라
스페인전을 앞둔 한국은 8년 전 프랑스전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5월 26일 '세계 최강' 프랑스와 평가전을 가졌습니다. 경기 초반 트레제게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으나 전반 26분 김남일의 킬패스에 이은 박지성의 왼발 인스텝슛, 전반 41분 설기현의 헤딩슛으로 2-1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후반전에 뒤가리-르뵈프에게 골을 허용해 2-3으로 패했지만 이 경기에서의 선전이 한일 월드컵을 위한 자신감이 되어 4강 신화를 이룩했습니다. 비록 스페인전에서 패하더라도 선수들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 얻으면 이 경기에서 엄청난 소득을 거두게 됩니다.
하지만 한국이 스페인을 상대로 주눅든 경기 운영 끝에 패하면 사기가 꺾일 것입니다. 4년 전 독일 월드컵 본선 1차전 토고전을 앞두고 가나와 평가전을 치렀으나 졸전을 거듭한 끝에 1-3으로 패했습니다. 가나전에서 드러난 수비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토고와의 전반전에서 3백을 썼으나 실점을 허용하면서 후반전에 4백으로 변경하는 혼선이 빚어졌습니다. 이러한 우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스페인전에서 확실하게 골을 넣거나, 상대 공격을 철저히 봉쇄하는 강력한 임펙트가 필요합니다. 그동안 강팀과 많은 경기를 치르지 않았던 한국이었기에 스페인전이 걱정스럽지만 4년 전 보다 개인 기량과 조직력이 향상된 만큼 긍정적인 경기 운영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3. 한국의 고민, '허벅지 통증' 박지성 결장
스페인전에서는 박지성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박지성은 지난달 30일 벨라루스전에서 오른쪽 허벅지 통증에 시달린 이후 팀 훈련에 불참했고 스페인전에 결장하게 됐습니다. 단순 근육통이지만 선수 보호차원에서 무리시키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지금까지 박지성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에 스페인전에서 그 공백을 메우기 쉽지 않게 됐습니다. 스페인전을 앞둔 전술 훈련에서는 김재성이 왼쪽 윙어를 소화했으나 원 포지션이 중앙이고 대표팀에서 오른쪽 윙어로 뛰었기 때문에 스페인을 상대로 왼쪽에서 맹활약을 펼칠지 의문입니다.
박지성의 결장은 김재성-김보경-염기훈 같은 백업 멤버들에게는 스페인을 상대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특히 김재성과 김보경은 그동안 국제 무대 출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경험에 목이 마릅니다. 그래서 박지성 결장은 대표팀의 백업 자원 역량을 키우고 스쿼드의 질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은 다른 선수들과 달리 빠른 타이밍에 의한 볼 처리로 공격을 전개하는 성향입니다. 기성용의 폼이 완전치 않은 상태에서 박지성까지 빠지면, 원톱으로 출전할 박주영이 후방에서 양질의 패스를 이어받지 못해 고립되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과연 허정무 감독이 전술적인 힘으로 박지성 결장 공백을 메울지 주목됩니다.
4. 스페인의 고민, '살림꾼' 세나의 공백
우승후보 스페인도 고민이 있습니다. 유로 2008 우승 주역이었던 '살림꾼' 세나를 최종 엔트리 23인에서 제외시킨 겁니다. 세나는 1976년생 노장으로서 공격 옵션들의 수비 부담을 줄이고 공격에 전념할 수 있도록 중원에서 궂은 역할을 충실히 했으나 최근 노쇠화에 빠진 끝에 월드컵 출전의 꿈을 접었습니다. 세나가 사비와 함께 탄탄한 공수 밸런스를 구축했고 기존 동료 선수들과 호흡이 잘 맞았던 선수임을 감안할 때 전력적인 손해가 있습니다.
스페인이 세나를 포기한 이유는 알론소-부스케츠의 수비적인 역량이 많이 올라왔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알론소는 지금까지 공격적인 역할에 강했으나 레알에서 수비적인 임무에 충실하면서 팀의 밸런스를 견고히 다졌고 부스케츠의 중원 장악력은 바르사가 막강한 공격을 펼칠 수 있었던 계기가 됐습니다. 최근에는 4-4-2에서 4-2-3-1로 전환하면서 알론소-부스케츠 더블 볼란치 조합이 밑선으로 내려가면서 수비 임무가 막중해졌습니다. 두 선수는 한국전에서 세나에 대한 존재감을 지우고 월드컵 본선에 임하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두 선수의 공간적 약점을 파고들어 역습을 노릴 계획입니다.
5. 매치업 대결 (1) 김정우vs사비
한국과 스페인의 대결은 중원의 허리 싸움에서 결정 될 것입니다. 한국은 수비적, 스페인은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낼 것이며 김정우와 사비의 대결이 주목됩니다. 김정우는 사비를 중심으로 하는 스페인 공격을 봉쇄해야 하고, 사비는 김정우가 주축이 되는 한국의 허리를 공략해 비야를 비롯한 동료 선수들에게 정확한 패스를 연결해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한국 같은 경우에는 협력 수비가 중요하고 스페인은 이니에스타-다비드 실바가 중앙으로 가담하면서 사비의 패스 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김정우는 한국의 중앙 미드필더 중에서 가장 폼이 좋은 선수입니다. 기성용은 수비력 약점을 이겨내지 못했고 김남일은 전성기 시절에 비해 기복이 심해졌지만, 김정우는 악착같은 몸싸움과 적극적인 패스 커팅을 통해 허정무호 공수 완급조절의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페인전에서는 사비의 패스를 끊으려 할 것입니다. 사비는 안정된 볼 키핑과 정확한 패싱력을 바탕으로 경기 전체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스페인은 사비의 경기 운영을 통해 많은 점유율을 확보할 텐데, 한국이 스페인의 공격 템포를 늦추고 커팅에 이은 역습으로 전환할 수 있는 움직임이 능동적이어야 합니다.
6. 매치업 대결 (2) 이청용vs파브레가스
이청용은 지난 1월 18일과 21일 아스날전을 통해 특유의 재치 있는 공격 재능을 맘껏 발휘하며 상대팀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특히 18일 경기가 끝난 뒤에는 아르센 벵거 아스날 감독에게 실력적인 칭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아스날의 주장인 파브레가스가 자신에게 직접 다가가 왼쪽 손으로 머리를 스다듬었는데, 이것은 상대팀 선수가 이청용의 기량을 높이 치켜 세웠습니다. 그동안 아스날의 경기를 꾸준하게 지켜봤던 이청용에게는 파브레가스와의 만남에 기뻤을 것입니다.
이번 평가전에서는 이청용과 파브레가스가 재회했습니다. 한국과 스페인의 공격을 이끄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죠. 이청용은 상대팀의 왼쪽 풀백으로 출전하게 될 아르벨로아의 뒷 공간을 파고들어 공격의 활로를 개척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파브레가스는 사비의 백업이지만 경기에 출전하면 특유의 종적인 움직임과 빠른 문전 돌파를 통해 슈팅을 날리거나 결정적인 골 기회를 창출할 것입니다. 특히 이청용은 아스날에 대한 동기부여를 의식하고 있어 이날 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치기 위해 사력을 다할 가능성이 있습니다.(하지만 파브레가스의 바르사 이적이 가까워진 것을 이청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BBC 트위터에 의하면 바르사와 아스날이 협상을 했다고 합니다.)
7. 매치업 대결 (3) 이운재vs카시야스
이운재와 카시야스의 대결도 흥미롭습니다. 두 선수는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 한국-스페인전에서 120분 무실점 선방을 펼친 뒤 승부차기까지 치열한 접전을 주고 받았습니다. 이운재가 스페인 4번째 키커 호아킨의 슈팅을 다이빙 펀칭으로 선방했고 카시야스는 한국에게 5번의 슈팅을 모두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당시의 대결은 이운재의 승리였지만 지금의 폼은 카시야스의 우세입니다. 올해 37세의 이운재는 K리그 부진으로 노쇠화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카시야스는 29세의 선수로서 절정의 운동신경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정성룡이 이운재 대신에 선발 출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스페인전에서는 이운재의 선발 출전에 무게감이 실립니다. 정성룡이 지난 일본전에서 무실점했으나 공중볼 과정에서 펀칭이 미숙했던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골키퍼의 불안한 볼 처리가 상대팀의 세컨슛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며 스페인은 그 기회를 충분히 노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허정무 감독은 스페인전을 앞둔 전술훈련에서 이운재를 골키퍼로 기용했습니다. 과연 이운재가 스페인전에서 무난한 선방을 과시하고 카시야스와의 대결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월드컵 본선에서 주전 골키퍼 장갑을 착용할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