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와 독일 축구의 자존심 대결로 주목받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바이에른 뮌헨(이하 뮌헨)의 진검승부는 결국 뮌헨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8강 1차전과 2차전은 맨유가 전반전에 우세한 경기를 펼쳤으나 뮌헨이 후반전에 이를 뒤집었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맨유는 확실한 우세를 점하지 못한 반면에 뮌헨은 경기 초반 실점을 허용했던 악조건 속에서 상대의 약점을 파고든 끝에 원하는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맨유는 4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에 실패했고 뮌헨은 2000/01시즌 이후 9시즌만의 유럽 제패에 탄력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두 팀의 대결은 여러가지 변수들이 속출하면서 경기의 희비를 엇갈리게 했습니다. 결정적 승부처로 작용했던 5가지를 되돌이켜 봤습니다.
1. 퍼거슨의 오판이 빚어낸 맨유의 탈락
퍼거슨 감독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명장입니다. 그동안 유럽 축구계에서 이루어낸 업적이 많았고 맨유라는 팀을 유럽 최정상급 명문으로 키웠습니다. 그러나 퍼거슨 감독이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자신의 판단미스로 맨유가 패했던 전적은 최근에 많아졌습니다. 지난해 3월 14일 리버풀전과 22일 풀럼전 패배, 5월 26일 FC 바르셀로나전 패배, 그리고 뮌헨과의 1~2차전과 지난 3일 첼시전 패배의 원인은 퍼거슨 감독의 잘못된 판단 능력에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느슨한 교체 타이밍 및 적절치 못한 대상자 선정, 폼이 떨어진 선수(스콜스)의 2경기 연속 선발 투입, 상대팀 측면 공격 봉쇄 실패가 문제였습니다.
특히 뮌헨전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졌습니다. 1차전에서는 박지성-캐릭을 교체하고 베르바토프-발렌시아를 투입한 것이 패배의 빌미가 됐습니다. 뮌헨 선수들을 끊임없이 압박했던 박지성-캐릭을 빼고 공격적인 선수들을 투입하는 악수를 두고 말았습니다. 1-0으로 앞섰던 맨유의 수비 밸런스가 깨지는 순간이었고 이것은 1-2 역전패의 원인이 됐습니다. 정작 빼야 할 선수는 스콜스-캐릭-루니였습니다. 2차전에서는 박지성을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할 수 있다는 연막 작전을 펼쳤으나 정작 실전에서는 18인 엔트리에서 제외했습니다. 하지만 맨유는 후반전에 로번의 측면 공격을 봉쇄하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박지성의 제외를 섣부르게 판단한 퍼거슨 감독의 오판이 빚어낸 맨유의 탈락입니다.
2. '역전 본능' 발휘한 뮌헨의 집중력
뮌헨의 4강 진출 원동력은 집중력에서 꼽을 수 있습니다. 8강 1차전 전반전에서 0-1로 지고 있었고, 2차전 전반 40분까지는 0-3으로 패색이 짙었으나 '역전 본능'을 발휘하며 이를 뒤집었기 때문입니다. 퍼거슨 감독의 오판이 뮌헨에게 행운이 되었으나, 행운이기 이전에 뮌헨의 집념은 맨유보다 더 강했습니다. 1차전에서 리베리의 프리킥 골, 올리치의 역전골로 맨유전에서 승리했고 2차전에서는 2-3으로 패했으나 0-3으로 뒤진 상황에서 올리치-로번이 골을 터뜨리면서 원정 다득점 우세 속에 4강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맨유를 제압한 뮌헨이 역전 본능에 강했던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골을 터뜨릴 수 있는 능력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뮌헨은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팀입니다. 아무리 상대에게 경기 흐름에서 밀리더라도 공격 옵션들이 그것을 한 방에 만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미드필더들이 맨유와의 점유율에서 우세를 점했던 것이 뮌헨이 추격 흐름을 놓치지 않고 맨유 골문을 겨냥할 수 있었던 발판으로 작용했습니다. 1차전에서 60-40, 2차전에서 61-39(%)의 점유율 우세를 나타냈으니 막판에 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뮌헨을 상대로 후반전에 오판을 저지른 퍼거슨 감독과 맨유의 패배는 예견된 결과 였습니다.
3. 맨유의 로베리(로번+리베리) 봉쇄-박지성 활용 실패
맨유의 패배는 로베리 봉쇄에 실패한 것이 결정타 였습니다. 1차전에서 리베리, 2차전에서 로번의 쉴세없는 전방 돌파를 저지하지 못한 것이 그 원인이죠. 1차전에서는 네빌이 리베리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해 여러차례 뒷 공간을 내주다가 동료 선수들의 수비 부담을 키우면서 경기 흐름이 뮌헨의 우세로 역전 됐습니다. 그리고 리베리의 동점 프리킥 골은 네빌이 리베리에게 거친 파울을 가했던 원인에서 비롯됐습니다. 2차전에서는 수적 열세 및 루니의 교체 속에서 나니를 전방으로 올렸으나 로번에게 공간을 허용하는 빌미로 작용했습니다.
한 가지 의외인 것은, 로베리의 봉쇄 카드로 박지성을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박지성은 1차전에서 왼쪽 윙어를 맡았으나 필립 람-알틴톱을 견제하는데 주력했고 2차전에서는 18인 엔트리에 빠졌습니다. 그동안 메시-마이콘-조 콜-보싱와 같은 톱클래스 측면 옵션들의 공격을 철저하게 봉쇄하며 '수비형 윙어'라는 극찬을 받았던 저력이 뮌헨전에서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박지성의 최근 폼이 절정에 달했음을 상기하면, 퍼거슨 감독의 박지성 활용은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물론 박지성은 공격형 미드필더가 최적의 포지션이지만,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로베리를 봉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했습니다.
4. 루니-베르바토프보다 실속이 강했던 올리치
단순한 네임벨류로는 루니-베르바토프가 올리치를 압도합니다. 루니와 베르바토프의 이름이 축구팬들에게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죠. 하지만 실속은 올리치가 더 강했습니다. 올리치는 1차전과 2차전에서 뮌헨의 4강 진출을 견인하는 골을 터뜨렸습니다. 경기 내용상으로는 비디치-퍼디난드로 짜인 맨유의 수비벽을 개인의 힘으로 넘지 못했지만 뮌헨의 볼 줄기가 맨유 진영으로 올라오는 순간에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냈습니다. 1차전에서 에브라의 공을 빼앗아 문전 중앙에서 왼발로 상대 골망을 가르는 역전골을 넣었다면 2차전에서는 0-3으로 뒤진 전반 42분 뮬러의 크로스를 받아 캐릭의 몸싸움에 아랑곳 않고 왼발로 골을 넣으며 추격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반면 루니-베르바토프는 뮌헨전에서 맨유의 4강 진출을 이끌지 못했습니다. 루니는 1차전에서 전반 1분 선제골, 2차전에서 전반 2분 깁슨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움직임이 평소처럼 활발하지 못했고 볼 터치가 낮았습니다. 1차전에서 무릎 염증, 2차전에서 발목 부상에서 회복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뛰었기 때문이죠. 루니의 뮌헨전 맹활약을 기대하기에는 몸이 좋지 못했습니다. 베르바토프는 1차전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해 '강팀에 약한 선수'라는 이미지를 잔뜩 키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선발 출전이 유력했던 2차전에서 루니에게 밀렸다는 것은, 퍼거슨 감독이 베르바토프의 약점을 제대로 파악했음을 말합니다.
5. 하파엘의 퇴장
그리고 하파엘의 퇴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맨유가 뮌헨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무너졌던 또 다른 원인은 바로 하파엘 이었습니다. 2차전에서 리베리를 악착같이 따라다니며 봉쇄에 성공한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래서 뮌헨의 왼쪽 공격이 번번이 끊어질 수 밖에 없었고 공격의 비중이 로번쪽으로 옮겨졌죠. 문제는 후반 5분 퇴장 당시에 지나치게 손을 쓰고 말았습니다. 전반전에 경고를 받았기 때문에 카드 관리를 했어야 했는데 상대를 어떻게든 막으려다보니 무리한 행동을 범했죠. 이것은 하파엘의 경험이 부족함을 의미합니다.
물론 하파엘의 선발 출전까지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네빌이 리베리처럼 빠른 타입의 상대 측면에게 고질적으로 약한 문제점이 있는데다 1차전에 리베리와의 매치업에서 패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네빌을 2차전에 선발로 기용했다면 1차전과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순발력이 뛰어난 하파엘의 선발 출전이 당연했습니다.(2차전 이전까지) 그러나 하파엘은 자기 스스로 '뮌헨전 최적의 카드'가 아닌 '맨유의 패배 원인'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퇴장은 통합 스코어에서 4-3으로 앞서며 4강 진출을 앞두던 맨유에게 찬물을 끼얹어 로번의 일격에 무너졌던 결정타로 작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