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탱크'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바이에른 뮌헨(이하 뮌헨)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2차전에서 18인 엔트리에 제외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맨유는 뮌헨의 벽을 넘지 못해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맨유는 8일 오전 3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2009/10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뮌헨전에서 3-2로 승리했으나 원정 다득점에 밀려 탈락했습니다. 전반 2분과 6분 대런 깁슨과 루이스 나니의 골로 기습에 성공했고 전반 40분 나니의 추가골로 4강 진출에 성공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전반 42분 이비차 올리치에게 추격골을 내줬고 후반 28분 아르연 로번에게 골을 허용하면서 통합 스코어는 4-4가 되었고 원정 다득점에서 앞선 뮌헨이 4강에 올랐습니다.
박지성 18인 엔트리 제외, 퍼거슨의 실책...그리고 맨유의 탈락
우선, 박지성의 뮌헨전 출전은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뮌헨전을 앞둔 지난 6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박지성이 중앙 미드필더(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발언을 비롯해 "박지성이 AC밀란과의 16강전에서 안드레아 피를로를 막는 활약을 펼쳤다. 평소 피를로의 패스 성공률은 80%이상이다. 박지성이 그를 막자 패스 성공률이 20% 더 떨어졌다"며 박지성의 중앙 기용성을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아울러 퍼거슨 감독은 "루니는 몸 상태가 100% 아니면 출전시키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히며 루니의 결장 가능성까지 시사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맨유가 뮌헨과의 2차전에서 박지성을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놓고 베르바토프가 원톱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박지성-베르바토프의 공존은 지난 3일 첼시전에서 선보였던 조합입니다. 베르바토프가 박지성이 전진패스할 수 있는 공간 활로를 개척하지 못하면서 결과는 실패작으로 돌아갔습니다. 두 선수의 공존은 뮌헨측에서 전력 탐색을 위해 예의주시했을 것입니다. 또한 박지성-나니로 짜인 측면 조합은 지난 1차전에서 선보였으니 '골이 필요했던' 2차전에서는 다른 조합을 꾸렸어야 했습니다.
결국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뮌헨전 18인 엔트리에서 제외하는 결단을 내립니다. 박지성이 뮌헨과의 1차전과 첼시전에서 제 역할을 했으나 뮌헨과의 2차전 컨셉에 맞는 선수는 아니었다는 것이 퍼거슨 감독의 생각 이었습니다. 뮌헨과의 2차전은 공격 성향의 선수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슈팅 능력이 뛰어난 대런 깁슨을 선발로 깜짝 기용하여 박지성을 내렸습니다. 공식 기자회견에서 박지성을 중앙으로 기용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던 퍼거슨 감독의 발언은 뮌헨 작전의 허를 찌르기 위한 연막 작전이자 '립서비스' 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루니의 선발 출전 이었습니다. 경기 1시간 전 선발 엔트리가 뜨기 이전까지 어느 누구도 루니가 경기에 뛸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며칠 전 "루니는 오는 17일 맨시티전에 복귀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루니의 뮌헨전 출전이 없을 것이라는 늬앙스의 발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연막 작전으로 드러났습니다. 뮌헨전에 선발 출전한 공격수는 베르바토프가 아닌 루니였습니다.
박지성을 선발에서 제외하고 깁슨-루니를 선발에 올린 퍼거슨 감독은 뮌헨전에서 공격적인 전술을 구사합니다. 나니-루니-발렌시아로 짜인 스리톱에 깁슨이 박스 투 박스를 맡는 형태로 경기를 운영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 이었습니다. 깁슨이 전반 2분 강력한 오른발 중거리 슈팅을 날리더니 4분 뒤 나니가 발렌시아의 땅볼 크로스를 받아 상대의 골망을 가릅니다. 전반 시작과 함께 기습 공격을 단행하여 뮌헨을 제압하겠다는 것이 맨유의 작전 이었습니다. 여기에 전반 40분 나니의 추가골, 42분 올리치의 추격골로 전반전은 3-1로 맨유가 앞섰습니다.
그런 박지성이 선발에서 제외된 것은 극단적인 공격을 펼칠 수 있는 옵션(나니-루니-발렌시아-깁슨)이 아니었다는 것이 퍼거슨 감독 생각 이었습니다. 퍼거슨 감독에게 중요했던 것은 골이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물론 박지성도 지난 두 달간 아스날-AC밀란-리버풀 같은 강팀들을 상대로 골을 터뜨렸지만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거나 상대팀 선수를 압박하는 스타일에 몸이 베였기 때문에 극단적인 공격의 컨셉과는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전반전까지만 하더라도 박지성의 선발 제외는 퍼거슨 감독의 옳은 판단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은 적어도 18인 엔트리에 있었어야 하는 선수였습니다. 맨유가 리드를 계속 지켜가려면 수비에서 공헌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습니다. 그 적임자는 박지성 이었으나 퍼거슨 감독은 장기간 부상으로 신음했던 오셰이를 투입시킵니다. 하파엘이 후반 5분에 경고 누적에 의한 퇴장을 당하면서 오른쪽 풀백을 맡을 적임자가 없기 때문에 풀백 옵션인 오셰이를 넣은 것입니다. 하파엘 퇴장이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발생하면서 어쩔 수 없이 오셰이를 넣었고 박지성이 투입할 명분이 없어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맨유의 실책은 로번의 부지런한 움직임과 과감한 전방 침투를 봉쇄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전반전에 뮌헨 미드필더 중에서 유일하게 제 몫을 하던 로번의 폼이 점점 올라오면서 후반전에 맨유 선수들을 농락하는 파괴력을 뽐냈습니다. 나니가 루니의 교체로 공격적인 경기 운영을 펼쳤던 것이 오히려 로번에게 공격 공간이 열리는 역효과로 이어진 것이죠. 나니가 전방으로 올라간 것은 제로톱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지만 적어도 로번에게는 빈 공간을 허용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나니를 전방으로 올리고 박지성-플래처-깁슨-발렌시아로 짜인 미드필더진을 구성할 수 있었죠. 맨유는 로번을 봉쇄하기 위해 박지성을 투입했어야 했는데 정작 그는 18인 엔트리에 없었습니다.
결국 맨유는 후반 28분 로번에게 골을 내줬고 뮌헨이 이 골에 힘입어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했습니다. 로번에게 공격을 계속 허용했던 것이 실점의 빌미가 된 것이죠. 만약 퍼거슨 감독이 로번을 막아내기 위해 박지성을 투입했다면 경기 양상은 현실과 달랐을지 모릅니다. 박지성이 윙어를 맡아 리오넬 메시, 더글라스 마이콘, 조 콜, 조세 보싱와 같은 탑클래스 측면 옵션들의 공격력을 봉쇄했던 경험이 있는 선수라는 것을 퍼거슨 감독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박지성이 전술적으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퍼거슨 감독이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맨유의 8강 탈락은 퍼거슨 감독의 오판에서 빚어진 일입니다. 지난 1차전에서 후반 24분 박지성-캐릭을 교체하고 베르바토프-발렌시아를 투입해 1-2 역전패를 자초한 것, 2차전에서 후반들어 폼을 끌어올린 로번의 공격력을 봉쇄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죠. 박지성을 2차전에서 18인 엔트리에 제외시킨 퍼거슨 감독의 판단이 결과적으로는 섣불렀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생각하는 박지성은 중앙 미드필더 였지만, 수비형 윙어로서의 박지성 능력은 이미 검증되고 성공을 거둔지 오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