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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 포지션, 맨유의 뮌헨전 딜레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로서는 바이에른 뮌헨(이하 뮌헨)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을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1차전 원정에서 1-2로 패했기 때문에 2차전에서는 무실점 경기를 펼치는 것이 중요하며 2골 이상 넣어야 4강 진출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골과 무실점을 동시에 노려야 하는 맨유가 2차전에 대한 부담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맨유의 뮌헨전 행보를 낙관하기는 어렵습니다. 지난 3일 첼시전에서 드러난 것 처럼 웨인 루니의 오른쪽 발목 부상 공백이 너무 뼈져렸기 때문입니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는 원톱임에도 후방 공격 옵션에게 공을 받을때의 움직임이 능동적이지 못하며 상대 수비수를 제압하기 위해 활동 폭을 넓히거나 빈 공간을 침투하는 모습이 부족했습니다. 최전방보다 오른쪽 측면에서의 패스 시도가 더 많았다는 것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박지성과의 연계 플레이가 부족했음을 말하며 원톱으로서의 경기 운영이 문제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베르바토프는 줄부상에 빠진 맨유 공격진의 특성상 뮌헨전에서 선발 출전할 것입니다. 레버쿠젠 시절에 특급 골잡이로서 맹활약을 펼쳤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뮌헨전 골이 기대되는 것이 없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레버쿠젠 시절은 어디까지나 과거에 불과하며 지금의 베르바토프는 강팀에 약한 선수로 낙인 찍혔고 심지어 강팀과의 경기에서 정신력이 부족하다는 현지 언론의 따끔한 지적까지 받고 있습니다. 어쩌면 맨유는 뮌헨전에서 베르바토프 원톱 체제가 아닌 투톱 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제는 박지성의 포지션이 맨유의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박지성은 최근 측면보다 중앙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대 미드필더 뒷 공간을 노리는 움직임을 통해 맨유의 공격 흐름을 끌어 올리는데 주력하죠. 그 과정에서 대각선 패스 및 짧은 패스를 앞세워 동료 공격 옵션들과 연계 플레이를 펼치며 팀 공격을 주도했고 특히 루니에게는 빠른 타이밍에 의한 전진패스를 띄우며 상대 수비진의 견제망을 뚫었습니다. 여기에 공을 받는 움직임의 능동함과 매끄러운 위치선정이 빛을 발하면서 상대 중원을 위협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의 공격형 미드필더 포진은 지난 3일 첼시전에서 베르바토프의 부진속에 뚜렷한 결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베르바토프가 박지성과의 연계 플레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최전방에 머무르거나, 테리-알렉스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좌우 측면에서 공격을 전개하면서 팀의 공격 밸런스가 끊어졌습니다. 이 같은 경기 흐름이 뮌헨전에서도 전개되면 맨유의 4강 진출을 낙관하기 힘들어집니다. 박지성의 맹활약이 맨유의 승리로 이어지려면 베르바토프의 물 오른 공격력이 전제되는것이 4-2-3-1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뮌헨전에서는 맨유가 박지성-베르바토프의 공존을 포기하는 전략을 꺼내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베르바토프가 올 시즌 강팀과의 경기에서 이렇다할 존재감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또 다른 공격수를 배치하여 투톱의 연계 플레이에 초점을 맞추는 전술을 쓸지 모릅니다. 그럴 경우 베르바토프-마케다가 맨유의 투톱을 맡을 것입니다. 베르바토프가 원래의 역할인 쉐도우를 맡아 맨유의 공격을 조율하고 마케다가 타겟맨을 소화하는 형태죠. 맨유의 4-4-2는 공격형-수비형 미드필더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박지성은 윙어로 배치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박지성의 측면 전환이 오히려 반갑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지성이 뮌헨전에서 측면을 맡으면 리베리-로번 봉쇄에 주력할 것이 틀림 없습니다. 지난 1차전에서 알틴톱-필립 람의 오른쪽 측면 침투를 봉쇄하는데 성공했던 것 처럼 2차전에서도 같은 역할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맨유에게 필요한 것은 골입니다. 2차전에서는 공격적인 경기를 펼쳐야하기 때문에 측면에서 파괴력을 높일 수 있는 옵션이 맨유에게 필요합니다. 이러한 컨셉에 어울리는 선수가 나니-발렌시아 입니다. 맨유가 4-4-2로 전환하면 박지성이 선발에서 제외 되는 경우의 수가 생깁니다.

하지만 나니-발렌시아 조합은 믿음직하지 않습니다. 특히 발렌시아가 문제입니다. 발렌시아는 단조로운 드리블링 때문에 상대 수비수에게 읽히는 문제점이 있으며 뮌헨과의 1차전 부진, 첼시전에서 지르코프에게 봉쇄당했던 것이 이 때문입니다. 더욱이 첼시전에서는 지르코프와 치열한 경합을 벌이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했기 때문에 뮌헨전에서의 맹활약을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발렌시아 대신에 박지성이 선발 투입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데 박지성-나니 조합은 지난 뮌헨과의 1차전과 똑같은 조합입니다. 뮌헨이 1차전에서 맨유와 상대한데다 측면 공격을 틀어막은 만큼, 박지성-나니 조합이 2차전에서 상대팀에게 봉쇄당할 위험이 따릅니다.

박지성은 윙어로서 특유의 공간 창출 및 종적인 움직임에 의한 역습을 전개하며 팀 공격을 끌어올릴 수 있는 능력이 출중합니다. 리베리-로번의 뒷 공간 사이로 빠져나가는 움직임을 통해 베르바토프-마케다 투톱을 지원사격하는 쪽에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스타일은 측면 옵션들의 활동 폭이 넓은 뮌헨에게 통할지 의문입니다. 리베리-로번이 공격적인 움직임을 펼치면 그 뒤에 있는 바드슈트버-필립 람이 간격을 좁히며 상대 윙어의 침투 공간을 미리 선점하고 견제를 가하기 때문입니다. 두 풀백은 상대팀의 윙어가 측면에서 빌드업을 전개하면 그 즉시 압박하여 공격을 끊어내는 스타일인 만큼, 맨유의 윙어들이 극복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렇게, 맨유의 공격 컨셉이 꼬인 이유는 루니의 부상 공백이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루니가 부상당하지 않았더라면, 맨유는 원톱에 루니를 배치고 나니-박지성-발렌시아를 2선에 놓는 4-2-3-1을 뮌헨전에서 구사했을 것입니다. 스콜스는 최근에 좋은 폼을 보여주지 못한데다 체력 소모가 많았기 때문에 뮌헨과의 2차전에 선발 출전할 가능성이 적습니다.(만약 선발 출전하면 맨유의 뮌헨전 전망을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루니가 빠지면서 베르바토프가 첼시전에서 그 공백을 대신했지만 원톱에 어울리지 못한 폼을 나타냈고 이것이 맨유의 패배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맨유의 딜레마로 작용하는 것이 박지성의 포지션입니다. 박지성이 중앙에서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으나 지난 첼시전에서 베르바토프가 그것을 받아주지 못했고, 측면에 기용하기에는 바드슈트버-필립 람을 뚫어낼 수 있는 파괴적인 공격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맨유가 베르바토프-마케다를 투톱으로 놓고 박지성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놓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4-4-2를 쓸 수 있으나 8강 2차전이라는 무대에서 모험적인 전술을 쓸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맨유의 4강 진출은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