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클래스' 웨인 루니가 없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공격은 재앙 그 자체였습니다. 팀 공격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루니가 불의의 부상으로 빠지면서 평소와 다르게 무기력한 공격을 펼쳤습니다. 루니가 존재하는 맨유, 루니가 없는 맨유는 전혀 다른 팀 이었습니다. 더 안타까운건 박지성의 맹활약이 동료 공격 옵션들의 부진 및 맨유에 패배에 가려졌다는 느낌입니다.
맨유가 라이벌 첼시와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자존심 대결에서 무너졌습니다. 맨유는 3일 오후 8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2009/10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33라운드 첼시전에서 1-2로 패했습니다. 전반 20분 조 콜에게 선제골을 내준 뒤 후반 34분 디디에 드록바에게 추가골을 허용했습니다. 2분 뒤 페데리코 마케다가 추격골을 넣었지만 경기 흐름을 뒤집는데는 역부족 이었습니다. 이로써, 맨유는 첼시에 의해 리그 선두 자리를 내주며 리그 4연패 달성에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반대로 첼시는 앞으로 남은 5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면 리그 우승이 확정됩니다.
'루니 없는' 맨유의 공격, 박지성 혼자만 잘싸웠다
우선, 맨유와 첼시의 경기는 빅매치를 무색케 하는 실망스런 판정이 속출했습니다. 마이크 딘 주심의 오심 3가지가 이날 경기의 희비를 엇갈리게 했죠. 전반 25분 지르코프가 공이 아닌 박지성의 발을 향해 태클한 것은 엄연한 페널티킥 이었습니다. 딘 주심이 그 장면을 정확하게 봤다면 맨유는 박지성에 의해 페널티킥을 얻으며 동점을 노렸을 것입니다. 후반 34분 드록바의 골은 명백한 오프사이드이며 36분에는 마케다가 첼시 골키퍼 체흐와 혼전중인 상황에서 손으로 골을 넣었습니다.
하지만 맨유의 패배를 주심 판정탓에 돌리기에는 무리입니다. 루니가 부상으로 빠진 맨유의 공격은 이빨 빠진 호랑이에 비유할 만큼 상대 골문을 흔들 수 있는 힘이 없었습니다. 첼시가 전반 초반과 중반에 맨유 문전쪽에 많은 공격 숫자를 두며 골을 넣는데 성공했던 것과 달리, 맨유의 공격은 2선에서만 활발했을 뿐 최전방에서 테리-알렉스를 제압하지 못했습니다. 루니가 있었다면 테리-알렉스의 뒷 공간을 파고들거나 아니면 두 명의 센터백을 앞쪽으로 끌어당겨 골 기회를 창출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맨유에서는 이러한 역할을 하는 선수가 한 명도 없었으며 베르바토프는 그 역할에 실패했습니다. 후반전에 수많은 공격 기회를 얻었으나 정상적인 골이 없는건 당연했습니다.(손을 이용한 마케다의 골 논외)
그래서 베르바토프의 고질적인 약점이 첼시전에서 그대로 노출했습니다. 베르바토프는 올 시즌 기복이 심한 행보를 거듭했는데, 특히 상대팀의 거센 압박에 맥없이 밀렸습니다. 그래서 강팀과의 경기에서 이렇다할 임펙트를 보이지 않았으며 이번 첼시전에서도 테리-알렉스에 묶이며 최전방에서 고립됐습니다. 올 시즌 '약팀을 상대로' 12골 넣은것이 면죄부가 될지 모르나, 맨유 역사상 최고 이적료인 3075만 파운드를 기록한 선수가 강팀과의 경기에서 부진한 것은 문제 있습니다. 그 문제점이 첼시전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죠.
맨유의 가장 결정적인 패인은 박지성이 전진패스할 공간을 베르바토프가 최전방에서 확보하는데 실패했습니다. 박지성이 루니와 성공적으로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박지성의 강점인 전진패스를 루니가 후방에서 공을 받을 수 있는 움직임에 능동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상대를 등지는 위치선정이 절묘했기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베르바토프는 박지성이 공을 잡을때 전진 패스 받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또는 간격을 좁히기 보다는, 최전방에 머뭇거렸습니다. 맨유의 원톱임에도 오른쪽 측면에서의 패스 빈도가 많았던 것은 경기 운영이 미숙함을 의미합니다. 4-2-3-1에서 원톱은 공격형 미드필더의 패스 공간을 확보하는것이 기본 임무인데, 베르바토프는 박지성과 따로 놀았습니다.
이러한 베르바토프의 부진은 긱스-박지성-발렌시아에게 활동량 부담이 커지는 원인이 됐습니다. 긱스는 넓은 활동량을 요구받다보니 전반전에 극심한 부진을 나타습니다. 올해 37세의 윙어에게 왕성한 기동력을 요구하기에는 무리였는데 베르바토프가 키우고 말았죠. 발렌시아는 90분 동안 24개의 패스에 그칠 만큼, 지르코프의 오버래핑을 막아내고 그를 제치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4-2-3-1은 좌우 윙어들의 부지런한 공격력이 필수인데, 긱스는 세월이 아쉬웠고 발렌시아는 지르코프라는 장애물이 문제였습니다. 그나마 긱스의 폼이 후반전에 살아난 것은 포백의 전방 수비 전환 및 첼시의 잠그기, 박지성과의 스위칭 때문 이었습니다.
그나마 맨유에게 위안이 되었던 것은 박지성의 공격형 미드필더 배치 성공입니다. 박지성은 '남아공 월드컵에서 맞붙을' 미켈의 뒷 공간을 파고들며 첼시 진영 중앙에서 여러차례 결정적인 공격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다시 말해, 미켈의 약점을 제대로 간파했습니다. 미켈은 아프리카(나이지리아) 출신 선수의 전형적인 단점인 뒷 공간 허용의 약점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거친 파울을 남발하는 편인데 이날 경기에서도 박지성에게 무리한 태클을 시도해 파울을 범했습니다. 박지성이 미켈의 뒷 공간에서 여러차례 공을 잡아 2차 공격을 진행하거나, 미켈을 뒷 공간을 정면으로 파고들면서 맨유의 첼시 중원 공략이 탄력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루니의 공백 및 베르바토프의 부진으로 신음했던 맨유의 공격이 박지성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박지성이 중원에서 팀 공격의 템포를 조절하고 미켈의 뒷 공간에서 여러차례 정확한 패스를 연결하는 폼이 긱스-베르바토프-발렌시아와 대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후반 중반에는 지르코프와 경합중인 상황에서 공을 따낸끝에 맨유의 공격을 유도했습니다. 무엇보다 공격 과정에서의 위치선정이 절묘했습니다. 동료 선수에게 공을 받을때의 움직임이 중앙에서 능동적이다보니 그 위치가 매끄러웠고 빠른 타이밍에 의한 패스를 재차 연결하면서 맨유의 공격 흐름이 원활했습니다. 사실상, 박지성이 맨유의 플레이메이커였죠.
문제는 퍼거슨 감독의 박지성 교체가 뮌헨전에 이어 첼시전에서도 또 악수가 됐습니다. 맨유는 후반 26분 박지성-스콜스가 빠지고 마케다-나니가 투입하면서 4-4-2로 전환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드록바에게 추가골을 내주는 원인이 됐습니다. 팀 공격을 조율하던 박지성이 빠지면서 미드필더진의 공격 구심점이 사라진 것이 발단이었죠. 박지성을 중심으로 공격을 전개하던 미드필더진에서 어느 누구도 공격을 주도하지 못해 유기적인 호흡이 살아나지 못하더니 '잠그기를 펼치던' 첼시가 맨유와의 점유율에서 앞섰습니다. 그래서 긱스-플래처로 짜인 중앙 미드필더는 드록바의 골 상황에서 상대의 역습을 봉쇄하지 못한 문제점을 노출했습니다.
퍼거슨 감독 선수 교체의 또 다른 문제점은 나니의 투입 타이밍이 늦었습니다. 후반 이른 시간에 스콜스 또는 긱스와 교체 투입하여 페레이라를 공략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하게 노렸어야 했습니다. 이날 나니가 과감한 측면 돌파를 통해 상대 오른쪽 진영을 공략한 시점이 드록바가 골 넣은 이후부터 였는데, 베르바토프가 봉쇄당한 맨유의 공격 상황을 고려하면 후반 26분 투입이 늦었습니다. 문제는 그 시간에 맨유의 첫번째 교체 투입이 이루어졌는데, 팀이 0-1로 뒤졌음을 상기하면 퍼거슨 감독의 느슨한 결단력이 맨유의 패배를 자초했습니다. 결국, 맨유는 첼시전 패배로 루니의 부상 공백만 잔뜩 키우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