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은 환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그는 우리가 부여하는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는 선수 중에 한 명이다. 훈련때 그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번 경기에서 그에게 또 다른 역할을 맡겼고 AC밀란전과는 미세하게 다른 역할이다. 그럼에도 박지성은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고 골을 넣을때의 용맹함도 그 중에 하나였다"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감독은 리버풀전 경기 종료 후 맨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산소탱크' 박지성을 승리의 원동력으로 꼽았습니다. 박지성이 자기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던 것을 비롯 역전골이 맨유의 승리 원인으로 이어졌기 때문이죠. 얼핏보면 퍼거슨 감독 특유의 립서비스 같지만, 경기를 보셨던 분들이라면 박지성을 칭찬한 퍼거슨 감독의 발언을 공감할 것입니다. 박지성이 있었기에 맨유가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했기 때문이죠.
박지성이 라이벌 리버풀전에서 역전골을 넣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21일 오후 10시 30분(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2009/10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31라운드 리버풀전에서 후반 15분 대런 플래처의 오른쪽 크로스를 문전 안에서 다이빙 헤딩 슈팅으로 상대 골망을 흔들며 역전골을 넣었습니다. 박지성의 골에 힘입은 맨유는 2-1 역전승을 거둔 것을 비롯 프리미어리그 1위 재진입에 성공했습니다. 전반 5분 페르난도 토레스에게 선제골을 내줬으나 7분 뒤 웨인 루니의 페널티킥 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따라잡았고 후반 15분 박지성이 천금의 역전골을 넣었습니다.
이로써, 박지성은 리버풀전 역전골로 시즌 3호골을 비롯 3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2골 1도움)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올 시즌에는 아스날-AC밀란-리버풀 같은 강팀들을 상대로 골을 넣으며 팀 승리의 주역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아울러 박지성은 리버풀전 골을 통해 프리미어리그 빅4 라이벌 클럽들을 상대로 골을 터뜨린 기록을 달성했고, '강팀 킬러'임을 또 다시 증명했습니다. 강팀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것을 비롯 공수 양면에 걸친 맹활약을 꾸준히 펼쳐왔던 박지성의 축구 지능이 리버풀전에서 또 다시 꽃을 피웠습니다.
박지성의 축구 지능, 맨유의 승리 원인
박지성은 경기 종료 후 <맨체스터 이브닝뉴스>를 통해 "박지성은 리버풀을 끊임없이 걱정시켰고 그들은 한국인의 결승골을 막지 못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팀 내에서 가장 높은 8점을 부여 받았습니다. 박지성의 진가는 역전골 뿐만 아니라 경기 내용에서도 맨유가 승리할 수 있었던 밑거름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박지성은 리버풀전에서 4-2-3-1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았습니다. 지난 AC밀란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2차전과 같은 포지션을 소화한 것이죠. 그동안 맨유에서 윙어로만 뛰었던 박지성의 위치가 강팀과의 경기에서 중앙으로 이동한 것은 그의 포지션 전환을 통한 변칙 전술로 승리하겠다는 퍼거슨 감독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퍼거슨 감독이 그동안 강팀과의 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박지성의 역량을 얼마만큼 믿고 있는지를 의미하는 대목입니다. 강팀과 경기하는 퍼거슨 감독의 선택은 거의 늘 박지성과 함께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다만, 박지성은 리버풀전에서 AC밀란전과 다른 역할을 맡았습니다. AC밀란전에서 상대 공격의 젖줄인 안드레아 피를로를 봉쇄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췄다면 리버풀전에서는 상대 중원 조합인 루카스-마스체라노에서 제라드로 향하는 공격 길목을 차단하는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특히 리버풀전에서는 수비 상황에서 횡적인 움직임이 많았는데, 이것은 루카스-마스체라노가 횡패스 위주의 공격 패턴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각각 제라드에게 2개, 5개의 패스를 연결했는데(맨유전 패스 횟수는 34개, 42개) 자신들의 전방 방향에 있는 선수에게 활발한 공격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박지성의 압박이 두 선수의 공격을 무기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박지성은 수비상황에서 활동 폭을 넓혀 루카스-마스체라노의 앞 공간을 미리 선점하여 제라드쪽으로 통하는 공격 물 줄기를 차단했습니다. 그래서 루카스-마스체라노의 공격 패턴이 중앙보다 측면쪽으로 제한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영향은 리버풀의 공격이 단조로워지고 제라드가 플래처-캐릭에게 봉쇄당하면서 토레스가 최전방에 고립되는 이중삼중 효과로 이어졌습니다. 최근에 폼을 되찾으며 리버풀의 공격력을 끌어올렸던 제라드는 후방 옵션들의 뒷받침 부족으로 맨유전에서 부진했고, 이것은 리버풀의 공격력 저하와 함께 맨유가 경기 흐름을 장악하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사실, 박지성의 전반전 경기 운영은 불안했습니다. 퍼스트 터치 불안으로 상대에게 여러차례 커팅을 허용하는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이죠. 리버풀이 이날 경기에서 루카스-마스체라노를 중심으로 수비 라인을 내려 '루니가 포진한' 맨유의 중앙을 봉쇄하는 전략에 초점을 맞추면서 박지성이 공격력을 끌어올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박지성은 공 없는 움직임과 공간 창출 능력을 통해 루카스-마스체라노의 위치를 앞쪽으로 끌어내기 위한 작업을 시도했습니다. 루니에게 결정적인 골 기회를 밀어주기 위한 희생을 택한 것이죠. 결국, 수비 상황에서 루카스-마스체라노에 대한 전진 압박을 펼쳐 상대를 움츠리게 교란했던 것이 후반전에 과감한 전방 돌파를 통해 리버풀의 중원을 무너뜨린 원인이 됐습니다.
박지성이 공수 양면에 걸쳐 넓은 활동폭을 통해 상대를 교란했던 것은 루니의 활동 부담을 덜어주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박지성이 공간을 넓게 움직이는 와이드맨 역할을 맡으면서 루니는 최전방에서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드는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미드필더 지역까지 넓게 커버하며 활동 부담을 느꼈던 루니의 기존 원톱 체제는 최근에 박지성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환하면서 파괴력이 향상 됐습니다. 루니가 AC밀란과의 두 경기에서 4골을 넣은 것을 비롯, 리버풀전에서는 후반 15분 루니가 캐러거와 문전 경합을 벌이던 상황에서 박지성이 다이빙 헤딩 슈팅을 작렬했습니다.
그런 박지성은 후반전에 루니에게 여러차례 정확한 전진패스를 밀어주며 루카스-마스체라노의 뒷 공간을 공략했습니다. 두 선수와의 기세 싸움에서 우세를 점하고 라인을 앞쪽으로 끌어내면서 퍼스트 터치 불안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후방에서 공을 잡으면 그 즉시 루니가 있는 쪽으로 전진패스를 연결하며 결정적인 골 기회를 연출 했습니다. 결국, 두 선수의 공존은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는 원투펀치로 작용했습니다. 박지성이 앞으로 루니의 밑에서 뛰게 되면 공격 포인트가 더 많아질 것임을 리버풀전에서 확신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박지성은 리버풀전을 통해 축구 지능이 뛰어난 선수임을 실력으로 과시했습니다. 많은 활동량과 강철같은 체력, 적극적인 압박, 유기적인 패스 연결, 공간 창출 등이 서로 결합되는 지능적인 경기를 펼쳤기 때문입니다. 호날두와 카카처럼 기술로 승부를 거는 타입은 아니지만, 감독이 주문하는 전술을 최대화시키기 위해 팀을 위해 희생하면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박지성의 아우라는 특히 강팀과의 경기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윙어였던 박지성을 중앙으로 이동시킨것은, 박지성의 지능적인 플레이를 끌어올리기 위한 의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맨유를 상대하는 강팀들 입장에서는 박지성에게 위협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종적인 움직임에 강한 박지성을 견제하려면 강력한 체력과 넓은 활동 폭, 끈질긴 수비력에 지능적인 경기 운영으로 무장한 '박지성 킬러'가 있어야 하는데 유럽 빅 클럽에서는 이러한 선수가 흔치 않습니다. 약팀이라면 맨유의 파상 공세를 견제하기 위해 밀집수비를 구사하지만, 강팀은 맨유를 이겨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수비 위주의 전술을 쓰기에는 무리함이 있으며 박지성 킬러를 두기에는 전술적인 모험이 따릅니다. 반대로 맨유가 박지성 효과로 재미를 봤던 것은, 박지성이 선호하는 종적인 경기 패턴이 팀 전술의 근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맨유를 상대했던 강팀들은 박지성 봉쇄 해법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고 이것은 리버풀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윙어 박지성'은 측면을 돌파하는 임무를 맡기 때문에 공격 패턴이 상대에게 읽힐 수 있는 위험성이 있지만 '공격형 미드필더 박지성'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특징이 있습니다. 공수 양면에 걸친 프리롤 역할 때문에 상대팀이 대처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피를로가 박지성의 축구 지능에 말려들었고, 이번에는 리버풀의 중원이 박지성에게 농락 당했습니다.
여기에 박지성은 역전골까지 넣으면서 '골이 부족한 윙어'라는 부정적인 수식어에서 벗어났습니다. 최근 강팀과의 경기에서 세 번이나 골을 넣은 박지성의 '강팀 킬러' 본능은 맨유가 골을 넣는 새로운 공식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골을 비롯해,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맹활약을 펼친 박지성의 축구 지능이 오랫동안 꾸준히 유지되면 맨유는 앞으로 강팀과의 경기에서 승승장구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