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탱크'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은 지난 20일 에버턴전에 선발 출전했으나 위협적인 공격력을 발휘하지 못해 후반 21분 교체되었고 팀은 1-3 역전패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경기 종료 후 <스카이스포츠>로 부터 '경기에 관여하지 못했다'는 혹평과 함께 평점 6점을 부여 받았습니다. 맨체스터 지역 언론인 <맨체스터 이브닝뉴스>를 통해서는 '에버턴에게 위협적인 순간을 주지 못했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5점이라는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박지성은 에버턴전 이후 국내 언론으로부터 '공격력 부족'에 대한 지적을 받았습니다. 상대의 견고한 압박을 흔들지 못한데다 과감하고 저돌적인 공격이 저조했기 때문이죠. 지난 17일 AC밀란전 맹활약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한 것은 분명히 아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효리사랑의 생각은 국내 언론과 다릅니다. 만약 박지성이 '공격력 부족'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면 팀의 역습 축구에서 적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종적인 움직임과 종패스를 앞세워 팀의 역습 및 빌드업을 시도하고, 짧은 패스와 2대1패스를 번갈아가며 상대를 교란하는 모습(요즘에 이런 장면이 부쩍 잦아졌죠.), 상대 수비수의 시선을 자신쪽으로 돌리며 동료 선수의 문전 침투를 돕는 장면, 그리고 활발한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박지성은 박지성만의 공격력을 주무기로 삼고 있습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국내 언론은 박지성이 맹활약을 펼치면 공격력에 대한 찬사를 내보내지만, 부진하면 공격력 부족이라는 약점을 꺼내듭니다. 박지성에 대해서 이렇게 일희일비하고 있습니다.)
박지성이 에버턴전에서 AC밀란전 맹활약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박지성을 위주로 경기를 봤던 분들이라면 선수 개인의 공격력 부족을 아쉬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기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박지성의 맹활약을 기대하기 힘들었던 경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맨유의 에버턴전 전술이 안토니오 발렌시아에 의존하는 경향이 두드러졌기 때문입니다. 루이스 나니가 퇴장 징계로 결장하면서 발렌시아가 맨유의 페너트레이션을 주도했는데 이것이 맨유가 에버턴전에서 매끄럽지 못한 공격력을 펼친 원인이 되었습니다.
발렌시아는 맨유의 페너트레이션을 이끌며 상대 수비의 압박을 분산시키고 공격진을 향해 골 기회를 밀어넣거나 직접 문전 침투하는데 있어 부족함이 있는 선수입니다. 에버턴전에서는 전반 16분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에게 빠른 타이밍의 크로스를 연결해 선제골을 엮어냈지만 문제는 그 장면 이외에는 상대 수비의 압박에 막히는 시간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오른쪽 측면에서 볼 터치가 많았던 것은 팀 공격이 발렌시아에 의존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밀집 수비를 펼치던 상대팀의 전략에 읽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발렌시아에 집중되는 공격이 많다보니 맨유의 공격 마무리가 번번이 끊어졌고 이것은 루니-베르바토프의 고립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만약 발렌시아가 호날두-나니처럼 페너트레이션이 뛰어난 선수라면 직선-곡선을 골고루 활용하는 드리블 패턴을 앞세워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을 취하며 상대 수비의 압박을 무너뜨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발렌시아는 드리블 패턴이 단조로운 문제점이 있습니다. 직선 위주의 움직임이 많으며, 곡선적인 움직임에서는 순간 가속도가 떨어지면서 상대 수비를 제치지 못합니다. 페너트레이션이 단순하다는 것은 팀의 역습 축구를 전개하는데 부족함이 있습니다. 맨유가 점유율에서 역습 축구로 전환하면서 오른쪽 윙어로 발렌시아가 아닌 나니를 꾸준히 선발 출전 시켰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발렌시아의 또 다른 문제점은 왼발을 쓰지 못합니다. 슈팅과 패스, 개인기 구사 과정에서 오른발에 치우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왼발에 있는 공을 오른발로 옮길 때 그 타이밍이 느리다보니 상대 수비수가 커팅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상대 수비를 따돌리며 공을 지켜내는 능력에 있어서는 왼발 때문에 부족함이 있습니다. 물론 발렌시아의 공격력은 수비력이 약한 팀들과의 경기에서는 충분히 통할 수 있었지만, 에버턴처럼 수비가 견고한 팀을 상대로는 고전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그래서 에버턴은 발렌시아가 측면에서 공을 잡으면 한 명의 마크맨(레이턴 베인스)이 꽁꽁 견제하면서 상대의 활동 반경을 옆쪽으로 틀도록 유도했고, 다른 한 명(리온 오스만)은 대각선쪽에서 근접마크하는 방어 형태를 취했습니다. 베인스가 발렌시아와 정면에서 맞닥드렸다면 오스만은 발렌시아의 대각선 방향에 포진하면서 문전 침투 길목을 막아내거나 베인스와 압박하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에버턴은 맨유전 승리를 위해 발렌시아를 집중마크하는 쪽에 초점을 맞췄고, 발렌시아 위주의 공격 패턴을 줄기차게 고수했던 맨유는 결국 에버턴 원정에서 '수비 불안까지 겹쳐' 1-3 역전패로 장렬하게 전사했습니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했던 박지성 이야기를 다시 꺼내겠습니다. 에버턴전에서 드러난 발렌시아의 문제점은, 박지성의 공격력 부족이 선수 본인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맨유의 공격이 발렌시아쪽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박지성쪽으로 공이 날라오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발렌시아가 상대 수비를 제치는 데 어려움을 겪자 맨유의 공격 타이밍이 느려지는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박지성이 상대 수비를 흔드는 움직임을 취하더라도 골로 연결 될 기회가 적어집니다. 발렌시아가 오른쪽에서 시간을 지체하면서 에버턴의 수비 전환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박지성은 왼쪽에서 특유의 활발한 공격력을 시도할 기회가 적었습니다.
발렌시아는 맨유의 역습에서 나니보다 위력이 떨어지는 선수입니다. 물론 나니는 부정확한 볼 배급이 적지 않은것을 비롯 기복이 심한 단점이 있기 때문에 발렌시아보다 더 좋은 선수라고 단정짓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니는 양발잡이인 것을 비롯 좌우 윙어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 상대 수비를 단번에 제치고 2차 공격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파괴력이 출중한 선수입니다. 이러한 유형의 선수는 역습에서 강점을 발휘하며, 나니와 함께 좌우 측면에서 장단을 맞출 최적의 적임자가 바로 박지성 이었습니다. 박지성이 상대 수비를 끌고 다니는 것과 함께 나니가 역습을 주도하며 맨유가 역동적인 공격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박지성과 발렌시아는 궁합이 맞지 않습니다. 발렌시아가 역습 축구 적응에 최적화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박지성이 종적인 움직임과 종패스를 통해 역습에서 강점을 발휘하는 성향이라면 발렌시아는 효율적인 볼 배급이 우선시되는 점유율 축구에서 성공적인 행보를 나타냈던 선수였습니다. 역습에 강한 윙어와 점유율에 강한 윙어의 시너지 효과가 미미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팀의 성적 부진 원인이었던 점유율 축구에서 역습 축구로 전환한 맨유의 현 상황이라면, 박지성보다는 발렌시아의 변화가 절실히 요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