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내용에서 우세를 점했고 결과까지 이겼습니다. 아시안컵 이후 빠르고 세밀한 공격 축구가 정착하면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대한 부푼 기대를 안게 됩니다. 가장 반가웠던 것은 대량 득점으로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25일 저녁 8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진행된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에서 4-0으로 승리했습니다. 전반 28분 이정수의 선제골을 시작으로 전반 43분 김정우, 후반 41분 박주영, 후반 47분 이근호가 온두라스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네 번의 골 장면을 비롯 모든 선수들이 한국의 기분좋고 통쾌한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한국, 공격 지향적인 경기를 펼쳤다

한국은 온두라스전에서 4-1-4-1로 나섰습니다. 정성룡이 골키퍼, 김영권-황재원-이정수-조영철이 수비수, 기성용이 수비형 미드필더, 김보경-이용래-김정우-이청용이 2선 미드필더, 박주영이 원톱을 맡았습니다. 상대팀 온두라스는 4-4-1-1을 활용했습니다. 바야다레스가 골키퍼, 피게로아-사비온-차베스-조니 팔라시오스가 수비수, 이사기레-토마스-클라로스-마리오 마르티네스가 미드필더, 데 레온이 쉐도우, 웰컴이 타겟맨으로 출전했습니다.(조니 팔라시오스는 토트넘에서 뛰는 윌슨 팔라시오스, 마리오 마르티네스도 에밀 마르티네스와 다른 인물입니다.)

그런 한국은 경기 초반 공격을 주도했습니다. 미드필더들과 풀백들이 서로 볼을 주고 받으며 점유율을 늘렸죠. 온두라스 미드필더들이 포백과 폭을 좁히고 후방쪽으로 무게 중심을 잡았기 때문에 한국의 공격 상황이 많았습니다. 전반 7분에는 김정우가 온두라스 박스 중앙에서 김보경-이용래가 왼쪽에서 띄웠던 볼을 왼발로 터치했지만 상대 수비수 옆쪽에서 슈팅 공간이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슈팅 타이밍이 늦어지면서 오른쪽에 있던 이청용에게 패스를 날렸습니다. 하지만 이청용은 전반 10분까지 합해서 골문 바깥으로 향하는 슈팅을 두 번이나 날렸습니다. 박스쪽으로 달려드는 움직임은 좋았지만 슈팅의 세기 및 정확도가 떨어졌습니다.

이정수-김정우 골, 기분 좋은 2-0 리드

한국은 전반 11분 점유율에서 61-39(%)로 앞섰습니다. 경기 초반에 많은 공격 기회를 얻었던 흐름이 그대로 이어졌죠. 온두라스가 이청용의 슈팅 2번 이후로 토마스-클라로스를 박스 안쪽으로 내리면서 이사기레-마르티네스가 측면에서 수비 공간을 넓게 잡으면서 본격적인 수비 축구에 돌입했습니다. 전반 14분에는 웰컴이 마르티네스의 오른쪽 크로스를 박스 왼쪽에서 받으며 왼발 발리슈팅을 날렸습니다. 정성룡이 발로 걷어냈지만 역습이 날카로웠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본선때 '선 수비-후 역습'로 칠레-스페인-스위스와 상대했던 전술을 그대로 활용한 셈입니다. 다행히 골을 내주지 않았지만, 황재원이 웰컴에게 슈팅 공간을 내주는 불안한 위치선정이 아쉬웠습니다.

전반 19분에는 이청용이 또 다시 박스쪽에서 슈팅을 날렸습니다. 온두라스 왼쪽 풀백 피게로아가 왼쪽에서 공간을 내준 틈을 노리며 순간적 돌파에 이은 오른발 슈팅을 날렸지만 상대 골키퍼 선방에 막혔죠. 오른발 인사이드 슈팅을 시도했지만 파워가 붙지 못하면서 슈팅의 세기가 떨어졌죠. 이청용의 슈팅 파워 부족은 늘 지적되었던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청용에게 많은 슈팅 기회가 주어진 것은 박주영의 공격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박주영이 차베스-사비온으로 짜인 온두라스 센터백 라인과 경합하고, 이용래-김정우가 상대 수비수 및 미드필더 사이의 공간을 파고들며 밸런스 파괴를 노린다면, 김보경이 측면에서 볼을 투입하면서 이청용이 해결짓는 형태가 나타났습니다. 선수들의 전체적 움직임은 활발했지만 마무리가 깨끗하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한국의 첫 골은 전반 28분에 터졌습니다. 기성용의 왼쪽 코너킥이 문전에서 바운드 된 볼을 이정수가 왼발 슈팅을 날리며 온두라스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세트 피스 상황에서 선제골을 넣었다는 것은 상대 밀집 수비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게 됐습니다. 그 이전까지 골 생산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칫 경기를 어렵게 풀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이정수의 골이 더없이 반가웠습니다. 전반 30분에는 이청용이 한국 진영에서 볼을 잡으며 하프라인쪽을 넘어섰던 박주영에게 빠른 종패스를 띄웠고, 1분 뒤에는 이청용의 오른쪽 크로스가 박주영의 헤딩 슈팅으로 이어졌습니다. 두 장면은 추가골로 연결되지 못했지만, 두 선수 사이의 호흡이 잘 맞았습니다. 이청용-김보경-김정우는 동료 선수의 능동적 움직임을 살리는 패싱력이 인상 깊었습니다.

전반 39분에는 기성용이 한국 진영에서 하프라인까지 볼을 달고 나왔습니다. 2선 미드필더 뒷 공간에서 볼을 투입하면서 홀딩 역할까지 도맡았지만, 온두라스가 수비쪽에 많은 인원을 배치하면서 웰컴쪽을 노리는 역습을 노렸기 때문에 기성용이 공격쪽에 여유가 있었습니다. 전반 43분에는 오른쪽 측면에서 돌파를 시도했었죠.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이용래-김정우가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펼치면서 커버링이 가능했고, 온두라스가 공격의 맥을 찾지 못하면서 기성용이 앞쪽으로 나왔습니다. 기성용-이용래-김정우의 공존은 무난했습니다. 그리고 전반 43분에는 김정우가 추가골을 넣었습니다. 기성용의 오른쪽 논스톱 패스 및 박주영의 백패스를 김정우가 박스 중앙에서 오른발 슈팅으로 한국의 두번째 골을 성공시켰죠.

한국은 전반전을 2-0으로 앞섰습니다. 온두라스 밀집 수비에 흔들리지 않고 상대 수비 배후 공간을 노리는 볼 배급을 줄기차게 시도했고, 공격 상황에서의 빠른 순간 스피드 및 측면까지 넓게 벌리는 위치선정으로 상대 수비 밸런스를 흔들었던 경기 운영이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온두라스 수비가 예상보다 견고하지 못한것도 없지 않았지만 그 흐름을 만든것은 한국 이었습니다. 이청용의 슈팅 4개가 골로 연결되지 못했던 아쉬움을 이정수-김정우가 만회한 것도 좋았습니다. 골을 넣기 위해 경기 집중력의 느슨함을 경계하고 끝까지 공격에 몰두했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박주영, 1년 6개월 만에 필드골 작렬...이근호 대표팀 복귀 골 포함 4-0 승리

한국은 교체 선수 없이 후반전에 나섰습니다. 평가전이기 때문에 후반 시작과 함께 누군가 교체 투입할 수 있었지만, 조광래 감독이 전반전 경기력에 만족을 나타냈는지 아무도 벤치로 불러들이지 않았습니다. 후반 초반에는 온두라스 선수들의 무게 중심이 전방쪽으로 쏠리면서 반격을 취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패스가 끊기거나 수비에 가담하는 움직임이 많아졌습니다. 전반전에 일방적인 공격을 펼쳤다면 후반 초반에는 경기가 소강 상태 였습니다. 후반 10분에는 이근호가 김보경 대신에 교체 투입하면서 왼쪽 윙어로 출격했습니다. 허정무호에서는 주로 공격수를 맡았지만 조광래호에서는 왼쪽 윙어로 뛰었죠. 과거 베어벡호에서 맡았던 바로 그 자리 였습니다.

온두라스의 공세에 맞선 한국은 미드필더들의 활동 폭을 늘리는 작전을 펼쳤습니다. 수비시에는 이용래-김정우-이청용이 내려가면서 압박을 펼쳤고, 공격시에는 선수들끼리 대각선 방향으로 마주하면서 볼을 투입했죠. 단순한 짧은 패스 및 횡패스로 공격을 전개하지 않고 상대 수비 배후 공간을 노리는 볼 투입을 전개하며 대각선 패스를 시도했죠. 후반 15분에는 이근호가 박스 오른쪽 부근에서 오버헤드킥을 시도하며 대표팀 복귀 골을 노렸습니다. 왼쪽 측면에서 중앙쪽으로 파고드는 활동 패턴으로 슈팅을 노렸습니다. 1분 뒤에는 이근호가 앞쪽에 있던 박주영에게 긴 스루패스로 문전 침투를 도왔죠. 대표팀 공격이 얼마만큼 다양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적어도 온두라스전을 놓고 보면, 김보경-이근호가 박지성 공백을 메웠습니다. 온두라스 수비진 사이를 파고드는 빠른 순간 스피드 및 기동력, 빈 공간을 이용한 움직임으로 한국의 공격 물꼬를 틀었습니다. 온두라스의 레벨을 감안하더라도, 지난달 터키전에서 구자철이 왼쪽 윙어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과 비교하면 긍정적 성과를 얻었습니다. 또한 후반 24분 공격지역 패스 성공률에서는 71-38(%)로 앞섰습니다. 후반 초반에 공격 템포가 무뎌졌던 아쉬움을 만회하는데 성공했죠. 온두라스 진영에서 상대 수비진을 공략하는 볼 전개의 세밀함을 시도했던 것이 수치상에서 반영되었죠. 그러면서 온두라스의 공격 의지가 점점 꺾였습니다.

한국은 후반 27분 이청용을 빼고 지동원을 교체 투입했습니다. 그러면서 박주영을 오른쪽 윙어로 내렸습니다. 부상에서 회복되지 얼마 안된 지동원의 대표팀 경험을 기르고, 그동안 혹사 논란에 빠졌던 이청용의 체력을 안배하고, 박주영을 측면으로 돌리는 공격의 다양화가 모두 함축된 장면입니다. 후반 34분에는 박주영이 오른쪽 측면에서 볼을 터치하자 중앙쪽으로 이동하여 논스톱 패스를 날렸고, 이용래가 그 볼을 받아 빈 공간을 침투하여 슈팅을 날렸으나 볼이 떴습니다. 박주영이 그동안 측면에서는 중앙에 있을때에 비해 공격의 파괴력이 반감되는 문제점이 있었지만 온두라스전에서는 무난했습니다. 하지만 두 팀의 전세가 이미 기울어졌고 이사기레까지 교체되었기 때문에 '박주영은 오른쪽 윙어에 어울린다'는 평가는 유보입니다.

그런 박주영은 후반 37분 한국의 세 번째 골을 넣었습니다. 지동원의 왼쪽 크로스를 중앙에서 헤딩골로 밀어 붙였죠. 2009년 9월 5일 호주전 이후 1년 6개월 만에 필드골을 넣었으며, 자신의 50번째 A매치에서 골을 기록하는 겹경사를 누렸습니다. 앞으로 며칠 뒤 소속팀 AS모나코에 복귀하면서 강등권 탈출을 이끌어야 하는 만큼, 온두라스전 골은 선수의 사기를 고취시키는 값진 장면입니다. 그 이후 한국은 후반 41분 조찬호-윤빛가람-박기동을 교체 투입하며(OUT 김정우-이용래-박주영) A매치 출전 기회를 제공했고, 47분에는 이근호가 오른쪽 코너킥 상황에서 헤딩 슈팅으로 대표팀 복귀 골을 넣은 끝에 4-0 완승을 굳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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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넣는 수비수' 이정수(30, 가시마 앤틀러스)가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동점골을 넣었을 때, 그동안 이정수가 걸어왔던 축구 인생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거치지 못했고, K리그의 무명 선수였고, 붙박이 주전으로 자리잡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무명 선수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한국의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 위업의 주역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정수는 한국의 16강 진출 달성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태극 전사였습니다. 그리스전에서 전반 7분 기성용의 프리킥 상황에서 상대 문전으로 침투하여 오른발을 내밀며 공을 골대 안으로 집어넣는 결승골을 기록했습니다. 나이지리아전에서는 전반 24분 0-1로 뒤진 상황에서 기성용의 프리킥을 헤딩에 이은 오른발로 동점골을 밀어 넣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번의 골은 이영표가 파울을 유도하던 상황이었고 기성용이 왼쪽 공간에서 프리킥을 올리면서 이정수가 골을 해결짓는 상황 이었습니다.

특히 이정수의 나이지리아전 동점골은 그리스전 결승골이 도돌이표처럼 되풀이 됐습니다. 만약 이정수의 골이 없었다면 한국은 0-1로 불리한 상황에서 나이지리아를 제압하기 위한 공격 과정이 어려웠을 지 모릅니다.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겼을 때의 2골이 세트 피스 상황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순수한 공격 전개에 의해 골을 넣기가 버거웠죠. 전반 24분 이정수의 골은 한국이 그 이후에 경기 흐름을 장악하면서 나이지리아의 무기력한 경기 운영을 유도하여 파울을 유발했고 후반 3분 박주영이 역전 프리킥 골을 넣는 밑바탕이 됐습니다.

이정수는 한국이 본선 3경기에서 넣은 5골 중에 2골을 넣는 발군의 득점력을 과시했습니다. 웬만한 공격수보다 순도 높은 활약을 펼쳤죠. 한국 축구가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스페인-독일을 상대로 골을 넣었던 '리베로' 홍명보 이후 16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서 '골 넣는 수비수'를 배출하는 순간 이었습니다. 세계적인 명문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비디치-퍼디난드 같은 골 넣는 수비수를 보유하여 득점 과정에서 재미를 봤던 것 처럼, 한국 축구도 공격수와 미드필더만 골을 해결짓는 것 뿐만 아니라 수비수도 공격 과정에서 골을 통한 결정적 기여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정수가 월드컵 무대에서 영웅이 될거라 예견한 이는 드물었습니다. 공격수와 미드필더에 비해 주목을 덜 받는 수비수인데다 궂은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가 극히 적습니다. 더욱이 한국은 고질적은 수비 약점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이정수도 그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물론 조용형-강민수보다는 이정수가 더 믿음직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수비 상황에서 순간적인 집중력이 저하되는 문제점이 걱정거리 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의 취약점을 이정수가 속했던 수비진으로 꼽았습니다.

물론 한국의 수비가 월드컵 본선에서 불안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아르헨티나전 4실점 및 나이지리아전 2실점이라는 단순한 수치가 작용했지만, 상대 공격 옵션의 빠른 침투에 흔들리는 경향이 잦았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은 16강 고지에 올랐고 그 주역은 수비수 이정수 였습니다. 한국이 골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어김없이 골망을 가르며 공격수가 해결짓지 못했던 상황에서 발군의 골 감각을 발휘했습니다. 월드컵에서 자신의 이름을 널리 떨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숨겨졌던 공격수의 재능이 빛을 발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정수는 공격수 출신의 수비수 였습니다. 태성중-이천실고-경희대-안양LG(현 FC서울)에서 공격수로 활약했기 때문이죠. 다부진 체격을 앞세워 공중볼에서 강점을 발휘했던 타겟맨으로서 2002년 프로 무대를 밟았지만 문제는 헤딩 이외에는 그라운드에서 이렇다할 강점을 뽐내지 못했습니다. 당시의 이정수는 타겟맨으로서 상대 수비를 흔드는 움직임이 부족했고 슈팅이 날카롭지 않아 공격수로서의 임펙트가 부족했습니다. 이영표-김동진-최태욱 등과 같은 젊은 선수들을 집중 육성했던 안양의 미래를 빛낼 공격수로 주목 받는 듯 싶었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고 벤치를 전전했습니다.

그래서 이정수는 2003년 부터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전환하면서 자신의 축구 인생이 변화되는 중요한 시점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골을 노리는 공격수의 임무를 맡았으나 이제는 상대 공격수를 마크하는 수비수의 입장으로 뒤바뀌었기 때문에 어쩌면 포지션 전환 실패로 험난한 축구 인생을 보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을지 모릅니다.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전환했던 것은 김주성-박건하-곽경근 같은 실전 경험이 많은 공격수들이 아니면 성공하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결국, 이정수는 조광래 감독(현 경남 감독)의 조련 속에 수비수로서 새로운 길을 걸으며 K리그에서의 성공을 꿈꾸었습니다. 44경기 중에 18경기를 소화했지만 그 경험이 훌륭한 수비수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하지만 이정수는 이듬해 소속팀에서 이렇다할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해 벤치를 전전했습니다. 안양이 서울로 연고지를 떠나고 새로운 외국인 수비수(브라질 국적의 쏘우자)를 영입하면서 이정수가 출전할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죠. 결국 시즌 중에 인천으로 떠나 장외룡 감독의 품에 안기면서 그때부터 출전 기회가 늘어났습니다. 오른쪽 윙백과 수비수를 오가면서 살림꾼 역할을 충실히했었고 그동안 잠재되었던 대인마크와 저돌적인 움직임, 순간 스피드가 향상되면서 경기 감각이 올라왔습니다. 그러더니 수원 차범근 감독의 눈에 띄면서 2006년 수원 유니폼으로 갈아 입었고 마토-곽희주-송종국과 함께 수비진을 책임지며 2006년 후기리그 우승, 2008년 K리그-하우젠컵 우승을 공헌했고 이듬해 일본 J리그에 진출했습니다.

이정수는 28세였던 2008년 3월 26일 북한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다른 태극전사들에 비해 성인 대표팀 경기에 첫 출전한 시기가 늦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정진했기에 그토록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았고 월드컵 무대를 밟아 한국의 16강 진출의 결정타 역할을 했습니다. 만약 수비수 전환에 실패했거나 지금까지 공격수로 활약했다면 남아공 월드컵 출전이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무명 선수로 회자되었겠죠. 무명에서 유명 선수가 되기까지 입지전적의 축구 인생을 그리며 월드컵 영웅이 된 이정수의 성공 스토리가 드디어 찬란한 빛을 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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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에게 있어 코드티부아르전은 힘든 경기가 될 것입니다. 코트디부아르는 유럽 무대에서 입지를 굳힌 선수들이 즐비한 팀인데다 세계 최고의 타겟맨 디디에 드록바(32, 첼시)의 이름 그 자체가 제법 무게감이 큽니다. 만약 한국이 '드록바 봉쇄'에 실패하면 이날 경기에서의 승리가 어려워지는데다 대량실점 패배까지 당할 수 있습니다.

코트디부아르전 앞둔 허정무호의 고민, 조용형 부진

남아공월드컵 본선이 얼마 안남은 현 상황에서 한국의 대량 실점 패배는 반갑지 않습니다. 평가전에서 수비 불안으로 상대팀에게 여러차례 실점을 허용하면 월드컵 본선에서 상대하는 팀들에게 고질적인 약점을 쉽게 노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리스-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가 지난해 12월 월드컵 조추첨 이후 한국에 대한 전력 분석에 돌입했다면 수비 불안에 대한 약점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코트디부아르전은 한국이 수비 불안을 극복하고 월드컵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발판의 무대가 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한국의 수비진이 약팀들에게 조차 쩔쩔메는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점입니다. 지난 1월 잠비아전 2-4 패배, 2월 중국전 0-3 패배로 고전했기 때문이죠. 잠비아전에서는 고지대 적응 및 월드컵 공인구인 자블라니에 대한 적응 미숙, 중국전에서는 곽태휘의 컨디션 문제를 변명으로 삼을 수 있겠지만 프로는 어디까지나 결과로 말할 뿐입니다. 지난해 11월 덴마크-세르비아와의 평가전에서 1실점만 허용했던 전적을 상기하면, 지금의 수비 조직력은 지난해보다 더 불안합니다.

그럼에도 한국은 잠비아-중국전에서 부진했던 수비 라인을 그대로 끌고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김형일이 강민수의 부상으로 대신 명단에 발탁된 것을 제외하면, 조용형-이정수-곽태휘는 허정무 감독의 재신임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수비수(황재원) 발탁을 통한 쇄신의 필요성이 없지 않았지만 월드컵 본선이 얼마 안남았기 때문에 변화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수비수는 개인 기량보다 조합의 힘을 근간으로 삼기 때문에 조용형을 중심으로 하는 수비력을 믿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조용형 중심의 수비 조직력은 늘 불안했다는 것입니다.

허정무호는 2008년 1월 출범 이후 지금까지 조용형을 거의 매 경기에 선발 출전 시켰으며 센터백 조합은 조용형-강민수 또는 조용형-이정수 였습니다. 한국이 중국에게 0-3으로 패했던 경기에서는 조용형-곽태휘가 후방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조용형은 상대 공격수의 빠른 움직임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것을 비롯 한 박자 느린 커버 플레이로 팀의 수비 불안을 키웠습니다. 과거에는 정확한 전진 패스와 피딩 패스를 통해 효율적인 공격 전개를 뽐냈지만 최근에는 부정확한 볼 배급을 일관하며 미드필더들의 허리 장악을 어렵게 했습니다.

그런 조용형은 지난해 상반기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이후 대표팀에서 인상깊은 수비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폼이 떨어졌다는 평가입니다. 지난달 동아시아축구 선수권대회 중국전과 일본전에서 상대 공격수의 마크를 번번이 놓친것을 비롯 수비 집중력 부족, 동료 센터백과의 호흡 조절 미숙으로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만약 한국과 상대했던 일본 공격수들의 골 결정력이 빈약하지 않았다면 이날 허정무호의 승리 가능성은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며 조용형은 수비력 불안이라는 여론의 주된 질타를 받았을 것입니다. 한국의 일본전 3-1 승리는 '허정무 감독과 더불어' 조용형에게 면죄부로 작용한 셈입니다.

드록바 봉쇄, 모두의 합심이 필요하다

수비 불안으로 고민중인 허정무호에게 있어 코트디부아르전은 험난한 일전이 될 것입니다. 코트디부아르는 드록바를 필두로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이 아프리카 특유의 탄력과 빠른 스피드, 현란한 개인기, 강철같은 체력을 자랑하는 막강한 공격 컬러를 자랑하는 팀입니다. 남아공월드컵 아프리카 예선 6경기에서 19골(5승1무, 4실점)을 몰아칠 정도로 골 생산이 뛰어납니다. 특히 드록바는 6경기 중에 5경기에 출전하여 모두 풀타임으로 뛰지 않았지만(368분) 6골을 넣으며 팀 내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었습니다.

문제는 드록바의 타겟 역량을 막아내기 위한 돌파구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드록바와 공을 다투고 공간 싸움을 해야 할 센터백 자원이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조용형-이정수-김형일-곽태휘는 드록바를 제압할 수 있는 개개인의 실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조용형은 대인마크와 공중볼에서 강점을 발휘하는 선수가 아니며 이정수는 고질적인 수비 집중력 부족이 흠입니다. 김형일은 한국의 대표적인 파이터형 센터백으로서 드록바를 제압할 힘이 있지만 그의 빠른 발을 막기에는 스피드가 느립니다. 곽태휘는 한때 허정무호의 황태자였으나 중국전 0-3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던 것 처럼 잦은 부상으로 폼이 떨어졌습니다.

물론 수비는 개인의 수비 역량보다는 동료 수비수끼리의 호흡이 중요합니다. 특히 포백은 지역방어가 중요함으로써 상대 공격수의 돌파를 저지하고 공격 길목 및 예봉을 끊기 위한 전술적인 움직임이 필수입니다. 대인방어에서 드록바에게 약점을 나타낼 가능성이 다분한 한국으로서는 지역방어에 승부수를 던져야 합니다. 물론 지역방어는 상대 공격수를 순간적으로 놓칠 수 있는 문제점이 있지만 대인방어를 쓰기에는 상대 공격수 봉쇄에 많은 체력을 소모해야하며 다른 공격 옵션을 놓치는 불안 요소가 있습니다. 드록바는 측면과 중앙을 넓게 움직이기 때문에 특정 수비수의 마크 자체가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드록바에게 골 기회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용형과 이정수가 수비 밸런스를 튼튼하게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용형이 커버 플레이를 하면서 수비수들을 완급조절하고 이정수가 상대 공격수를 마크하는 역할 분담이 철저해야 합니다. 두 선수 모두 수비 전환 과정에서 상대 공격수를 놓치거나, 뒷 공간을 자주 허용했고, 동료와의 호흡마저 맞지 않았던 취약함이 있지만 코트디부아르전에서는 수비 집중력부터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드록바가 순간적인 움직임이 빠르고 위협적인 선수인 만큼, 두 선수가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지역방어는 숫적 우위를 근간으로 합니다. 한국이 드록바을 봉쇄하려면 미드필더들이 드록바쪽으로 통하는 패스를 차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조용형과 이정수가 드록바 봉쇄에 대한 부담을 줄이며 마음 편히 수비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박지성-김정우-기성용-이청용으로 짜인 미드필더진이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여 상대 미드필더진에서 드록바쪽으로 연결되는 패스를 차단하고, 미드필더들의 공격 길목을 사전에 봉쇄하거나 압박 수비를 펼쳐 허리싸움에서 우세를 점하면 경기의 흐름은 한국이 가져갈 수 있습니다. 기성용의 조력자이자 홀딩에 무게감을 두는 김정우는 드록바 봉쇄에 일정 부분 책임을 짊어집니다.

결국 드록바 봉쇄는 조용형의 활약을 비롯 모두의 합심이 필요합니다. 지역방어의 근간인 수비 밸런스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수비수들을 비롯 미드필더들이 상대의 공격 기회를 허용하지 않기 위한 움직임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만약 미드필더들이 수비 부담을 이기지 못해 공격 작업에 어려움을 겪으면 포백 라인을 윗쪽으로 올려 미드필더들의 공격을 이끌어내는 유동성이 필요합니다. 안정적인 볼 키핑을 통해 상대팀이 드록바에게 패스를 연결하려는 기세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만약 한국이 드록바 봉쇄에 실패하면, 한국의 코트디부아르전 승리는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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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팀의 경기를 모두 지켜봤으며 한국 선수들도 잘 알고 있다. 한국의 무패 행진을 끊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핌 베어벡 호주 대표팀 감독은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전에서 승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3년 4개월 동안 한국 대표팀의 코칭스태프를 맡아 한국 축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 한국전 승리에 자신감을 나타냈습니다. '적을 잘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듯, 베어벡 감독의 지략은 한국 대표팀의 약점을 간파할 것임에 틀림 없었습니다. 어쩌면 호주가 A매치 24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기록중인 한국의 오름세를 끊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베어벡 감독의 호주는 경기 시작부터 삐걱 거렸습니다. 전반 20분 만에 박주영-이정수에게 골을 내주면서 경기 시작부터 허정무호의 기세에 밀렸습니다. 호주는 월드컵 최종예선 8경기에서 단 1골만 내주는 촘촘한 수비력을 과시했지만 상암벌에서는 경기 시작 20분 만에 두 골 허용했습니다. 베어벡 감독의 수비 전술이 허정무호의 공격력에 밀린 것입니다.

특히 전반 5분 한국의 선제골 장면은 이날 경기의 승부를 좌우한 결정타였습니다. 이청용이 오른쪽 측면에서 호주 측면 뒷 공간이 뚫린 틈을 노려 전방으로 돌파하여 문전에 있던 박주영에게 오른발 짧은 패스를 밀어준 뒤, 박주영이 침착하게 골을 밀어넣으며 선제골을 작렬했습니다. 전반 20분 이정수의 골 상황도 주목할 필요 있습니다. 기성용이 페널티 박스 오른쪽 바깥에서 날린 프리킥이 반대편에 있던 김정우의 터치로 이어졌고 그것이 이정수의 골로 이어졌습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한국의 두 골 장면을 기여한 박주영과 쌍용(이청용-기성용), 이정수가 베어벡 감독의 신뢰를 얻었던 선수들은 아닙니다. 네 명은 베어벡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맡던 2007년에 대표팀에서 제외되거나 부름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허정무호 공격-미드필더-수비의 중심 역할을 맡아 한국의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고 호주전에서도 골을 넣는데 직접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베어벡은 한국 선수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지만, 네 선수의 성장을 간과하고 말았습니다.

박주영은 베어벡 감독으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받던 선수가 아닙니다. 베어벡 감독은 2007년 3월 A매치 우루과이전 명단에서 박주영의 이름을 제외한 뒤 "박주영의 탈락은 기복이 심했기 때문이다"며 박주영의 능력을 평가 절하했습니다. 그해 7월 아시안컵에서도 박주영을 뽑지 않았는데, 당시 박주영은 아시안컵에 출전하면 풀럼 입단이 성사될 수 있었던 위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어벡 감독은 박주영을 외면하고 왼쪽 무릎 부상 후유증으로 컨디션이 저조했던 이동국을 뽑았습니다.

쌍용은 베어벡 감독의 계획에 없던 선수들입니다. FC서울에서 주전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는 단계였고 청소년대표팀에서 성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베어벡 감독이 즉시 전력감으로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기성용은 2007년 3월 우루과이전 엔트리에 포함됐으나 대표팀 경험을 쌓기 위한 차원에서 뽑혔기 때문에 전력 외 선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정수는 지난해 3월 북한전부터 대표팀 경기에 모습을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까지 수원삼성의 주전 수비수로서 묵묵히 제 몫을 다했지만 베어벡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박주영과 쌍용, 이정수가 대표팀에서 두각을 나타낸것은 지난해부터 였습니다. 네 명은 베어벡 감독의 신뢰를 얻지 못했지만 허정무호에서는 팀 전력의 근간으로 자리잡아 가파르게 성장했습니다. 박주영의 골 감각과 잉타적인 역량은 조재진-정성훈-이근호를 압도했고 쌍용은 대표팀 중원과 오른쪽의 절대강자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이정수는 빠른발을 앞세운 대인마크와 세트 피스 상황에서의 골 능력을 허정무 감독으로부터 인정받아 '베어벡 감독이 신뢰하던' 김진규-강민수와의 경쟁에서 승리했습니다.

베어벡 감독은 2007년 12월 호주 대표팀 사령탑 부임과 동시에 네 선수의 성장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박주영은 다시 태극마크를 달아 AS모나코에서의 단련으로 부쩍 늘은 실력을 맘껏 뽐냈고 쌍용은 귀네슈-허정무 감독의 끊임없는 신뢰속에 지난해부터 K리그와 대표팀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이정수는 지난해부터 대표팀에서 활약함과 동시에 수원의 더블 우승(정규리그+하우젠컵)을 이끌며 생애 최고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네 선수의 오름세를 베어벡 감독이 눈여겨보지 못했고 그것을 간과하면서 특별한 경계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전에서 전반 20분만에 무너졌습니다.

박주영은 호주전 선제골로 호주 격파의 선봉장으로 활약했습니다. 최전방을 부지런히 누비는 움직임은 미드필더진의 전방 패스 정확도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쌍용은 좁은 공간을 오밀조밀하게 파고드는 움직임과 날카로운 패스 워크를 앞세워 한국 공격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특히 이청용은 전반전에 종횡무진 움직임을 선보이며 호주의 측면 수비를 무너뜨렸습니다. 이정수는 호주전에서 골을 넣은 것을 비롯 후반 24분 페널티박스에서 상대 공격을 침착하게 끊으며 실점 위기 상황을 넘겼습니다.

베어벡 감독은 경기 전 한국 선수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박주영과 쌍용, 이정수의 저력 과소평가했던 것이 상암벌에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한국에게 1-3으로 패했던 결정타로 작용했습니다. 박주영을 철저히 마크하고, 쌍용의 약점을 찾아내는 전략을 짜내고, 이정수를 공략하는 공격 전술을 구사했다면 경기 결과는 달랐을지 모를 일입니다. 네 명의 맹활약은 허정무호가 베어벡호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한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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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선수들에게 '포스트 000(제 2의 000)'으로 불리는 일은 영광이지만 뒤따라 오는 부상 또는 부진 만큼은 달갑지 않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로 평가받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코치다. 그의 국가대표팀 은퇴 뒤 '포스트 홍명보'로 기대 받던 선수들이 여럿 있었다. 박용호(27,서울) 조병국(27, 성남) 임유환(25, 전북) 이강진(22, 부산)이 그들이다.

당시 박용호는 2000년 안양(현 FC서울)의 정규리그 우승 멤버로 이름을 알렸으며 조병국은 2002년 수원의 신인 수비수로서 큰 두각을 나타냈다. 임유환과 이강진은 각각 U-20, U-17 대표팀의 중심 수비수로 주목 받던 선수들.

그러나 '포스트 홍명보' 징크스 때문일까? 기량이 한층 무르익어가던 시점에 찾아 온 잦은 부상은 슬럼프를 불러 왔고 점점 대표팀에서 이들의 얼굴을 보기란 어렵기만 했다. 결국 '포스트 홍명보' 라는 타이틀 마저 조용형(25, 제주)에게 내줘야 했고, 대표팀에서는 이정수, 곽희주(이상 28, 수원) 김진규(23, 서울) 강민수(22, 전북)에게 밀리고 말았다.

박용호는 1999년 이천수, 최태욱과 함께 한국 축구를 빛낼 '부평고 3인방'으로 꼽히며 일찌감치 대형 수비수 재목으로 주목 받았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대표팀서 부주장을 맡을 정도로 발전을 거듭하는 듯 했지만 그해 소속팀 서울에서 부진에 빠져 5경기 출장에 그치고 광주 상무 입대를 결정하게 됐다.

지난해 복귀한 박용호는 훈련 도중 광대뼈 골절 부상을 입으며 시즌 전반기를 소화하지 못했으며 올해 5월 인천전 도중 부상 당하며 두 달 가량 경기에 나오지 못했다. 지난 2일 수원전과 5일 포항전에 선발 출장했던 그는 상대팀 공격을 활발히 끊는 수비력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지만 기대 만큼 많은 성장을 하지 못한 것이 여전히 흠으로 남아있다.

조병국은 한때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에서 '수비의 핵'으로 활약했지만 2004년 하반기부터 부상 악몽에 시달렸다. 3번(7월 올림픽대표팀 유럽전지훈련, 9월 1일 수원-광주전, 10월 말 소속팀 연습 도중) 연속 오른쪽 발목 부상을 입은데다 습관적인 어깨 탈구 부상으로 고생했다. 그는 부상 여파로 2004년 후기리그에서 수원의 벤치 멤버로 전락하자 이듬해 전남으로 이적했다.

전남에서 부상 후유증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던 조병국은 2005년 여름 성남 이적 후 주전 멤버를 꿰차며 팀의 K리그 독주를 이끌었다. 그러나 수원 시절에 비해 탄력과 공중볼 장악능력, 스피드가 떨어졌다는 축구 전문가들의 지적을 받을 정도로 과거의 부상 악몽을 말끔히 털지 못했다. 지난 6월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던 그는 고막 부상을 입으며 허정무호에서 중도 탈락했다.

임유환은 2002년 U-20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던 수비의 핵. 그러나 2005년 8월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더니 2006년 2월 오른쪽 무릎 인대까지 다쳐 1년 2개월 뒤에나 K리그에 돌아올 수 있었다. 지난해 울산으로 이적하여 비상을 꿈꿨으나 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해 그 해 7월 다시 친정으로 돌아왔다. 올 시즌 20경기에서 3골 터뜨리며 팀의 주축으로 자리잡았지만 현재 그의 포지션은 수비수가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다.

이강진은 2002년 U-17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한국의 정상 등극을 이끌었지만 지금은 대표팀 발탁만 되면 부상이다. 2006년 8월 대만전(A매치)을 앞두고 발목을 다치더니 지난해 2월 그리스전(A매치) 이전에 오른쪽 새끼발가락 통증에 시달려 8월 초까지 자취를 감췄다. 지난해 8월 올림픽대표팀의 우즈베키스탄전을 앞두고 왼쪽 허벅지 안쪽 근육이 파열되었으니 '대표팀 소집=부상'인 셈. 결국 올림픽대표팀 40인 엔트리에서 제외돼 베이징의 꿈이 좌절됐다.

이들에게 다시 '포스트 홍명보'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을까. 다행히 박용호와 조병국의 '새옹지마'는 임유환과 이강진 같은 또 다른 '포스트 홍명보' 세대에게 힘이 될 듯하다. 박용호는 최근들어 서울에서 제 궤도를 되찾았으며 조병국은 성남 이적 이후 '절치부심' 끝에 성남의 중심 수비수로 발돋움하며 특유의 믿음직스러운 활약을 뽐내고 있다. 침체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시련을 묵묵히 이겨낸 것.

얼마 전 허정무 국가대표팀 감독은 "대표팀에 쓸 만한 중앙 수비수가 없다"며 한국 축구의 한 없이 부족한 중앙 수비 자원을 아쉬워했다. 그런 현실 속에 '포스트 홍명보'로 불렸던 선수들의 재도약과 대표팀 선발, 그리고 홍명보가 붉은 유니폼을 입으며 맹활약을 펼쳤던 포스(!)를 바래본다.


Posted by 나이스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