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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베어벡은 박주영-쌍용-이정수를 간과했다

 

"최근 한국팀의 경기를 모두 지켜봤으며 한국 선수들도 잘 알고 있다. 한국의 무패 행진을 끊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핌 베어벡 호주 대표팀 감독은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전에서 승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3년 4개월 동안 한국 대표팀의 코칭스태프를 맡아 한국 축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 한국전 승리에 자신감을 나타냈습니다. '적을 잘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듯, 베어벡 감독의 지략은 한국 대표팀의 약점을 간파할 것임에 틀림 없었습니다. 어쩌면 호주가 A매치 24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기록중인 한국의 오름세를 끊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베어벡 감독의 호주는 경기 시작부터 삐걱 거렸습니다. 전반 20분 만에 박주영-이정수에게 골을 내주면서 경기 시작부터 허정무호의 기세에 밀렸습니다. 호주는 월드컵 최종예선 8경기에서 단 1골만 내주는 촘촘한 수비력을 과시했지만 상암벌에서는 경기 시작 20분 만에 두 골 허용했습니다. 베어벡 감독의 수비 전술이 허정무호의 공격력에 밀린 것입니다.

특히 전반 5분 한국의 선제골 장면은 이날 경기의 승부를 좌우한 결정타였습니다. 이청용이 오른쪽 측면에서 호주 측면 뒷 공간이 뚫린 틈을 노려 전방으로 돌파하여 문전에 있던 박주영에게 오른발 짧은 패스를 밀어준 뒤, 박주영이 침착하게 골을 밀어넣으며 선제골을 작렬했습니다. 전반 20분 이정수의 골 상황도 주목할 필요 있습니다. 기성용이 페널티 박스 오른쪽 바깥에서 날린 프리킥이 반대편에 있던 김정우의 터치로 이어졌고 그것이 이정수의 골로 이어졌습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한국의 두 골 장면을 기여한 박주영과 쌍용(이청용-기성용), 이정수가 베어벡 감독의 신뢰를 얻었던 선수들은 아닙니다. 네 명은 베어벡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맡던 2007년에 대표팀에서 제외되거나 부름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허정무호 공격-미드필더-수비의 중심 역할을 맡아 한국의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고 호주전에서도 골을 넣는데 직접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베어벡은 한국 선수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지만, 네 선수의 성장을 간과하고 말았습니다.

박주영은 베어벡 감독으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받던 선수가 아닙니다. 베어벡 감독은 2007년 3월 A매치 우루과이전 명단에서 박주영의 이름을 제외한 뒤 "박주영의 탈락은 기복이 심했기 때문이다"며 박주영의 능력을 평가 절하했습니다. 그해 7월 아시안컵에서도 박주영을 뽑지 않았는데, 당시 박주영은 아시안컵에 출전하면 풀럼 입단이 성사될 수 있었던 위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어벡 감독은 박주영을 외면하고 왼쪽 무릎 부상 후유증으로 컨디션이 저조했던 이동국을 뽑았습니다.

쌍용은 베어벡 감독의 계획에 없던 선수들입니다. FC서울에서 주전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는 단계였고 청소년대표팀에서 성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베어벡 감독이 즉시 전력감으로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기성용은 2007년 3월 우루과이전 엔트리에 포함됐으나 대표팀 경험을 쌓기 위한 차원에서 뽑혔기 때문에 전력 외 선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정수는 지난해 3월 북한전부터 대표팀 경기에 모습을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까지 수원삼성의 주전 수비수로서 묵묵히 제 몫을 다했지만 베어벡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박주영과 쌍용, 이정수가 대표팀에서 두각을 나타낸것은 지난해부터 였습니다. 네 명은 베어벡 감독의 신뢰를 얻지 못했지만 허정무호에서는 팀 전력의 근간으로 자리잡아 가파르게 성장했습니다. 박주영의 골 감각과 잉타적인 역량은 조재진-정성훈-이근호를 압도했고 쌍용은 대표팀 중원과 오른쪽의 절대강자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이정수는 빠른발을 앞세운 대인마크와 세트 피스 상황에서의 골 능력을 허정무 감독으로부터 인정받아 '베어벡 감독이 신뢰하던' 김진규-강민수와의 경쟁에서 승리했습니다.

베어벡 감독은 2007년 12월 호주 대표팀 사령탑 부임과 동시에 네 선수의 성장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박주영은 다시 태극마크를 달아 AS모나코에서의 단련으로 부쩍 늘은 실력을 맘껏 뽐냈고 쌍용은 귀네슈-허정무 감독의 끊임없는 신뢰속에 지난해부터 K리그와 대표팀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이정수는 지난해부터 대표팀에서 활약함과 동시에 수원의 더블 우승(정규리그+하우젠컵)을 이끌며 생애 최고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네 선수의 오름세를 베어벡 감독이 눈여겨보지 못했고 그것을 간과하면서 특별한 경계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전에서 전반 20분만에 무너졌습니다.

박주영은 호주전 선제골로 호주 격파의 선봉장으로 활약했습니다. 최전방을 부지런히 누비는 움직임은 미드필더진의 전방 패스 정확도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쌍용은 좁은 공간을 오밀조밀하게 파고드는 움직임과 날카로운 패스 워크를 앞세워 한국 공격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특히 이청용은 전반전에 종횡무진 움직임을 선보이며 호주의 측면 수비를 무너뜨렸습니다. 이정수는 호주전에서 골을 넣은 것을 비롯 후반 24분 페널티박스에서 상대 공격을 침착하게 끊으며 실점 위기 상황을 넘겼습니다.

베어벡 감독은 경기 전 한국 선수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박주영과 쌍용, 이정수의 저력 과소평가했던 것이 상암벌에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한국에게 1-3으로 패했던 결정타로 작용했습니다. 박주영을 철저히 마크하고, 쌍용의 약점을 찾아내는 전략을 짜내고, 이정수를 공략하는 공격 전술을 구사했다면 경기 결과는 달랐을지 모를 일입니다. 네 명의 맹활약은 허정무호가 베어벡호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한 결과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