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스페셜 포스팅을 올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박지성이 7월 25일 오늘 K리그 올스타전을 끝으로 현역 선수 생활을 마칩니다. '산소탱크', '캡틴 박', '아시아의 영웅'이라는 영광스러운 별명들을 남기며 한국 축구에 엄청난 업적을 기여했던 박지성이 현역 선수로서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모습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선수였던 박지성 스페셜 포스팅을 그동안 쓰고 싶었는데 오늘 올리게 되었네요.

 

이 포스팅에서 올리는 사진과 동영상은 모두 제가 촬영했습니다. 사진은 2011년 9월 박지성 축구센터에서 취재하면서 찍었습니다. 2014년 5월 PSV 에인트호벤이 수원 블루윙즈와 친선 경기를 펼쳤을 때 찍었던 사진과 동영상들도 있고요. 저만의 박지성 스페셜을 올립니다.

 

 

박지성은 올해 33세입니다. 신장은 178cm이며 축구 선수치고는 큰 체격이 아니었으나 강철같은 체력과 부지런한 움직임, 끈질긴 승리욕에 특유의 성실한 면모까지 더해지면서 항상 좋은 경기력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항상 열심히 하겠다는 마인드가 습관으로 굳어지면서 한국 대표팀과 소속팀에 걸쳐 자신의 진가를 충분히 발휘했고 특히 큰 경기에 강했습니다. 월드컵 본선 3개 대회에서 모두 골을 넣었으며 그가 전성기를 보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시절에는 '강팀 킬러', '아스널 킬러', 'AC밀란 킬러'로 유명했습니다.

 

한국 대표팀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 2패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남겼던 이유 중에 하나가 리더의 부재였습니다. 박지성 같은 팀의 상징적인 리더가 더 이상 대표팀에 존재하지 않으면서 젊은 선수 위주의 스쿼드가 세계 최고의 축구 대회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죠. 우리는 한국 대표팀의 연이은 졸전과 끊이지 않는 구설수를 보며 박지성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실감했습니다. 박지성 같은 훌륭한 축구 선수가 쉽게 등장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사진] 박지성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유니폼이 박지성 축구센터에 전시된 모습입니다.

 

 

[사진] 제가 2011년 9월 박지성 축구센터에서 봤던 박지성 어렸을적 일기입니다.

 

 

[사진] 박지성의 초등학교 시절 차범근 축구상 상패.

 

운이 나빴다면 박지성이라는 훌륭한 축구 선수는 등장하지 않았을 겁니다. 명지대에 겨우 입학했으니까요. 명지대 테니스부 정원이 1명 비어 있어서 다행히 학교에 입학하며 축구 선수 활동을 했습니다. 만약 명지대 축구부가 되지 못했다면 지금쯤 그가 어떤 인생을 보내는지 알 수 없었을 겁니다. 비슷한 시기에 수원 블루윙즈 입단 테스트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죠. 최악의 경우 수원공고 시절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그만두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알아준 좋은 스승들을 만나면서 인생이 잘 풀리게 되었죠.

 

 

[사진=박지성 교토 퍼플상가 시절의 유니폼&축구화]

 

박지성은 2000년 일본 교토 퍼플상가에 입단하며 본격적인 프로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2003년 1월 1일까지 교토 퍼플상가에서 뛰었으며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으로 떠나면서 10년 넘게 유럽 축구 무대를 누볐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럽 축구를 좋아하게 된 것도 박지성과 이영표의 PSV 에인트호벤 동반 입단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 이전까지 유럽 축구는 매니아들만 좋아했을 뿐이죠. 지금은 유럽 축구 경기를 흔하게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사진=박지성은 2002년 7월 2일 체육훈장 맹호장 받았습니다. 훈장증에 '대통령 김대중'이라는 단어가 눈에 띕니다.]

 

 

[사진=박지성의 2002년, 2006년, 2010년 월드컵 유니폼 및 축구화]

 

박지성하면 떠오르는 존재는 월드컵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주전으로서 4강 신화를 주도했습니다. 특히 조별본선 3차전 포르투갈전 결승골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잊지 못하는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그때는 '루이스 피구 전성기였던' 포르투갈이 한국에게 부담스러운 상대였는데 그 경기에서 한국이 1-0으로 이기면서 16강에 진출했습니다. 유일한 득점자였던 박지성이 한국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16강을 이끌었죠. 당시 21세이자 대표팀에서 막내급이었던 박지성은 한일 월드컵 전 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4강 신화 주역이 됐습니다.

 

되돌아보면 박지성의 2002년 한일 월드컵 주전 발탁은 의외였습니다. 대회 이전까지는 언론에서 월드컵 최종 엔트리 탈락 후보 중에 한 명으로 꼽혔는데 당시 한국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던 거스 히딩크 감독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라운드에서 항상 싱싱한 모습을 보여줬던 박지성이 한국 대표팀 전력에 꼭 필요한 선수라고 판단했죠.

 

박지성은 치열한 주전 경합 끝에 한일 월드컵에서 3-4-3 포메이션의 오른쪽 측면 공격수를 맡으면서 수준급 경기력을 과시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의 판단이 옳았습니다. 선수 인지도 및 인맥과 관계없이 실력이 뛰어난 선수를 주전으로 발탁했던 히딩크 감독의 지도력은 지금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이후 PSV 에인트호벤 지휘봉을 잡으면서 2003년 1월 이적시장을 통해 박지성과 이영표를 영입했습니다. 두 선수 모두 유럽 축구에서 성공하기까지 히딩크 감독의 존재감이 컸습니다.

 

 

 

 

박지성은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원정 첫 승 멤버로 활약했습니다. 비록 한국은 16강 진출에 실패했으나 조별본선 1차전 토고전 2-1 승리를 통해 처음으로 월드컵 원정 1승을 거두었습니다. 2차전 프랑스전 1-1 무승부는 박지성 동점골이 빛났던 경기였죠. 박지성은 4년 전 프랑스와의 A매치에서도 골을 넣었는데 월드컵 본선 프랑스전에서도 득점을 올리며 강팀에 강하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A매치에서는 통산 13골 넣었으나 모두 값어치가 컸습니다. 한국 축구의 역사를 만들어냈던 장면들이었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한국 대표팀 주장을 맡았습니다. '캡틴 박' 신화를 만들어냈던 대회였죠. 조별본선 1차전 그리스전에서 골을 넣으며 한국의 2-0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원정 첫 16강 진출에 성공했고 박지성이 팀 전력의 구심점이 되면서 후배 선수들이 큰 무대에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과시했습니다. 아마도 한국 축구 역사상 '위대한 주장' 중에 한 명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진=박지성의 PSV 에인트호벤 시절 유니폼 및 축구화. 맨유 입단 이전 시절의 유니폼입니다.]

 

 

[사진=박지성의 맨유 시절 유니폼]

 

 

[사진=박지성이 맨유에서 이루었던 성과들을 메달 및 우승컵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진=2007/08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메달]

 

 

[사진=맨유에서 받았던 메달들. 가장 오른쪽에는 2008년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메달입니다.]

 

박지성의 클럽팀 최고의 전성기는 맨유 시절입니다. 2005년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맨유로 이적하면서 7시즌 동안 205경기에서 27골 넣었습니다. 주로 왼쪽 윙어로 뛰었으나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 오른쪽 윙어, 윙 포워드, 3백 전환시 오른쪽 윙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포지션을 맡았습니다. 특유의 이타적인 경기력으로 동료 선수들의 공격 전개 및 득점 기회를 돕거나 허리에서 강한 압박을 과시하며 팀에 많은 승리를 챙겨줬습니다. 박지성이 선발로 뛰는 경기에서 맨유가 많이 이긴 것을 빗대서 '박지성 선발=맨유 승리'라는 공식까지 성립되었던 시절도 있었죠.

 

맨유 시절을 통해 아시아의 영웅으로 거듭난 박지성은 당시 맨유 사령탑이었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신뢰를 받았습니다. 퍼거슨 감독 및 훌륭한 선수들과 함께 한 팀이 되면서 여러 차례 우승 성과를 이루었죠. 프리미어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메달을 모두 받았던 유일한 한국인이 바로 박지성 입니다. UEFA 챔피언스리그와 FIFA 클럽 월드컵에서는 결승전 선발 출전 경험이 있었죠. 

 

[동영상=2014년 5월 PSV 에인트호벤의 친선 경기 수원전에서 선수 소개때 박지성이 많은 환호를 받는 장면. 나이스블루 촬영]

 

 

[동영상=박지성이 수원전을 마치고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는 감동적인 모습. 나이스블루 촬영]

 

박지성은 2012/13시즌 퀸즈 파크 레인저스를 거쳐 2013/14시즌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으로 돌아왔습니다. 2014년 5월에는 경기도 수원에 있는 박지성 축구센터에서 은퇴 선언을 했습니다. 선수 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무릎이 버텨주지 못하면서 더 이상 현역 선수로 활동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죠. 2011년 1월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을 은퇴한 것도 무릎 때문입니다. 만 30세의 나이에 대표팀을 은퇴한 것은 한국 축구에서는 흔치 않았던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여론의 옹호를 받았던 것은 그동안 대표팀에서 세웠던 공헌도가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여론에서는 2011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제2의 박지성' 등장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 같은 위대한 축구 영웅이 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언젠가 박지성의 유럽 축구 커리어를 뛰어넘는 한국인 선수가 있다고 할지라도 박지성의 월드컵 커리어를 능가하는 인물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21세기 이후 지금까지 한국 축구 최고의 선수로 활약했던 박지성의 투혼을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입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7월 25일 오후 8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펼쳐질 2014 K리그 올스타전은 K리그 최고의 선수들과 박지성팀이 맞붙는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박지성팀 명단 15인이다. 박지성 은퇴 경기를 함께할 선수들이 과연 누구일지 많은 축구팬들이 궁금했을 것이다. 그 결과 이영표 KBS 해설위원과 이천수 등 과거 박지성과 함께 대표팀에서 활동했던 선수들이 대거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K리그 올스타전에 뛰게 됐다.

 

올해 K리그 올스타전은 박지성 고별경기로 눈길을 끈다. 2개월 전 현역 은퇴를 선언했던 박지성이 한국 축구팬들이 보는 앞에서 마지막 경기를 펼치게 됐다. 그 이후에는 친선 경기를 뛸 수도 있으나 더 이상 현역 선수로 활동하지 않는다.

 

[사진=2012년 K리그 올스타전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과 박지성이 포옹하는 장면이 전광판에 나타났다. 2014년 K리그 올스타전에서도 재현될까? (C) 나이스블루]

 

박지성팀 명단에 포함된 15인은 다음과 같다. 골키퍼에는 김병지와 최은성이 포함됐다. 박지성과 더불어 2002년 한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 23인에 포함되었던 노장 골키퍼들이다.

 

수비수는 무려 7명이나 포함됐다. 다른 포지션에 비해서 수비수가 박지성팀에 가장 많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오범석과 박동혁, 김치곤, 미야모토 츠네야스, 현영민, 김형일, 이영표가 박지성팀의 수비를 책임진다. 7명 중에 4명은 센터백이며 만약 경기 도중 선수 교체가 있을때는 센터백끼리 바뀔 수도 있다. 축구 경기에서 센터백이 교체되는 것은 미드필더와 공격수에 비하면 흔치 않은 일이다. 아니면 수비수 중에 누군가 포지션을 옮길 수도 있다. 미야모토 츠네야스는 일본인 수비수로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일본의 16강 진출을 공헌했던 선수다.

 

 

 

 

미드필더는 4명이다. 박지성을 포함해서 이천수, 백지훈, 김재성이 '팀 K리그' 선수들과 맞붙게 됐다. 이천수는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06년 독일 월드컵, 백지훈은 2006년 독일 월드컵, 김재성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박지성과 함께 대표팀에서 활동했다. 특히 이천수과 박지성과 같은 팀에서 뛰는 모습은 K리그 올스타전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관전 포인트에 속한다. 공격수는 2명이며 정조국과 정대세가 박지성팀 최전방을 책임진다. 박지성팀 감독은 거스 히딩크 네덜란드 대표팀 신임 감독이다.

 

박지성팀 명단이 이것으로 최종 확정되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추가 합류 가능한 선수가 있거나 기존의 15인 명단에서 빠지는 선수가 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런데 15인 명단 중에서는 얼마전 끝났던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 선수로 활동했던 선수가 단 1명도 없다. 박지성팀과 맞붙을 K리그 올스타에서는 김승규를 포함하여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로 출전했던 선수들이 5명이나 된다.(추천 선수 포함)

 

브라질 월드컵 한국 최종 엔트리 23인 중에 17인은 K리그가 아닌 해외 리그에서 활동한다. 해외팀 일정 때문에 합류하지 못했던 선수들이 다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한국에서 휴식을 취하는 해외파 선수도 7월 25일 K리그 올스타전을 치르기에는 몸이 덜 만들어진 상황에서 경기에 뛰어야 하는 부담이 있다. 특히 7월말은 유럽팀들의 프리시즌이 절정에 달하는 시기다. 유럽에서 뛰는 선수라면 소속팀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현재까지 확정된 박지성팀 명단을 다시 올리면서 포스팅을 마무리한다.

 

*7월 25일에 글을 정정합니다. 박지성팀에 5명이 추가 발탁됐습니다. 김은중(대전) 강수일(포항) 문창진(포항) 김용환(인천) 김현(제주)이 박지성 팀에서 뜁니다. 이 글은 박지성팀 추가 발탁 이전에 작성됐습니다.

 

-박지성팀 명단(기존발탁 15인+추가발탁 5인 포함)

 

골키퍼 : 김병지(전남) 최은성(전북, 7월 20일 은퇴)
수비수 : 오범석(안산) 박동혁, 김치곤(이상 울산) 미야모토 츠네야스(일본, 은퇴) 현영민(전남) 김형일(포항) 김용환(인천) 이영표(은퇴)
미드필더 : 박지성(은퇴) 이천수(인천) 백지훈(울산) 김재성, 문창진(이상 포항)
공격수 : 정대세(수원) 정조국(안산) 김은중(대전) 강수일(포항) 김현(제주)
감독 :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Posted by 나이스블루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한 박지성은 세계적인 축구 선수였습니다. 한국 대표팀의 일원으로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을 달성했죠. 유럽에서는 PSV 아인트호벤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서 강렬한 경기력을 과시하며 한국 축구의 국제 경쟁력 향상에 기여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아시아 최고의 선수라고 할 수 있으며 그의 커리어를 능가할 동양인은 쉽게 등장하지 않을 것 같네요.

 

박지성 은퇴에 대한 해외반응도 뜨겁습니다. 아마도 지구상의 수많은 미디어들과 그와 비슷한 성격의 사이트가 박지성 은퇴를 전파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SNS 또한 마찬가지죠. 그중에서 비중이 높은 반응을 추려봤습니다.

 

 

[사진=박지성 은퇴를 언급했던 맨유 트위터. 사진은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었을때의 모습 (C) 맨유 공식 트위터(twitter.com/manu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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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은퇴가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홈페이지 메인에 등장했던 것은 그가 얼마나 세계적인 선수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FIFA는 홈페이지에서 "한국의 전 맨유 스타였던 박지성이 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했던 선수였던 선구자적인 경력을 끝냈으며 수요일에 자신의 은퇴를 발표했다"고 전했습니다. 박지성에 대한 주요 경력과 은퇴 이유, 그의 은퇴 기자회견 발언을 FIFA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글의 소제목은 Korean trailblazer(한국의 선구자)로 설정됐습니다. FIFA에서는 "박지성은 또한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 3회 연속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공동 개최국 한국의 4강 진출에 기여하는 충격적인 역사를 만들었으며 아시아팀의 최고 선수가 됐다"고 언급했으며 그 대회에서 포르투갈전 결승골을 넣었던 때를 좋아했던 박지성의 반응을 전했습니다. 아울러 맨유 시절 아시아인 최초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결승 출전, 프리미어리그 4회 우승 경력도 홈페이지에서 소개했습니다.

 

 

 

 

박지성 친정팀 맨유도 홈페이지를 통해 은퇴 소식을 전했습니다. "맨유에서 (사람들이) 좋아했던 박지성은 지속적인 무릎 문제로 인하여 축구계에서 은퇴했으며 걸출했던 그동안의 경력이 끝나게 됐다"고 밝혔죠. 33세의 박지성이 맨유에서 205경기에 출전하여 27골 넣으며 팀의 여러 차례 우승을 이끌었던 과거를 소개하면서 "올드 트래포드에서 7시즌 보내는 동안 팬들이 크게 좋아했던 사람이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맨유의 모든 사람들이 박지성의 행운을 빈다"는 입장을 전했으며 박지성의 맨유 시절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이는 박지성이 맨유에서 성공적인 활약을 펼쳤음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맨유에서는 지금까지 세 명의 아시아 출신 선수가 활약했는데 박지성만 성공했었죠.

 

중국의 덩팡저우는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일본의 카가와 신지는 도르트문트 시절 분데스리가를 빛냈던 기세를 맨유에서 보여주지 못하면서 자신의 경쟁력이 약화됐습니다. 특히 카가와가 맨유에서 두 시즌 동안 고전을 면치 못한것을 보면 박지성의 맨유 시절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박지성이 맨유 시절에 친했던 선수 중에 한 명을 꼽으라면 네덜란드의 뤼트 판 니스텔로이입니다. 판 니스텔로이는 14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4개의 해쉬태그를 올렸습니다. "박지성(JiSungPark) 전설(Legend) 귀감(Example) 친구(Friend)"라는 박지성과 관련된 상징적인 단어를 올리며 우정 관계가 변함 없음을 알렸습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박지성이 오늘 오전 기자회견에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당초에는 퀸즈 파크 레인저스(이하 QPR)과의 계약 기간이 끝나는 2015년 여름에 은퇴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오히려 현역 선수 커리어를 2014년에 완결을 맺게 됐습니다.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무릎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면서 2014/15시즌을 정상적으로 소화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2013/14시즌에도 무릎 부상의 악령은 계속되었죠.

 

만약 무릎 부상으로 신음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박지성은 한국 축구 대표팀 주장으로서 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준비했을지 모릅니다. 올해 나이가 33세니까요. 그러나 2003년 유럽 진출 이후 잦은 무릎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9개월 동안 뛰지 못했던 아픔도 있었습니다. 30세의 이른 나이에 대표팀에서 은퇴해야했고 3년이 지난 오늘 현역 선수 은퇴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사진=맨유 시절의 박지성 (C) 맨유 공식 홈페이지 메인(manut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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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박지성은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축구 선수입니다. 그의 선수 생활이 더욱 대단했던 것은 무릎 부상 악몽을 이겨내고 한국 최고를 넘어 아시아의 영웅이 되었고 유럽 축구에서 화려한 발자취를 남겼다는 점입니다. 2000년대 이후를 기준으로 유럽 축구에서 박지성보다 더 좋은 활약을 펼쳤던 아시아 선수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어느 선수든 부상은 반갑지 않습니다. 부상 이후 경기력이 감퇴되거나 평소의 폼을 되찾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선수들이 적지 않았죠. 특히 축구 선수는 발을 많이 이용합니다. 한 경기당 약 10Km 정도 뛰는 편이며 발의 움직임이 많으면서 무릎이 잘 견뎌내야 합니다. 박지성은 끊임없는 무릎 부상 후유증을 안고 경기에 임했습니다. '산소탱크'라는 별명처럼 그라운드에서 엄청난 움직임을 과시하기로 유명했죠. 이렇다보니 무릎이 많이 안좋아지면서 다른 선수에 비해 대표팀을 떠났던 시점이 빨랐습니다. 이제는 은퇴를 하게 되었죠.

 

 

 

 

되돌아보면 박지성은 악플러들의 많은 공격을 받았던 유명 스포츠인 중에 한 명 입니다. 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시절이 대표적입니다. 경기에 뛰지 않을 때마다 박지성을 비하하는 댓글들이 끊이지 않았죠. 개인적으로는 어떤 기사에서 박지성을 깎아내리는 댓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왔던 때가 기억납니다. 제가 이 글을 쓰기 전에도 어느 기사에 박지성 비하 댓글이 올라왔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박지성 안티가 많았던 배경에는 맨유 시절에 결장이 빈번했기 때문입니다. 맨유에서 7시즌 동안 200경기 넘게 뛰면서 팀의 여러 차례 우승에 기여하는 최상의 활약을 펼쳤음에도 결장 횟수가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교체 투입 횟수도 만만치 않았죠. 맨유 같은 빅 클럽은 엄청난 경기 일정을 소화하는 특성상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 활용이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박지성의 거의 매 경기 선발 투입'을 바랬던 국내 여론에게는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이 낯설었죠. 이 때문에 박지성과 관련된 악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언론에서 제기되었던 '박지성 위기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이 있었기에 박지성이 현역 선수 생활을 잘 마무리했습니다. 맨유 시절 사령탑이었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 그를 무리하게 투입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박지성이 경기에 투입될 때마다 좋은 경기력을 과시하며 팀에 많은 승리를 기여했죠. 그때는 '강팀킬러'로 유명했습니다. 유독 강팀과 맞붙을 때 혼신의 힘을 쏟으며 상대팀 선수를 잘 막아내면서 팀의 공격 전개에 적극 관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아스날 킬러로 유명했고 첼시와의 2010/11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는 결승골까지 넣으며 맨유의 4강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올해 초에는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홍명보 감독이 그의 복귀를 원했고 그가 대표팀에 돌아오기를 바랬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박지성 무릎을 확인했던 홍명보 감독은 "박지성 무릎이 우리가 아는 것보다 심각했다"고 밝혔습니다. 더 이상 대표팀 활동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죠. 결국 박지성은 2013/14시즌을 마치면서 오늘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몸이 아프지 않고 오랫동안 건강하게 활동했으면 좋겠네요.

 

 

 

Posted by 나이스블루



-가장 정점에 있을때 대표팀을 그만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때(2011년 1월 아시안컵) 되면 정점이 아니라 벌써 정점에서 떨어지고 나서다. 기량으로 보더라도 내가 대표팀에 있을만한 실력이 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그만큼 지금 현재 어린 선수들이 충분히 성장하고 있고, 몇년 후에는 또 다른 어린 선수들이 그만큼의 능력을 보여줄거라 믿고 있다." (박지성, 15일 파주 NFC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 최근 박지성이 대표팀 은퇴 의사를 밝혔는데?

"선수라면 누구나 이러한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다. 대표팀에서 계속 박지성을 원한다면 더 뛸 수 있는 것 아닌가?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나 체력적인 수준을 볼 때 다양한 변신을 할 수 있다. 내 생각으로는 2014년 월드컵까지 충분히 대표팀에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허정무 감독, 17일 A매치 이란전 종료후에 가진 인터뷰에서)

'산소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의 국가 대표팀 은퇴 선언을 놓고 축구계 반응이 어수선합니다. 박지성은 오는 2011년 1월 카타르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을 끝으로 태극 마크를 반납할 예정이지만 일부에서는 30세의 나이에 은퇴하는 것은 이르지 않느냐는 주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프로와 대표팀에서 성공한 축구 선수, 특히 필드 플레이어들의 은퇴 시기가 대게 33~35세임을 감안하면 박지성의 대표팀 은퇴 시기가 이른 것은 사실입니다.

박지성의 대표팀 은퇴는 시기 여부를 떠나, 아쉬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한국 축구를 위해 공헌한 것이 너무 많은데다 아직 노장이 아니기 때문에 은퇴라는 단어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박지성은 80년대 차범근, 90년대 박찬호에 이어 2000년대에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스포츠 스타입니다. 2004년 아시안컵부터 지금까지 5년 동안 대표팀의 에이스로 맹활약을 펼쳤고 교토 퍼플상가와 PSV 에인트호벤, 그리고 맨유에서 한국 축구의 인지도를 높이며 항상 성실한 자세로 현지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주역이라는 것이죠.

물론 박지성은 아직 대표팀에 은퇴하지 않았습니다. 2011년 1월 아시안컵 종료 후 은퇴하고 싶은 의사를 표현했기 때문에 최소 1년 7개월 동안 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할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박지성은 은퇴 선언만 했을 뿐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지네딘 지단과 루이스 피구 같은 축구 스타들도 유로 2004 종료 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다시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월드컵 성적도 좋았습니다. 지단의 프랑스는 월드컵 결승에 진출했고 피구의 포르투갈은 월드컵 4강에 올랐습니다. 지단과 피구의 사례를 놓고 보면, 박지성도 대표팀 은퇴를 번복하고 2014년 월드컵에서 한국의 좋은 성적을 이끌 수 있습니다.

박지성이 2014년 월드컵까지 충분히 대표팀에 뛸 수 있다고 밝힌 허정무 감독의 발언은 틀린말이 아닙니다. 체력 유지만 된다면 2014년 월드컵에 뛰는 것은 문제 없습니다. 박지성은 2000년 교토 시절부터 지금까지 거의 10년 동안 해외리그에서 활약하면서 몸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계획했던 것 보다 오랫동안 대표팀 선수로 뛸 수 있습니다.

또한 대한축구협회(KFA) 대표팀 운영규정 제13조(선수의 의무) 2항에 보면 '(대표 선수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훈련 및 소집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대한축구협회가 박지성의 차출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대표팀에 불러 들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더라도 그것이 대한축구협회로 부터 특별 사유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그는 2011년 이후에도 대표팀에서 뛰어야 합니다.

하지만 의무는 의무일 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수 개인의 의사입니다. 선수 본인이 기량과 체력적인 문제, 그리고 부상에 대한 염려로 인하여 대표팀에 은퇴하고 싶다면 그것은 대한축구협회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만약 그 문제가 대표팀 전력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친다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는 참담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젊은 선수라면 다른 젊은 선수가 대체할 수 있지만 팀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노장 선수라면 그 문제가 더 커집니다. 박지성의 국가대표팀 나이순 서열은 이운재, 이영표, 이정수에 이어 팀 내에서 네번째로 높습니다. 2011년 아시안컵때는 30세의 나이로 참가하는데 그때 부터 완전한 노장 선수가 됩니다.

선수의 컨디션과 체력, 그리고 부상에 대한 위험성은 대표팀 감독보다 선수 본인이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감독이 선수를 보는 눈이 높다고 할지라도 선수 내면의 심리와 육체적인 문제점을 쉽게 파악할 수는 없는 일이죠. 대표팀 선수 차출은 대한축구협회와 대표팀 감독에 의한 무조건적인 차출이 아닌 선수 개인의 의사를 우선시하여 차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팀의 내실을 위한 현명한 처사라 할 수 있습니다.

박지성은 지금까지 무릎 수술만 3번이나 받았는데, 30세가 넘어서 한국과 잉글랜드를 오가며 축구할 수 있을지 혹은 2014년 월드컵까지 뛸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박지성은 지금까지 성실히 잘 뛰었는데 그 정도 즈음은 잘 이겨낼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의심의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젊었을 때 가능한 시나리오일 뿐, 30세 이후의 박지성에게는 넘기 어려운 벽입니다. 지단과 피구가 대표팀 은퇴 선언 이후 그것을 번복하여 독일 월드컵에 뛰었지만, 두 선수는 유럽 선수로서 월드컵 최종예선도 유럽에서 열렸고 독일 월드컵도 유럽에서 치러졌기 때문에 대표팀 차출이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지성에게는 지구 반대편을 돌며 소속팀과 대표팀 일정을 치러야 하는 핸디캡이 있습니다. 지단과 피구의 사례는 그저 참고용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 박지성은 몇년 전 부터 국내에서 열린 대표팀 차출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인 손해를 견디면서 지금까지 대표팀 선수로 뛰었습니다. 2004년 3월 올림픽 대표팀 중국전 차출에 따른 피로 누적 무릎 통증에 시달렸으며 2006년 5월과 9월에는 독일 월드컵과 아시안컵 지역 예선을 전후로 무릎과 발목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듬해 3월 23일 A매치 우루과이전 이후 8일 뒤에 열린 블랙번전에서는 오른쪽 무릎 연골 부상을 입어 9개월 동안 경기에 뛰지 못해 국내팬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만약 국내에 가지 않고 잉글랜드에서 충분히 몸을 쉬었다면 부상 경도가 약했거나 불의의 부상을 입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박지성은 대표팀 차출 의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국내를 오가며 A매치 경기를 치렀습니다.

불과 2년전 까지 대표팀 차출 이후에 부상으로 고생했다면, 그 이후에는 컨디션 저하 및 경기력 부진이라는 악재를 만났습니다. 대표팀에 차출된 이후 맨유 경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거나 평소 같지 않은 활약으로 부진했던 모습이 많았죠. 심지어 지난 2월에는 유럽과 거리가 가까운 이란에서 A매치 일정을 치렀지만 소속팀 복귀 이후에는 컨디션 저하로 기진맥진하고 말았습니다. 2009/10시즌에도 이러한 현상이 계속 반복될 텐데, 결국에는 박지성 본인만이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대표팀 차출이 잦은 선수가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로 소속팀에 복귀하면, 클럽 입장에서는 좋지 않게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박지성은 대표팀 선수이기 이전에 맨유 선수이며, 맨유는 박지성의 직장입니다. 아무리 대표팀에 다녀와도 직장에 충실하지 못한다면 박지성의 클럽 커리어는 결국 거기에서 끝나고 맙니다. 그런 선수에게 오랫동안 대표팀 차출을 바라거나 또는 강요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박지성은 온갖 손해속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에 충실할 만큼 충실했고, 본인이 직접 2011년 1월 아시안컵까지 대표팀 선수로 뛰겠다고 대중들과 약속했기 때문에 그의 의사는 당연히 존중해야 합니다.

박지성의 대표팀 은퇴 선언이 아쉬운 것은 사실입니다. 선수 본인도 대표팀 은퇴 선언을 결정짓기 전까지 앞으로의 거취를 놓고 많은 고민을 거듭하며 마음고생을 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한국을 대표했던 선수 입장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경솔하고 성급하게 대표팀 은퇴를 결정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한국 축구를 이끌 에이스로 박지성에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1명의 특급 선수 활약으로 대회에서 좋은 성적 올리겠다는 한국 축구의 근시안적인 대표팀 운영은 반드시 없어져야 합니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본선을 앞두고 박지성을 와일드카드에 발탁하겠다던 박성화 전 올림픽 대표팀 감독의 사례처럼, 한국 축구는 박지성에게 너무나 많은 부담을 안겨줬습니다. 박지성의 대표팀 은퇴 선언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며 그것을 반대할 이유도 없습니다. 아무리 대표팀에서 은퇴하더라도 유럽에서 커리어를 계속 이어갈 '박지성 신화'는 그때도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