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표팀은 지난 2일 레바논전에서 6-0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60위 아시아 약체와의 경기였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3차 지역예선 첫 경기에서 승리했고 지난달 10일 일본전 0-3 참패 분위기를 해소했습니다. 만약 레바논전 승리가 없었거나 경기 내용이 안좋았다면 조광래 감독을 향한 여론의 불신이 매우 높았을 것입니다. 일본전 패배 이후 조광래 감독 경질, 외국인 감독 영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빗발쳤습니다.

특정 경기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축구팬들은 조광래 감독 경질을 '오버'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일본전 패배 이전까지 승승장구했던 지도자가 라이벌전 0-3 패배 하나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믿기 힘든 시나리오 입니다.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도 아스널, 리버풀, 리즈 유나이티드 같은 라이벌에게 여러차례 패했던 경험이 있지만 25년 동안 장기 집권 했습니다. 조세 무리뉴 레알 마드리드 감독은 지난 시즌 FC 바르셀로나에게 2번 패했고 그 중에 하나는 캄프 누 0-5 대패 였습니다. 경질설만 있었을 뿐 지금도 지휘봉을 잡고 있습니다. 오히려 클럽 매니져까지 겸임하며 소속팀에서의 영향력이 강화되었죠.

[사진=조광래 감독 (C) 아시아축구연맹(AFC) 공식 홈페이지 메인(the-afc.com)]

그러나 축구 민심은 다릅니다. 대표팀 경기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합니다. 매 경기 매 순간에 따라 사람들이 반응합니다. 일본전 패배의 경우에는 한국이 무기력한 경기 내용을 거듭했고, 일본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철천지 원수이며, 일본은 외국인 감독(알베르토 자케로니)이 지휘봉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조광래 감독 경질', '외국인 감독 영입' 주장이 불거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의견도 한때 였습니다. 순간적으로 반응이 거셌을 뿐 조광래호가 레바논전 대승을 거두면서 끝내 무의미한 목소리가 됐습니다. 충격패를 당하면 감독 경질을 떠올리기 쉬운게 사람 마음일지 모르지만 건설적인 주장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대한축구협회(KFA)가 외국인 감독 영입할 의지가 있었다면 지난해 남아공 월드컵 종료 후에 선임했어야 합니다. 그때는 허정무 감독 계약이 만료된 시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광래호가 출범한지 1년 넘었고, '한국 축구의 세계화'를 이루겠다는 지도자의 소신이 뚜렷하며, 일본전 패배 속에서도 대표팀의 패스 축구 정착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레바논전을 시작으로 브라질 월드컵 본선 출전을 위한 첫 여정에 돌입했죠. 조광래호에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브라질 월드컵 이전까지 감독 교체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조광래 감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축구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조광래호라는 배를 타고 있습니다.

일부 누리꾼의 조광래 감독 경질 의견은 국내 감독 불신의 또 다른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그동안 불거졌던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자는 주장도 역설적으로는 국내 감독의 역량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그렇다고 이 글에서 국내 감독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각에서 외국인 감독을 향한 일종의 '환상'을 가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면 무조건 성적이 좋아지겠지?'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쿠엘류-본프레레-아드보카트 체제로 이어졌던 시기는 한국 대표팀의 암흑기 였습니다. 베어벡 감독도 자질 논란에 휩싸였지만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었던 포백 정착에 성공했습니다.

외국인 지도자 모두가 히딩크 감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쿠엘류 전 감독은 통솔력, 본프레레 전 감독은 전술, 아드보카트 전 감독은 팀을 완성시킬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반면 히딩크 체제에서는 여러 가지 성공 요인이 있었지만, 대표팀 선수들의 장기 합숙훈련이 계속되면서 K리그 팀들의 희생이 불가피 했습니다. 지금도 'K리그보다 대표팀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선수들 연봉은 대표팀이 아닌 소속팀이 지불합니다. 이제는 대표팀 장기 합숙훈련의 중요성이 감소되었죠. 대표팀은 FIFA의 A매치 소집 규정을 준수해야 합니다. 굳이 대표팀 장기 합숙훈련을 언급한 것은, 앞으로 히딩크 감독과 똑같이 최상의 환경에서 팀을 완성시킬 지도자가 등장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히딩크 성공 요인에서 짚어 볼 것은, 히딩크 감독도 지금의 조광래호처럼 시행착오를 겪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체코에게 0:5로 패하면서 '오대영'이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었고 2002년 초 골드컵에서는 저조한 경기력을 일관했습니다. 그때도 '히딩크 감독 경질' 여론이 만만찮았고 일부 국내 축구 전문가까지 히딩크 감독을 곱지 않게 바라봤죠. 그럼에도 히딩크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끌었습니다. 강팀 및 비 아시아권 팀들과 꾸준히 싸우면서 때로는 수모를 당했지만 결국에는 월드컵 선전을 위한 자신감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까지는 일본의 자케로니 감독 영입이 성공작으로 평가됩니다. 남아공 월드컵 시절의 오카다 체제보다 더 강해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일본 대표팀 경기력이 2014년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일본이 2014년에 걱정해야 할 대표적 문제는 '팀의 구심점' 엔도 야스히토가 앞으로 3년 지나면 34세 입니다. 만약 엔도가 흔들리고 자케로니 감독이 고비를 못넘기면 일본 대표팀 경기력이 부정적 영향을 받을지 모릅니다. 자케로니 감독은 지금까지 일본 대표팀을 완성시켰던 '과정'은 좋았지만 '앞날의 결과'는 더 지켜볼 일입니다.

한국 대표팀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외국인 감독이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조광래 감독이 일본에게 참패를 당했지만 여전히 지휘봉을 잡고 있습니다. 얼마전 레바논전에서는 6-0 대승을 거두면서 자신을 향한 외부의 우려를 불식시켰죠. 어떤 감독이든 고비는 늘 찾아오지만, 조광래 감독은 일본전 패배의 후유증을 이겨내기 시작했습니다. 조광래호 향후 행보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하지만, 무의미한 감독 흔들기는 한국 축구 발전에 이롭지 않습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저는 이동국의 대표팀 발탁을 반대합니다. 지난 5월 14일 <이동국 대표팀 발탁, 솔직히 회의적이다>는 포스팅을 통해서 밝혔지만, 올해 32세의 이동국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면 35세입니다. 과거에 각급 대표팀 일정을 소화하며 혹사에 시달렸던 전례처럼,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전북의 K리그-AFC 챔피언스리그 및 대표팀을 함께 병행하는 것은 체럭적으로 무리입니다. 적어도 올해는 전북에 전념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당시 포스팅 내용입니다.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 없습니다. 그리고 이동국 본인은 전북에 전념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은 이동국을 원하고 있습니다. 6월 A매치 2경기(세르비아, 가나) 이전에 이동국 발탁을 검토했고 다음달 10일 A매치 일본 원정을 앞둔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오히려 최근이 구체적 입니다. 지난 3일 전북-서울 경기를 관전하면서 "이동국을 대표팀 예비명단에 포함하겠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예비명단이기 때문에 대표팀 합류가 정식적으로 성사된 것은 아니지만 태극마크를 부여할 의지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난해 여름 대표팀 사령탑 부임 초기에는 자신과의 축구 철학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이동국을 대표팀에서 제외했지만 1년 뒤에는 180도 바뀌었습니다.

이동국 대표팀 발탁 여부는 앞으로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얻을 것입니다. 이동국이라는 네임벨류 특성도 있지만, 올 시즌 K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공격수는 단연 이동국입니다. 올 시즌 16경기에서 10골 8도움을 기록했으며 지난 3일 서울전에서는 40(골)-40(도움)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득점왕에 올랐던 2009년에는 도움이 없었지만 올해 8도움을 올리면서 만능형 공격수로 진화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물론 득점 순위에서는 김정우(13경기 11골, 상주)에 이어 2위를 기록중입니다. 하지만 이동국은 전북의 1위를 이끌고 있으며 김정우가 속한 상주는 최근 4연패 입니다. 또한 이동국은 전북의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를 이끄는 선봉장 입니다. 이러한 K리그 활약상이 대표팀 발탁 여부와 맞닿게 됐습니다.

그런 이동국의 대표팀 발탁은 현실적으로 가능합니다. 한달 뒤 펼쳐질 A매치 일본 원정만을 놓고 보면 이동국이 대표팀에 복귀하는 시나리오는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기존 대표팀 공격진이었던 박주영-지동원-정조국이 일본 원정에 차출되지 않을 경우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물론 일본 원정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지정한 A매치로서 유럽파 합류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일본전은 2011/12시즌 유럽 축구가 개막하는 시점에 진행되며 유럽파 선수들을 총동원하기 쉽지 않습니다. 유럽파들이 새 시즌을 보내면서 컨디션을 조절하거나 팀 내 경쟁을 의식할 수 밖에 없죠. 2009년 8월 박지성 및 2010년 8월 이청용-차두리의 전례처럼, 일부 유럽파가 제외된 상태에서 일본전을 치를지 모릅니다.

현 시점에서는 박주영-지동원-정조국의 일본전 발탁 여부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박주영은 8월이 되면 새로운 소속팀에서 시즌 맞이에 돌입하거나 또는 이적을 준비할지 모릅니다. 적어도 AS 모나코를 떠날 것은 분명합니다. 지동원은 선덜랜드 적응이 가장 필요합니다. 잉글랜드라는 낯선 환경과 프리미어리그 특유의 빠른 템포에 익숙해져야 할 시점이죠. 아사모아 기안, 코너 위컴 같은 공격수들을 비롯해서 다비드 은고그(리버풀) 크레이그 벨라미(맨체스터 시티, 카디프 시티 임대 종료) 같은 선수들이 선덜랜드 이적설로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정조국도 지동원과 마찬가지로 소속팀 주전 확보가 중요합니다. 오세르의 간판 공격수를 굳히려면 시즌 초반 임펙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세 명 모두 대표팀 합류에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동국은 다릅니다. K리그에서 가장 폼이 올라있는 공격수입니다. 장점이 풍부해진 공격력과 K리그-대표팀에서의 잔뼈가 굵은 경험은 국내파 공격수 중에서 단연 독보적입니다. 득점 1위 김정우는 대표팀 주전 공격형 미드필더이며, 이용래-기성용과의 중원 공존에 필요한 선수임을 감안할 때 일본전에서 공격수로 선발 출전할지는 의문입니다. 조광래호가 최근 A매치에서 오름세를 탔던 요인 중 하나는 4-1-4-1 정착에 따른 이용래-기성용-김정우 중원 조합의 성공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 같은 라이벌전에서는 최전방에서 경험있는 선수가 필요합니다. 상대 수비가 만만치 않은 견제를 펼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이동국 같은 노련한 선수가 팀 전력에 필요할 수 있죠.

역의 관점에서는, 이동국 대표팀 합류 가능성은 젊은 K리그 공격수들의 분발을 필요하게 합니다. 이동국-김정우와 더불어 올 시즌 K리그에서 두각을 떨치는 공격수는 한상운, 양동현(이상 부산) 조동건(성남) 김동섭(광주) 박준태(인천) 염기훈(수원) 김신욱(울산)을 꼽을 수 있습니다. 얼마전에 부상에서 복귀했던 지난해 K리그 득점왕 유병수(인천)도 같은 범주에 속하죠. 이들 중에서 양동현-조동건-김동섭-김신욱-유병수가 조광래호 최전방을 맡을 수 있는 자원입니다. 조광래 감독이 원톱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선수들은 대표팀 실전 경험이 부족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표팀 테스트 성격이라면 모르겠지만 일본전만큼은 즉시 전력감이 필요합니다. 유병수는 조광래 감독과 전술적으로 맞지 않는 특성도 있죠.

최근에는 조광래 감독이 고무열(포항)에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고무열은 올 시즌 K리그 신인으로서 14경기 2골을 기록했으며 포항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중입니다. 신장 185cm로서 제공권에 강하며 포항의 왼쪽 윙 포워드로 활약할 정도로 움직임이 많고 이타적인 역량을 겸비한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무열은 아직 포항에서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시즌 초반 4-3-3의 중앙 공격수로서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였으며 최근에는 모따에게 자리를 내주었죠. 조광래 감독이 직접 지켜봤던 지난 2일 수원전에서는 윙 포워드로 나섰으나 부진했습니다. 대표팀에 뛸 수 있는 잠재력이 있지만 더욱 훌륭한 공격수가 되려면 아직 K리그에서 여물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활약상을 놓고 보면 대표팀 합류를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박주영-지동원-정조국의 일본전 차출이 힘들어지고, 세 명중에 누군가 합류해도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지난 2월 터키 원정때의 이청용이 예) 일본전 주전 공격수는 이동국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는 김정우를 원톱으로 올리거나 젊은 K리그 공격수를 과감히 기용할지 모르죠. 하지만 일본전은 한국이 이겨야 합니다. 평가전임을 감안해도 상대팀은 전통의 라이벌이자 아시안컵 우승 실패를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입니다. 그리고 조광래 감독은 한때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와 갈등이 불거졌다는 점에서 2014년을 보장 받으려면 일본전 승리는 꼭 필요합니다. 과연 조광래 감독이 이동국을 대표팀에 뽑을지는 알 수 없지만 K리그 공격수 중에서 가장 믿음직한 선수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물론 조광래 감독은 박주영-지동원-정조국이 동시에 대표팀 합류가 불가능한 현상을 원치 않을 겁니다. 일본전은 엄연히 A매치 데이로서 세 선수를 모두 대표팀에 발탁할 수 있습니다. 세 선수가 나란히 대표팀에 제외되는 일은 제가 생각하는 '만약을 대비한' 극단적인 시나리오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올 시즌 K리그에서 절정의 활약을 펼치는 이동국이라면 대표팀에서 충분한 경쟁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이동국의 대표팀 발탁이 반갑지는 않습니다.(앞에서 언급했지만) 선수 본인이 대표팀보다는 전북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변수지만 결과적으로 조광래 감독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아시안컵 우승을 노리는 한국 축구 대표팀의 불안 요소는 공격수 입니다. 박주영이 대회를 앞두고 무릎 부상으로 불참하면서 유병수-김신욱-지동원이 그 공백을 메울 공격진으로 편성됐습니다. 세 명의 선수는 조광래호 소집 당시 A매치 출전 횟수가 총 3경기에 불과했을 정도로 성인 대표팀 경험이 적습니다. 서귀포 전지훈련 도중에 합류했던 손흥민 또한 A매치에 모습을 내민적이 없었습니다. 아시안컵 같은 토너먼트 대회가 경험 많은 선수의 내공을 요구하는 특성이 있음을 상기하면 박주영 불참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은 박주영 공백을 대표팀 공격 강화의 새로운 기회로 삼았습니다. 박주영이 대표팀에서 뛰었을때에도 '한국 축구는 뚜렷한 킬러가 없다'는 일부 여론의 불신이 작용했고, 그런 박주영 또한 지난해 8월-9월-10월 A매치에서 존재감 넘치는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는 것은 조광래 감독이 충분히 인지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축구의 공격수 문제를 장점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전술 변화를 시도하게 됐죠. 바로 '제로톱'입니다. FC 바르셀로나, 에버턴, AS 로마가 활용한 경험이 있었고, 특히 FC 바르셀로나가 최근에 즐겨 구사하는 제로톱을 한국 축구 대표팀에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조광래 감독, 박주영 공백을 제로톱으로 메웠다

우선, 현대 축구는 정통 타겟맨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남아공 월드컵 8강에 진출했던 팀들 중에 7팀이 4-2-3-1을 주 전술로 선택하면서 투톱이 밀렸습니다. 우승 후보였던 잉글랜드 대표팀의 졸전이 그 예 입니다. 한국 대표팀도 4경기 중에 2경기에서 4-2-3-1을 구사했었죠. 4-3-3을 구사하는 팀에서도 중앙 공격수를 원톱 자원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타겟맨과 쉐도우를 분류하는 기존의 투톱 시스템에서 벗어나 여러가지 역할을 병행할 수 있는 한 명의 공격수를 두면서, 정통 타겟맨 보다는 다기능적인 공격수가 선호받게 됐죠. 쉐도우가 어울렸던 박주영도 원톱에 적응하면서 공중볼-몸싸움-포스트플레이를 펼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공격수는 골로 말합니다. 하지만 현대 축구가 원하는 공격수는 골 뿐만이 아닙니다. 상대 수비진을 무너뜨리면서 후방 공격 옵션들이 골을 터뜨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합니다. 측면 또는 2선으로 내려가 상대 수비의 시선을 자신쪽으로 유도하거나, 기술력이 뛰어난 공격 옵션을 원톱에 배치하여 공간을 창출하는 스타일이 현대 축구에서 선호받게 됐습니다. 비야, 토레스, 테베스, 루니, 판 페르시, 샤막 같은 공격수들이 이러한 역할에 강합니다. '키가 큰 선수가 타겟맨을 맡아야 한다', '테크니션은 쉐도우에 어울린다', '공격수는 골만 잘 넣으면 된다'는 개념의 명제는 더 이상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조광래 감독은 지난해 9월 7일 A매치 이란전이 끝난 뒤, 국내 선수들이 FC서울 공격수 데얀의 플레이를 본받고 노력해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골 생산과 팀 플레이의 역할을 모두 병행하는 데얀의 다재다능한 장점을 국내 공격수들이 배워야 한다는 것이 그 요지죠. 특히 데얀은 지난해 K리그 35경기 19골 10도움을 기록했는데(포스코컵 포함), 2007~2009년 94경기에서 10도움을 올렸던 수치와 비교하면 도움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2선에서 볼을 터치하면서 상대 수비를 자신쪽으로 유도했고, 그 과정에서 다른 선수에게 빠른 볼 처리에 의한 패스를 띄우거나 직접 문전을 쇄도했습니다. 그 동작을 지속적으로 병행하면서 상대 수비를 파괴하는데 성공했죠. 정조국-이승렬-최태욱이 지난해 많은 골을 넣었던 배경에는 데얀의 팀 플레이가 컸습니다.

특히 조광래 감독은 지동원을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낙점했습니다. 지동원이 데얀처럼 장점이 풍부한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청소년+아시안게임 대표팀 및 소속팀 전남에서 골을 비롯 공중볼 처리, 포스트 플레이, 개인기, 패싱력, 연계 플레이 등에서 수준급 이상의 실력을 뽐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전남에서 김명중과 함께 공격형 미드필더와 왼쪽 윙어를 번갈아가면서 이타적인 플레이에 주력했던 경험이 기량 업그레이드로 이어지면서 조광래 감독의 신뢰를 얻게 됐습니다. 지난해 K리그 득점왕 유병수(28경기 22골)보다 골이 많이 부족하지만(22경기 8골), 조광래 감독이 선호하는 스타일은 유병수가 아닌 지동원 이었습니다. 선 굵은 축구를 선호하는 지도자였다면 유병수를 원했을지 모르지만, 조광래 감독의 축구 매커니즘에서는 지동원이 어울렸습니다.

그렇다고 조광래 감독이 지동원에게 전형적인 타겟맨 플레이를 주문한 것은 아닙니다. 지동원의 여러가지 장점을 대표팀 전력에 충분히 활용할 수 있기를 원했죠. 미드필더진에는 공격 감각이 뛰어난 선수들(박지성-이청용-구자철-기성용 등)이 즐비하기 때문에 지동원과 최고의 팀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잠재적 특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시안컵에서 지동원을 제로톱으로 활용하는 4-6-0 포메이션이 등장했습니다. 기본적인 포메이션은 4-2-3-1이지만, 지동원이 왼쪽 측면으로 내려가면 2선 미드필더들이 최전방 역할까지 도맡으면서 4-6-0이 됩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4-2-4(지동원-박지성-구자철-이청용) 포메이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로톱은 공격 옵션들의 적극적인 움직임 및 강인한 체력, 감각적인 패싱력을 요구합니다. 사실상 공격수가 없기 때문에 미드필더들의 폼에 따라 팀 경기력이 좌우될 수 있습니다. 원톱이 측면 또는 후방으로 내려가 볼을 터치하면서 상대 수비를 자신쪽으로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볼을 소유하면서 빠른 타이밍의 크로스 또는 패스를 연결하면 팀의 새로운 공격 기회가 창출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드필더들이 공격진에 적극 가담해서 골을 노리게 되죠. 그리고 좌우 풀백들이 앞쪽에서 라인을 잡거나 오버래핑을 펼치며 미드필더와의 간격을 좁히게 됩니다. 한국의 아시안컵 본선 1차전이었던 바레인전 승리 공식과 일치합니다.

팀 중심 관점에서, 한국이 바레인전에서 승리했던 원동력은 제로톱 입니다. 특히 지동원이 왼쪽 측면에 내려오면서 한국 공격이 원활하게 풀렸고 바레인의 수비 밸런스가 무너졌습니다. 그 이유는 지동원이 바레인 수비를 자신쪽으로 유도했기 때문이죠. 박스쪽에 가담한 미드필더들에게 정확한 크로스를 띄우거나 패스를 연결하면서 대표팀의 포지션 파괴가 두드러졌고 그 과정에서는 기성용의 킬러 패스가 더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구자철이 박스에서 2골을 터뜨리며 한국이 2-1로 승리했고 최상의 경기력을 과시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제로톱이 아시안컵 우승으로 귀결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됐습니다. 조광래 감독은 박주영 공백을 제로톱으로 메웠으며 그 연결고리는 지동원 이었습니다.

앞서, 정통 타겟맨의 영향력이 축소 되었다고 언급한 것은 제로톱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밀접합니다. 현대 축구는 공격수의 다양한 장점을 요구하기 때문에 정통 타겟맨의 비중이 줄었으며, 그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제로톱입니다. 물론 지동원의 하드웨어를 놓고 보면 정통 타겟맨으로 활용 될 수 있는 선수이며 지난해 U-19 아시아 선수권 대회가 대표적 예 였습니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현대 축구의 이해가 밝은 지도자이기 때문에 지동원의 이타적인 능력을 더 원했던 것이죠. 더욱이 한국 축구는 킬러가 부족하다는 쓴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광래 감독은 공격수의 득점력에 의존하는 시스템을 외면하고 팀 플레이를 요구하는 제로톱으로 풀어갔습니다. 한국의 아시안컵 우승은 제로톱의 완성 여부와 달렸죠. 지동원을 제로톱으로 쓰는 이유는 조광래 감독이 현대 축구의 특징을 한국팀의 주 전술로 받아들였음을, 박주영 공백 및 킬러 부족을 커버하겠다는, 미드필더들의 득점력을 늘리겠다는 의중과 밀접합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