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 사커(MLS)에 소속된 뉴욕 레드불스 하면 떠오르는 존재는 티에리 앙리입니다. 앙리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축구 선수죠. 이 팀에는 앙리만 유명하지 않습니다. 호주 국적의 아시아 축구 스타 팀 케이힐 소속팀이 뉴욕 레드불스였습니다. 8년 전 독일 월드컵 일본전 득점 이후 복싱 세리머니를 하며 우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던 케이힐 기억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서도 성공적인 활약상을 펼쳤죠.

 

케이힐은 2012년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정들었던 잉글랜드 무대를 떠나 미국의 뉴욕 레드불스로 이적했습니다. 당시 33세(현재 35세)의 나이로서 축구 선수로서는 전성기가 저무는 시점에 접어들었죠. 유럽 축구 스타들이 미국이나 중동 등에서 선수 생활의 말년을 보내는 것처럼 케이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뉴욕 레드불스 입단을 통해 미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펼쳤던 그는 이런 선수였습니다.

 

 

팀 케이힐, 월드컵에서 호주 축구 빛냈던 스타

 

우선, 이 부분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케이힐 국적은 호주로서 오세아니아에 속하나 호주 축구는 2006년 아시아축구연맹(AFC)에 편입됐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에서는 오세아니아 팀으로 대회에 참가했으나 그 이후 메이저대회에서는 아시아 팀으로 출전했었죠.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호주 클럽들이 한국, 중국, 일본, 중동 등 아시아 클럽들과 함께 우승을 다투게 됐습니다. 2015년 아시안컵 개최지는 호주이며 한국 축구 대표팀이 본선 A조에서 호주와 맞붙습니다. 어쩌면 호주 대표팀 에이스 케이힐이 한국전에 출전할 수도 있습니다.

 

 

케이힐은 호주를 대표하는 축구 선수이자 아시아 정상급 축구 스타입니다. 월드컵 3개 대회 본선에서 연속으로 골을 넣는 맹활약과 더불어 프리미어리그에서 오랫동안 롱런했던 선수였죠. 지금도 A매치 평가전에서 골을 터뜨리며 호주 대표팀 핵심 선수에 걸맞는 경기력을 발휘했습니다. 주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지만 공격수, 측면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까지 성공적으로 소화하는 멀티 플레이어이자 경기장에서 열심히 뜁니다. 그동안 이루었던 커리어를 놓고 보면 어쩌면 호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2006년 독일 월드컵은 호주 축구가 사상 첫 16강 진출을 달성했던 대회였습니다. 2002년 한국의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끌었던 네덜란드 출신의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했던 효과가 빛을 발했죠. F조에서 1승 1무 1패로 2위를 기록했는데 1차전이었던 일본전에서 3-1로 이겼던 것이 16강 진출의 결정타가 됐습니다. 일본전은 0-1로 지고 있던 경기 막판에 3골을 몰아치는 기적의 역전승을 거두었으며 국내 여론에서는 이 경기를 '히딩크 매직'이라는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 경기에서 교체 멤버로 투입되었던 케이힐은 후반 39분 동점골, 후반 44분 역전골을 넣으며 호주의 승리를 주도했습니다. 동점골 작렬했을때는 어퍼컷을 취하는 복싱 세리머니를 했는데 그 장면을 지금도 한국 축구팬들이 잘 기억하고 있죠. 심지어 그 골은 호주 축구 역사상 월드컵 본선 첫 득점이었습니다.

 

 

케이힐은 호주가 아시아 축구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은 이후 아시안컵과 월드컵 최종예선 및 본선 같은 중요한 대회에서 골을 터뜨리며 큰 경기에 강한 기질을 보여줬습니다. 그중에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2009년 6월 17일 일본전에서는 동점골과 역전골을 터뜨리며 호주의 2-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그 경기를 통해 호주가 A조 1위로 최종 예선을 마무리하며 2위 일본과 함께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습니다. 케이힐은 이듬해 남아공 월드컵 본선 D조 3차전 세르비아전에서 골을 넣으며 팀의 2-1 승리를 공헌했으나 호주는 3위로 탈락했습니다.

 

지난 여름에 막을 내렸던 브라질 월드컵 본선은 호주에게 운이 따르지 못했습니다. B조에서 네덜란드, 칠레, 스페인과 같은 조에 편성되는 조추첨 악몽을 극복하지 못한 끝에 3전 전패로 탈락했습니다. 하지만 호주의 부진 속에서도 케이힐은 1차전 칠레전, 2차전 네덜란드전에서 골을 터뜨리는 이름값을 떨쳤습니다. 2골 영양가가 더욱 높은 것은 칠레와 네덜란드가 B조 16강 진출팀입니다. 팀 전력이 더 좋았다면 케이힐에게 더 많은 골 기회가 주어졌을지 모를 일이었죠. 월드컵 통산 5골 기록했던 케이힐은 호주를 대표하는 축구 선수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호주는 지금까지 월드컵 본선에서 11골 넣었는데 그중에 5골이 케이힐 몫입니다. 월드컵과 좋은 인연을 맺었던 선수였죠.

 

 

팀 케이힐, 모예스 에버턴 시절 빛냈던 EPL 스타

 

케이힐 경기력은 호주 대표팀 및 월드컵에서만 빛나지 않았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에버턴에서 2004/05시즌부터 2011/12시즌까지 8시즌 동안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는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이었던 한국의 박지성(은퇴)과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했던 시기가 겹칩니다. 과거에 프리미어리그 즐겨봤던 분이라면 케이힐이 에버턴에서 팀의 중심급 선수로 두각을 떨치는 모습을 봤을 것입니다. 그라운드 이곳 저곳을 부지런히 넘나들면서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포착하려는, 팀 플레이에 적극적인, 키가 178cm 임에도 헤딩까지 잘했던 근성이 돋보였죠. 에버턴에서는 8시즌 278경기에 출전하면서 63골 넣었습니다.

 

본래 케이힐은 하부리그 출신의 선수였습니다. 2004년 에버턴으로 이적하기 전까지는 잉글랜드 챔피언십리그(2부리그)에 소속된 밀월에서 활약했습니다. 밀월에서는 1998년부터 경기를 뛰면서 지속적인 실전 경험을 치른 끝에 자신의 축구 실력을 연마했죠. 그 노력의 댓가는 2004년 에버턴 이적으로 이어지면서 당시 팀의 사령탑이었던 데이비드 모예스 전 감독과 함께 8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적료는 150만 파운드(약 25억 1000만 원)에 불과했으나 에버턴에서 8년 동안 팀을 주름 잡으며 '재정이 빈약했던' 팀 성적을 중위권으로 유지시키는데 적잖은 공헌을 했습니다. 모예스 전 감독은 에버턴 시절 숨겨진 원석을 잘 발견하기로 이름난 지도자였는데 성공작 중에 한 명이 케이힐이었죠.

 

팀 케이힐, 앙리와 함께 뉴욕 레드불스에서 뛰다

 

케이힐은 2012년 여름에 뉴욕 레드불스로 떠났습니다. 아스널과 FC 바르셀로나를 빛냈던 세계적인 축구 스타 앙리와 같은 팀 선수가 됐습니다. 2012년 8월 3일 휴스턴 디나모전부터 2014년 현재까지 뉴욕 레드불스의 미드필더 겸 공격수로 활약중이죠. 2012시즌 14경기 출전 1골 2도움, 2013시즌 29경기 12골 5도움, 2014시즌 19경기 1골 2도움 기록하며 꾸준히 경기에 나섰습니다. 특히 2014시즌 현재까지는 중앙 미드필더로 많이 기용되면서 공격과 수비에 걸쳐 좋은 모습을 보이며 팀을 위해 헌신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19경기중에 16경기에서 선발로 기용 될 정도로 팀 내 입지도 탄탄합니다.

 

호주의 축구 스타 케이힐 축구 인생을 되돌아보면 흔히 말하는 알짜배기 선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에서 일컬어지는 신계, 인간계 최강급으로 비유되는 선수들과 이미지가 다르면서 유럽의 빅 클럽에 소속된 경험이 없음에도 호주 대표팀과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뉴욕 레드불스에서도 30대 중반의 나이에 많은 경기를 소화중이죠. 미드필더와 공격수를 넘나들며 특정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좋은 경기력을 발휘하려는 그의 노력 또한 대단했습니다. 얼마전 A매치 사우디 아라비아전에서는 선제골을 넣으며 호주의 3-2 승리를 이끌었죠. 어느 팀에서 뛰든 준수한 활약을 펼칩니다. 2년 전 그를 영입했던 뉴욕 레드불스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이 포스팅은 나이스블루 레드불 닷컴 기고글입니다 : http://is.gd/rGxx2K
*사진의 모든 출처는 레드불 콘텐츠 풀입니다.(Red Bull Content Pool)


*이 글은 레드불 닷컴에 글을 기고하면서 레드불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받았습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흔히 미국에서 축구는 미식 축구와 야구 같은 다른 프로 스포츠에 비해 인기 없는 종목으로 꼽힌다. 그 이유에 대하여 여러가지 원인들이 있지만 최고를 자부하는 다른 종목에 비하면 국제 무대에서 괄목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메이저 리그 사커(MLS)에 많은 관중들이 몰리게 됐다. 데이비드 베컴(현 파리 생제르맹) 같은 유럽 축구를 빛냈던 스타들이 미국에 진출하면서 MLS 열기가 뜨거워졌다. 그 여파로 1996년 출범 당시 10개였던 클럽이 지금은 19개로 늘었으며 축구 전용 구장이 증가했다.

 

 

최근 베컴이 MLS를 떠났다고 미국에서 축구 인기가 떨어질 것이라 단정짓는 것은 무리다. MLS에는 베컴 못지 않게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슈퍼 스타가 있다. 뉴욕 레드불스에서 활약중인 티에리 앙리가 그 주인공이다. 프랑스 국적의 앙리는 2010년 7월 뉴욕 레드불스에 입단하여 현재까지 MLS에서 뛰고 있다. 올해 36세로서 전성기가 지났을 나이에 접어들었으나 MLS에서는 꾸준히 위협적인 공격력을 과시하며 팀의 간판 선수로 활약했다. 지난 4시즌 동안 68경기에서 33골 19도움 기록했으며 2013시즌 6경기에서는 2골을 기록했다.

 

 

앙리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아스널의 킹

 

한국에서 가장 사랑 받는 유럽 축구 리그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다. 박지성이 200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기 전부터 박진감 넘치는 경기력으로 축구팬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 시절은 아스널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치열한 우승을 다투었던 시점이었다. 특히 아스널은 2003/04시즌 프리미어리그 무패 우승이라는 최고의 성과를 달성했다. 롱볼 중심이었던 전형적인 잉글랜드 클럽과 달리 짧은 패스로 공격의 템포를 높이며 축구팬들에게 재미난 경기를 선보였다. 아스널 특유의 패스 축구가 완성되었던 이유는 앙리 같은 골을 잘 넣는 선수를 보유했기 때문이다.

 

당시 앙리는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였다. PFA(잉글랜드 프로축구 선수협회) 올해의 선수상 2회(2002/03, 2003/04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4회(2001/02, 2003/04, 2004/05, 2005/06시즌)를 달성했으며 2001/02시즌과 2003/04시즌에는 아스널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득점왕 4회는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최다 득점왕 횟수다. 구단 통산 최다 골(228골) 기록을 보유 중이며, 지난해 여름 로빈 판 페르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에 의해 오랫동안 깨지지 않을 대기록으로 남게 됐다. 특히 아스널에 대한 남다른 충성심을 발휘하며 '아스널의 킹'으로 불리게 됐다.

 

앙리는 만능형 공격수였다. 빠른 발을 앞세운 돌파력과 의욕적인 움직임, 날카로운 킥력으로 끊임없이 상대팀 수비진을 공략했다. 2002/03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도움왕(23도움)에 올랐을 정도로 연계 플레이에 능했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않았을 때에도 스스로 팀 득점의 발판을 마련하며 아스널 공격의 핵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2011/12시즌이었던 지난해 1~2월에는 아스널의 단기 임대 선수로 뛰었다. 특히 마지막 프리미어리그 경기였던 2월 12일 선덜랜드전에서 경기 종료를 앞두고 결승골을 넣으며 아스널을 4위로 도약시켰다. 시즌 내내 4위권 바깥을 맴돌았던 아스널에게 4위권 진입이라는 선물을 안긴 것. 당시 아스널은 3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빅4를 지켰다.

 

 

무한도전 그리고 FC 바르셀로나

 

축구에 익숙하지 않아도 예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앙리를 알고 있을 것이다. 앙리는 2007년 6월 초 국내에 방한하여 유명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무한도전 멤버들과 축구 대결, 물공 헤딩 같은 다양한 코너에 참여했으며 특유의 유머와 소탈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호감을 얻었다.

 

그 해 6월 말에는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정들었던 아스널을 떠나 사뮈엘 에토(현 안지), 리오넬 메시와 함께 FC 바르셀로나 공격의 삼각 편대를 형성하며 스페인 무대에 도전했다. 2008/09시즌에는 팀의 트레블(3관왕)을 기여했다. 프리메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에 이어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성공했던 것. 아스널에서 이루지 못했던 유럽 제패의 꿈을 FC 바르셀로나에서 실현했다. 2009년 12월에는 팀의 FIFA(국제축구연맹) 클럽 월드컵 우승 멤버로 활약했다. 프랑스 대표팀 소속으로 참가했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 유로 2000 우승까지 포함하면 유럽과 세계 무대에서 많은 것을 이루었다.

 

 

앙리와 레드불의 만남

 

앙리는 하늘을 찌를 듯 했던 전성시대를 보냈지만 2009/10시즌에 위기가 찾아왔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현 파리 생제르맹)의 등장, 페드로 로드리게스의 급성장에 의해 주전에서 밀렸다. 프리메라리가 21경기 4골, 챔피언스리그 6경기 무득점 부진이 입지 하락의 결정타가 됐다. 2009년 11월 19일 남아공 월드컵 플레이오프 2차전 아일랜드전에서는 핸드볼 파울 논란으로 현지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서는 2경기 교체 출전으로 무득점에 그쳤고 프랑스는 본선 탈락이라는 굴욕적인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슬럼프에 빠졌던 앙리는 그 해 7월 미국 MLS 뉴욕 레드불스에 입단했다. 뉴욕 레드불스는 레드불이 2006년에 인수했던 팀. 유럽 무대에서 끊임없는 경쟁과 압박감에 시달렸을 앙리에게 뉴욕 레드불스의 이적은 자신의 축구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2010시즌 뉴욕 레드불스의 MLS 동부 컨퍼런스 1위를 공헌했으며, 2011시즌과 2012시즌에는 두 자릿 수 득점(각각 14골 4도움, 15골 12도움)을 올리며 MLS 무대를 빛냈다. 비록 유럽 무대를 떠났지만(2012년 1~2월 아스널 단기 임대를 떠났으나 원소속은 뉴욕 레드불스였다.), 뉴욕이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최대 도시라는 메리트가 앙리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앙리의 뉴욕 레드불스 입단은 레드불의 국제적인 인지도가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 남아공 월드컵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이적이 발표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밖에 없었다. MLS의 LA 갤럭시가 2007년 베컴 영입으로 인지도 상승과 마케팅 효과를 봤던 것을 뉴욕 레드불스도 충분히 인지했을 것이다. LA 갤럭시하면 베컴이었듯 뉴욕 레드불스하면 앙리였다. 또한 뉴욕 레드불스는 앙리를 영입했던 2010년 이후부터 1만 8000명이 넘는 평균 관중을 유지했다. 2002년 이후 8년 만에 1만 8000명 대를 회복한 것. 뉴욕의 많은 축구팬들이 레드불 아레나에서 앙리가 뛰는 모습을 지켜봤을 것이다.

 

미국의 축구 인기를 끌어올리는데 한 몫을 했던 앙리에게 앞으로의 과제가 있다. 뉴욕 레드불스의 MLS컵 우승을 이끄는 것이다. 아스널과 FC 바르셀로나에서는 많은 우승을 경험했으나 뉴욕 레드불스에서는 아직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컨퍼런스 제외) MLS컵은 MLS 최고의 팀을 뽑는 최종전으로써 플레이오프 방식으로 운영된다. 2011시즌과 2012시즌에는 LA 갤럭시가 우승했으며 베컴은 팀의 2연패를 공헌하고 MLS에서 화려한 작별을 했다. 과연 앙리가 올 시즌 뉴욕 레드불스의 MLS컵 첫 우승을 이끌지 앞으로의 활약상이 기대된다.

 

본 포스팅은 레드불닷컴 기고글 입니다 : http://j.mp/17BsMKm

 


Posted by 나이스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