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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라이프

앙리, 뉴욕 레드불스하면 떠오르는 스타

흔히 미국에서 축구는 미식 축구와 야구 같은 다른 프로 스포츠에 비해 인기 없는 종목으로 꼽힌다. 그 이유에 대하여 여러가지 원인들이 있지만 최고를 자부하는 다른 종목에 비하면 국제 무대에서 괄목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메이저 리그 사커(MLS)에 많은 관중들이 몰리게 됐다. 데이비드 베컴(현 파리 생제르맹) 같은 유럽 축구를 빛냈던 스타들이 미국에 진출하면서 MLS 열기가 뜨거워졌다. 그 여파로 1996년 출범 당시 10개였던 클럽이 지금은 19개로 늘었으며 축구 전용 구장이 증가했다.

 

 

최근 베컴이 MLS를 떠났다고 미국에서 축구 인기가 떨어질 것이라 단정짓는 것은 무리다. MLS에는 베컴 못지 않게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슈퍼 스타가 있다. 뉴욕 레드불스에서 활약중인 티에리 앙리가 그 주인공이다. 프랑스 국적의 앙리는 2010년 7월 뉴욕 레드불스에 입단하여 현재까지 MLS에서 뛰고 있다. 올해 36세로서 전성기가 지났을 나이에 접어들었으나 MLS에서는 꾸준히 위협적인 공격력을 과시하며 팀의 간판 선수로 활약했다. 지난 4시즌 동안 68경기에서 33골 19도움 기록했으며 2013시즌 6경기에서는 2골을 기록했다.

 

 

앙리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아스널의 킹

 

한국에서 가장 사랑 받는 유럽 축구 리그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다. 박지성이 200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기 전부터 박진감 넘치는 경기력으로 축구팬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 시절은 아스널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치열한 우승을 다투었던 시점이었다. 특히 아스널은 2003/04시즌 프리미어리그 무패 우승이라는 최고의 성과를 달성했다. 롱볼 중심이었던 전형적인 잉글랜드 클럽과 달리 짧은 패스로 공격의 템포를 높이며 축구팬들에게 재미난 경기를 선보였다. 아스널 특유의 패스 축구가 완성되었던 이유는 앙리 같은 골을 잘 넣는 선수를 보유했기 때문이다.

 

당시 앙리는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였다. PFA(잉글랜드 프로축구 선수협회) 올해의 선수상 2회(2002/03, 2003/04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4회(2001/02, 2003/04, 2004/05, 2005/06시즌)를 달성했으며 2001/02시즌과 2003/04시즌에는 아스널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득점왕 4회는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최다 득점왕 횟수다. 구단 통산 최다 골(228골) 기록을 보유 중이며, 지난해 여름 로빈 판 페르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에 의해 오랫동안 깨지지 않을 대기록으로 남게 됐다. 특히 아스널에 대한 남다른 충성심을 발휘하며 '아스널의 킹'으로 불리게 됐다.

 

앙리는 만능형 공격수였다. 빠른 발을 앞세운 돌파력과 의욕적인 움직임, 날카로운 킥력으로 끊임없이 상대팀 수비진을 공략했다. 2002/03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도움왕(23도움)에 올랐을 정도로 연계 플레이에 능했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않았을 때에도 스스로 팀 득점의 발판을 마련하며 아스널 공격의 핵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2011/12시즌이었던 지난해 1~2월에는 아스널의 단기 임대 선수로 뛰었다. 특히 마지막 프리미어리그 경기였던 2월 12일 선덜랜드전에서 경기 종료를 앞두고 결승골을 넣으며 아스널을 4위로 도약시켰다. 시즌 내내 4위권 바깥을 맴돌았던 아스널에게 4위권 진입이라는 선물을 안긴 것. 당시 아스널은 3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빅4를 지켰다.

 

 

무한도전 그리고 FC 바르셀로나

 

축구에 익숙하지 않아도 예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앙리를 알고 있을 것이다. 앙리는 2007년 6월 초 국내에 방한하여 유명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무한도전 멤버들과 축구 대결, 물공 헤딩 같은 다양한 코너에 참여했으며 특유의 유머와 소탈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호감을 얻었다.

 

그 해 6월 말에는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정들었던 아스널을 떠나 사뮈엘 에토(현 안지), 리오넬 메시와 함께 FC 바르셀로나 공격의 삼각 편대를 형성하며 스페인 무대에 도전했다. 2008/09시즌에는 팀의 트레블(3관왕)을 기여했다. 프리메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에 이어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성공했던 것. 아스널에서 이루지 못했던 유럽 제패의 꿈을 FC 바르셀로나에서 실현했다. 2009년 12월에는 팀의 FIFA(국제축구연맹) 클럽 월드컵 우승 멤버로 활약했다. 프랑스 대표팀 소속으로 참가했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 유로 2000 우승까지 포함하면 유럽과 세계 무대에서 많은 것을 이루었다.

 

 

앙리와 레드불의 만남

 

앙리는 하늘을 찌를 듯 했던 전성시대를 보냈지만 2009/10시즌에 위기가 찾아왔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현 파리 생제르맹)의 등장, 페드로 로드리게스의 급성장에 의해 주전에서 밀렸다. 프리메라리가 21경기 4골, 챔피언스리그 6경기 무득점 부진이 입지 하락의 결정타가 됐다. 2009년 11월 19일 남아공 월드컵 플레이오프 2차전 아일랜드전에서는 핸드볼 파울 논란으로 현지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서는 2경기 교체 출전으로 무득점에 그쳤고 프랑스는 본선 탈락이라는 굴욕적인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슬럼프에 빠졌던 앙리는 그 해 7월 미국 MLS 뉴욕 레드불스에 입단했다. 뉴욕 레드불스는 레드불이 2006년에 인수했던 팀. 유럽 무대에서 끊임없는 경쟁과 압박감에 시달렸을 앙리에게 뉴욕 레드불스의 이적은 자신의 축구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2010시즌 뉴욕 레드불스의 MLS 동부 컨퍼런스 1위를 공헌했으며, 2011시즌과 2012시즌에는 두 자릿 수 득점(각각 14골 4도움, 15골 12도움)을 올리며 MLS 무대를 빛냈다. 비록 유럽 무대를 떠났지만(2012년 1~2월 아스널 단기 임대를 떠났으나 원소속은 뉴욕 레드불스였다.), 뉴욕이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최대 도시라는 메리트가 앙리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앙리의 뉴욕 레드불스 입단은 레드불의 국제적인 인지도가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 남아공 월드컵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이적이 발표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밖에 없었다. MLS의 LA 갤럭시가 2007년 베컴 영입으로 인지도 상승과 마케팅 효과를 봤던 것을 뉴욕 레드불스도 충분히 인지했을 것이다. LA 갤럭시하면 베컴이었듯 뉴욕 레드불스하면 앙리였다. 또한 뉴욕 레드불스는 앙리를 영입했던 2010년 이후부터 1만 8000명이 넘는 평균 관중을 유지했다. 2002년 이후 8년 만에 1만 8000명 대를 회복한 것. 뉴욕의 많은 축구팬들이 레드불 아레나에서 앙리가 뛰는 모습을 지켜봤을 것이다.

 

미국의 축구 인기를 끌어올리는데 한 몫을 했던 앙리에게 앞으로의 과제가 있다. 뉴욕 레드불스의 MLS컵 우승을 이끄는 것이다. 아스널과 FC 바르셀로나에서는 많은 우승을 경험했으나 뉴욕 레드불스에서는 아직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컨퍼런스 제외) MLS컵은 MLS 최고의 팀을 뽑는 최종전으로써 플레이오프 방식으로 운영된다. 2011시즌과 2012시즌에는 LA 갤럭시가 우승했으며 베컴은 팀의 2연패를 공헌하고 MLS에서 화려한 작별을 했다. 과연 앙리가 올 시즌 뉴욕 레드불스의 MLS컵 첫 우승을 이끌지 앞으로의 활약상이 기대된다.

 

본 포스팅은 레드불닷컴 기고글 입니다 : http://j.mp/17BsM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