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왕' 이동국(30, 전북)은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한국 축구를 빛낸 스트라이커입니다. 자신의 경기 장면 하나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때로는 극적인 골을 터뜨리며 축구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음을 아로새긴 선수였습니다. 한때는 소녀팬들을 몰고 다니며 K리그 흥행을 주도했을 정도로 열렬한 사랑을 독차지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동국의 축구 인생은 한마디로 다사다난했습니다. 부상과 부진, 불운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안좋은 일을 겪어 어려움에 빠진적이 많았고, 자신의 잘못으로 국민들의 질타를 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강력한 한 방으로 국민적인 환호를 받았지만 때로는 실망스러운 활약으로 모든 이들의 비난을 받거나 침체의 늪에 빠져 축구팬들을 아쉽게 했습니다. 그 주 무대는 다름 아닌 국가 대표팀이었습니다.

그런 이동국이 2007년 7월 아시안컵 이후 2년 1개월만에 대표팀에 복귀했습니다. 1998년 5월 A매치 자메이카전에서 데뷔전을 치른 이후 지금까지 11년 동안 7명의 감독과 접했지만 축구팬들은 여전히 자신에 대하여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리는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본선 해피엔딩 또는 불운한 대표팀 커리어의 기로에 선 이동국의 앞날이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영광과 아픔이 엇갈리는 이동국의 대표팀 인생 11년 추억을 정리하며 지난날의 시간을 되돌아 봤습니다.

1. 차범근호 : 프랑스 월드컵, 한국 축구 혜성의 등장(A매치 2경기 출전)

이동국은 1998년 2월 포철공고를 졸업하고 그해 포항에 입단하여 프로에 몸을 담았습니다. 시즌 초반부터 동물같은 골 감각으로 K리그의 뉴페이스로 거듭났고 차범근 감독으로부터 잠재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그해 5월 프랑스 월드컵 본선 최종 엔트리 23인에 뽑혔습니다. 5월 16일 자메이카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르고 월드컵 본선에 임했지만, 한국은 멕시코전 1-3 및 네덜란드전 0-5 패배로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하지만 이동국은 네덜란드전에서 후반 32분 교체 투입해 경기 종료 5분여를 남기고 빨랫줄같은 중거리슛을 날리며 한국 축구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이 경기에서 한국 축구 혜성의 등장을 알린 그의 앞날은 오랫동안 순탄할 것 같았습니다.

2. 허정무호 : 아시안컵 득점왕, 혹사속에 거둔 영광 (A매
치 15경기 출전 8골)

그러나 이동국의 불운은 프랑스 월드컵 이후부터 시작 됐습니다. 그해 7월부터 연말까지 K리그와 청소년, 아시안게임 대표팀 일정을 소화하여 혹사에 시달렸고 12월 방콕 아시안게임(당시 A매치 인정)에서는 4경기 무득점 및 경기력 부진으로 '게으르다', '걸어다닌다'는 여론의 비난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에도 혹사는 계속 되었고 2000년 2월 골드컵에서는 무릎부상이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경기에 출전하더니 결국 부상이 심화되어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그 여파는 시드니 올림픽 본선 부진 및 독일 분데스리가 실패(2001년 1월 진출, 베르더 브레멘)로 이어졌습니다. 분데스리가 진출도 무릎부상 후유증을 앓고 있던 상황에서 일이 추진된 것이죠.

하지만 2000년 10월 아시안컵에서는 올림픽 본선 부진 만회를 위한 심기일전을 했습니다. 한국이 아시안컵 본선 2차전 쿠웨이트전까지 1무1패로 탈락 위기에 몰려 인도네시아와의 3차전 올인에 직면했죠. 이동국은 이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팀의 3-0 승리 및 8강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8강 이란전-4강 사우디 아라비아전-3/4위전 중국전에서 연이어 골을 터뜨리며 대회 6골로 득점왕에 올랐습니다. 특히 이란전에서는 연장 전반 10분에 팀의 2-1 승리를 이끄는 결승골을 넣으며 4년 전 대표팀이 아시안컵에서 이란에 2-6으로 대패했던 수모를 통쾌하게 복수했습니다. 혹사 후유증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음에도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 사력을 다했던 겁니다.

3. 히딩크호 : 2002년, 최악의 해를 보내다 (A매치 11경기 출전 1골)

이동국은 히딩크호에서 A매치 11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습니다. 2001년 9월 16일 나이지리아전에서 후반 46분 결승골을 넣으며 한국의 2-1 승리를 이끈 것 이외에는 뚜렷한 활약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1998~2000년 혹사 및 2001년 분데스리가 실패, 그리고 무릎 부상 후유증이 있었기 때문에 경기력을 키우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전에서 부진했기 때문에 히딩크 감독의 눈에 좋게 보일리 없었습니다. 결국 2002년 한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해 가을 부산 아시안게임(A매치 기록 인정되지 않음) 5경기에서 4골을 넣었으나 4강 이란전 승부차기 패배로 병역면제 혜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여파는 어느 K리그 서포터즈가 "개동국 당신의 군입대를 축하합니다"라는 비방성 걸게를 경기장에 내거는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동국은 이 걸게를 한참 처다보며 서있기만 했습니다. 시즌 막판에는 또 부진에 빠지면서 축구팬들과 전문가들의 호된 질타를 감수했습니다.

4. 쿠엘류호 : 연이은 대표팀 탈락
(A매치 1경기 출전)

이동국은 2003년 초 상무에 입대해 재도약을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대표팀에서의 부진은 계속 되었습니다. 2003년 4월 16일 일본전에서 4-2-3-1 포메이션의 원톱으로 선발 출전했으나 선수들이 새로운 포메이션에 적응하지 못해 유기적인 공격을 펼치기 어려웠습니다. 이동국의 최전방 고립은 당연한 결과였고, 결국 이렇다할 활약 없이 후반 20분 관중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벤치로 들어갔습니다. 그 이후 1년 넘게 대표팀에서 탈락했지만, 상무에서 꾸준히 기량을 연마하고 컨디션을 끌어올리며 재기 성공에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5. 본프레레호 :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다 (A매치 22경기 출전 11골)

이동국은 2004년 7월 본프레레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을 맡으면서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7월 10일 바레인전에서 선제골을 넣더니 아시안컵 4경기에서 4골을 넣으며 본프레레 감독의 확실한 눈도장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거의 매 경기마다 골을 넣으며 골잡이의 진가를 발휘했지만 축구팬들의 반응은 여전히 차가웠습니다. 문전 앞에서의 저조한 움직임과 소극적인 공격 기회 창출로 팬과 언론의 거센 질타를 감수하고 말았죠.

그러나 2004년 12월 독일전에서 그림같은 오른발 발리슛으로 팀의 3-1 승리를 이끌며 국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자신의 골 장면을 지켜봤던 한 독일 축구 기자는 "이동국의 골은 네덜란드 특급 골잡이 마르코 판 바스텐이 1988년 유럽 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터뜨린 골과 비견된다"고 극찬했을 정도였죠. 그는 2005년 2월 9일 쿠웨이트와의 독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경기에서 멋진 한 방을 꽂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6월 8일 쿠웨이트와의 리턴 매치에서는 한국의 4-0 대승 및 6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견인하는 골을 넣었습니다. 본프레레호 22경기에서 11골을 넣으며 한국 축구 부동의 공격수로 자리잡았습니다.

6. 아드보카트호 : 십자인대 부상으로 월드컵 본선 출전 좌절
(A매치 13경기 출전 2골)

이동국의 진가는 아드보카트호에서도 게속 되었습니다. A매치 13경기에서 2골에 그쳤지만 골보다는 주위 선수들을 돕는 이타적인 활약에 포커스를 맞춰 아드보카트 감독의 신뢰를 얻었던 것이죠. 아드보카트 감독이 주문하는 3-4-3과 4-3-3에서의 원톱은 측면에서 전방으로 돌파하는 선수들에게 공을 배급하고 위치를 바꾸면서 팀 공격의 다양성을 살릴 수 있는 선수였는데, 자신이 대표팀 공격수 중에서 가장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독일 월드컵 본선은 자신의 이타적인 활약으로 박지성(박주영)-이천수의 득점력을 살리는 전술에 포커스가 맞추어졌습니다.

그러나 2006년 4월, 전방 십자인대 파열이 자신의 월드컵 본선 출전에 발목을 잡았습니다. 수술을 하면 완치될 수 있지만 회복 기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월드컵의 꿈을 접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래서 이동국은 부상 악화를 무릅쓰고 재활을 하겠다며 월드컵 본선 출전 의지를 불태웠지만 본선 날짜가 얼마 안남았기 때문에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그는 수술을 택하여 월드컵 본선 출전의 꿈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으로 미루었습니다. 그동안 누구보다 더 열심히 준비했던 월드컵 본선 무대는 그라운드가 아닌 관중석(토고전)에서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7. 베어벡호 : 부상 후유증 그리고
 음주파동과 방출 (A매치 7경기 출전)

이동국은 2006년 10월 29일 수원전에서 복귀전을 가진 뒤 이듬해 1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 입단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6월 29일 A매치 이라크전에 출전하여 1년 3개월만에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동국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2007년 2월과 6월 무릎 타박상을 입더니, 6월 25일 대표팀 훈련 이후에 가진 인터뷰에서 "부상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며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아시안컵에서는 조재진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무득점에 그쳤고, 몸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마저 충분히 주어지지 못해 2007/08시즌 미들즈브러에서 몸이 무거운 활약을 펼쳤습니다. 여기에 아시안컵 음주파동에 휘말려 1년간 대표팀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고 지난해 미들즈브러(5월)-성남(12월)에서 방출되는 시련을 당했습니다. 유명 축구 선수가 1년에 두 팀에서 방출되는 경우는 무척 드문일이어서 선수 본인의 마음이 착잡했을 것입니다.

8. 허정무호 : 한국 축구의 진정한 영웅이 되고 싶다!

그동안 온갖 시련으로 고생했던 이동국이 지난 3일 대표팀에 발탁 됐습니다. 소속팀에서의 활약에 따라 대표팀 선수를 뽑겠다는 허정무 감독의 원칙에 부합되면서 태극 마크를 달을 수 있는 명분을 얻었던 것이죠. 이동국은 올 시즌 K리그 16경기 14골로 데얀(서울, 15경기 10골) 김영후(강원, 17경기 10골)를 제치고 득점 1위를 기록중입니다. 2006년 4월 십자인대 부상 이후 연이은 부상 악몽과 끝없는 부진으로 마음 고생이 많았던 그가 이제는 K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이자 대표팀 부동의 골게터로 활약하게 됐습니다.

이동국은 이번 남아공 월드컵 본선이 사실상 마지막 도전입니다. 남아공행 비행기에 탑승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선수 본인은 월드컵 본선 출전 12년의 한을 끝맺기 위해 절치부심할 것입니다. 적어도 현존하는 한국 공격수 중에서는 골 냄새를 캐치하는 감각과 공간을 파고드는 능력, 문전에서 골을 노리는 위치선정 만큼은 최고입니다. K리그에서 부활에 성공한 그가 한국의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을 선두에서 이끌며 한국 축구의 불운아에서 한국 축구의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날지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이동국은 끝내 허정무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했지만, 최태욱은 4년여만에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2005년 8월 4일 A매치 북한전 이후 약 3년 9개월만에 대표팀에 합류한 것입니다. 축구팬들 기억속에서 멀어졌던 그가 다시 붉은색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이죠. 한때 대표팀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냈을때는 젊고 패기 넘치는 영건 이었지만, 이제는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30세가 됩니다.
 
이번 대표팀 명단에는 '올드보이vs영건'의 합류 여부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최태욱을 비롯해서 이동국, 최성국, 이천수, 조재진 같은 올드보이들의 대표팀 발탁이 주목되었는데, 결국에는 최태욱 한 명만 허정무 감독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이는 최태욱이 그동안 자신을 끈질기게 괴롭혔던 슬럼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최태욱 본인도 예전의 경기력을 되찾기 위해 나름 많은 노력을 기울였겠지만, 최강희 전북 감독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그의 축구 인생은 '반짝 선수'의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최강희 감독은 프로야구로 치면 김인식 한화 감독과 유사한 '재활공장장' 입니다. 김인식 감독은 그동안 슬럼프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중견급 선수들의 부활을 이끌었습니다. 그동안 잦은 부상으로 고전하던 문동환을 비롯해서 최영필, 추승우가 김인식 감독의 조련속에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올해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은 강동우가 김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고 있죠.
 
반면 최강희 감독은 이동국을 비롯해서 김형범, 임유환, 정경호(현 강원) 등과 같은 부상과 부진으로 신음했던 선수들의 부활을 도왔습니다. 성남에서 내리막길을 걸었던 김상식, 수원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 받지 못했던 루이스를 전북의 정규리그 1위 핵심 주역으로 키웠던 것도 최강희 감독의 몫이 큽니다. 이들에게 많은 믿음을 보이며 변함없는 출전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 큰 효과를 봤던 것이죠. 그리고 최강희 감독의 재활 성과 중에서 가장 값어치가 빛나는 것은 다름아닌 최태욱의 슬럼프 탈출입니다.
 
최태욱은 2005년 일본 J리그 시미즈로 이적한 이후부터 3년 동안 지독한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그동안 일본 진출을 원했던 터여서 '재팬 드림'을 이루는가 싶었지만, 시미즈에서 감독 및 팀 닥터와의 불화로 마찰을 빚은끝에 1년만에 K리그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길을 잘못 선택했습니다. 당초에는 울산 이적 예정이었으나 포항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바람에 파리아스 감독의 품에 안았습니다. 그런데 3-4-1-2를 쓰는 포항에는 자신의 경기력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역할(윙 포워드)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안양(현 FC서울)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몇차례 뛰었던 경력이 있지만 그 자리에는 '2007시즌 MVP' 따바레즈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윙백으로 전환했지만 이렇다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서 끝내 벤치 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만약 3-4-3의 울산이었다면 윙 포워드로서 많은 경기를 뛰었을 겁니다. 자신이 있어야 할 팀을 제대로 찾지 못한 것이 슬럼프를 더욱 키웠던 겁니다.
 
결국 최태욱은 2007시즌 종료 후 전북으로 2-2 트레이드 됐습니다. 팀의 핵심선수로 두드러지게 자리잡지 못했던 선수들끼리의 트레이드(최태욱, 김성근-권집, 김정겸)라는 점을 상기하면,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멤버였던 그의 위상이 얼마만큼 떨어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전북으로 오면서 연봉까지 줄었습니다. 2004년 안양에서 인천으로 옮기던 당시, 자유계약(FA) 선수 역대 최고의 몸값이었던 이적료 11억원을 기록했던 일은 결국 '고인 물'이 되고 말았죠. 그는 전북 입단 초기에도 팀의 일원으로서 겉도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를 최강희 감독이 놓칠리가 없었습니다. 최 감독은 지난해 2월 미디어데이에서 많은 기자들에게 이러한 쓴소리를 내뱉었습니다. "최태욱은 공격수가 아닌 미드필더다. 공격만 할 줄 아는 미드필더는 반쪽짜리 선수다"라고 말입니다. 어느 날 기자들 앞에서는 "최태욱은 정신력에 문제가 있다. 후배들이 배울게 없다"고 거침없이 비난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하프타임때는 모든 선수들이 보든 앞에서 최태욱을 호되게 질책했고 한달동안 2군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3년동안 슬럼프로 고전하던 최태욱을 일깨우기 위한 충격 요법에 들어간 것입니다.
 
최강희 감독은 최태욱을 '최목사'라고 부릅니다. 최태욱이 안양시절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유명했기 때문에 부른것으로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라운드에서 얌전하게 경기에 임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안양 시절 조광래 감독(현 경남 감독)을 아쉽게 했던 내성적인 성격이 최강희 감독에게도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이죠. 최 감독은 최태욱의 부진 원인을 성격에 따른 소극적인 플레이로 진단하여 그라운드 안팎에서 제자에 대한 충격을 가했습니다. 그라운드에서 만큼은 공격에 치중하기 보다는 수비에 가담하여 부지런히 경기에 임하고, 거침없이 몸싸움을 즐기며 투쟁적으로 경기에 임하기를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따끔한 질책으로 강하게 키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최태욱은 최강희 감독의 마음을 알았는지, 지난해 추석 연휴에 최 감독에게 세 장의 편지를 작성하여 자신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감독 스타일에 맞는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 그 요지죠. 그러자 최강희 감독도 세 장의 편지로 답장을 보내며 격려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의 채찍은 여전했습니다. 지난해 10월 5일 제주전에서 최태욱이 선제골을 넣었지만 "최태욱 본인은 최선을 다했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40% 정도였다"며 좀 더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제자가 편지 하나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바로 붙잡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최강희 감독의 부활신공은 지난해 6강 플레이오프 성남전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최태욱은 팀이 0-1로 뒤지던 후반 30분 동점골을 넣으며 패배 위기에 놓였던 팀의 2-1 역전승의 초석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더니 올 시즌 K리그 11경기에서는 5골 4도움의 기록을 올리며 전북의 정규리그 1위 진입을 이끌었습니다. 이전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공수 양면에서 활력소 역할을 도맡으면서 팀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이죠. 이제는 3년 9개월만에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면서 그동안 자신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던 슬럼프에서 완전히 탈출했습니다. 최강희 감독의 집요했던 자극이 없었더라면 이 같은 결과는 없었을 것입니다.
 
최태욱은 10년전인 1999년 이천수(전남) 박용호(서울)와 더불어 '부평고 3총사'로 불리며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기대주로 불렸습니다. 당시 여론에서는 이천수보다는 최태욱의 실력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초중고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였던 반면에 이천수는 그저그런 선수에 불과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천수가 최태욱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상대방을 반드시 꺾겠다는 근성이 투철했기 때문입니다. 고된 연습을 통해 다져지면서 자신의 가치를 빛냈던 것이죠. 반면 최태욱은 몸싸움을 피하는데 초점을 맞추면서 소극적인 자세로 경기에 임했던 것이 자신의 축구 인생에 마이너스가 되고 말았습니다.
 
비록 늦은감이 있지만, 최태욱은 그라운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기 자신만의 근성을 지녔습니다. 예전의 경기력으로는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선수 본인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최태욱의 마음을 호되게 깨웠던 최강희 감독의 지난날 노력은 결국 '최태욱 대표팀 발탁'이라는 값진 결과물로 이어졌습니다. 그것도 최태욱의 능력을 믿고 있었기에 얼마든지 채찍을 가할 수 있었던 것이죠. 최태욱의 부활이 반가운것은 사실이지만, 그를 전북의 정규리그 1위의 중추로 키웠던 최강희 감독의 지도력이 대단할 따름입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월드컵 본선 진출을 향한 험난한 여정. 요르단-투르크 메니스탄과의 원정 경기에서 값진 승리를 거둔 한국 국가 대표팀 앞에는 아시아지역 3차 예선의 마지막 관문인 북한전이 기다려진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이 오는 22일 저녁 8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릴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마지막인 북한전을 치른다. 이미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지은 대표팀은 안방에서 3차 예선의 유종의 미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대표팀의 수장 허정무 감독은 18일 국내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남과 북이 최종예선에 올라갔지만 자존심을 건 대결이기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며 북한전서 최선을 다하는 경기력을 펼칠 것이라고 공언했다. 지난 2005년 부터 이어진 A매치 북한전 3연속 무승부의 기록을 깰 수 있을지 여부도 관심거리 중 하나.

무엇보다 공격수들의 골 침묵이 안타깝다. 허정무호는 최근 A매치 3경기서 6골 넣었으나 공격수의 발 끝에서 터진건 2골이며 모두 박주영(서울)의 페널티킥 골이었으며 그것도 동료 수비수나 미드필더가 얻어낸 것이었다. 나머지 4골 중에 3골은 김두현(웨스트 브롬위치) 1골은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넣었지만 이들은 공격수가 아닌 미드필더다.

문제는 대표팀 선수들이 넣은 필드 골은 단 1골(김두현)에 불과하며 공격수가 넣은 골은 없었다. ´필드 골 사냥´이 주 임무인 공격수들은 3경기 동안 킬러로서 제 몫을 다하지 못했다.

이번 북한전에서는 최정예 멤버로 나서지 않는다. 허정무 감독은 "컨디션이 좋지 않은 선수는 사실상 북한전에 나서기 힘들 것이다. 그동안 뛰지 못했던 선수들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며 공격수 중에 컨디션이 좋지 않은 설기현(풀럼)의 풀타임 출전이 힘들 것이라고 예고했다.

아직 공격수들은 허정무 감독 앞에서 이렇다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3경기 동안 주전 원톱으로 나선 박주영은 2번의 페널티킥 골을 넣었음에도 불안한 볼 키핑으로 골문에서 고전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며 안정환(부산)은 골보다는 팀 플레이에 치중을 두었고 고기구(전남)는 지난달 31일 요르단전 5분 출전에 그쳤다.

허정무호는 19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월드컵 경기장서 박주영과 안정환, 고기구, 김두현, 이청용(서울) 김정우(성남) 등 전방에서 골 넣을 가능성이 큰 선수들을 중심으로 페널티 박스 안에서 골을 넣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허정무 감독은 이날 훈련을 마친 후 국내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통해"제공권이 있으면 밑에서 실력이 안되고, 패싱력이 좋으면 제공권이 없거나 힘에서 밀리고 결정력이 미흡하다. 이런 실력을 합친 선수가 나왔으면 좋겠다"며 그동안 부진했던 공격수들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 놓았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진출 여부와 상관없이 '남북대결'로 시선이 집중되는 북한전에서 한국 공격수들은 허 감독의 조련 후 시험대에 오른다. 공격수들의 계속된 골 침묵이 홈에서 열리는 북한전에서 달라진 면모를 보일지 팬들의 관심이 쏠려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