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는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최초로 4연패에 도전하는 팀입니다. 2006/07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3연속 프리미어리그 우승에 성공했고 올 시즌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4연패 신화에 도전해 프리미어리그 최강자의 위용을 발휘하겠다는 각오입니다.
올 시즌에는 '안첼로티 효과'를 앞세운 첼시의 강력한 견제를 받고 있습니다. 맨유는 지난 6일 웨스트햄 원정 이전까지 선두 첼시에게 승점 5점 차이로 밀렸고 지난달 첼시와의 맞대결에서는 0-1로 패했습니다. 얼핏보면 맨유의 전력이 약해진 것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맨유는 2007/08시즌 이 맘때에 아스날에게 선두 경쟁에서 밀렸고 지난 시즌 중반에는 리버풀-첼시에 이어 3위였습니다. 박싱데이 또는 시즌 후반 무렵이 되면 어느 순간부터 선두로 치고 올라가는 것이 맨유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맨유 전력이 약해졌다는 여론의 주장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카를로스 테베즈가 지난 여름에 팀을 떠나면서 공격의 역동성과 파괴력이 사라졌다는 것이 그 요지죠. 틀리지 않는 말입니다. 맨유는 두 선수가 떠나면서 속공에서 지공으로, 역습에서 점유율을 중시하는 공격 전술로 바꿨지만 공격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파괴력이 눈에 띄게 저하되는 문제점이 되고 말았습니다. 적어도 올 시즌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흐름이 유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맨유의 공격력은 시즌 초반보다 부쩍 좋아졌습니다. 미드필더들의 득점이 늘어난 것이 그 원인이죠. 맨유는 지난달 3일 CSKA 모스크바전부터 지난 8일 볼프스부르크전 까지 8경기에서 19골 넣었습니다. 그 중에 11골이 미드필더들의 몫이었습니다. 발렌시아-깁슨이 3골 넣었고 폴 스콜스가 2골, 플래처-캐릭-긱스가 각각 1골 기록했습니다. 공격수인 루니-오언이 각각 4골 넣었음을 상기하면 발렌시아-깁슨의 득점력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미드필더들의 득점력이 승부를 갈랐던 적도 있었습니다. 지난달 3일 모스크바전에서는 후반 막판까지 1-3으로 뒤진 상황에서 후반 39분 스콜스-45분 발렌시아의 골이 터져 3-3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습니다. 지난달 21일 에버튼전에서는 캐릭-플래처-발렌시아의 골로 3-0으로 완승했고 지난 1일 토트넘전에서는 깁슨의 2골로 2-0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시즌 초반 루니의 득점력에 의존하던 맨유의 공격 중심이 이제는 미드필더의 역량 강화쪽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맨유의 공격 패턴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시즌 초반에는 미드필더들이 공격수쪽으로 공을 띄우는 쪽에 초점을 맞췄지만 그것이 루니쪽에 시선이 쏠리면서 공격의 파괴력을 높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긱스-발렌시아가 맨유 측면의 '막강 콤비'로 떠오르면서 공격 연결고리를 하는 구심점이 생겼습니다. 긱스가 왼쪽에서 정확한 볼 배급으로 동료 선수들의 골을 돕고 있다면 발렌시아는 도우미 역할에 중점을 두면서 때로는 적극적인 문전 침투로 골을 넣으며 루니에 대한 의존도를 줄였습니다. 두 측면 미드필더들의 오름세는 중앙 미드필더들의 득점력이 늘어날 수 있는 기폭제가 됐습니다.
맨유는 불과 지난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호날두의 공격에 의존하는 팀이었습니다. 하지만 올 시즌은 다릅니다. 호날두 같은 슈퍼맨은 없지만 어느 누구의 공격력에 의존하지 않고 공격수와 미드필더가 철저히 분업화된 모습을 보이면서 미드필더들의 득점력을 키우는 전술로 탈바꿈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맨유 에이스는 루니가 아닌 긱스', '플래처가 맨유 공격의 젖줄'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지만 그런 주장들이 하나로 일치되지 못하는 것은 맨유의 공격 패턴이 다양해졌다는 증거입니다. 여기에 깁슨-오베르탕 같은 신예들의 공격 본능까지 빛을 발하면서 공격의 파괴력이 배가 됐습니다.
그래서 맨유의 공격력은 시즌 초반보다 지금이 더 좋습니다. 호날두 공백을 조직력으로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미드필더들이 점유율 축구를 통해 손발을 맞추면서 경기를 손쉽게 운영하고 상대 방어진을 허물 수 있는 노하우를 익히면서 득점을 끌어 올렸습니다. 호날두가 존재하던 시절에 무브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패스에 중점을 두면서 새로운 형태의 공격 패턴으로 변화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맨유는 호날두의 이적으로 퇴보한 것이 아닌, 변화에 적절히 대처한 것입니다.
정작 맨유의 문제점은 호날두 공백이 아닙니다. 바로 수비진입니다. 맨유의 철옹성 수비진을 구축했던 비디치-퍼디난드 센터백 조합이 잦은 부상으로 폼이 떨어지면서 몇몇 경기에서 컨디션 저하로 흔들리는 모습이 올해들어 부쩍 잦아졌습니다. 비디치-퍼디난드의 내림세는 맨유가 고비때마다 흔들리는 문제점으로 이어졌고 미드필더들의 수비 부담이 늘어나면서 공수 균형의 밸런스가 깨지는 원인이 됐습니다.
특히 지난 시즌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은 호날두의 공이 아닌 비디치-퍼디난드의 공이 더 컸습니다. 호날두는 상대 수비진의 집중적인 견제에 막혀 한때 9경기 연속 무득점에 시달렸고 공격의 파괴력도 2007/08시즌보다 눈에 띄게 저하 되었습니다. 박지성과 위치 변화가 잦았던 것도 이 때문이죠. 그럼에도 맨유는 호날두의 주춤속에서도 꾸준히 승점을 얻었습니다. 비디치-퍼디난드가 무결점 수비를 발휘하고 에브라-오셰이-캐릭-플래처-박지성 같은 수비력이 뛰어난 풀백과 미드필더들까지 받쳐주면서 실점을 줄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맨유가 무실점 승리를 거두었던 경우가 많았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것은 "많은 골을 넣어야 승리하면, 수비가 강해야 우승할 수 있다"는 축구의 진리가 변하지 않았음을 상징합니다. 우승팀들의 특징은 강력한 수비력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맨유는 지난 시즌 리버풀에게 최다 득점 1위(맨유 68골, 리버풀 77골)를 내줬지만 최소 실점 1위(38경기 24실점)를 기록하여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문제는 올 시즌 비디치-퍼디난드가 주춤한 것을 비롯 최근에는 에브라를 제외한 1군 수비수 전원이 줄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습니다. 맨유가 한때 아스날의 수비진을 책임졌던 숄 캠벨(전 노츠 카운티)를 영입해 수비 문제를 해결지으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맨유는 호날두 없이도 공격을 효율적으로 풀어가는 방법을 찾는데 성공했습니다. 호날두 공백을 이제는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문제는 차츰 나아지는 공격력에 비해 수비력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맨유의 문제는 호날두 공백이 아닌 수비력이며 이것은 프리미어리그 4연패를 결정짓는 키워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