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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 윙백 전환의 '빛과 그림자'

 

'산소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볼프스부르크전에서 평소와 다른 포지션으로 풀타임 출전했습니다. 3백의 오른쪽 윙백으로 선발 출전하더니 후반 28분에는 4-3-3의 오른쪽 풀백으로 전환했습니다.

그 이유는 맨유의 주전과 백업 수비수들이 줄 부상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트리스 에브라를 제외한 1군의 모든 수비수들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미드필더들의 보직 변경이 불가피 했습니다. 그래서 마이클 캐릭과 대런 플래처가 2경기 연속 수비수로 뛰고 있으며 볼프스부르크전에서는 박지성과 나니가 윙어에서 윙백으로 포지션을 변경 했습니다.

윙백으로 출전한 박지성의 경기력은 훌륭했습니다. 경기 초반 특유의 활발한 움직임으로 맨유의 공격을 주도하며 팀이 점유율에서 우세를 점하는데 큰 몫을 했습니다. 수비 과정에서는 독일 국가대표팀 왼쪽 윙어인 크리스티안 겐트너의 발을 묶은 것을 비롯 적극적인 수비 가담으로 공수 양면에 걸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비록 후반 11분 샤퍼에게 크로스를 허용해 동점골의 빌미를 제공했지만 그 이전에 샤퍼가 2대1 패스를 연결하고 크로스를 연결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크로스를 내줬습니다. 전문 윙백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면 전반적으로 좋은 경기를 펼쳤습니다.

박지성은 앞으로의 경기에서 윙백 또는 풀백으로 출전할 가능성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플래처-캐릭이 수비수로서 맹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부상으로 신음중인 맨유 수비 자원들이 무리하게 복귀할 필요성이 없어졌습니다. 루이스 나니가 볼프스부르크전에서 왼쪽 윙백으로 나섰으나 경기 내용이 시원치 않았음을 상기하면 맨유는 앞으로 박지성의 수비력에 의지할 가능성이 큽니다. 맨유의 주전 윙어인 긱스-발렌시아의 위치 여부에 따라 박지성의 보직이 정해지겠지만 현재까지의 정황상으로는 윙백 또는 풀백으로 계속 출전할 명분이 커졌습니다.

물론 박지성의 포지션 변경은 맨유에서 많은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좌우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 그리고 오른쪽 윙백과 풀백에 이르기까지 많은 포지션을 두루 소화하여 경기에 활용되는 쓰임새가 넓어졌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기에서는 선발 미드필더로 투입하고 다음 경기에서는 백업 풀백으로 모습을 내밀며 경기 출전 횟수를 늘릴 수 있습니다. 올 시즌 무릎 부상 등의 이유로 경기 출전이 많지 않았던 박지성으로서는 볼프스부르크전 윙백 전환이 반갑게 비춰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포지션 변경은 엄연히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팀에서의 활용도가 넓어지고 경기 출전이 늘어날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스페셜리스트로서의 가치가 떨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흔히 현대 축구에서는 멀티 플레이어가 각광받고 있다는 목소리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주어진 포지션에 맞는 움직임으로 감독의 전술 능력을 다양화 시킬 수 있는 이점과 포메이션의 유동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멀티 플레이어로 뛰는 선수의 기술적 장점이 떨어지는 단점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멀티 플레이어로서 스페셜리스트로서의 가치를 뽐낸 선수는 여럿 있습니다. 지네딘 지단은 주 포지션이 공격형 미드필더 였으나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는 왼쪽 윙어로 뛰었으며 데이비드 베컴은 주 포지션이 오른쪽 윙어지만 레알 마드리드와 최근 LA갤럭시에서는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했습니다. 대런 플래처는 주 포지션인 오른쪽 윙어를 비롯해서 중앙 미드필더, 오른쪽 풀백, 센터백에서 절정의 경기력을 발휘했고 마이클 에시엔은 수비수와 미드필더 전 영역에서 골고루 맹활약을 펼칩니다. 그리고 유상철은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서 최상의 기량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이들과 반대되는 유형도 있습니다. 안데르손은 본래 포지션이 공격형 미드필더와 왼쪽 윙어였으나 맨유에서는 중앙 미드필더를 맡은 이후부터 공격력의 날카로움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존 오셰이는 맨유에서 다양한 포지션을 거쳤으나 자신만의 특별한 장점을 발휘하지 못해 지난 시즌 주전으로 자리잡기 이전까지 스쿼드 플레이어에 만족했습니다. 최태욱과 김치우, 오장은, 이종민, 서동현은 포지션 전환 이후 성장이 둔해지거나 정체되어 폼이 떨어진 케이스에 속합니다. 멀티 플레이어로 변신한다고 해서 선수 개인의 기량이 늘어난다는 보장은 없으며 퇴보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윙백으로 전환한 박지성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박지성이 플래처처럼 여러 포지션에서 맹활약을 펼칠지 아니면 예전의 오셰이처럼 방황을 거듭할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부분입니다. 맨유의 수비수들이 부상에서 하나 둘 씩 부상에서 복귀하면 본래의 위치인 윙어로 돌아가겠지만 경우에 따라 윙백 또는 풀백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또한 윙어는 체력 부담이 많은 포지션입니다. 곧 30대를 앞둔데다 잦은 무릎부상으로 신음했던 박지성이 언제까지 윙어로 뛸지는 의문입니다. 비슷한 예로 라이언 긱스는 32세가 되던 2005년 부터 중앙 미드필더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폴 스콜스 부상을 메우기 위한 방편이었으나 그때를 기점으로 중앙에서의 출전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박지성의 볼프스부르크전 윙백 전환은 언젠가 풀백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제 박지성은 멀티 플레이어로서의 갈림길에 접어 들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박지성은 맨유의 윙어입니다. 맨유의 윙어로서 다섯 시즌 동안 경기에 뛰었으며 앞으로 윙어로서 보여줘야 할 것이 많습니다. 축구 선수의 전성기가 대략 27~28세, 늦게는 30대 초반까지이기 때문에 맨유의 윙어로서 아직 완벽한 매듭을 지은것도 아닙니다. 박지성은 맨유의 수비형 윙어에서 공격형 윙어로 발전하는 단계에서 윙백으로 전환했습니다. 이것은 박지성이 맨유에서 완성된 윙어로 성장하지 않았음을 뜻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윙백으로 전환한 것은 윙어로서의 경쟁력을 조금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또한 박지성은 불과 4년 전만 하더라도 유럽에서 촉망받는 공격수 였습니다. 2004/05시즌 PSV 에인트호벤의 에이스이자 왼쪽 윙 포워드로서 맹활약을 펼쳐 팀의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을 견인했습니다. 그래서 2005년 유럽축구연맹(UEFA)가 뽑은 올해의 공격수 후보 5명에 이름을 올려 아드리아누, 호나우지뉴, 안드리 셉첸코, 사뮈엘 에토와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대표팀에서는 팀 공격의 에이스이자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고 있습니다. 하지만 맨유에서 수비적인 역할의 선수로 부각되는 것은 박지성의 경기력에 혼동 현상이 올 수 있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박지성 공격 의존도가 높은' 한국 대표팀 경기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결국에는 박지성이 하기 나름입니다.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부여받은 포지션과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면서 자신만의 장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 스페셜리스트로의 경쟁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멀티 플레이어도 성공한 선수가 있고 정체된 유형이 있는 것처럼 박지성은 반드시 전자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전자로 거듭나면 실전 경험이 더욱 풍부해지기 때문에 경기 운영이 능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맨유에서의 쓰임새가 넓어지고 자신의 역량도 부쩍 늘어날 수 있습니다. 박지성의 볼프스부르크전 윙백 전환은 앞날을 위한 득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