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유럽 진출 후 처음으로 윙백을 맡아 풀타임 출전했습니다. 박지성은 맨유의 주전과 백업 수비수들이 줄부상을 당하면서 마이클 캐릭, 대런 플래처, 루이스 나니와 함께 수비적인 임무로 보직을 변경했으며 후반 28분에는 풀백으로 전환해 미드필더에서 수비수로 내려갔습니다.
박지성의 맨유는 9일 오전 4시 45분(이하 한국시간) 독일 볼프스부르크 아레나에서 열린 2009/10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본선 6차전 볼프스부르크 원정에서 3-1로 승리했습니다. 전반 44분 마이클 오언이 루이스 나니의 왼쪽 크로스를 머리로 받아 헤딩 선제골을 넣었으나 후반 11분 에딘 제코에게 헤딩 동점골을 내줬습니다. 그 이후 상대팀의 공세에 흔들리던 맨유는 후반 38분 마이클 오언이 가브리엘 오베르탕의 개인기에 이은 패스를 이어받아 오른발로 가볍게 골을 넣었습니다. 오언은 45분에도 오베르탕의 짧은 패스를 받은 뒤 문전으로 빠르게 치고들어 골을 넣으며 해트트릭을 달성했습니다.
'윙백' 박지성, 맡은 임무 충실히 해냈다
맨유는 볼프스부르크전에서 3-4-1-2 포메이션을 구사했습니다. 쿠쉬착이 골키퍼, 에브라-캐릭-플래처가 3백, 나니-안데르손-스콜스-박지성이 미드필더, 깁슨이 중거리 슈팅을 노리는 공격형 미드필더, 오언-웰백이 투톱에 배치 됐습니다. 박지성은 나니와 함께 좌우 윙백을 맡아 평소보다 더 많은 활동반경을 요구 받았습니다. 두 선수 모두 부지런하고 활동량이 많은 선수들이기 때문에 측면을 독점하다시피 경기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경기 초반부터 나니보다 박지성에게 많은 공격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박지성은 경기 초반부터 동료 선수들로부터 활발히 공을 배급받아 패스와 크로스를 시도하거나 전방쪽으로 침투하여 팀의 공격 분위기를 주도했습니다. 공을 받을때의 지점도 하프라인 근처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맨유 문전 가까이에서 플래처에게 대각선 패스를 이어받는가 하면 상대 진영 오른쪽 측면에서 깁슨에게 횡패스를 받아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전반 16분에는 상대 아크 오른쪽에서 슈팅을 시도했으나 오프사이드를 범했습니다.
이러한 박지성의 공격적인 활약은 맨유의 공격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박지성이 전반 15분까지 6번의 패스를 동료 선수에게 정확하게 연결했다면 나니는 4번의 패스 중에 3개씩이나 미스를 범했습니다. 박지성의 돌파가 상대 미드필더 뒷 공간을 뚫는데 성공했다면 나니의 돌파는 상대 수비진의 압박에 막히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안데르손과 스콜스가 평소보다 수비쪽에 비중을 늘렸음을 상기하면 박지성의 공격력이 맨유 전력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습니다. 맨유가 전반 20분 볼 점유율에서 54-46(%)로 앞서고 공격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박지성이 공격적 활약이 돋보였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박지성은 그 이후 수비에서 발군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했고 그 속도가 빨랐습니다. 전반 36분 하프라인 부근에서 볼프스부르크 왼쪽 윙어이자 독일 대표팀 선수인 겐트너의 돌파를 태클로 직접 저지한 것을 비롯 겐트너의 측면 침투 공간 길목을 봉쇄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겐트너의 발을 묶었을 뿐만 아니라 볼프스부르크 왼쪽 풀백인 샤퍼의 돌파까지 막아내면서 상대 왼쪽 공격의 효율성 및 완성도를 떨어뜨렸습니다. 여기에 제코가 왼쪽 문전에서 돌파를 시도할때는 재빠르게 수비로 내려와 커버 플레이를 함으로써 플래처를 도와줬습니다.
공수 양면에 걸친 박지성의 맹활약은 맨유가 경기 내용에서 상대에 우세를 점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습니다. 공격에서는 박지성의 종횡무진 활약속에 분위기를 띄우며 상대를 몰아 붙였습니다. 수비에서는 박지성의 출중한 수비력을 앞세워 상대의 왼쪽 공격 예봉을 끊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반 44분에 터진 오언의 헤딩 선제골은 상대팀의 분위기를 무겁게 만드는 임펙트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맨유가 전반전을 무실점을 마쳤던 것은 '에브라-캐릭-플래처'로 짜인 3백이 성공했음을 의미하며 이들의 두꺼운 수비력 속에는 박지성의 일차적인 수비 저지가 한 몫을 했습니다.
후반 초반에는 볼프스부르크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박지성이 공을 잡는 횟수가 부쩍 줄었습니다. 볼프스부르크가 맨유를 꺾어야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진출할 수 있기 때문에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맨유 선수들 전체적으로 공을 활용한 경기력이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후반 11분 제코에게 헤딩 동점골 내줬던 것은 박지성이 샤퍼의 크로스를 놓친것이 골로 연결됐습니다. 상대팀이 박지성을 뚫기 위해 2대1 패스를 연결하고 샤퍼가 크로스를 연결한 것이었기 때문에 박지성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보다 더 아쉬웠던 것은 제코를 밀착 견제하지 못한 수비 라인의 집중력 부족 이었습니다.
그 이후 맨유의 공격은 볼프스부르크의 활발함에 무너져 차단되기 일쑤였고 미드필더 장악이 실패하는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미드필더들은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치며 수비벽을 두껍게 쌓았습니다. 박지성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후반들어 공격 과정에서의 패스가 줄어들면서 특유의 종횡무진 활약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박지성의 경기력이 떨어지기 보다는 팀 밸런스가 공격적에 힘을 잃고 수비쪽에 초점을 맞춘 흐름에 따라갔던 것이죠. 그러면서 박지성은 겐트너의 공격 침투 공간을 미리 선점하는 지능적인 수비력을 발휘했습니다.
물론 맨유의 후반전 공격력 저하는 박지성과 나니의 공격력 부족을 아쉬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3-4-1-2에서는 윙백이 체력 문제 및 활동 반경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90분 내내 측면에서 공격을 주도하기 어렵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완급 조절을 하면서 다시 폼을 끌어오리는 것이 윙백이 노련하게 경기를 풀어가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박지성은 후반 23분 부터 오버래핑을 시도하면서 공간 창출에 주력했고 26분에는 상대 진영 오른쪽 측면에서 패스를 시도하여 공격적인 역량에 힘을 실었습니다. 28분에 나니와 웰백이 교체된 것은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의 경기력을 만족했음을 의미합니다.
박지성은 후반 28분 부터 4-3-3의 오른쪽 풀백, 다시 말해 수비수로 전환했습니다. 맨유가 조커로 투입한 오베르탕-발렌시아로 짜인 좌우 윙 포워드 라인을 가동하면서 박지성이 수비수로 내려간 것이죠. 이것은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의 공격적인 역량을 줄인것과 동시에 수비적인 역량을 키워 수비에 전념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그래서 박지성은 동료 수비수들과 함께 밸런스를 유지했고 맨유 문전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수비 과정에서의 적극성을 앞세워 겐트너와 샤퍼를 밀착 견제했지만 후반 막판 두 번씩이나 상대에게 공격 기회를 내준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그럼에도 박지성은 전문 수비수가 아닌 선수치고는 이날 경기력이 전반적으로 훌륭했습니다. 유럽 진출 후 처음으로 윙백과 풀백을 오가며 풀타임 소화했기 때문에 낯선 자리에서 맡은 임무를 충실히 소화했습니다. 첼시 미드필더 마이클 에시엔도 센터백과 풀백으로 전환했던 초창기에 상대 공격 옵션에게 번번이 흔들렸듯, 박지성의 볼프스부르크전 경기력은 평균 이상의 점수를 줄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나니보다 공수 양면에 걸쳐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것이 박지성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