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

'이청용 장점'을 죽인 볼튼 감독의 전술

 

'블루 드래곤' 이청용(21, 볼튼)이 첼시전에 선발 출전했지만 평소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전반 45분만에 교체 되었습니다.

이청용의 볼튼은 1일 오전 0시(이하 한국시간) 리복 스타디움에서 열린 2009/10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1라운드 첼시전에서 0-4로 대패했습니다. 전반 45분 수비수 제이로이드 사무엘이 첼시 공격수 디디에 드록바에게 거친 파울을 범하면서 퇴장 당했고 프랭크 램퍼드에게 페널티킥 선제골을 허용한 것이 승부의 결정적 패인 이었습니다. 결국, 볼튼은 지난 29일 칼링컵 16강전 첼시 원정 0-4 패배에 이어 홈에서도 첼시에 같은 스코어로 대패해 리턴매치에서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국내 팬들의 관심을 모았던 것은 이청용의 첼시전 활약 여부였습니다. 이청용은 이날 경기에서 4-1-2-1-2 포메이션의 다이아몬드 꼭지점인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해 팀의 중앙 공격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의 공격형 미드필더는 이청용이 주로 소화하던 역할이 아니었습니다. 강팀을 상대로 새로운 역할을 소화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사무엘이 퇴장당해 팀에서 전술 수정이 불가피하면서 전반 종료 후 교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청용의 활약에 스카이스포츠는 경기 종료 후 "주변을 맴돌았다(Peripheral figure)"는 평가와 함께 평점 5점을 부여했습니다. 이것은 요한 엘만더, 폴 로빈슨, 사무엘과 함께 볼튼 선수 중에서 가장 낮은 평점입니다. 아울러 이청용이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부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정확한 의미는, 이청용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게리 멕슨 볼튼 감독의 전술이 실패했음을 말합니다.

우선, 멕슨 감독이 평소와 달리 다이아몬드 카드를 꺼내든 것은 '전략가' 카를로 안첼로티 첼시 감독을 넘어서기 위한 작전 이었습니다. 첼시의 주 전술인 4-1-2-1-2를 공략하려면 기존의 전술보다는 상대팀과 똑같은 전술을 구사해 안첼로티 감독의 지략을 간파하겠다는 것이 멕슨 감독의 의중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청용이 데쿠, 코헨-바쌈-무암바가 램퍼드-에시엔-발라크의 위치에서 경기를 뛰었고 최전방에는 데이비드-엘만더 투톱이 위치했습니다.

맥슨 감독이 이청용을 중앙에 기용한 것은 첼시전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이청용은 그 이전에도 중앙과 측면을 번갈아 오가며 경기를 치렀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때 당시의 포메이션은 볼튼의 주 전술인 4-2-3-1 이었고 첼시전에서는 4-1-2-1-2 였습니다. 다이아몬드는 선수들의 높은 전술 이해도 및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고, 특히 공간 압박이 뛰어난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실패 가능성이 많은 전술입니다.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4-1-2-1-2를 쓰는 것은 정상적인 작전이 아닌 '모험'일 뿐입니다.

문제는 볼튼이 4-1-2-1-2에 대한 연습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3일전 첼시 원정에서는 수비 강화를 위해 5-4-1을 구사하고 홈에서는 4-1-2-1-2를 썼으니 새롭게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또한 첼시는 개인 실력이 뛰어난 중앙 미드필더들이 여럿 포진한 팀입니다. 탄탄한 수비력과 빠른 순간 스피드를 동반한 패스 위주의 공격 전개를 펼치는 팀이기 때문에 상대팀이 '첼시 격파'를 위해 어설프게 준비하면 결과는 당연히 안좋습니다. 멕슨 감독의 4-1-2-1-2는 애초부터 컨셉을 잘못 잡았던 전술입니다.

그 원인이 바로 이청용 입니다. 이청용이 맡았던 다이아몬드의 공격형 미드필더는 4-1-2-1-2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포지션입니다. 포메이션 특성상 혼자서 프리롤 역할을 맡아 팀의 중앙 공격을 이끌어야하며 미드필더들과 공격수 사이의 패스 연결이 활발한 조건도 필요합니다. 물론 이청용도 공격 센스와 패싱력, 스피드, 돌파력 같은 전반적인 공격 능력은 볼튼의 미드필더들 중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꾸준한 공격 포인트로 오름세를 탔기 때문에 멕슨 감독이 자신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택 했습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 체제의 이청용은 자신의 장점을 쏟아내지 못했습니다. 평소에 자신이 즐기던 역할이 멕슨 감독이 주문하는 역할과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청용은 다이아몬드라는 생소한 역할에서 뛰었고 동료 선수들과 활발한 호흡을 시도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청용은 첼시전에서 45분 동안 9개의 패스를 시도했으나 2개가 백패스였고 4개는 미스를 범한 것입니다. 동료 미드필더들, 투톱 공격수와의 공격 연결이 활발하지 못했고 효율성도 부족했습니다. 다이아몬드 체제에서 이청용의 장점을 끌어올리기에는 멕슨 감독의 전술에 무리수가 있었습니다.

이청용의 장점은 측면에서의 빠른 기동력입니다. 측면에서 공을 잡을때 동료 및 상대 선수의 위치를 빨리 파악하여 자신이 직접 공격을 해결하거나 또는 동료 선수에게 패스를 연결하는 성향입니다. 무엇보다 측면에서 드리블 돌파를 즐기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상대 압박이 많은 중앙에서는 자신의 장점을 마음껏 쏟기 힘든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 이청용'의 기동력은 평소보다 저조했습니다. 에시엔과 발라크 같은 첼시의 터프한 미드필더들의 압박을 받다보니 평소처럼 돌파가 활발하지 못했습니다.

이청용의 부진은 후방 옵션들까지 부추겼습니다. 수비수들은 데이비스-엘만더 투톱의 머리를 겨냥한 롱패스 공격 전개에 익숙했고, 코헨-바쌈-무암바는 활발한 패스 연결보다 최전방을 향햔 다이렉트 패스 연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출중한 공격형 미드필더를 보유한 팀이더라도 후방 옵션들의 공격 전개 효율적이지 못하면 다이아몬드 전형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은 이청용 부진의 근원이 멕슨 감독의 전술 미스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멕슨 감독의 모험도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3일전 0-4 패배를 안겨줬던 상대팀을 복수하려면 변형 전술이 불가피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모험도 상대팀을 가릴 필요가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라는 불안 요소가 많은 전술을 프리미어리그 1위팀인 첼시전에서 구사할 필요성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이청용은 프리미어리그에 완벽한 적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격의 꼭지점 역할을 맡기기에는 무리수가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술은 감독의 성향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는 선수의 스타일을 올바르게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과 얼마전까지 전술 미숙 및 성적 부진으로 팬들의 경질 요구에 시달렸던 멕슨 감독의 지도력은 첼시전 패배를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사무엘의 퇴장이 0-4 패배의 결정타였지만 그 이전에 이청용을 통하는 공격이 원활하게 통했다면 경기의 양상은 달랐을지 모릅니다. 이청용 부진은 멕슨 감독의 컨셉 실패에서 빚어진 결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