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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능구렁이 같은 포항 4-3-3, 결승 진출의 힘

 

전반전을 0-0으로 마치면서 결승 진출이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술적으로 상대의 공세를 완전히 틀어막았기 때문에 후반전에 공격 과정에서 확실한 임펙트를 발휘하면 이길거라 생각했습니다. 중동 원정에서 전술적으로 완벽한 경기를 펼친 것은 정말 대단할 따름입니다. 그것도 AFC 챔피언스리그(ACL) 4강 2차전에서 말입니다.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이 이끄는 포항 스틸러스가 움 살랄(카타르)을 꺾고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포항은 29일 오전 0시(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스포츠 클럽에서 열린 2009 AFC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2-1로 승리했습니다. 후반 10분 스테보가 선제골을 넣으며 기선제압에 성공했고 4분 뒤에는 노병준이 추가골을 넣으며 승리를 굳혔습니다. 후반 47분에는 이브라히마에게 오른발 프리킥을 허용했지만 2-1 리드를 지킨채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이로써 포항은 움 살랄과의 합계 스코어에서 4-1로 승리하면서(1차전 2-0 승) 결승 진출 및 아시아 정상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포항은 오는 7일 일본 도쿄 요요기 스타디움에서 열릴 결승전에서 '한국 킬러' 알 이티하드(사우디 아라비아)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놓고 치열한 한판 승부를 펼칩니다.

파리아스는 역시 파리아스 다웠다

움 살랄 원정을 치른 포항은 전술적인 준비가 철저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상대의 전술적 특징을 면밀하게 파악하여 확실한 대비책을 세웠기 때문이죠. 이번 경기는 카타르 원정이었고 분요도코르(우즈베키스탄)과의 8강 1차전에서 1-3으로 패했던 전적이 있기 때문에 경기 운영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술적인 무장이 되어있지 않으면 이번 경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전략가' 파리아스 감독은 역시 파리아스 감독 다웠습니다.

포항은 움 살랄전에서 4-3-3을 구사했습니다. 신화용을 골키퍼, 김정겸-김형일-황재원-최효진을 포백, 김태수를 수비형 미드필더, 신형민과 김재성을 공격형 미드필더, 노병준-스테보-데닐손을 스리톱에 포진 시켰습니다. 선발 라인업을 놓고 보면 팀의 득점을 책임지는 스리톱의 공격력에 무게감이 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는 공격수보다 미드필더들의 짜임새 넘치는 경기 운영이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중동 클럽의 특징은 경기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것입니다. 한 번 분위기를 타면 거침없는 공격력으로 상대팀을 몰아 붙이지만(알 이티하드가 대표적)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좋은 경기를 펼치기 어렵습니다. 포항은 그 특징을 잘 이용했습니다. 경기 초반부터 미드필더진을 윗쪽으로 끌어올리고 좌우 풀백인 김정겸과 최효진이 공격에 자주 올라오면서 움 살랄 진영에서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습니다. 전반 7분에는 최효진의 오른발 중거리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나오면서 상대의 기세를 완전히 뺐었습니다.

특히 김재성과 신형민의 침착한 경기 운영이 돋보였습니다. 두 선수는 중원에서의 적절한 위치 선정으로 상대 중앙 공격 길목을 차단하고 적시 적소의 패스로 팀 공격의 활력을 키웠습니다. 서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전방 압박에 많은 비중을 두었던 것이 움 살랄의 공격이 하프라인에서 끊어지는 경우가 잦은 효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포항이 두 선수의 안정된 밸런스 속에서 경기 주도권을 손쉽게 장악할 수 있었고 빌드업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포항판 산소탱크' 노병준의 기동력을 활용한 부분전술로 상대 왼쪽 측면을 적극적으로 파고 들었습니다.

4-3-3의 특징은 삼각형을 형성하는 세 명의 미드필더가 서로 일치된 밸런스를 유지해야 합니다. 김재성-김태수-신형민은 항상 삼각형 모양을 유지하며 공수 양면에 걸친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부분 전술을 강화했습니다. 1명이 중원에서 공을 잡으면 다른 한 명이 전진 패스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또 다른 한 명은 상대의 압박을 저지하도록 길목을 지키거나 측면-최전방 옵션과 간격을 좁혀 공격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러한 전술적 형태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상대 미드필더진의 경기 장악력이 떨어졌고 마침내 후반전에는 수비진까지 흔들리는 효과로 이어졌습니다. 

포항 미드필더진의 능구렁이 같은 경기 운영은 수비에서도 빛났습니다. 김태수가 포백 앞선에서 몸을 내던지며 상대 중앙 공격을 철저히 봉쇄했고 김재성과 신형민도 적극적인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 효과는 마그노-다비 투톱을 봉쇄하는 포백의 수비력이 편해지는 이점으로 이어졌습니다. 만약 상대가 공격에 많은 숫자를 투입하면 노병준과 데닐손까지 포항 문전 안으로 들어가 수비에 깊숙히 가담하면서 숫적 열세를 면했습니다. 그래서 포항의 수비가 움 살랄 공격을 상대로 이중, 삼중의 압박을 가하여 실점을 허용하지 않는데 주력했습니다.

그리고 움 살랄은 '마그노-다비' 투톱의 역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팀입니다. 브라질 출신인 두 선수의 민첩한 스피드와 순도 높은 결정력을 봉쇄하지 못하면 결승 진출은 어림 없었습니다. 그래서 포항 포백은 두 공격수에게 문전 침투 및 슈팅 공간을 내주지 않는데 초점을 맞췄고 미드필더들까지 도와주면서 압박 작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더니 두 공격수는 포항의 거센 압박에 밀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화려한 경기력을 뽐내지 못합니다. 여기에 미드필더진이 포항에게 완전히 제압당했으니, 포항이 전술적인 힘으로 상대의 기세를 무너뜨렸습니다.

공격수들의 경기 운영도 칭찬할 부분입니다. 노병준이 경기 초반부터 왼쪽 공간에서 특유의 기동력으로 상대 수비를 흔들었다면 스테보와 데닐손은 완급 조절이 돋보였습니다. 전반 30분까지는 많이 뛰기 보다는 상대 수비를 한쪽으로 몰아 세우는데 집중했고, 그 이후에는 스테보가 오른쪽에서 상대 수비를 끌어내면서 체력적으로 지치게하고, 데닐손이 미드필더 지역으로 내려가면서 활발한 볼 터치에 이은 감각적인 돌파로 상대 중앙 수비를 흔들었습니다.

이러한 역동적인 경기 운영은 후반전에 두번씩이나 손 쉽게 골을 넣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후반 10분 선제골 상황에서는 상대 포백이 김재성의 문전 침투를 막는데 집중하다보니 근처에 있던 스테보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 틈을 순식간에 알아챈 김재성은 스테보에게 한 박자 빠른 대각선 패스를 연결했고 이것이 스테보의 선제골로 이어졌습니다. 상대 수비진과 미드필더진을 거침없이 흔들었기 때문에 스테보의 선제골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후반 14분 노병준의 추가골도 마찬가지 입니다. 노병준은 왼쪽 측면에서 문전쪽으로 빠르게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여 자신을 견제하는 상대 수비수들의 중심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래서 두 선수 사이를 돌파하고 오른발 인사이드 킥으로 골을 성공 시켰습니다. 페인팅-드리블-슈팅의 과정을 혼자서 연출한 노병준의 개인 공격력이 빛났던 것은 상대 수비가 포항의 강력한 공세에 의해 집중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병준은 상대 약점을 간파하여 자신의 힘으로 골을 넣었습니다.

이러한 포항의 경기력은 다음달 7일 알 이티하드와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전망을 밝히기에 충분했습니다. 알 이티하드가 2004년과 2005년에 성남과 부산을 5-0으로 대파했던 팀이기 때문에 움 살랄보다 강한 위용을 뽐낼 것으로 보이지만 포항도 만만찮다는 평가입니다. 파리아스 감독의 전술적인 능력이 빛을 발하는 포항의 강렬한 포스라면 알 이티하드전도 승산이 있음에 틀림 없습니다. 움 살랄을 꺾고 결승에 진출한 포항의 선전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