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1위팀과 8위팀의 대결. 전자는 후자와의 경기 이전까지 11경기 연속 무패 기록을 세웠고 후자는 최근 4연패 부진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전자는 프리미어리그 디펜딩 챔피언이고 후자는 20년 동안 프리미어리그 제패에 실패했습니다. 얼핏보면 전자가 후자를 이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축구공은 둥근 법. 전자는 후자와의 경기에서 완패했습니다. 전자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라면 후자는 리버풀입니다.
맨유는 25일 저녁 11시(이하 한국시간) 안필드에서 열린 프리미어리그 10라운드 리버풀과의 원정 경기에서 0-2로 완패했습니다. 후반 19분 페르난도 토레스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뒤 43분에는 네마냐 비디치의 경고 누적으로 인한 퇴장으로 추격 의지가 꺾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50분 다비드 은고그에게 추가골을 내주면서 0-2 패배로 경기를 마쳤습니다. 이로써 맨유는 첼시에게 프리미어리그 1위 자리를 내주었으며 리버풀전에서 최근 3경기 연속 패하는 불명예 기록을 이어갔습니다.
리버풀 투혼에 무너진 맨유의 '집중력 부족'
맨유와 리버풀의 희비를 가른 키워드는 바로 '집중력' 입니다. 맨유는 선발 스쿼드 중에 대부분이 4일전 CSKA 모스크바전을 위해 러시아 원정을 치렀고 루니-긱스-에브라는 부상에서 복귀했기 때문에 안필드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몇몇 선수들은 90분 동안 폼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능력에 힘이 부치고 말았고 이것이 상대의 강력한 승리욕에 무너지는 근본적 원인이 됐습니다.
반면에 리버풀은 다릅니다. 4연패 부진에서 탈출하려면 맨유전에서 무조건 이겨야했기 때문입니다. 이 경기에서 패하면 5승5패로 10위권에 추락하고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의 경질이 현실화되기 때문에 위기 의식이 고조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비 조직력의 전열을 다듬어 상대의 공세를 끊는데 집중했고, 공격 전개 과정에서는 아우렐리우-베나윤-카윗이 끊임없이 공간을 창출하고 전방으로 치고드는 공격 의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후반 50분 은고그의 추가골을 통해 보듯, 경기 종료까지 골을 넣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리버풀의 투혼은 맨유의 챔피언 저력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번 경기는 맨유의 승리가 유력했습니다. 스카이스포츠를 비롯한 현지 언론에서도 맨유의 승리를 예상했고 축구팬들의 반응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리버풀이 사비 알론소의 이적 공백을 비롯한 4연패 부진에 빠진 것이 맨유의 승리 가능성이 높은 원인이었기 때문이죠. 더욱이 리버풀은 에이스이자 주장인 스티븐 제라드가 사타구니 부상 회복이 늦어지면서 맨유전 18인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하는 악재가 겹쳤습니다. 승부의 관건은 맨유의 선제골 및 리드 여부에 모아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맨유가 이른 시간안에 선제골을 터뜨리면 경기 분위기는 맨유에게 유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맨유의 공격 작업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미드필더진에서 공격진으로 연결되는 패스, 투톱 공격수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리버풀의 끈끈한 수비에 맥없이 무너졌기 때문이죠. 루니-베르바토프 투톱은 평소 답지 않은 기대 이하 공격력을 일관했고 긱스-발렌시아-에브라-오셰이 같은 측면 옵션들의 폼은 경기 상황마다 기복이 심했습니다. 자기 역할을 철저히 지키는 '포지션 축구'로 효율성을 강조하는 맨유의 전술과는 어긋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리버풀의 탄탄한 수비를 공략하지 못해 0-2 완패로 무너졌습니다.
무엇보다 베르바토프의 부진이 맨유에게 뼈아팠습니다. 베르바토프는 미드필더진과 타겟맨인 루니 사이에서 프리롤 형태의 공격을 전개하는 유형인데 이것이 리버풀의 수비 작전에 공략당하고 말았습니다. 리버풀은 포백과 루카스-마스체라노 더블 볼란치 조합의 간격을 좁히면서 베르바토프의 침투 공간을 막는데 주력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베르바토프는 상대의 거센 압박에 밀렸고 이것이 루니가 공격 파괴력에 불을 뿜지 못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습니다.
양쪽 측면도 문제 였습니다. 긱스는 맨유가 점유율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4번이나 왼쪽 크로스를 부정확하게 올렸습니다. 발렌시아는 전반전에는 빠른 스피드와 넓은 시야를 활용한 패스로 공격에 재미를 붙였지만 후반전부터 폼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빠른발을 앞세운 돌파가 부족했고 동료 선수에게 공을 받을때의 위치선정이 너무 깊숙했습니다. 그래서 동료 선수들에게 많은 공격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오셰이는 하프라인 안에서 9개의 패스미스를 범해 리버풀에게 역습 기회를 내주는 불안함을 노출했습니다.
0-1로 뒤진 상황에서의 경기 운영도 아쉬웠습니다. 강팀과의 경기에서 역전에 성공하려면 상대 수비를 뚫을 수 있는 파괴적인 드리블러(특히 호날두)가 필요했지만 맨유에서는 그런 선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맨유는 근래들어 후반전에 공격에 매진하여 골을 넣는 팀 컬러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0-1로 지고 있는 상황이 '호날두 없는' 맨유에게 익숙하지 못했고 선수들의 경기 운영에 좀처럼 위력이 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후반 28분에 오언-나니를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웠지만 결과는 미진했습니다. 특히 오언은 인저리 타임을 포함한 22분 동안 3번의 패스만 연결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맨유는 경기 초반부터 리버풀의 전술적 공세에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리버풀이 비디치-에브라 사이의 공간에서 대각선 슈팅 및 전방 돌파를 자주 시도했기 때문이죠. 이것은 비디치-에브라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에브라의 오버래핑에 대한 리듬을 끊으며 상대 공격을 약화시키는 효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토레스가 전반 14분에 맨유 오른쪽에서 대각선 돌파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에브라의 반칙 및 경고를 유도했습니다. 그래서 에브라는 평소보다 덜 부지런한 모습을 보이며 팀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지 못했습니다.
후반 19분 선제골 실점 상황은 에브라에게 근본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베나윤이 토레스에게 찔러주는 오른쪽 대각선 패스를 에브라가 봉쇄할 수 있는 위치에 가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에브라는 베나윤의 패스를 정면에서 바라봤으면서도 가볍게 넘어갔고 이것이 토레스가 리오 퍼디난드와의 어깨 싸움 과정에서 결승골을 넣는 장면으로 이어졌습니다. 이것은 에브라가 후반 시작과 함께 카윗-베나윤의 위협적인 오른쪽 공간 돌파를 저지하는데 주력했기 때문에 얼마안가 힘에 부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에브라가 평소처럼 상대에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을 발휘했다면 경기 결과는 다른 양상에 접어들었을 것입니다.
퍼디난드-비디치-오셰이는 지난 시즌보다 폼이 떨어졌음을 리버풀전을 통해 그대로 증명하고 말았습니다. 세 명 모두 대인마크가 허술해지는 문제점을 노출하고 말았기 때문이죠. 특히 퍼디난드는 후반 19분 토레스와의 어깨 싸움에서 밀리면서 결승골을 허용했고 비디치는 두 번의 위험한 파울로 승부의 고비처였던 43분에 퇴장 당했습니다. 오셰이는 아우렐리우의 전방 돌파를 막아내지 못한것을 비롯해 활동 반경을 좀처럼 넓히지 못했습니다. 지난 시즌 맨유 프리미어리그 3연패 주역이었던 맨유 포백의 허술함은 올 시즌 4연패 행보의 아킬레스건이 될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