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모스크바 원정에서 상대 밀집 수비의 거센 견제로 인한 공격력 부진 속에서도 힘겹게 승점 3점을 따냈습니다.
맨유는 22일 새벽 1시 30분(이하 한국시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서 열린 CSKA 모스크바와의 2009/10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B조 3차전에서 1-0으로 승리했습니다. 경기 내내 상대의 수비 전략에 주춤한 모습을 보였던 맨유는 후반 41분 안토니오 발렌시아의 결승골에 힘입어 승리의 미소를 머금었습니다.
이로써 맨유는 챔피언스리그 3연승(승점 9)으로 조 2위인 볼프스부르크(1승1무1패, 승점 4)를 승점 5점 차이로 따돌렸습니다. 다음달 3일 모스크바와의 홈 경기에서 승리하면 16강 토너먼트 진출이 조기에 확정됩니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 경기 내용이 매끄럽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맨유, 경기에서 이겼지만 내용은 찜찜했다
우선, 모스크바는 맨유전에서 실망스런 경기를 했습니다. 경기 내내 수비 중심의 경기를 펼쳤지만 맨유와 공방전을 벌였기 때문에 후반 중반이나 막판에 일격을 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스크바는 후반전부터 미드필더진을 내리는 잠그기 작전을 펼치면서 골을 넣으려는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후반 41분 발렌시아의 한 방에 무너졌습니다. 더욱이 홈에서 잠그기를 펼치며 공격 작전을 포기한 것은 팬들을 기만하는 것입니다.(참고로, 모스크바의 사령탑은 국내 팬들에게 익숙한 후안 데 라모스 전 토트넘-레알 마드리드 감독입니다. 모스크바와 11월까지 초단기 계약을 맺었는데 오래갈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문제는 맨유도 모스크바처럼 공격에 대한 적극성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슈팅 숫자에서는 17-7(유효 슈팅 8-2) 볼 점유율 55-45(%)의 우세를 기록해 수치상에서 우세를 점했지만 전반적인 경기 분위기는 전형적인 원정팀과 유사했습니다. 모스크바가 수비 중심의 경기를 펼치면서 많은 공격 기회를 잡았음에도 그 기회를 효과적으로 살리지 못했습니다. 또한 중앙을 책임졌던 미드필더들도 공격 과정에서 몸을 사리거나 횡패스를 남발하며 팀 공격의 템포를 끊는 문제점을 나타냈습니다.
맨유는 모스크바전에서 4-2-3-1 포메이션을 구사했습니다. 베르바토프를 원톱, 나니-안데르손-발렌시아를 공격형 미드필더, 오셰이-스콜스를 수비형 미드필더, 파비우-비디치-퍼디난드-네빌을 포백, 에드윈 판 데르 사르를 골키퍼로 포진 시켰습니다. 루니-긱스-박지성-플래쳐-에브라가 부상으로 모스크바 원정에서 제외되었고 오언-캐릭의 부진, 오는 25일 라이벌 리버풀 원정을 소화하는 요인 때문에 평소보다 무게감이 떨어지는 선발 라인업을 구성했습니다.
모스크바전에서는 상대 수비의 허를 뚫을 수 있는 공격 연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특히 중앙이 아쉬웠습니다. 오셰이-스콜스 더블 볼란치가 공격형 미드필더들과 간격을 좁히기 보다는 포백 윗선에 움츠려두는 경기 운영을 펼치면서 상대 전방 압박을 뚫을 수 있는 길목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또한 횡패스 빈도를 높이면서 상대 밀집수비가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는 타이밍을 벌어줬고, 그 결과는 전방 옵션들이 후방의 답답한 지원속에 힙겹게 상대 수비의 압박을 한꺼풀씩 벗겨내는 부담감으로 가중 되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인 안데르손의 경기 운영도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원톱인 베르바토프쪽으로 롱패스를 날렸던 것이 상대 수비에 끊기고 전반적인 패스 타이밍도 느리게 전개되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패스 메이커'인 베르바토프의 패스 시도가 18개에 그쳤다는 점은(15개 성공, 패스 정확도 83%) 안데르손이 원톱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두 선수 사이에서 유기적인 공격 연결이 활발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나니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나니는 52개의 패스 중에 28개의 미스를 범해 패스 정확도가 46%에 그쳤습니다. 짧은 패스 59%(17개 시도 10개 성공) 미디엄 패스 38%(29개 시도 11개 성공) 롱패스 50%(6개 시도 3개 성공)의 저조한 기록을 올리며 맨유 공격의 효율성을 떨어뜨렸습니다. 이날 맨유 선수중에서 가장 많은 이동거리(11.669km)를 기록한 것을 상기하면 움직임과 효율성이 모두 낙제점 이었습니다.
특히 맨유가 골을 넣어야 할 시점이었던 후반 35분과 37분 상황이 아쉽습니다. 나니는 35분에 문전쪽으로 짧은 로빙패스를 올리며 베르바토프의 헤딩골을 유도했습니다. 그러나 공은 베르바토프 머리에서 너무 위로 향하면서 골 기회가 허무하게 무산 됐습니다. 37분에는 박스 왼쪽에서 오언에게 횡패스를 받았습니다. 베르바토프-오언 쪽으로 로빙패스를 띄워 공격수들의 헤딩골을 엮어내기 보다는 땅볼패스를 연결해 상대 수비수에게 공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기본적인 패싱력과 기술력이 있는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제 몫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공격 옵션에서는 발렌시아가 오른쪽 측면과 문전을 적극적으로 누비며 팀 공격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하지만 발렌시아도 4-2-3-1 전술에서는 자신의 장점을 힘껏 쏟지 못했습니다. 상대의 밀집 수비와 맞닥드린 상황에서는 동료 공격 옵션과 간격을 좁히며 짧은 패스 위주의 경기를 풀어가는 것이 정석입니다. 그러나 발렌시아는 박스 오른쪽 안에서는 로빙패스, 박스 바깥에서는 긴 크로스를 위주로 단조롭게 경기를 풀어갔습니다. 지난달 베식타스 원정에서도 그랬지만, 발렌시아는 4-3-3과 4-2-3-1 같은 원톱 전술에 어울리는 타입이 아니었습니다.
발렌시아의 공격력이 폭발하기 시작한 것은 후반 25분 오언의 교체 투입 이후부터 였습니다. 4-4-2의 오른쪽 윙어를 맡으면서 중앙과 오른쪽 측면을 부지런히 오가는 활동 반경과 상대 수비를 제치는 기교를 발휘하며 '물 만난 물고기' 처럼 펄펄 날았습니다. 39분 상대 골대를 맞추는 슈팅을 날리며 공격에 적극성을 보이더니 41분에 베르바토프의 헤딩 패스를 오른발로 받아 결승골을 성공 시켰습니다. 3분 뒤에는 문전 안에서 베르바토프쪽으로 재빠르게 전진패스를 연결해 상대 수비 압박을 벗겼습니다.
공교롭게도 맨유는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3경기에서 좋은 경기 내용으로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베식타스전에서는 공격 옵션들의 마무리 미흡속에 어렵게 경기를 풀었고 볼프스부르크전에서는 중원의 패싱력이 좋지 못한데다 공격수들이 상대 수비를 위협할 수 있는 임펙트가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모스크바 원정에서도 공격 전개 작업에서 매끄럽지 못한 부분들이 여럿 속출 했습니다. 앞으로는 좋은 경기 내용으로 기분 좋은 승리를 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