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열이 확실하게 가려졌습니다. 시즌 초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측면 옵션으로 활발히 기용되었던 안토니오 발렌시아와 루이스 나니의 경기력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습니다. 경기를 치를수록 발렌시아가 오름세를 타고있는 반면에 나니는 발전이 정체된 모습을 일관하며 맨유 3년차 선수 답지 못한 경기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CSKA 모스크바전에서는 두 선수의 활약상이 서로 엇갈렸습니다. 발렌시아는 후반 41분 결승골을 비롯 오른쪽 측면에서의 활발한 움직임과 날카로운 패싱력, 드리블 돌파 과정에서의 유연한 볼 키핑력으로 팀 공격력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하지만 나니는 부정확한 패싱력과 비효율적인 움직임, 패스할 타이밍과 슈팅할 타이밍을 구분짓지 못하는 매끄럽지 못한 경기 운영으로 맨유 공격의 임펙트를 떨어뜨렸습니다. 만약 발렌시아의 맹활약이 없었다면 나니는 0-0 무득점 부진의 장본인으로 찍혔을지 모를 일입니다.
특히 발렌시아로서는 모스크바전 골이 값집니다. 후반 41분 문전 앞 오른쪽에서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에게 헤딩 패스를 받아 오른발 슈팅을 골로 밀어 넣었습니다. 모스크바의 밀집 수비에 고전했던 팀에 골이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승리를 이끄는 해결사 기질을 발휘했습니다.
또한 지난 17일 볼튼전에 이어 2경기 연속골을 기록한 것이 눈에 띱니다. 전 소속팀 위건에서 3시즌 동안 90경기 7골에 그쳤기 때문에 '골을 못넣는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2경기 연속골을 통해 득점력이 있는 선수임을 증명했습니다. 최근 맨유가 웨인 루니의 부상과 베르바토프-오언의 골 가뭄으로 공격력 무게감이 떨어졌음을 상기하면 발렌시아의 2경기 연속골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나니는 지난 8월만 반짝했습니다. 지난 8월 9일 커뮤니티 실드 첼시전 선제 중거리포, 8월 22일 위건전 프리킥골을 통해 팀 내에서의 입지가 넓어지는 듯 했지만 시즌 내내 경기력 부진에 시달리며 팀 공격에 보탬을 주지 못했습니다. 첼시전과 위건전 이외에 아무것도 보여준 것이 없는 나니의 행보는 지난 시즌 벤치 신세에서 벗어난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입니다. 라이언 긱스가 지난달 12일 토트넘전부터 왼쪽 윙어로 전환한 것은 역설적으로 나니의 경기력에 문제가 있음을 꼬집는 대목입니다.
특히 올 시즌에는 효율성에서 문제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맨유 선수 중에서 많은 활동량을 자랑하지만 문제는 공격 과정에서의 불필요한 움직임이 많습니다. 지나친 패스미스도 문제입니다. 지난달 16일 베식타스전에서는 맨유 선수 중 가장 많은 이동거리를 기록했지만(11.034km) 패스 정확도(52%)가 선발 출전한 선수 중 가장 저조했습니다. 26일 스토크 시티전에서도 후반 10분 교체되기까지 패스 정확도가 64.3%에 그쳤습니다. 지난 4일 선더랜드전에서는 패스 정확도가 48%에 그쳤으며 50개의 패스 중에 26개의 미스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모스크바전에서는 패스 정확도가 46%에 그쳤습니다. 52개의 패스 중에 24개를 동료 선수에게 정확하게 연결했을 뿐 28개씩이나 미스를 범했습니다. 짧은 패스 59%(17개 시도 10개 성공) 미디엄 패스 38%(29개 시도 11개 성공) 롱패스 50%(6개 시도 3개 성공)의 저조한 기록을 올렸습니다. 이날 맨유 선수중에서 가장 많은 이동거리를 기록했지만(11.669km) 여전히 효율성 결여에 탈피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공격 연결과정에서 침착한 모습을 보였더라면 맨유는 1~2골을 더 넣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물론 발렌시아도 지난달에 주춤했습니다. 공을 잡고 정지한 상황에서 시도하는 드리블 돌파가 상대 수비수들에게 읽혀 자신의 장점을 맘껏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패스 타이밍이 빨라지지 못했고 문전 앞에서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20일 맨체스터 시티전과 26일 스토크 시티전에서 15개의 크로스를 연결했으나 정확하게 연결한 것이 단 2개 뿐이었습니다. 발렌시아가 나니와 같은 선수였다면 침체된 분위기에 휩쓸려 이번달에 부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발렌시아는 나니와는 다른 선수입니다. 최근 2경기 연속골을 비롯해 경기 내용에서도 지난달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이며 맨유의 붙박이 주전으로 거듭났습니다. 이번달 초 A매치 데이에서 남미 원정 경기를 치르지 않고 캐링턴(맨유 훈련장)에 남았던 것이 자신의 경기력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그래서 볼튼전과 모스크바전에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무장하여 그라운드를 활발히 질주했고 동료 공격 옵션보다 경기 내용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경기를 풀어가는 패턴도 달라졌습니다. 기존에는 직선 형태의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수들에게 쉽게 읽혔습니다. 하지만 지난 두 경기에서는 공이 없는 상황에서 오른쪽 문전으로 빠르게 달려들며 골 기회를 노리거나 동료 선수에게 빠른 타이밍의 패스를 연결 했습니다. 활동 패턴도 직선에 의존하기보다는 횡적인 방향이 늘어나면서 공격 연결 형태가 다양해졌습니다. 그리고 드리블 돌파 과정에서 상대 수비수와 경합중인 상황에서도 공을 끝까지 소유하여 팀의 공격 템포가 끊기지 않도록 재빠르게 패스를 연결하거나 드리블 돌파를 시도했습니다.
그런 발렌시아는 최근 2경기 연속골을 통해 경기 상황에 따라 이타적인 요소와 이기적인 요소를 골고루 발휘할 수 있는 선수로 거듭났습니다. 어느 상황에서 패스를 연결하고 슈팅을 시도할지 또는 드리블 돌파를 시도할지 경기를 읽는 눈이 넓어졌습니다. 이러한 매끄러운 경기 운영은 맨유에서 보낸 세 시즌동안 경기력 개선에서 부족함이 있었던 나니와는 다른 행보입니다.
또한 발렌시아는 전 소속팀 동료인 조원희가 포포투 8월호를 통해 극찬했을 정도로 출중한 수비력까지 자랑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맨유에서의 앞날에 기대감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오름세를 꾸준히 이어가면 맨유 공격의 키 플레이어로 거듭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