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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맨유전서 보여준 이청용의 '대박 가능성'

 

이제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적응이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미 볼튼의 주전으로 자리잡은 것은 기본이며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선수로 이름을 떨치기 위한 발판을 다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목표까지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 자체만으로도 값진 결과입니다.

'블루 드래곤' 이청용(21, 볼튼)이 17일 저녁 11시(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의 프리미어리그 9라운드 경기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드러냈습니다. 부드러운 볼 터치와 적극적인 수비가담, 맨유 왼쪽 옆구리를 물흐르듯 파고드는 유연성으로 팀 공격에 활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비록 사흘전 A매치 세네갈전 출전 피로 여파로 후반 7분에 교체 되었고 팀은 1-2로 패했지만 강팀을 상대로 좋은 경기력을 펼쳤습니다.

이청용은 맨유전 종료 후 잉글랜드 스포츠 전문 채널 <스카이 스포츠>를 통해 "멋진 볼터치를 선보였지만 후반에는 희생했다"는 평가와 함께 평점 6점을 부여 받았습니다. 6점은 맨유전서 골을 넣은 메튜 테일러, 골키퍼 유시 야스켈라이넨이 받은 8점에 이어 팀 내에서 세 번째로 높은 점수입니다. 경기 당일 컨디션이 최상이었다면 더 좋은 평가와 점수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청용이 좋은 경기를 펼쳤던 이유는 경기에 임하는 순간을 한 번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했습니다. 팀에 결정타를 주는 큰 실수 없이 맨유라는 세계적인 강호를 상대로 무난하게 경기를 치른 것은 21세의 선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합니다.

이날 볼튼은 수비 중심의 경기를 펼쳤습니다. 팀의 중앙 미드필더들이 경기 초반부터 맨유 미드필더들에게 경기 주도권에서 밀리면서 매끄러운 공격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청용은 이날 경기에서 공격보다는 수비에 무게감을 실으며 팀 플레이에 치중했습니다.

특히 이청용의 수비력은 프리미어리그에서 구체적으로 검증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맨유전에서 나타난 이청용의 수비력은 기대 이상 이었습니다. 측면에서 라이언 긱스와 활발히 매치업을 벌이며 그의 공격을 끊는데 치중했습니다. 긱스를 상대로 거친 몸싸움보다는 상대 침투 공간 길목을 미리 선점하여 패스 정확도를 떨어뜨리는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컨디션이 좋았다면 활발한 몸싸움으로 공을 따내며 팀의 역습 기회를 마련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무엇보다 하프라인 밑까지 내려와 긱스를 적극적으로 마크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맨유 공격에서 가장 물오른 활약을 펼치는 긱스를 막기 위해서는 두 명 이상의 압박이 필요했고 이청용의 수비 가담이 절실히 요구 되었습니다. 특히 전반 19분 오른쪽 측면 뒷 공간에서 파브리스 무암바와 함께 긱스를 압박하여 공을 따내는 장면은 이청용의 수비력이 팀에 융화 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던 장면입니다.

이청용은 전방 압박에 대한 대처 능력도 빨랐습니다. 전반 41분 긱스가 수비 라인 윗쪽에서 파트리스 에브라에게 횡패스를 연결할 때, 긱스의 앞쪽에서 재빨리 에브라쪽으로 움직여 상대의 오버래핑 공간을 미리 선점했습니다. 그리고 4분 뒤에는 하프라인 부근에서 안데르손의 대각선 패스를 직접 차단하고 동료 선수에게 공격을 띄웠습니다. 볼튼의 중앙과 오른쪽이 맨유 선수들에게 자주 뚫렸던 것을 상기하면 이청용의 수비력은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공격 연결도 무난했습니다. 전반 25분 오른쪽 측면에서 직접 문전쪽으로 공을 몰고가면서 최전방에 포진한 케빈 데이비스에게 정확한 로빙패스를 연결했습니다. 비록 데이비스의 슛은 골대 바깥으로 향했지만, 섬세하고 한 박자 빠른 패스로 맨유 왼쪽 수비의 집중력을 떨어뜨린 이청용의 감각적인 패싱력과 침투 능력은 인상적 이었습니다. 또한 25분 장면을 비롯 맨유 문전을 파고들어 동료 선수에게 정확한 패스를 연결해 팀 공격에 활기를 띄웠습니다.

아쉬운 것은 볼튼의 '뻥축구' 입니다. 전반 18분 리카르도 가드너가 이청용에게 후방에서 롱패스를 날린 것이 옆줄 아웃 되었던 장면에서 알 수 있듯, 후방에서 이청용에게 수준급의 공격 지원을 하지 못했습니다. 맨유의 긱스-발렌시아가 중앙 미드필더와 좌우 풀백으로부터 정확하고 활발한 패스 지원을 받는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입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뻥축구 위주의 공격을 펼치기로 유명한 볼튼에서 이청용의 존재감은 각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볼튼은 이청용 교체 이후 공격의 실마리를 전혀 풀지 못했습니다. 좌우 측면 공격과 데이비스 중심의 공격이 맨유 수비진에 완전히 막히고 긱스의 패싱력에 농락당하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후방에서 전방쪽으로 부정확하게 공을 띄우는 뻥축구 빈도가 늘어나면서 팀 공격에 위력이 떨어졌습니다. 게리 멕슨 감독이 이청용을 교체 시켰던 것이 결국 악수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청용의 교체는 선수 보호차원이었기 때문에 감독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판단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이러한 이청용의 활약은 멕슨 감독의 신임을 얻기에 충분합니다. 멕슨 감독은 맨유전을 앞둔 지난 15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청용의 맨유전 선발 출전을 공언했을 정도로 두꺼운 신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청용은 최근 4경기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해 주전을 꾀찼고 그 사이에 있었던 지난 14일 세네갈전에서는 2도움을 올리며 가공할 오름세를 타고 있습니다. 지금의 오름세가 앞으로 볼튼의 붙박이 주전으로서 꾸준히 단련되면 지금보다 훌쩍 성장할 것임에 분명합니다. 맨유전서 보여준 이청용의 '대박 가능성'이 이제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