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2009/10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B조예선에서 2연승을 기록중입니다. 지난달 16일 베식타스(터키) 원정에서 1-0으로 승리했으며 1일 볼프스부르크(독일)와의 홈 경기에서는 2-1 역전승을 거두며 16강 조기 진출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2경기에서의 승리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아쉬움이 있는게 사실입니다. 2경기 모두 경기 내용이 낙제점이었기 때문이죠. 베식타스전에서는 공격 옵션들의 마무리 미흡속에 어렵게 경기를 풀었더니 후반 32분 폴 스콜스의 세컨슛으로 간신히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볼프스부르크전에서는 미드필더진의 패싱력이 전체적으로 좋지 못한데다 공격수들이 상대 수비를 위협할 수 있는 임펙트가 부족 했습니다. 긱스-캐릭의 골이 없었다면 2-1 승리는 없었습니다.
2경기에서 나타난 공통점은 웨인 루니의 공격 역량을 끌어 올리는 '루니 시프트'가 상대팀에게 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루니는 베식타스전과 볼프스부르크전에서 상대 수비수들의 밀착 견제를 받은 끝에 골을 추가하지 못했습니다. 2경기에서 총 8개의 슈팅을 날렸지만 상대의 집중적인 압박을 이겨내기 위해 많은 힘을 소모한 탓에 상대 골망을 흔드는 날카로움이 부족했습니다. 상대 수비를 흔드는 파괴력도 프리미어리그에서의 경기력에 비해 세기가 떨어졌습니다.
루니는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7경기에서 6골을 넣으며 '호날두 없는' 맨유의 새로운 에이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하지만 맨유와 챔피언스리그에서 상대하는 팀들은 '루니를 철저히 마크해야 한다'는 수비 작전을 들고 나왔습니다. 루니를 막아야 맨유전에서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계산이죠. 그래서 루니는 베식타스전에서의 부진으로 후반 18분에 교체 되었고 볼프스부르크전 종료 이후에는 해외 축구 언론사 <골닷컴 영문판>으로 부터 맨유 선수 최저 평점인 5점을 부여 받았습니다.
그런 루니가 상대팀 견제에서 벗어나려면, 루니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공격수의 역할이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루니와 간격을 좁히면서 상대 골문쪽으로 침투하면, 루니에게 집중된 상대팀의 수비를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 두 경기에서는 이러한 공격 전개가 미흡했습니다. '나니-루니-발렌시아' 스리톱으로 짜인 베식타스전에서는 나니-발렌시아의 경기 운영이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나니는 왼쪽 측면에서 루니와 여려차례 패스를 주고 받았으나 활동 반경이 왼쪽에 치우치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발렌시아도 나니와 마찬가지로 활동 반경이 오른쪽 측면에 쏠리면서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드는 경기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두 선수는 루니의 최전방 고립을 부추겨 팀의 공격 마무리를 떨어뜨렸습니다.
볼프스부르크전에서는 전반 20분까지 마이클 오언, 그 이후에는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루니의 투톱 파트너로 기용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언은 발목 부상으로 일찌감치 교체 되었고 베르바토프는 루니와 활발히 호흡을 주고받기 보다는 좌우 측면과 최전방을 번갈아가며 동료 선수들과 패스 플레이를 하기에 바빴습니다. 팀에서는 쉐도우 스트라이커를 맡고 있지만 루니의 공격을 보조하는 역할보다는 팀 공격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패스로 경기를 풀었습니다.
그래서 맨유 미드필더들은 베르바토프가 상대 수비수들이 밀집된 공간에서 찔러주는 짧은 패스를 이어받아 공격적인 경기 운영을 펼쳤습니다. 후반 33분 캐릭의 역전골 과정도 베르바토프가 아크 왼쪽에서 턴 동작으로 긱스에게 패스를 연결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던 장면입니다. 문제는 루니와의 엇박자 입니다. 베르바토프는 긱스-캐릭과 짧은 패스를 주고 받으며 상대 수비진을 위협했지만 루니는 베르바토프의 지원이 미비한 상황에서 골을 노려야 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지난 시즌부터 드러난 문제였지만, '루니-베르바토프' 투톱의 호흡은 그리 좋지 못합니다. 두 선수 모두 쉐도우 성향이기 때문에 서로의 동선이 겹치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올 시즌에는 루니의 활동 반경이 최전방에 고정되고 베르바토프가 측면과 중앙을 번갈아갔지만, 오히려 루니와 베르바토프 사이에서 연결되는 패스 전개 횟수가 적은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루니가 프리미어리그에서 6골을 넣은 것은 2선에서 날카롭게 찔러주는 공격 전개와 세컨슛, 페널티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물론 '루니-베르바토프' 투톱의 이름값을 놓고 보면 2000년대 중반 토트넘에서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던 '로비 킨-베르바토프' 투톱에 못지 않습니다. 하지만 루니는 킨이 아닙니다. 킨은 베르바토프의 골을 돕는 역할에 초점을 맞추면서 경기했지만 루니는 골을 넣어야 하는 선수입니다. 맨유가 루니의 역량을 키우려면 베르바토프가 '루니를 위해' 희생할 필요가 있고, 루니가 막히면 베르바토프가 해결사의 몫을 짊어져야 합니다. 2007/08시즌 호흡을 맞췄던 '루니-테베즈' 투톱의 역동성을 베르바토프에게 기대할 수 없는 만큼, 베르바토프가 루니의 공격 연결 고리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에이스의 공격 의존도가 팀에서 지나치게 높은 것은 문제 있습니다. 하지만 에이스의 능력을 감소시키는 공격 전술도 문제 있습니다. 맨유의 루니 시프트가 완성 단계에 진입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면 올 시즌 다관왕 행보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