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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발렌시아, 미들라이커로 진화하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측면 미드필더를 맡고 있는 박지성과 안토니오 발렌시아에게는 두드러진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골 부족' 입니다. 박지성과 발렌시아는 지난 시즌까지 세 시즌 동안 각각 79경기 10골 4도움, 90경기 7골 8도움(위건 시절을 말합니다.)을 기록했습니다. 윙어도 득점력이 요구되는 포지션임을 상기하면 두 선수 모두 골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올 시즌은 다릅니다. 맨유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대체자를 영입하기 위해 프랑크 리베리(바이에른 뮌헨) 영입에 나섰으나 선수 본인이 잉글랜드행을 원하지 않아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발렌시아는 득점력이 부족하고 이타적인 윙어이기 때문에 호날두 대체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호날두 같은 파괴적인 미들라이커가 없는 현 상황에서는 공격수에게만 집중되지 않는 새로운 공격 루트가 필요합니다. 측면과 중앙, 최전방을 부지런히 움직일 수 있는 박지성과 발렌시아가 '미들라이커(스트라이커처럼 많은 골을 넣을 수 있는 미드필더)'로 진화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박지성-발렌시아, 골이 요구되는 이유

맨유에게 있어 2009/10시즌 프리미어리그 개막전 버밍엄 시티전은 전력 강화의 중요성을 일깨운 경기였습니다. 버밍엄을 상대로 슈팅 숫자 30-7(유효 슈팅 11-2), 볼 점유율 63-37(%)의 우세를 점했음에도 1골에 그친 것은 공격력에 문제가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상대의 밀집 수비를 벗겨내지 못한 전략의 미스와 나니-베르바토프의 부진이 아쉬웠지만 그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웨인 루니쪽으로 쏠리는 공격 루트 입니다.

루니가 맨유 공격의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맨유가 지난 시즌까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의존하는 공격을 펼쳤다면 올 시즌에는 루니의 공격 역량에 비중을 늘리고 있습니다. 이날 버밍엄전에서도 그랬습니다. 루니는 10개의 슈팅을 날리며 팀 전체 슈팅 중에 3분의 1을 도맡았고 그 중 1개의 슈팅이 골로 연결 됐습니다. 폴 스콜스가 5개, 나니-베르바토프는 3개의 슈팅을 기록했으니, 루니의 슈팅 비중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루니에게 쏠린 공격 루트는 독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맨유는 버밍엄전에 이어 앞으로도 루니의 출중한 공격 역량을 중심으로 경기를 운영하겠지만 상대팀 입장에서는 '루니를 막으면 승산있다'는 자신감을 얻어 루니 봉쇄를 위해 총력을 펼칠 것입니다. 호날두가 지난 시즌 리그 9경기 연속 무득점 부진 및 상대팀 선수들의 집중 견제속에 이름값을 다하지 못했던 것 처럼 루니도 고전할 수 있습니다. 베르바토프가 타겟맨으로서 제 구실을 다하지 못했고 마이클 오언이 그동안 잦은 부상으로 고생했던 전적이 있음을 감안하면 루니의 공격 비중이 커질 수 밖에 없지만 반대로는 루니의 부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럴수록 미드필더들의 득점력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최근 프리미어리그는 공격수 못지 않은 득점력을 지닌 미들라이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득점 순위 상위권에서도 미들라이커의 이름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프랭크 램퍼드(첼시) 스티븐 제라드(리버풀) 스티븐 아일랜드(맨시티) 애슐리 영(아스톤 빌라)이 바로 그들입니다. 미들라이커 뿐만은 아닙니다. 빅4의 좌우 윙어들은 저마다 화려한 득점력을 주무기로 삼고 있습니다. 리버풀의 리에라-카윗, 아스날의 아르샤빈-벤트너(또는 월컷), 지난 시즌 첼시 4-3-3의 말루다-아넬카(올 시즌에는 윙어없는 전술을 쓰고 있죠.) 조합이 그 예 입니다.

맨유도 불과 몇년 전까지는 걸출한 미들라이커를 보유했습니다. 긱스-스콜스-베컴이 한 시즌에 10골 정도 몫을 해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호날두가 없고, 긱스-스콜스의 득점력은 예년에 비해 위력을 잃었고, 나니-안데르손이 정체된 기량을 나타내면서 마땅한 미들라이커가 없는 상황입니다. 특히 안데르손은 2년 전 스콜스를 대체하기 위해 영입된 선수지만 아직까지 공식 경기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했습니다.(지난달 아우디컵 보카 주니어스전에서는 프리킥 골을 넣었으나 프리시즌 경기였죠.)

그래서 퍼거슨 감독은 지난달 31일 잉글랜드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를 통해 "과거의 맨유는 스콜스-긱스-베컴이 항상 한 시즌에 약 10골 정도 넣었다. 그러나 미드필더진에서 나오는 골들이 최근 몇 년간 줄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겠다. 박지성-나니-발렌시아, 추가로 웰백과 마케다까지 40골 넣기를 바란다"며 박지성과 발렌시아, 나니에게 많은 득점력을 요구했습니다. 나니는 이미 버밍엄전에서 증명된 것 처럼 백업 멤버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기 때문에 박지성-발렌시아의 몫이 중요하게 됐습니다.

박지성-발렌시아가 득점력을 요구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두 선수가 꾸준히 골을 넣어야 루니에게 쏠린 득점 루트를 분산시키고 팀 공격의 균형이 잡히기 때문입니다. 상대팀 선수들이 루니에 대한 집중적인 견제를 가하는 상황에서 박지성-발렌시아의 득점포가 터지면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공격 장면을 연출할 수 있고 맨유의 공격이 탄력을 얻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맨유의 공격은 한 번 제대로 터지면 걷잡을 수 없이 상대 골망을 흔들고 또 흔들려는 분위기에 강하기 때문에 박지성-발렌시아의 득점력이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박지성-발렌시아는 공격수들의 득점력을 도와주는 이타적인 활약에만 충실해도 됩니다. 하지만 공격수가 골을 넣는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11명의 선수 중에서 2명이 골 넣는 역할을 전담하면 상대의 압박 숫자가 늘어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팀 전체의 공격력을 끌어 올리기 어렵습니다. 두 선수의 득점력이 요구되는 것, 그리고 미들라이커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맨유는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을 쓰는 팀이고 미드필더 전원이 로테이션 형태로 경기에 출전하고 있습니다. 박지성-발렌시아는 골이라는 임무가 추가되는 부담이 있지만 로테이션 효과 덕분에 몇몇 경기를 거르며 최상의 몸 상태로 경기에 임할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이미 경쟁에서 밀린' 나니-긱스-토시치가 자신의 백업 역할을 위해 측면에서 간헐적으로 중용되기 때문에, 두 선수는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고 골을 노릴 수 있습니다. 만약 두 선수가 로테이션이 없는 팀에 있었다면 늘어나는 임무 때문에 체력적인 과부하가 걸릴 것입니다. 박지성이 몇몇 경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박지성-발렌시아의 올 시즌은 득점력 향상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타적인 활약에서는 이미 검증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자신의 클래스를 빛낼 수 있는 무언가의 임펙트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미들라이커로 진화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