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

'6골 폭발' 아스날, 빅4 탈락론 잠재웠다

 

2009/10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신선함이 넘쳐났던 경기였습니다. 올 시즌 성적 부진에 시달릴 것으로 보였던 팀이 자신들의 입지를 위협할 팀을 상대로 대량 득점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원정에서 거둔 승리였기 때문에 값어치가 큽니다.

아르센 벵거 감독이 이끄는 아스날이 16일 오전 1시 30분(이하 한국시간) 잉글랜드 리버풀 구디슨 파크에서 열린 에버튼과의 프리미어리그 1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6-1의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전반 25분 데니우손의 빨랫줄 같은 오른발 중거리 선제골을 시작으로 후반 44분 에두아르도 다 실바의 세컨 골에 이르기까지 에버튼 골망을 여섯번이나 흔들었습니다. 아스날 주장이자 에이스인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이날 경기에서 2골 2도움을 기록했고 로빈 판 페르시는 2도움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데닐손-베르마엘렌-갈라스-에두아르도는 1골씩 뽑으며 팀의 6-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아스날, 6골 대승의 의미

아스날과 에버튼의 경기는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의 빅4 향방을 가늠하는 빅 매치 였습니다. 아스날과 에버튼은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각각 4위, 5위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아스날이 아데바요르-투레 이적과 중앙 미드필더 영입 실패 여파 때문에 5위로 추락할 가능성이 곳곳에서 제기 됐습니다. 반면 에버튼은 명성이 약하지만 내실이 강하기 때문에 맨체스터 시티-아스톤 빌라와 더불어 아스날을 제치고 빅4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거듭날 것으로 주목받은 팀 중에 하나였습니다. 아스날에게는 빅4 탈락론이 반갑지 않았던 만큼, 에버튼전에서 무언가 강력한 임펙트를 발휘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스날이 에버튼 원정에서 6-1로 승리한 것은 의미가 큽니다. 그동안 현지 언론과 여론에서 예상했던 빅4 탈락론을 '일시적으로' 잠재운데다 지난 시즌보다 전력이 약화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일시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아스날의 남은 37경기 성적이 어떻게 될지 속단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9개월의 장기 레이스에서는 돌발 및 예측 불허의 상황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어쩌면 에버튼전 6-1 승리가 반짝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즌 첫 경기에서 6-1 승리를 거둔 것 자체만으로도 '아스날이 쉽게 무너질 팀이 아니다'는 이미지를 심어준 것 만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아스날의 저력은 2007/08시즌 초반의 흐름과 흡사합니다. 당시의 아스날은 토트넘에 의해 빅4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은 팀으로 주목 받았습니다. '킹'이었던 티에리 앙리가 FC 바르셀로나로 떠났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스날은 시즌 초반부터 파브레가스의 가공할만한 공격력을 앞세워 리그 단독 1위를 질주했습니다. 비록 시즌 중반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1위 자리를 시소 싸움하다 후반에 밀리면서 3위로 마감했지만, 초반 돌풍의 영향으로 빅4 탈락론을 잠재웠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시즌 전 팀의 오름세를 이끈 파브레가스는 에버튼전에서 2골 2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6-1 대승을 이끌었습니다.

아스날은 에버튼전에서 4-3-3을 구사했습니다. 지난 시즌에는 4-2-3-1과 4-4-2를 골고루 썼지만 이번 프리시즌에서 4-3-3을 꾸준히 연마하여 체질 개선을 통해 성적 향상을 꾀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무엇보다 니클라스 벤트너의 오른쪽 윙 포워드 기용이 신선했습니다. 벤트너는 193cm의 장신임에도 빅맨 역할보다는 오른쪽 측면에서 화려한 발재간과 빠른 순발력으로 상대 수비수들을 흔드는데 바빴습니다. 이 과정에서 원톱인 로빈 판 페르시의 문전 돌파와 골 기회를 돕는 유기적인 공격 형태를 그리면서 포지션 변신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벵거 감독이 벤트너를 측면 옵션으로 쓴 것은 '미완의 대기'인 그의 잠재적인 공격 본능을 완전히 끌어 올리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중원은 여전히 아쉬움에 남았습니다. 아스날이 전반 25분 데니우손의 선제골로 앞서가기 전까지 에버튼에게 경기 내용에서 끌려다닌 원인이 중원이었기 때문이죠. '데니우손-송 빌롱'으로 짜인 더블 볼란치는 공격 활동 반경을 넓히지 못해 상대 미드필더들의 압박에 고전을 면치 못했고 역습 차단까지 실패하면서 팀 밸런스의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그 여파는 공격형 미드필더인 파브레가스와 '아르샤빈-판 페르시-벤트너'로 짜인 스리톱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는 문제점이 나타났고 90분 내내 졸전을 펼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스날의 불안을 잠재운 것은 데니우손의 '뜬금 골' 이었습니다. 데니우손은 페널티박스 바깥에서 벤트너 오른쪽 돌파-파브레가스 스루패스를 받더니 상대 수비의 틈이 벌어진 상황에서 강력한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에버튼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데니우손의 한 방은 에버튼이 주도하던 경기의 분위기를 아스날 페이스로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아스날은 전반 37분과 41분 세트 피스 상황에서 '센터백 듀오' 베르마엘렌-갈라스가 차례로 골을 넣으며 전반전을 3-0으로 마쳤습니다. 비록 중원 싸움에서 밀렸지만 어느 순간에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결정력이 탁월했기 때문에 전반전에 날린 4개의 슈팅 중에 3개를 골로 연결 시켰습니다. '아스날전 승리'를 벼르던 에버튼 선수들의 의욕은 전반 막판에 꺾이고 말았습니다. 

몇몇 팀들은 원정 경기에서 3-0으로 앞서면 그 이후부터 수비 중심의 전술로 선수들의 에너지를 아끼게 합니다. 그러나 아스날은 오로지 공격 본능에 충실하는 팀입니다. 후반전에도 거침없이 화력을 뿜으며 에버튼의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후반 2분 판 페르시의 빠른 역습 과정에서 터진 파브레가스의 골은 0-3 스코어를 뒤집겠다는 에버튼의 의욕을 또 한번 무너뜨리는 결정적 한 방 이었습니다.

파브레가스의 다섯번째 골은 그야말로 기가 막혔습니다. 아스날 진영 중앙에서 골키퍼 마누엘 알무니아의 롱드로잉을 잡자마자 에버튼 골문 앞까지 55m를 드리블로 전력질주하며 오른발 중거리슛을 성공 시켰습니다. 전반전 같았으면 에버튼 중원의 탄탄한 압박에 차단 당했을 장면이었지만, 아스날이 대량 득점으로 에버튼과의 기선 싸움에서 확실히 압도했기 때문에 파브레가스의 드리블 돌파가 빛났던 겁니다. 그리고 에두아르도의 여섯번째 골 장면은 아르샤빈의 슈팅이 오른쪽 골대를 맞고 굴절된 것을 틈타 넣은 '행운'이 따랐기에 가능했습니다. 경기 종료 직전까지 공격 모드에 충실했던 댓가가 6-1 승리의 값진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아스날의 기세가 오는 30일 맨유와의 원정 경기를 비롯해서 앞으로 계속 이어지면 올 시즌 1위 돌풍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근 세 시즌 동안 외부로 부터 빅4 탈락론에 시달렸던 아스날의 저력은 에버튼전 6-1 대승을 통해 끈끈하고 강하다는 것을 확인 시켰습니다. 첫 스타트를 잘 끊었다면, 이제 남은 것은 9개월의 장기 레이스와 남은 37경기를 성공적으로 보내느냐의 여부입니다. 다섯 시즌째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던 벵거 감독의 지도력을 재발견 할 수 있는 기회가 다가올지 앞으로의 행보가 흥미진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