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 최종예선 이후에 치른 첫 평가전에서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두며 월드컵 본선 16강 진출을 향한 자신감을 쌓았습니다.
한국은 12일 저녁 8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서 후반 38분 박주영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경기 시작 후 83분까지 팽팽한 공방전을 주고 받았으나 박주영의 결정적인 '한 방'이 팀의 값진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이로서 한국은 파라과이전 승리로 1999년 브라질전 1-0 승리 이후 10년 동안 이어졌던 남미 징크스에서 벗어났습니다. 한국은 10년 동안 남미팀과 11번의 경기를 치렀으나 승리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파라과이전에서 박주영의 결승골로 승리를 거두면서 남미팀을 상대로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습니다.
패스의 중요성 깨달은 전반전
한국은 경기 초반부터 중원 장악과 볼 점유율에서 우위를 보이며 전방에서 여러차례의 공격 기회를 잡았습니다. 전반 3분과 5분 이동국과 이영표가 파라과이 골문을 겨냥하는 슈팅을 날리고 미드필더들이 공격수들에게 활발한 전방 패스를 연결하면서 분위기를 주도했죠.
반면 파라과이는 초반부터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원정 경기다보니, 선수들끼리 서로 가볍게 공을 돌리면서 컨디션을 조절하는 모양새였습니다. 미드필더 지역에서 공을 잡으면 한국 수비의 틈이 벌어지는 타이밍을 노려 역습 공격을 펼치겠다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었습니다. 특히 전반 9분 중앙 미드필더가 '조용형-이정수'로 짜인 한국의 중앙 수비 간격이 벌어지자마자 공격수의 침투를 돕기 위해 전진패스를 연결했던 것이 한국 입장에서 아찔한 위기로 이어졌습니다. 비록 파라과이의 오프사이드로 끝났지만, 한 순간의 경기 상황 대처 부족이 실점으로 직결 될 수 있음을 선수들이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은 전반 중반과 25분 이후에도 변함없이 활발한 공격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소집기간이 짧고 박지성-이청용이 빠진 공백 때문에 '효율성'에서 여러차례 약점이 드러났습니다. 선수들은 공격 전개시의 세밀한 플레이에서 정확성과 날카로움이 부족했습니다. 미드필더진과 투톱 공격수의 간격이 넓다보니 그 사이의 공간에서 상대 수비에게 길목이 막혀 빼앗기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그래서 좁은 공간에서 상대의 압박을 받으면 움직임이 금새 약해지면서 공격 활로를 찾지 못해 적극적인 골 기회를 창출하지 못했습니다. 선수들이 자기 공간에서 가만히 있으려는 모습을 보이다보니 공격의 역동성이 떨어졌고, 상대에게 뻔히 읽히는 공격 전개를 일관 했습니다.
하지만 경기가 무르익을수록 선수들의 손발이 어느 정도 맞춰지자 공격 전개가 점차 매끄러워졌습니다. 미드필더진이 전방으로 올라오면서 공격수들과의 간격이 좁혀졌고, 그 과정에서 패스를 활발히 주고 받으며 상대 압박을 한꺼풀씩 벗겨냈습니다. 전반 40분 이동국, 44분 이근호가 전방으로 침투하는 동료 선수를 향해 열어줬던 패스가 상대 수비의 뒷 공간이 뚫리는 위협적인 장면으로 이어져 슈팅을 날릴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잡았습니다.
'이동국-이근호' 투톱도 이 때부터 경기력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전반 초반과 중반에는 서로 동선이 겹치면서 전반적인 공격력이 반감되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전방 활동폭을 넓히고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팀 공격의 유기적인 변화를 이끌어 냈습니다. 두 선수의 쉴 새 없는 움직임은 미드필더들의 적극적인 공격 가담으로 연결되어 패스가 서로 맞아 떨어지는 긍정적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패스 정확도가 71%(전반 30분)에서 75%(전반 종료)로 향상되는 데이터가 이를 증명합니다. 현대 축구에서 강조되고 있는 패스가 얼마만큼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은 전반전 이었습니다.
박주영의 한방으로 희비 가른 후반전
한국은 후반 시작과 함께 이동국-김치우-오범석이 빠지고 박주영-조원희-강민수가 교체 투입 되었습니다. 특히 이동국이 벤치로 들어간 것은 허정무 감독으로부터 날카로움과 적극성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동국-이근호 투톱의 호흡이 전반 막판에 잘 맞아 떨어졌지만 그 타이밍이 늦다보니 허 감독이 이를 불만족스럽게 받아들인 모양입니다. 박주영은 이근호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기 때문에, 허 감독이 이근호의 파트너로서 이동국보다 박주영에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보입니다.
박주영은 후반 3분 페널티박스 바깥 중앙 먼 거리에서 빨랫줄 같은 중거리슛을 날리는 인상적인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비록 공이 상대 골키퍼 정면으로 향하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분위기 싸움에서 한국이 파라과이를 움츠리게 하는 임펙트를 남겼다는 점에서 소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반 16분 이근호가 빠지고 조동건이 교체 투입된 것, 기성용과 조원희가 오른쪽 측면과 중앙을 번갈아 가면서 미드필더들과 공격수들의 간격이 다시 벌어지는 문제점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짧은 패스보다 긴 패스가 늘어나면서 상대 수비가 전열을 가다듬는 타이밍을 벌어주었고, 전방 패스까지 끊기면서 공격 기회를 내주는 조직력의 문제점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후반 23분 염기훈이 아크 왼쪽에서 날린 중거리슛은 무모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동료 선수와의 유기적인 패스를 통해 상대 수비의 빈 틈을 찾아 골 기회를 노려야 하나, 상대 수비를 뚫지 않은 상황에서 힘이 지나치게 들어간 슈팅을 날린 것은 공격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문제점이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 미드필더들과 수비수들의 압박은 경기 내내 인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중앙 미드필더들의 한 박자 빠른 길목 차단과 끈질긴 수비 능력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 했습니다. 전반전에는 김치우-김정우, 후반전에는 김정우-조원희 조합이 상대 중앙 공격을 철저히 차단하고, 공격 침투 공간에 미리 다가서서 길목을 막으면서 상대 공격의 역동성을 떨어뜨렸습니다. 파라과이가 후반 중반에 3-5-2에서 3-6-1로 전환하면서 중앙 공격을 강화한 시점에는, 좌우 윙어에 포진한 이승현과 기성용이 김정우-조원희와의 간격을 좁히면서 압박에 가담했습니다. 상대 공격에 따라 위치를 변화하면서 동료 선수의 압박을 돕는 플레이가 이날의 소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포백의 수비 능력은 무난했다는 평가입니다. 이영표-조용형-강민수-이정수(전반전에는 이영표-조용형-이정수-오범석)로 짜인 포백은 전반전에 이어 후반전에도 상대 공격 옵션을 철저히 마크하고 몸싸움에서도 우위를 점하는 모양새 였습니다. 이영표와 이정수는 측면 뒷 공간에서의 안정적인 위치 선정으로 상대에게 측면 공격 기회를 내주지 않았고 상대 공격이 중앙으로 쏠리면 페널티 박스 중앙쪽으로 활동 반경을 이동하여 센터백들에게 힘을 불어 넣었습니다. 다만, 후반 25분이 경과하면서 수비진에서 부정확한 롱패스들이 하나 둘 씩 속출한 것은 아쉬움에 남았습니다.
한국과 파라과이의 팽팽한 접전은 결국 후반 막판에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파라과이가 한국의 압박 수비에 막혀 공격에 자신감을 잃어가던 사이, 한국은 후반 38분 박주영의 한 방에 의해 상대 골망을 가르며 승리를 굳혔습니다. 이승현이 파라과이 왼쪽 공간을 빠르게 치고 들면서 날린 왼발 사이드 슈팅이 상대 골키퍼의 손을 맞았고, 그 틈을 노려 문전에서 위치를 잡았던 박주영의 오른발 슈팅이 결승골로 이어졌습니다. 파라과이전에서 승리하겠다는 한국의 승리 의지가 막판에 이르러 빛을 본 것입니다. 전반 45분에는 이승현이 왼쪽 측면을 빠르게 파고든 것은 1-0 승리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한국은 파라과이전에서 1-0 승리를 거두고 10년 동안 이어졌던 남미 징크스를 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