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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의 역할 변화, 나니에게 위기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는 올 시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없이 프리미어리그 4연패에 도전합니다. 비록 커뮤니티 실드 첼시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1-4 패배로 우승에 실패했으나, 만약 리그 우승에 성공하면 호날두가 존재하던 시절보다 더 값진 결과를 거둘 것입니다.

특히 첼시전에서 측면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했던 박지성과 루이스 나니는 팀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떠맡고 있습니다. 호날두와 똑같은 포지션에서 뛰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팀에서의 비중을 넓혀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죠. 맨유가 이미 이적시장에서 새로운 선수 영입을 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은 터라, 두 선수가 시즌 내내 얼마만큼 팀에 공헌하느냐에 따라 맨유의 우승이 결정될 전망입니다.

맨유는 커뮤니티 실드에서 호날두 공백에 대한 아쉬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커뮤니티 실드는 맨유의 리그 4연패를 위한 디딤돌이자 과정이기 때문에 한 경기만으로 맨유의 우승을 섣불리 에상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무엇보다 박지성과 나니의 경기력이 눈에 띄었습니다. 박지성은 공수 양면에 걸쳐 팀 전력의 고리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나니는 전반 10분에 선제골을 넣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활약상에서는 두 선수의 희비가 서로 엇갈렸습니다. 박지성의 달라진 역할은 나니에게 이로울것이 못됩니다.

첼시전, 박지성-나니의 엇갈린 희비

잉글랜드 공영방송 BBC는 지난 8일 맨유의 첼시전 예상 스쿼드에 박지성의 이름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박지성은 현재 부상중인 에드윈 판 데르 사르, 웨스 브라운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컨디션 저하로 인한 결장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은 현지 언론의 추측 보도를 뒤로하고 첼시전에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하여 75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습니다. 최전방과 중원, 그리고 오른쪽 측면을 부지런히 오가는 프리롤 역할을 맡아 팀 전력의 활력소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무엇보다 역할 변화가 눈에 띱니다. 박지성은 기존에는 측면에서 돌파를 하거나 최전방에서 빈 공간을 창출하는 임무를 소화했지만 이날 첼시전에서는 동료 선수들 사이에서 공격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습니다. 전반 15분에는 오른쪽 측면에서 자신의 앞선에 있던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에게 재빠르게 전진패스를 연결했던 것이 첼시의 허리라인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졌고, 공은 베르바토프-루니를 거쳐 문전 깊숙히 공격에 가담한 자신에게 향해 가위차기 슈팅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비록 페트르 체흐의 선방으로 골망을 흔들지 못했지만, 패스 한 방으로 팀의 공격 기회를 유도하는 모습은 이전의 경기력에서 보기 드물었던 장면이었습니다.

전반 17분 상황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박지성은 첼시 페널티박스 바깥 중앙 지점에서 베르바토프와 2:1 패스를 주고 받으면서 상대 미드필더진의 활동 반경을 흐트러 놓았습니다. 그 이후 베르바토프의 슈팅이 체흐의 몸에 맞았고 박지성이 세컨 볼을 노려 슈팅을 시도했지만 상대 수비의 발에 걸려 골을 놓쳤습니다. 측면과 중앙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프리롤 역할로 동료 선수에게 골 기회를 밀어주는 모습, 그리고 이전보다 간결하고 빨라진 패스 타이밍과 정확도가 인상적이었던 장면이었습니다. 전반 25분과 27분에는 문전에서 슈팅까지 시도할 만큼, 골에 대한 과감성이 돋보였습니다.

박지성이 첼시전에서 맹활약을 펼친 결정적 배경에는 공간 창출이 있었습니다. 이날 첼시는 '말루다-미켈-에시엔'으로 짜인 미드필더 진영을 구성하여 수비진과의 간격을 좁혀 수비 공간을 빽빽히 메우는 수비 전술 카드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에 박지성은 오른쪽에서 최전방쪽으로 활동 공간을 파고드는 과정에서 상대 미드필더진과 수비진 사이의 빈 공간을 잘 찾아 들어갔습니다. 그 결과가 전반 17분 베르바토프의 슈팅 상황으로 이어졌고, 첼시가 전반 내내 중원에서 맨유 선수들의 전방 압박에 막혀 공격 및 역습의 활로를 찾지 못하는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주로 강팀과의 경기에 선발 투입시키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수비 가담 또한 돋보였습니다. 박지성은 맨유 왼쪽 공간을 파고드는 말루다를 철저히 견제하여 상대 공격 활로 차단에 주력했습니다. 직접 공을 빼앗으려는 무리한 동작을 피하고 상대의 전방 침투 공간을 미리 읽으며 길목을 봉쇄했습니다. 말루다는 박지성과 맞닥드리는 순간부터 전방 돌파가 주춤해졌고 첼시의 공격 템포가 끊어지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첼시의 왼쪽 공격이 무수한 공간 돌파 시도에 비해 효율이 떨어진 것은 박지성의 출중한 수비력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박지성은 비록 전반전에 공수 양면에서 많은 체력과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후반전에 활동력이 저하되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컨디션과 체력을 100% 끌어올리면 올 시즌 내내 좋은 활약을 펼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맨유에서 극심한 부진으로 고전했던 경기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기 때문에, 올 시즌에도 팀을 위해 끝없이 헌신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첼시전에서 공격적인 비중이 늘어나면서 올 시즌 '수비형 윙어'의 이미지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여담이지만, 박지성이 12일 A매치 파라과이전에 차출되었다면 시즌 초반 내내 컨디션 저하로 고전했을 겁니다.)

반면 나니는 선제골만 넣었을 뿐 경기 내용이 미흡했습니다. 전반 10분에 첼시 왼쪽 진영에서 이바노비치-에시엔을 뚫고 상대 골망을 흔들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지난 시즌의 경기력으로 '되돌이표' 되었습니다. 박지성의 프리롤과 루니의 빠른 볼 배급을 앞세운 역습 템포에 따라가지 못해 왼쪽 공간에서 팀 공격 기회를 놓치는 것은 물론, 무리한 개인 돌파와 불필요하게 공을 끄는 모습은 팀에 이로운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첼시 수비진이 진영을 구축하는 시간을 벌어주는 역효과로 이어졌죠. 자신의 약점인 동료 선수와의 연결 플레이는 여전히 낙제점 이었습니다.

물론 나니에게 필요한 것은 골이었습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자신에게 골을 원하기 때문에 자신의 출중한 득점력을 통해 첼시전 같은 강팀 경기에서 임펙트를 끌어올릴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나니의 득점력은 이미 맨유에서 검증 되었습니다. 지난해 3월 리버풀전에서 골을 넣은 경험이 있는 만큼, 강팀과의 경기에서도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첼시전에서 여전히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물론 골도 좋지만 그 이전에는 동료 선수와의 협력 플레이를 통해 팀 밸런스를 끌어올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맨유는 조직적인 팀 플레이를 근간으로 삼는 팀이기 때문입니다.

퍼거슨 감독은 지난 4월 29일 맨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나니는 운이 없다. 올 시즌 대부분 박지성이 보여준 활약은 완벽할 정도로 뛰어났고, 나니를 계속해서 밀어냈다"며 박지성이 나니와의 주전 경쟁에서 실력으로 이겨냈음을 밝혔습니다. 비록 득점력에서는 박지성이 나니보다 부족하지만 팀 내 입지에서는 박지성이 단연 우세입니다. 그 차이는 이번 첼시전에서 더 벌어졌습니다. 박지성은 역할 변화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늘리며 팀 전력에 힘을 보탰지만 나니는 골만 넣었을 뿐 여전히 정체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만약 박지성이 지난 시즌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면 나니의 입지에 이로울 것이 못됩니다. 박지성의 역할 변화는 나니에게 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