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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이동국의 대표팀 합류를 확신하는 이유

 

올 시즌 정규리그 득점 1위(12경기 11골) 및 두 번의 해트트릭, 올해 정규리그-피스컵 코리아-FA컵 17경기에서 14골을 몰아넣은 '사자왕' 이동국(30, 전북)을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국내 공격수 중에서 가장 출중한 득점 감각을 뽐내면서 '대표팀에 승선할 자격이 있다'는 팬들의 반응이 하나 둘 씩 쏟아졌지만, '이동국은 실력이 없기 때문에 대표팀에 합류할 자격이 없다'는 팬들의 주장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양상입니다.

이동국을 둘러싼 논쟁은 허정무 감독의 인터뷰가 도화선이 됐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지난 6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동국이 넣은 11골 중에 자신이 만들어서 넣은 골은 많지 않다. 좀 더 날카로운 움직임이 필요하다. 서있는 플레이보다 만들어 낼 수 있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이동국의 경기력을 비판하며 대표팀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늬앙스의 발언을 했습니다.

이러한 허정무 감독의 발언에 축구팬들은 'K리그 득점 1위 선수를 왜 안뽑느냐?'는 질타의 목소리를 높였고, 또 다른 축구팬들은 '이동국의 대표팀 제외는 당연한 결과'라며 이동국의 경기력을 비판하는데 바빴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선수 선발 권한을 쥐고 있는 허정무 감독의 결정을 존중해야 합니다.

허정무 감독, '이동국 길들이기' 하고 있다

사회가 급변하게 변화하면서, 대중들의 반응이 빨리지는 요즘입니다. 축구판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K리그에서 몇 경기만 좋은 활약 펼치면 대표팀 승선 이야기가 불거지는 반면에 대표팀에서의 활약이 지지부진하면 하차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언론과 축구팬들 모두 그런 반응들을 쏟았지만 허정무 감독의 생각은 다릅니다.

허정무 감독은 지난 5월 4일 파주 NFC(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가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동국을 비롯한 몇몇 올드보이들의 대표팀 합류 가능성에 대해 "원래 실력있는 선수들 아니었느냐. 문은 항상 열려있다. 하지만 1~2경기 잘하고 골을 넣었다고 뽑으면 다른 선수들도 다 선발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여론의 성급한 반응을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더니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는 "항상 꾸준하고 대표팀에 필요한 선수만 기다리고 있다"며 이름값보다 소속팀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이는 선수들을 발탁하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러한 허정무 감독의 의도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선수라도 무작정 승선시키는 선발 방식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이동국의 대표팀 발탁을 우선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이동국은 최근 3년 동안 불의의 십자인대 부상 공백과 미들즈브러-성남에서 경기력 저하로 고전했던 선수입니다. 최근에 이르러 부활에 성공했을 뿐, 지금의 폼을 앞으로 꾸준히 유지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만약 현 시점에서 대표팀에 발탁하면 주전 경쟁에 대한 부담감으로 K리그에서 오름세를 달렸던 리듬이 끊어질 수 있는 불안 요소가 있기 때문에, 대표팀 감독 입장에서 이동국 발탁이 냉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대표팀 선발에 있어 소속팀 활약이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표팀 스타일에 맞지 않으면 태극 마크를 달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이동국이 K리그 득점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박주영-이근호' 같은 저돌적인 문전 돌파를 즐기는 성향의 선수와는 스타일이 맞지 않습니다. 이동국의 합류로 공격 옵션이 다양해지는 이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존 멤버와의 스타일 격차가 벌어지면서 팀 밸런스가 깨지는 문제점이 나타난다면 감독 입장에서 곤혹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허정무 감독이 이동국에 대한 경기력 문제점을 짚은 것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허정무 감독은 이동국을 관심 깊게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특정 인물에 대한 관심을 주는 것과 무관심은 엄연히 차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잘못하거나 성적이 좋지 않은 사람이 있을지라도 꾸짖거나 잔소리를 늘여 놓는 것은 그 존재가 잘 될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허정무 감독이 이동국에 대한 생각을 자세하게 밝혔던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이는 허정무 감독이 이동국을 길들이기 위한 차원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길들이기는 지난 2001년 히딩크 감독의 안정환 길들이기와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안정환의 스타의식이 팀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로 한동안 대표팀 엔트리에서 제외시켰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안정환은 팀 분위기를 빠르게 받아들이며 스스로 달라지기 시작했고 결국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 주역으로 거듭났습니다. 반면 허정무 감독은 이동국의 경기력이 대표팀 경기 스타일과 맞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경기력을 좀 더 가다듬을 것을, 그리고 좀 더 꾸준한 활약을 펼칠것을 간접적으로 주문했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지난 6일 인터뷰에서 "이동국을 올림픽대표팀 시절부터 꾸준히 지켜봤고 앞으로도 계속 지켜볼 것이다. (인터뷰 앞에서 이동국의 선전이 반갑다고 말한 것에 대하여) 앞에서 반갑다고 이야기 했던 것도, 이동국이 대성하면 대표팀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며 언젠가 이동국을 뽑을 의사가 있음을 밝혔습니다. 자신이 지적했던 문제점을 이동국이 스스로 개선하여 대표팀에 발탁할 수 있는 명분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선수에게 보낸 것이죠. 물론 십자인대 부상 경력 및 올해 30세의 이동국에게는 자신의 스타일을 업그레이드 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선수의 기량이 하루 아침에 달라질 수 없는 것처럼, 이동국은 대표팀 합류를 위해 뼈를 깎는 각오로 허정무 감독이 요구하는 스타일로 바뀌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허정무 감독은 이동국을 잘 알고 있습니다. 10년 전 올림픽대표팀과 국가대표팀에서 이동국을 꾸준히 중앙 공격수로 기용했기 때문에 그의 스타일과 멘탈을 모를리 없습니다. 당시 여론에서 '이동국을 그만 기용하라'는 목소리를 높였을 만큼, 허정무 감독은 이동국에게 많은 출전 기회를 부여했고 당시 대표팀의 전술은 이동국을 중심으로 공격을 전개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랬던 허정무 감독은 6일 인터뷰에서 "대표팀 공격이 박주영-이근호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황선홍 같은 더 좋은 선수가 나온다면 발탁할 것이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이동국이 박주영-이근호와 치열한 주전 다툼을 벌일 수 있는 공격수가 되길 바란다는 속뜻으로 풀이됩니다. 감독 입장에서도 월드컵 본선까지 앞으로 11개월 동안 박주영-이근호 투톱만 밀고 나갈 수는 없기 때문에 두 선수에게 자극제가 될 수 있는 카드가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그 적임자가 바로 이동국이었습니다.

월드컵 본선이 11개월을 앞둔 현 시점에서, 이동국의 대표팀 발탁 논란은 성급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타이밍이라면 이동국 논란은 시의적절 합니다. 이동국이 대표팀 발탁 및 월드컵 본선 출전을 위해 K리그에서 심기일전을 다하여 반짝활약에 그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죠. 만약 어느 순간에 부쩍 올랐던 폼이 떨어지면 월드컵 본선에 뛸 자격이 없을 것입니다. 이동국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12년 동안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아공 비행기가 절실합니다. 여기에 허정무 감독이 자신에게 관심을 주고 있다는 것은, 언젠가 대표팀에 뽑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 시점에서 이동국의 대표팀 발탁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몇 개월 뒤 K리그에서 부쩍 좋은 폼을 보이게 될 이동국이라면 월드컵 본선에 뛸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할 것입니다. 이동국을 바라보는 허정무 감독의 속마음은 전자가 아닌 후자입니다. 허정무 감독 본인도 이동국의 대표팀 합류를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