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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한국 축구 발전 가로막는 3가지의 벽

 

여러분들은 한국 축구가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예전보다 나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통해 한국 축구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고 세계적인 축구 경기장만 10곳이나 있습니다. 그리고 박지성과 이영표를 비롯한 특급 스타들이 유럽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한국 축구의 인지도를 향상 시켰습니다. 또한 조기축구회의 비약적인 활성화를 통해 인조잔디 축구장들이 전국적으로 조성되고 있습니다. 저의 모교인 서울 모 중학교 운동장도 인조잔디 축구장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발전하는 것이죠.

하지만 한국 축구의 내면적인 현실은 아직도 갑갑합니다. K리그는 월드컵때만 반짝했을뿐(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에는 월드컵 특수가 없었죠. 그만큼 사람들이 냉정해졌다는 겁니다.) 발전 속도가 일본, 중국에 비해 더디게 진행되고 있으며 인천과 대구를 제외한 모든 구단들이 적자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국가 대표팀마저 '국민팀' 맨유의 열기에 밀린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축구 인프라 및 규모에서도 이웃 나라에 뒤쳐지고 있고, 체계적인 유소년 시스템도 정비되지 않았고, 일선 학교에서는 유소년 선수 구타 및 가혹행위가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게 제대로 발전한겁니까.

축구계에서 쓴소리 많이 하기로 유명한 김호 대전 감독은 늘 "한국 축구는 한일 월드컵때 경기장 10개 지은 것 빼고는 아무것도 발전된 것이 없다. 예전과 그대로다"는 말을 지겹도록 했습니다. 이는 한국 축구가 양질적으로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하지 못하고 있음을,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축구의 본 고장'인 유럽축구는 여전히 우리들이 부러워하는 대상입니다. 그들에 버금가는 레벨에 오르기는 커녕 일본과 중국에게 샌드위치로 밀릴 위험에 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라면, 한국 축구는 유럽처럼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시장적인 관점에서 바라 본 이유는 이렇습니다.

한일의 공통점은 프로축구<프로야구, 그런데 J리그는 왜 흥행할까?

한국과 일본 축구의 공통점은 자국리그가 프로야구 열기에 밀리고 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의 열기는 두말 할 필요 없이 대한민국 부동의 No.1이고, 일본 프로야구는 일본 국민중에 절반이 좋아하는 스포츠입니다. 특히 도쿄, 오사카, 나고야 같은 센트럴리그 팀들의 연고지와 삿포로에서는 프로야구의 열기가 프로축구를 능가하고 있습니다. 반면 K리그는 '텅 빈 관중'이라는 사람들의 인식속에 이렇다할 흥행을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평균 관중 대비 좌석 점유율 50%를 넘는 곳도 불과 몇 안됩니다. 한국 최고의 축구 수도로 꼽히는 수원 빅버드마저도 블루윙즈의 성적 부진과 지역 마케팅의 어려움으로 2만을 못채우고 있습니다.

J리그의 흥행 이유는 지역 연고주의가 확실하게 뿌리내렸기 때문입니다. 지역과 함께하는 경영 방식으로 지역 특색에 맞는 스포츠 마케팅은 물론이요, 지역 감정을 이용한 라이벌 구도까지 그려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지역별 선수 육성으로 걸출한 유스 인재들을 배출하는데 여념이 없지요. 프로야구의 인기를 의식하여 중소도시라는 틈새를 파고든 것도 성공적이었습니다. 가시마 앤틀러스의 연고지인 가시마의 인구수는 불과 5만에 불과합니다. 반면 K리그는 1983년 출범 부터 지금까지 잦은 연고지 이동으로 몸살을 앓아왔습니다. 지역 인구를 경기장으로 불러 모으기 위한 홍보 및 마케팅은 늘 꾸준하지 못해 제자리 걸음이었습니다. 수원 블루윙즈는 특이한 케이스인데, 수원 시민 단체들의 거센 반대로 경기 홍보 현수막 조차 제대로 못걸고 있습니다.

그리고 K리그가 프로야구에 밀리는 또 하나의 원인은 미디어 때문 입니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며칠에 한번꼴로 경기하는 K리그보다 3연전 형식의 프로야구를 선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야구는 방송차량 이동 및 중계도구 설치 및 철수가 축구보다 번거롭지 않으니까요. 또한 야구는 몇회초 몇회말을 거듭할때 마다 광고를 방영할 수 있지만 90분 전후반 제도로 끝나는 K리그는 그렇지 못합니다. 이제는 인터넷 생중계조차 야구가 축구를 능가하고 있지요. 일반인들 입장에서도 야구가 친숙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일부 방송사가 'K리그 텅 빈 관중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라는 편파 보도를 내보내고 있으니 K리그에 관중이 없다는 사람들의 인식이 머릿속에 박히고 말았습니다. 6만 6천명을 수용하는 대구 스타디움에 2~3만 관중 들어온 것도 흥행 실패입니까.

한국 축구, 규모에서 이웃나라에 밀리고 있다

K리그는 1983년 출범 당시 6개의 팀으로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팀의 숫자가 15팀으로 늘었으며 그 효과로 내셔널리그와 K3리그가 늘어섰습니다. 하지만 일본, 중국에 비하면 규모가 밀리고 있습니다. 1993년 출범한 일본 J리그는 1부 18팀, 2부 18팀 승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며 그 이후부터는 5~6부리그의 지역리그 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참고로 2005년 U-20 대표였던 황규환은 일본의 5부리그격인 도난SC에서 뛰고 있습니다.) 1994년 출범한 중국 슈퍼리그는 1부 16팀, 2부 13팀, 3부 16팀 체제의 승강제를 진행중입니다. 승강제는 커녕 승격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한국과는 다른 구조로서, K리그가 일본과 중국 리그의 클럽 경쟁력에 밀리는 실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특히 일본 축구의 유스팀 규모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중입니다. J리그는 1993년 출범 당시 유스팀 운영을 의무화했는데 그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유스팀들이 생겨나면서 우수한 축구 인재들을 여럿 배출하는 중입니다. 반면 K리그는 연령별 유스팀 시스템이 아직도 완성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축구는 지역리그 조차 꿈도 못꾸고 있는데 일본은 지역리그 창설까지 활성화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쿄 코토구에 거주중인 연서아빠님은 지난 4일 본 블로그에 "현재 도쿄에 있으며 아들 녀석을 지역 클럽에서 축구를 시키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코토구 지역만 해도 초등학생까지만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 클럽이 20개 가까이 됩니다. 물론 다른 사설 클럽도 상당히 많습니다만... 도쿄의 한 구만 해도 이렇게 많은데요...규모의 싸움에서 (한국이) 벌써 지고 가는 겁니다." 라는 댓글을 남겨 주셨습니다. 아무리 일본의 전반적인 유스 시스템이 학원축구가 아닌 취미로 즐기는 시스템이라고 할지라도 그 규모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이러한 광경이 현실화 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합니다.(댓글 남겨주신 연서아빠님께 고맙습니다.)

성인은 과다근무, 학생은 입시지옥, 어린이는 PC방...축구는 뒷전

K리그가 두드러진 흥행 성공을 하지 못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홍보 및 마케팅 부재입니다. K리그 정규리그 최다 우승(7회)을 자랑하는 성남이 2년 전,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홍보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다(홈경기 플랜카드 홍보가 전부)구단주의 불호령을 받았던 일화가 나돌 정도로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또 하나의 흥행 부진 이유를 거론하고 싶습니다. K리그의 흥행 저조는 한국 사회의 특징과 맥락을 같이하기 때문이죠.

한국의 성인들은 직장에서 일하느라 바쁩니다. 아직도 주6일제 근무를 고수하는 회사가 많은데다 잔업에 야근이 비일비재한 실정이니 다른 것을 신경쓸 틈이 없습니다. 심지어 살림에 바쁜 직장인은 투잡까지 하고 있습니다. 유일한 휴일인 일요일에는 고된 근무에 따른 피로를 풀거나 사람들과의 모임에 신경써야 합니다. 일본 같은 골든위크는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으며, 주5일제를 철저하게 지키고 4일제까지 도입한 선진 국가와는 차원이 다르죠. 이러니 축구장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중고등학생들은 입시지옥에 매달리면서 하루 종일 내내 공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축구장 한 번 가는것도 어른들에게 눈치 봐야 하는 실정이니(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축구를 가까이 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죠. 어린이들은 주말만 되면 PC방에 흠뻑 빠져있습니다. 한국의 놀이 문화 발달 때문에 축구 경기보다 게임에 매달리는 현실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주택가의 1km 반경에만 PC방이 10곳을 훌쩍 넘을 정도니까요. PC방에서 이용시간 다 채우면 또 다른 PC방에서 친구들과 게임하고 다른 PC방까지 찾을 지경이니 축구장과 가까이 하기 힘들죠. 그래서 한국 축구가 선진 국가처럼 비약적인 발전을 하기에는 여러가지 면에서 취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