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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12명 교체' 대표팀 평가전, 재미없다

 

언제부턴가 국가대표팀 경기에 대한 인기가 갈수록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한때는 한국 스포츠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상암 6만 관중 시대'도 열었지만 이제는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A매치가 열릴때 관중이 꽉차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 합니다. 심지어 월드컵 최종예선 같은 중요한 경기까지 말입니다.

이는 한국 축구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음을 증명하는 셈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에 닥친 과도기를 견디지 못했던 것이 여론의 냉대로 이어졌습니다. 졸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예전보다 두드러지게 발전된게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여론의 공통된 느낌으로는) 나중에는 한국 축구에 대한 실망적인 요소들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힌 것입니다. 특히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졸전으로 '축구장에 물 채워라'라는 말이 여론에 유행처럼 떠돌았던 것은 한국 축구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다행히 허정무호가 10~11월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선전하여 여론의 호응을 얻었지만 그 여파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특히 국가대표팀 평가전은 예전에 비해 열기가 가라앉았습니다. 지금의 월드컵 최종예선보다 관심이 시들해졌지요. 국내에서 열린 역대 A매치 최저 관중 1위(2008년 1월 30일 칠레전, 1만 5012명) 3위(2008년 9월 5일 요르단전, 1만 6357명)가 지난해에 열렸던 평가전 이었죠. 특히 지난해 9월 요르단전 관중은 그해 5월 같은 장소(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요르단전 5만 3000여명 관중과 비교하면 턱없이 초라합니다. 한때는 평가전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을 끌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물론 올림픽과 청소년 대표팀 경기의 열기도 예전보다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대표팀 평가전도 영향을 받는 현실에 직면했습니다.

과거에는 평가전 자체를 재미있게 즐겨 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평가전도 엄연한 국가대항전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가슴 졸이고 경기를 볼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이제는 축구에 대한 팬들의 눈이 높아지면서 평가전이 승패와 아무 의미 없는 경기라는 것을 잘 알게 됐습니다. 평가전에서 이긴다고 해서 실리적인 이득을 챙기는 것이 없기 때문이죠. 그저 해당 국가와의 역대 전적에서 승수가 높아질 뿐입니다. 일례로, 대표팀은 지난 2007년 6월말 이라크와의 평가전에서 3-0 완승을 거두었지만 7월 아시안컵 4강에서 이라크에게 승부차기 끝에 결승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평가전에서는 가볍게 이기더니 실전에서 힘을 못쓴것이죠. 평가전 승리의 가치가 떨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말았죠.

하지만 평가전이 재미없어진 본질적인 이유는 대표팀의 경기력과 밀접합니다. 요즘에는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를 치르기 이전에 평가전을 가지다보니까, '평가전은 전력 및 선수들의 컨디션 점검하는 경기'라는 인식이 쌓여가게 되었죠. 그것도 대표팀 스스로가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평가전을 치를 때마다 "평가전은 이기는 것보다 전력 점검에 초점을 맞추겠다"와 같은 래퍼토리의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오만전에서도 비슷한 늬앙스의 말을 했습니다. 경기 전에는 "오만과의 평가전에서 선수들을 풀 가동하겠다"고 하더니 경기 후에는 "선수들을 전체적으로 점검했다. 현재 컨디션을 알 수 있었고 6일 경기하는데 윤곽이 잡혔다"며 이기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았음을 스스로 알렸습니다. 물론 허 감독의 말은 당연히 맞는 말입니다. 최근에 치러지는 평가전은 월드컵 최종에선을 대비한 경기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소집 기간이 예전에 비해 짧아진 대표팀 입장에서는 평가전을 치르며 전력을 키워야 하는 입장입니다. 여기에 언론은 한술 더 떠서 '평가전은 승패와 아무 의미없다', '전력 노출은 피하는 것이 좋다'는 보도를 줄기차게 내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축구팬들의 반응이 시원찮습니다. 대표팀 선수들이 평가전에서 전력 및 컨디션 점검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실전에 비해 몸을 아끼는 경향이 많습니다. 공격 전개 및 패스 타이밍이 실전보다 한 박자 느리고 격렬하게 뛰지 않다보니 재미가 없어진 것이죠. 축구 매니아 관점이 아닌 일반인들 관점에서는 화끈하고, 박진감 넘치고, 골이 많이 나오고, 대표팀이 이기는 경기를 원합니다. 물론 평가전에서 그런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가 있지요.

최근에 평가전이 재미없어진 또 하나의 이유는 선수교체 빈도가 늘어났다는 점입니다. 후반전에 선수들을 계속 교체하다보니 경기를 보는 재미가 반감될 수 밖에 없습니다. 대표팀 감독 입장에서는 많은 선수들을 점검하기 위해 평가전에 골고루 투입시켜야 할 입장이지만 축구팬들 기분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특히 이번 오만전에서는 무려 12명의 선수를 교체하는 물량 공세를 펼쳤습니다. 25명의 대표팀 엔트리 중에서 11명이 선발로 뛰었고 12명이 후반전에 교체 투입되었죠. No.3 골키퍼 정성룡과 햄스트링 부상중인 신영록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열외없이 총출동한 것입니다. 잦은 교체로 경기를 보는 맥이 끊어지는데 평가전에 대한 재미가 떨어질 수 밖에 없지요.

그리고 아시아 팀들과 평가전이 잦은 것도 재미를 떨어뜨렸습니다. 한국이 비 아시아권 팀과 마지막으로 A매치를 치른 것이 지난해 1월 30일 칠레전인데 그 이후 1년 5개월 동안 줄곧 아시아 팀들과 싸웠습니다. 특히 최근 7번의 평가전에서는 요르단-우즈베키스탄-카타르-시리아-바레인-이라크-오만과 경기했습니다. 평가전 상대가 축구팬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하는 존재다보니 어쩔 수 없이 관심이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세계적인 강팀 혹은 중상위권에 속한 팀들과 싸운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요.

그 이유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시아 최종예선 및 지역예선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시아권 팀들과 상대하는 빈도가 늘어날 수 밖에 없었죠. 그런데 아시아 팀들과 1년 넘게 대결하다보니, 평가전에 대한 색다른 요소가 없어졌습니다. 이러니 팬들이 평가전을 지겨워 할 수 밖에 없죠.

최근에 평가전을 보는 느낌은 마치 연습경기를 보는 듯 합니다. 일반적인 연습경기와의 차이점이라면 일반 경기장에서 방송 중계를 하는 유무의 차이일 것입니다. 대표팀은 이기거나 화끈한 경기보다는 전력 및 컨디션 점검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언론은 전력 노출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 평가전에 대한 매리트가 줄어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평가전이 없어지면 안됩니다. 축구대회 및 경기를 홍보하는 스폰서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죠. 평가전에 대한 열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무언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임을 뼈저리게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