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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허정무의 선택, 제2의 세대교체 택했다



'허정무 감독은 올드보이들을 택할까? 영건들을 택할까?'

축구 대표팀 엔트리 발표가 있기 전까지, 여론의 궁금증은 허정무 감독이 과연 어떤 선수를 위주로 발탁 하느냐 였습니다. 올드보이라면 이동국, 최태욱 (이상 전북) 최성국(광주) 조재진(감바 오사카) 이천수(전남) 같은 선수들이었으며, 영건들이라면 유병수(인천) 양동현(부산) 김근환(요코하마 F. 마리노스) 신영록(부르사스포르) 윤준하(강원) 같은 혹은 A매치 경험이 짧거나 대표팀 발탁 경험이 없는 젊은 선수들이었습니다.

어쩌면 허정무 감독의 선택이 대표팀 선수 선발 발탁및 운영에 관한 장기적인 틀을 제시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노련한 선수들이 팀의 중심이 될지, 아니면 젊은 선수들의 똘똘 뭉친 패기를 선호할지 말입니다. 그것도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의 남은 3경기가 몰아서 열리는 오는 6월에 말입니다.

결국 허정무 감독은 영건들을 택했습니다. 올 시즌 K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낸 유병수와 양동현, J리그에서 경험을 쌓고 있는 김근환이 대표팀에 첫 발탁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표팀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선수인 신영록을 비롯해서 김형일(포항) 이강진(부산)이 재발탁 되었습니다. 그동안 올드보이로 거론되었던 선수 중에서는 유일하게 최태욱만이 다시 태극마크와 인연을 맺었을 뿐입니다. 부상중인 황재원(포항) 정성훈(부산) 강민수(제주)를 대신해서 영건들을 뽑은 것은, 적지 않은 의미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우선, 허정무 감독이 이동국과 조재진같은 올드보이들을 발탁하지 않은 것은 이들의 부활을 좀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입니다. 아직은 시즌 초반이기 때문에 이들의 맹활약이 일시적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동국-조재진-최성국은 영건 못지않게 실력이 뛰어나고 경험 또한 풍부하지만, 문제는 그동안의 행보가 꾸준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팀 감독이든 꾸준한 선수를 더 선호할 수 밖에 없지요.

이천수도 꾸준하지 못했지만, 실제로는 부상 후유증 때문에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한것이 맞습니다. 사타구니 안쪽 근육에 미세한 부상이 있기 때문에 대표팀 합류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난해 9월 A매치 북한전 합류 여파로 사타구니 부상이 악화되었던 전례가 있어서 대표팀 합류 여부가 다른 누구보다 신중할 수 밖에 없었죠. 반면 최태욱은 지난해부터 전북에서 슬럼프 탈출을 알리면서 경기력과 컨디션이 많이 올라왔기 때문에 허정무 감독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던 겁니다. 물론 이청용(서울)의 경기력 저하와 맞물려서 대표팀에 발탁되었던 것이죠.

허정무 감독이 영건들을 여럿 발탁한 것은 제2의 세대교체를 위해서입니다. 지난해 하반기에 세대교체에 성공했지만, 기존 선수에게 위기의식과 경각심을 일깨우고 어린 선수에게 당근을 주는 주전 경쟁 시스템을 유도하기 위해서죠. 그것도 월드컵 최종예선 3경기를 앞두고 진행한 것은 세대교체에 대한 타이밍과 흐름이 유연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표팀 경험이 짧은 영건들 같은 경우에는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기 위한 기량 점검 목적도 있겠죠. K리그 신인인 유병수와 해외에서 뛰고 있는 김근환, 신영록이 그런 케이스 입니다.

공교롭게도 허정무호가 치를 남은 3경기는 모두 중동과의 경기입니다.(UAE, 사우디, 이란) 중동 3연전에서 어떤 결과를 내느냐에 따라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전망이 가려지게 되는 것이죠. 그동안 고비때마다 한국 축구를 괴롭혔던 중동을 꺾으려면 상대팀 선수들을 확실하게 공략할 수 있는 카드가 필요합니다. 정성훈-이동국-조재진 같은 움직임이 활발하지 않은 선수들보다는(박주영-이근호에 비해서 말입니다.) 젊고 패기 넘치는 영건들이 제격입니다. 지난해 11월 사우디전과 지난 2월 이란 원정에서 영건들의 공헌도가 높았던 것도, 허정무 감독이 올드보이보다 대표팀 경력이 짧은 영건들을 발탁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 국가 대표팀에 첫 발탁된 유병수와 양동현, 김근환은 중동 3연전에서 다재다능하게 쓰일 재목들입니다. 유병수는 지난해 K리그 신인 드래포트 1순위을 통해 인천에 입단한 홍익대 출신 공격수 입니다. 올해 K리그 13경기에서는 6골 3도움을 올리며 일찌감치 대표팀 발탁이 확실시 되었습니다. 문전에서의 빠른 순발력과 상대 수비수들을 공략하는 기교를 자랑하며 인천팬들에게 '인천의 호날두'로 명성을 높였습니다. 아직은 섣부를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활약상을 계속 이어가면 '이근호-박주영' 투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합니다.

양동현은 그동안 부상과 인연이 많았던 '유리몸'입니다. 하지만 황선홍 부산 감독의 조련 속에 몸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기량 향상에 몰두한 끝에 올 시즌 부산의 확실한 주전 공격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올 시즌에는 10경기에서 3골 2도움을 기록했지만 '실속'에서는 부상중인 정성훈 못지 않습니다. 골보다는 타겟 플레이에 치중을 두면서 상대 수비수들을 흔드는데 주력하는 선수입니다. 발이 느린 사우디-이란의 중앙 수비를 공략하기에 제격인 이점이 있지만, 허정무 감독이 양동현의 기량 및 성장 가능성이 어떤지를 점검하는 차원에서 선발했을 가능성 또한 짙습니다.

김근환은 김형일과 더불어 부상중인 황재원을 대신해서 발탁 되었습니다. 일본 대표팀 수비의 핵이자 주장인 나카자와 유지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선수인데, 수비에서는 이미 건국대 시절과 올림픽대표팀 시절을 통해 충분한 검증을 받은적이 있었습니다. 김근환은 조용형-강민수-김진규-김치곤 같은 발이 느리기로 유명한 선수들과 달리 스피드가 빠른데다 192cm의 장신으로서 공중볼 장악력과 몸싸움이 뛰어납니다. 팀의 세트 피스 상황에서 여러차례 헤딩골을 넣었던 전적을 비롯해서, 상황에 따라 최전방 공격수로 뛸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허 감독의 전술 운용을 넓힐 수 있는 유용한 재목입니다.

신영록의 발탁은 이미 예상되었던 시나리오입니다. 그동안 터키리그에 전념했기 때문에 대표팀에 발탁될 기회가 주어지지 못했지만 곧 시즌이 종료되기 때문에 태극마크를 달 수 있게 된 것이죠. 올 시즌 부르사스포르의 주전 공격수로서 '서포터상'을 받을만큼 현지 팬들에게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는 것이 대표팀 발탁의 플러스가 됐습니다. 신영록은 문전에서 력한 포스트플레이와 저돌적인 몸싸움을 즐기는 성향인데, '이근호-박주영' 투톱 같은 돌파와 기교를 두루 지닌 동료 공격수와는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대표팀 공격 색깔을 다변화 할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외 김형일과 이강진의 발탁은 황재원, 강민수의 부상 공백을 막기 위한 대체 카드라고 보면 됩니다.

허정무 감독은 오는 6월 중동 3연전에서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퍼즐을 완성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 대표팀 자원을 그대로 끌고가기 보다는 무언가의 변화가 필요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퍼즐은 올드보이를 누른 '영건 발탁' 입니다. 지난 북한과의 A매치에서 경기를 느슨하게 풀어갔던 허정무호에게는 또 다른 세대교체가 불가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변화를 통해 기존의 베스트11이 새롭게 바뀌면서 전력 업그레이드의 토대가 될지 관심이 모입니다.

<축구대표팀 소집 명단>

골키퍼 : 이운재(수원) 김영광(울산) 정성룡(성남)
센터백 : 조용형(제주) 이정수(교토) 김형일(포항) 김근환(요코하마 F. 마리노스) 이강진(부산)
풀백 : 김창수(부산) 김동진(제니트) 오범석(사마라) 이영표(도르트문트)
중앙 미드필더 : 조원희(위건) 김정우(성남) 기성용 김치우(이상 서울)
측면 미드필더 :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최태욱(전북) 배기종(수원) 이청용(서울)
공격수 : 이근호(주빌로 이와타) 박주영(AS모나코) 신영록(부르사스포르) 유병수(인천) 양동현(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