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자신의 개인 통산 12번째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것이죠. 특히 '세계 최고의 리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세 시즌 연속 우승 메달을 받은 것은 동양인 선수 어느 누구도 달성하기 어려운 기록입니다. 이 기록은 박지성이 오랫동안 이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이에 앞서, 잉글랜드 일간지 <인디펜던트>지는 16일 '맨유의 슈퍼스타들에 가려진 숨은 영웅 6명'을 소개 했습니다. 루니-호날두 같은 특급 선수들 이외에도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3연패에 공헌한 또 다른 선수들을 언급한 것이죠. 6명 중에는 대런 플래처를 비롯해서 존 오셰이, 하파엘 다 실바, 페데리코 마케다, 조니 에반스에 이어 박지성의 이름이 포함 되었습니다. 인디펜던트는 "박지성은 팀에서의 역할을 늘어나고 있다. 올 시즌 맨유에서 최고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박지성에게 있어 '영웅'이라는 단어는 그리 낯선것이 아닙니다. 잉글랜드 현지 여론이 그를 '이름없는 영웅(Unsung hero)'이라고 지칭하기 때문이죠. 이에 맨유 레전드인 패디 크레란드는 지난 14일 맨유 코리아 공식 홈페이지와의 인터뷰에서 "올 시즌 박지성이 팀에 보여준 헌신은 정말 대단하다. 이제 더 이상 그에게 이름없는 영웅이라는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다. 이렇게 부르는 것은 모욕일수도 있다"며 박지성에게 영웅 자격이 있다는 것을 강조 했습니다. '박지성에게 그 자격이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일부 축구팬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박지성은 그 자체로도 자격에 오를만한 선수입니다.
무엇보다 박지성에게는 올 시즌이 남다를 것입니다. 지난 2일 <스포탈 코리아>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올 시즌이 맨유 입단 이래 최고의 해"라고 자평할 정도로 말입니다. 2005/06시즌에는 많은 경기에 출전했음에도 리그 우승컵을 차지하지 못했고 2006/07시즌에는 두 번의 큰 부상으로 신음했습니다. 2007/08시즌에는 전반기를 뛰지 않은데다 시즌 막판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철저한 스쿼드 플레이어에 가려졌기 때문이죠. 하지만 올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한 여러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팀의 트레블(클럽 월드컵, 칼링컵,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박지성은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25경기(선발 출전 21경기)에서 2골 2도움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9월 21일 첼시전과 지난 2일 미들즈브러전에서 골을 넣었지만 공격 포인트가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이것은 퍼거슨 감독이 그동안 집요하게 지적했고 본인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향후 로테이션 경쟁에서 오랫동안 살아 남기 위해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공격 포인트 부족 속에서도 프리미어리그 3연패의 숨은 영웅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선수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자신만의 '차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강팀과 약팀, 윙 포워드와 윙어 가릴 것 없이 팀을 위해 헌신적인 활약을 펼치면서 루니-호날두 같은 공격 포인트가 뛰어난 선수들을 향해 적극적인 공격 기회를 창출 했습니다. 빠르고 부지런한 움직임을 앞세워 빈 공간을 적극적으로 파고들면서 팀 공격의 다채로움을 안긴것과 동시에 퍼거슨 감독의 전술 운용을 밝게 했던 것입니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는 이전 시즌에 비해 밀집수비에 대한 비중이 컸습니다. 주로 약팀들이 강팀과의 경기에서 이러한 전술을 채택하는 경향이 잦았으며 EPL 빅4에 속한 클럽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죠. 하지만 맨유는 달랐습니다. 올 시즌 빅4 라이벌 클럽끼리의 6번 대결에서 1승3무2패(EPL 기준)로 부진했음에도 약팀과의 경기에서 많은 승수를 챙기면서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던 것이죠.
이는 자신의 넓은 활동 반경과 출중한 공간 창출 능력으로 상대 수비진의 압박을 뚫었던 박지성의 진가가 '공격 포인트 이상으로'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상대팀 풀백들은 박지성의 종횡무진 움직임을 번번이 놓치더니 수비 밸런스가 무너지는 문제점을 드러내기 일쑤였죠. 이에 동료 공격수들은 박지성이 벌려준 공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공격을 전개 했습니다. 비록 공격 옵션들의 경기력이 지난 시즌보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데다 기복마저 심했기 때문에 이러한 전술이 최대화 되지는 못했지만, 퍼거슨 감독은 그 연결고리 역할을 박지성이 잘 할거라 믿었기 때문에 꾸준히 선발로 기용했던 겁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박지성은 측면 미드필더 치고는 수비력이 굉장히 뛰어났습니다. 잦은 오버래핑을 시도하는 상대팀 풀백의 공격력을 묶는데 가장 제격이었던 카드였던 겁니다. 특히 첼시와의 두 번의 리그 경기에서 조세 보싱와의 측면 돌파를 여러차례 끊으며 상대팀의 오른쪽 날개를 꺾었던 것은 박지성이 왜 잉글랜드 현지 언론으로부터 '수비형 윙어'로 불리는 지를 알 수 있는 결정적 장면 이었습니다.
최근 맨유는 카림 벤제마(리옹) 마리오 고메즈(슈투트가르트) 바그너 러브(CSKA 모스크바) 같은 공격자원을 비롯 프랑크 리베리(바이에른 뮌헨) 안토니오 발렌시아(위건) 같은 출중한 윙어 자원의 영입을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내 언론에서는 리베리-발렌시아의 맨유 이적설을 두고 '박지성 위기'라는 자극적인 표현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만(이러한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는 축구팬들의 비판을 받고 있지요.), 오히려 박지성에게는 자신의 전술적인 역량을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루니-호날두-테베즈-베르바토프가 기복이 심한 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공격 옵션의 새로운 변화 없이는 맨유의 공격 전술 역량을 최상으로 끌어 올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연결고리로 박지성이 적극적으로 활용 될 가능성은 무궁무진 합니다.
이제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베스트 11이라는 개념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프리미어리그 강팀들은 많은 대회와 경기를 치르는 빡빡한 일정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로테이션 시스템'의 필요성이 점점 커지게 됐습니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1~2위를 기록한 맨유와 리버풀은 두꺼운 선수층을 앞세운 로테이션 시스템을 앞세워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이는 박지성의 입지가 앞으로 어떤 공격 자원이 들어올지라도 계속 굳건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맨유는 개인 역량보다 철저한 팀 플레이를 중심으로 하는 팀이기 때문에 전술적인 역량을 늘릴 선수가 절실히 필요할 수 밖에 없으며, 박지성과 루니같은 이타적인 선수들이 팀 내 전술적 가치에서 톱클래스라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박지성이 맨유 프리미어리그 3연패의 숨은 영웅이라는 현실에 안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박지성은 오는 28일 FC 바르셀로나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맹활약을 벼르고 있을 것이며 앞으로 오랫동안 맨유 로테이션 시스템의 주축으로 남길 원할 것입니다. 지금의 활약상을 오랫동안 꾸준히 이어가면 앞으로도 맨유에서 많은 성과와 업적을 남길 것임이 분명합니다. 박지성의 꺼지지 않는 열정 그리고 무한한 도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