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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언론의 '박지성 장사'가 불편한 이유

 

최근 박지성과 관련된 기사들 중에서는 '위기'라는 단어를 손쉽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일 미들즈브러전과 6일 아스날전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는 표현을 제목으로 내걸며 한때 위기의 나날을 보냈다는 늬앙스의 내용을 실었죠. 미들즈브러전 이전까지 3경기 연속 결장할때도 '위기'라는 단어가 쓰이긴 했습니다. 주전 경쟁 탈락 위기에 몰렸다며 팀 내 입지가 축소되었음을 알린 것이죠.

언론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틀린 말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박지성이 2경기 연속으로 빠지기만 해도 팀 내 입지를 운운하며 위기가 아니냐는 식의 기사를 실었기 때문이죠. 심지어 지난달 15일 FC포르투전 18인 엔트리 제외때는 "박지성이 출전 명단에서 제외되는 굴욕을 당했다"며 한 경기 결장했다는 이유로 굴욕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습니다. '경쟁 사회'인 요즘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좀 더 자극적으로 써야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데다 언론사 이름까지 널리 알릴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가 박지성이 어느날 주전으로 출전하면 띄워주기에 바쁜게 언론이죠. 왜냐하면 박지성 맹활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기 위해 열을 올립니다. 그것이 바로 '박지성 장사' 입니다. 이러한 언론의 일희일비식 보도는 축구팬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박지성의 3경기 연속 결장이 선수 본인과 코칭스태프가 사전에 약속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언론을 향한 축구팬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습니다. 박지성 입지에 대하여 안좋게 썼던 글이 결국에는 아무런 펙트(Fact)가 없는 '소설'이 되고 말았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는 언론의 보도를 동의하지 않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박지성에게 언제 위기가 왔었나요? 3경기 연속 결장에 대한 정확한 사실이 알려지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웬만한 축구팬들은 체력 안배 차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A매치 차출 이후 컨디션 저하로 부진했는데 연속 결장은 당연한거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많은 부상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는데 컨디션이 안좋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경기를 뛰면 부상만 더 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체력 저하 또한 불가피한 일이죠. 박지성은 지친 몸 상태에서 거의 매 경기를 선발로 뛰어야 언론의 즉흥적인 '펜대'에서 피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언론사들이 축구 경기 열심히 본다고 할지라도, 박지성을 바라보는 '눈'은 기자들이 아닌 축구팬들이 더 높았습니다. 여론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언론사를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이렇다보니 몇몇 축구팬들이 언론의 냄비적인 늬앙스에 넘어가면서 '박지성은 퍼거슨이 승리를 필요로 할때 제외되는 카드', '박지성, 제발 이적해라', '박지성이 주전 경쟁에서 밀렸나?'는 호돌갑 섞인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결국 돌아오는 것은 박지성 입지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 뿐입니다. 이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 바로 '위기론'이죠. 근본적인 원인은 언론사에서 비롯 되었습니다.(고2때 영어 선생님이 저보고 그랬습니다. "언론 기사는 무조건 믿지 말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입니다.)

더욱 기가막힌 것은, 언론들이 제기했던 위기설을 박지성 본인이 잘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박지성의 부친인 박성종씨는 지난 6일 <스포츠 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연일 위기설이 보도될 때마다 (박)지성이와 함께 많이 웃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제대로 쉴 수 없을 것 같아 아예 함구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박지성이 언론의 수준을 완전히 읽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아마도 언론들의 일희일비식 기사에 마음속으로 비웃었을지 모릅니다. 이것은 언론사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어쩌면 박지성이 예전부터 언론을 잘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동안 언론사들과 많은 인터뷰를 하면서 기자들이 어떤 성향인지 충분히 꽤고 있을 것입니다. 박지성은 주위에서도 인정할 만큼 영리한 선수인데다 긍정적인 소유자로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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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지성 골에 아스날팬 자살>관련 문구. (C) 악랄가츠님 블로그 펌(가츠님에게 사전에 허락 받았음을 밝힙니다. http://lelocle.tistory.com/93 )

그런데 언론들의 박지성 장사는 이것 뿐만이 아니더군요. 지난 7일 모 포털 사이트 메인에 뜬 어느 모 일간지의 뉴스캐스트 기사에는 <박지성 골에 아스날팬 자살>이라는 제목을 기사로 실었습니다. 제목만 보더라도 아스날팬이 박지성의 골 때문에 자살했다는 내용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자살'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으니, 사람들의 이목이 쏠릴 수 밖에 없죠. 굳이 축구팬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클릭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 내용은 악랄가츠님의 블로그에서 확인했습니다. 저는 그 시간대에 컴퓨터를 하고 있지 않아서 뭐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만, 원문 내용은 악랄가츠님의 블로그에서 확인하기 직전까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아스날팬이 맨유전 패배에 대한 충격으로 자살했다는 현지 언론의 기사가 회원 수 100만명을 자랑하는 어느 모 유명 축구 커뮤니티에서 알려졌으니까요.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라고 가볍게 넘겼습니다.

그런데 악랄가츠님 블로그에 있는 내용을 보니까, 어느 모 국내 언론사가 현지 언론의 기사를 부풀려서 보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악랄가츠님이 원문 기사를 확인한 바로는 박지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박지성 골에 아스날팬 자살>이라는 제목은 사실과 어긋난 것이었습니다. 신랄하게 표현하자면, 제목으로 낚시를 했던 겁니다. 그러다가 악랄가츠님이 다음 블로거뉴스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해당 기사는 <챔스 탈락에 아스날팬 자살>이라는 제목으로 수정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악랄가츠님 블로그에 이러한 댓글을 남겼습니다. "언론들이 조회수 늘리기에 열중하는 것을 보니, 자꾸 몇몇 사람들(박지성, 히딩크, 김연아 등등)을 희생양으로 몰고 가더군요. 그러다가 국민일보(선정적인 제목 짓기 및 편집)처럼 모 포털 사이트 뉴스캐스트에서 퇴출되는 비슷한 꼴이 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네요. 저도 느끼는게 많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할겁니다. 언론들의 '박지성 장사'가 너무한거 아니냐고 말입니다.

언론들이 포털에서 박지성 장사를 쉽게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현지 언론 기사를 번역해서 제목을 부풀리게 짓고 포털에 내보내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사례를 들겠습니다. 지난해 초 앙골라 출신 공격수 마누슈 곤칼베스(현 헐 시티)가 맨유에서 파나티나이코스로 임대되었을 때, 어떤 언론사는 제목에 '박지성 있음에'라는 내용을 내걸으며 사람들의 엄청난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사도 원문 확인 결과에 의하면 박지성이라는 이름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박지성과 마누슈의 포지션은 전혀 다릅니다. 윙어와 골잡이가 어떻게 경쟁 상대입니까.

이러한 현상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언론은 펙트를 우선으로 전해야 하는데, 사람들의 많은 반응을 얻기 위해 선정적으로 부풀려서 제목을 짓고 있는 겁니다. 그것도 <박지성 골에 아스날팬 자살>이라는 문구처럼 사실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기사를 내보내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 박지성 위기론까지 퍼뜨렸으니 '박지성 장사'가 막장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던 겁니다. 눈이 높은 축구팬들은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이러한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언론사 기자님들이 현장에서 혹은 데스크에서 고생하는것을 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블로그를 통해 꼭 해야 할 말을 적고 싶었습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아무리 박지성 기사를 쓰더라도, 도가 지나친 내용을 다루면 기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겁니다. 비단 박지성 뿐만은 아닙니다. 김연아, 이승엽, 박찬호 같은 국내 최고의 스포츠 스타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이는 박지성만의 문제가 아닌 '악순환'에 따른 문제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제발 박지성 좀 그만 내버려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