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천하를 호령하는 두 영웅이 '별들의 전쟁'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제대로 만났습니다. 리그를 대표하는 구단들인데다 막상막하 전력인 만큼 어느 팀이 결승에 진출할지 예측 또한 쉽지 않습니다.
프리미어리그의 간판 라이벌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아스날이 오는 30일과 다음달 6일에 걸쳐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혈투를 벌이게 됩니다. 90년대 후반부터 프리미어리그 양대 산맥을 형성했던 팀들끼리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벌써부터 명승부의 향기가 진하게 풍깁니다. 올드 트래포드와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그리고 멀게는 하이버리에서 항상 치열한 혈투를 벌였던 두 팀 선수들의 뜨거운 공방전이 예상됩니다.
두 팀이 맞붙는 그라운드는 '총성없는 전쟁터'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입니다. 최근 10년 넘게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다투면서 대립 관계가 점화되더니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라이벌 구도를 그려가게 된 것이죠. 2003/04시즌에는 아스날 선수들이 맨유 골잡이였던 뤼트 판 니스텔로이(레알 마드리드)를 집단 구타(?)하는 소동을 벌이며 몇몇 선수들이 징계를 받았고 2004/05시즌에는 맨유의 웨인 루니가 자신의 골로 아스날의 49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저지했지만 골 과정이 시뮬레이션 액션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2005년 2월에는 두 팀의 주장이었던 로이 킨(입스위치 타운 감독)과 패트릭 비에이라(인터 밀란)가 격렬하게 충돌한적이 있었습니다.
선수들 뿐만은 아닙니다. '라이벌이자 동지'인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과 아르센 벵거 감독의 맞대결은 맨유vs아스날 대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백미'이기 때문입니다. 두 명장은 맨유와 아스날의 자존심을 내세우듯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독설을 주고 받으며 리그 최고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몇해 전에는 경기 도중 그라운드에서 충돌하여 서로의 얼굴을 가까이 맞대고 심한 언쟁을 벌일 정도로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비록 지금은 두 감독끼리의 독설이 '휴전' 중이지만 언제 활화산처럼 폭발할지 알 수 없습니다.
맨유와 아스날의 명승부가 기대되는 이유는 최근들어 뚜렷한 오름세를 거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맨유는 4월 7경기에서 5승2무를 기록한데다 지난 26일 토트넘전에서는 전반전에 2골 내주고 후반전에 5골 몰아치면서 '골 넣는 공격축구'의 진수를 보여줬습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역대 최다인 23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달리며 유럽무대에서 가장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반면 아스날은 올 시즌 중반까지 리그 5위로 추락했지만, 전열을 가다듬은 끝에 프리미어리그 19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중입니다. 지난 22일 리버풀전에서는 8골 난타전(4-4)을 벌이며 '화끈한 공격 축구'의 저력을 발휘했습니다.
기록 대결에서는 맨유가 우위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스날과의 토너먼트 준결승 역대 전적에서 6전 5승1무를 거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유일하게 패한적이 없는 팀인데다 역대 전적에서도 204전 82승45무77패로 앞서있습니다. 더욱이 아스날과의 홈 경기에서는 96전 55승24무17패의 압도적인 우세를 점했습니다. 반면 아스날은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원정 경기에서 단 한번만 승리했을 뿐(2008년 10월 페네르바체 원정 5-2승리) 나머지 경기에서는 비기거나 패했습니다.
하지만 맨유가 역대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10번 진출했음에도(올 시즌 제외) 결승에 진출한 것이 3번에 불과하다는 점과 벵거 감독이 퍼거슨 감독과의 역대 전적에서 37전 14승10무13패의 근소한 우세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 아스날에게 위안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라이벌전에서 기록은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기록은 곧 깨지기 마련이며 라이벌전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변수들이 속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맨유가 지난해 11월 아스날 원정에서 1-2로 패했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경기 당일 선수의 컨디션과 두 감독의 지략 대결에 따라 승패의 명암이 엇갈릴 가능성이 큽니다.
분명한 것은, 두 팀 선수들 모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 사력을 다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맨유는 쿼트러플(4관왕) 달성의 마지막 퍼즐 조각인 챔피언스리그 우승, 그리고 대회 2연패를 위해 모든 힘을 소모할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아스날은 '빅 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컵)'가 어느 때보다 절실 합니다. 아직까지 챔피언스리그 우승 경력이 없는데다 대회 준결승에 진출한 것이 이번이 두번째이기 때문에 맨유를 넘어야 유럽 제패 가능성을 낙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는 30일 올드 트래포드 원정을 앞둔 아스날의 선수층은 취약합니다. 엷은 스쿼드의 한계 때문에 주축 선수들이 체력 저하에 시달리고 있는데다 부상 후유증으로 신음하는 이들이 여럿있기 때문입니다. 1차전에서는 로빈 판 페르시, 미카엘 실베스트레, 가엘 클리시가 부상으로 결장하며 윌리엄 갈라스와 토마스 로시츠키는 시즌아웃 되었습니다. 얼마전 부상 혹은 독감에서 회복한 아데바요르-파브레가스-월컷-주루-알무니아-사냐가 1차전에 투입될 예정이지만 평소의 경기력을 발휘할지는 의문입니다. 그리고 '러시안 특급' 안드리 아르샤빈이 챔피언스리그 규정상(올 시즌 CL 32강전에서 제니트 소속으로 출전) 맨유전에 출전할수 없다는 것이 아스날에게 아쉬울 따름 입니다.
반면 맨유의 선수층은 여유롭습니다. 토트넘전 결장으로 체력을 비축한 박지성과 라이언 긱스, 안데르손 같은 미드필더들이 아스날전에 선발 출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중원 대결에서는 맨유의 미세한 힘에 저울이 갈 수 있습니다. 올 시즌 맨유 수비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에브라-퍼디난드-비디치-오셰이(하파엘)' 조합은 아스날전에 그대로 모습을 내밀 예정이며, 루니-테베즈-베르바토프-호날두 같은 '맨유 판타스틱4'의 공격 본능은 토트넘전을 통해 물이 부쩍 오른 상황입니다.
언뜻보면 맨유의 전력적인 우세를 점칠 수 있겠지만, 이를 역설적으로 바라보면 아스날의 만만찮은 저항이 예상됩니다. 최근 EPL 빅4 이탈 위기의 어려움 속에서도 이를 슬기롭게 해결하며 선수들의 조직력을 강화했던 저력이 있는데다 16강과 8강에서 AS로마, 비야 레알 같은 저력있는 팀들을 차레로 제압했다는 점이 긍정적입니다. 게다가 지난해 11월 맨유전에서 승리했던 전적이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자신감을 앞세워 올드 트래포드 그라운드를 밟을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1차전에서 좋은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면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이 좌절될 위기에 처하기 때문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리고 지구촌 축구팬들의 주목을 끄는 것이 바로 슈퍼 스타들의 맞대결입니다. '호날두vs파브레가스'의 에이스 맞대결, '루니vs아데바요르'의 화력 쇼, '박지성vs월컷'의 측면 혈투, '판 데르 사르vs알무니아'의 선방 대결까지 흥미로운 대립들이 많습니다. 이들의 활약에 따라 경기 양상이 달라질 것으로 보여, 오는 30일 오전 3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릴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결과가 주목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프리미어리그의 거성인 두 팀 중에서 어느 팀이 1차전에서 우세를 점할지, 혹은 별들의 전쟁 결승 무대에 진출할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