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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 입지,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산소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아스톤 빌라전에 결장하여 이틀 뒤에 열릴 FC 포르투전 맹활약을 위한 산소탱크를 충전하게 되었습니다.

박지성의 맨유는 6일 오전 0시(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아스톤 빌라와의 프리미어리그 31라운드에서 3-2 역전승을 거뒀습니다. 전반 14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선제골로 순항을 하는 듯 했지만 전반 30분과 후반 13분에 두번이나 상대팀에 일격을 맞아 자칫 패배 위기에 놓일 뻔했습니다. 그러다 후반 35분 호날두가 동점골을 넣은 뒤 47분 이탈리아 출신의 17세 유망주 페르난도 마케다가 천금같은 역전골을 넣으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맨유에게는 이번 아스톤 빌라전이 중요한 일전이었습니다. 라이벌 리버풀이 지난 5일 풀럼전 승리로 리그 선두에 올랐기 때문에 1위 고지를 다시 되찾으려면 아스톤 빌라를 반드시 꺾어야만 했습니다. 아스톤 빌라전 이전에 가진 리버풀전과 풀럼전에서는 믿기 어려운 참패를 거듭했고 몇몇 선수들이 부상 및 징계 여파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치렀습니다. 더욱이 1-2로 패배 위기까지 놓였으니 3-2 역전승이 극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부진하던 호날두의 2골과 마체다의 등장은 팀의 부활을 트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경기에서는 박지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중요한 경기만 되면 컨디션이 완벽하다는 전제하에 어김없이 선발 출장했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자신의 자리에 루이스 나니가 선발 출전하고 마케다가 후반 16분에 교체 투입하면서 그라운드를 밟지 못한 것이죠. 잉글랜드 스포츠 전문 채널 <스카이 스포츠>는 경기 전 자신의 선발 출장을 예상했지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국내 팬들은 그의 결장을 아쉬워하며 이런 저런 반응을 나타내고 있지만, 완벽한 시나리오에 의한 3-2 펠레스코어 역전승을 보며 '축구의 참맛'을 느꼈습니다.

사실 박지성이 결장하는 날에는 국내 팬들 사이에서 이런 저런 말들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시즌까지 스쿼드 플레이어로 뛰었던 전례와 지난해 5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18인 엔트리 제외 때문에 그동안 입지 논쟁을 놓고 많은 말들이 오간게 사실입니다. 올 시즌 중반까지도 그랬습니다. 박지성이 선발 출전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맨유 주전'이었고 결장하는 날에는 '벤치성'이라는 비하 용어와 더불어 '박지성<나니'라는 논리가 성립(?)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일희일비식 반응은 선수 본인만 힘겹게 할 뿐 그저 소모적인 논쟁에 불과하죠.

이는 당연한 현상입니다. 박지성이 호날두처럼 맨유의 에이스로 활약하기를, 거의 매 경기에 선발 출장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에 의한 사람의 본능 때문입니다. 게다가 박지성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대들보이기 때문에 팬들이 바라는 것도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해외에 진출한 한국 선수 중에서 팬들의 기대에 의해 마음 속의 가장 많은 부담을 짊어진 선수가 박지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박지성이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결국 돌아오는 것은 '벤치성', '박지성<나니'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박지성 입지 논쟁'은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습니다. 우선, 맨유는 20여명의 주요 선수들을 골고루 활용하는 로테이션 시스템을 쓰기 때문에 어느 선수든 팀에서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중요한 경기가 되면 주전급 선수와 백업 선수의 구분이 가려지지만 결과적으로는 팀의 영건이든 노장이든 간에 적지 않은 경기에서 주전으로 출전했습니다. 이러한 선발 기용 시스템은 다른 팀들보다 더 많은 경기와 대회를 치르는 맨유의 특성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동안 박지성의 입지가 국내에서 과소평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박지성은 올 시즌에도 거의 매 경기에 선발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중요한 경기 때마다 스타팅 라인업에 포함되었고 이전 시즌보다 선발로 출전하는 빈도가 늘었기 때문에 '주전급 선수'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미드필더는 다른 포지션보다 움직임과 활동량, 체력 소모가 많은 포지션이기 때문에 '일부 국내팬들이 바라는 것 처럼' 매 경기 선발 출전하는 것은 '혹사'나 다름 없습니다. 맨유 중앙 미드필더 두 자리 같은 경우에도 꾸준히 선발 출전하는 선수는 없습니다.(현 상황에서는 플래처, 캐릭이 주전이라고 보면 됩니다. 긱스는 처진 공격수로 더 많이 나오고 있죠.) 예외적인 케이스가 호날두 입니다만 다른 미드필더들과 역할이 전혀 다른데다 팀의 주 득점원이기 때문에 거의 매 경기에 선발로 뛰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호날두 마저도 '혹사론'이 불거지고 있지요.

일부 팬들에게는 이러한 현실이 못마땅할 수 있습니다. '박지성이 맨유에서 중요한 선수라면 호날두처럼 많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골과 도움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된 생각이죠. 이것은 일부 팬들 뿐만 아니라 국내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희망사항일지 모릅니다.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사람의 욕심은 정말 못말리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맨유의 로테이션 시스템과 미드필더의 특성등을 놓고 본다면 이는 박지성의 맹활약을 기대하기에는 지나치고 가혹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선수 본인 마음속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절때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박지성의 입지는 더 이상 의심할 필요 없습니다. '세계 최고의 팀'인 맨유에서 네 시즌 동안 활약하면서 여전히 퍼거슨 감독의 신뢰와 믿음을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지성처럼 항상 성실하고 팀을 위해 헌신하여 뛰는 선수는 선수는 어느 감독이라도 사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박지성은 무명이었던 자신을 무럭무럭 성장시켰던 김희태 전 명지대 감독을 비롯하여 허정무 감독, 게르트 엥겔스 전 교토 감독, 거스 히딩크 감독, 그리고 지금의 퍼거슨 감독에 이르기까지 많은 감독들의 신뢰를 얻었으며 이는 자신의 진가를 빛낼 수 있었던 비결이 되었습니다.  박지성이 올 시즌 맨유의 주전급 선수로 확고하게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퍼거슨 감독에게 확실하게 인정 받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박지성은 골 결정력 부족을 이유로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결장이라는 시련에 직면했습니다. 어쩌면 팀에 필요 없는 선수라는 느낌을 가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의 골 결정력 향상을 위한 '자극'으로 비춰볼 수 있습니다. 만약 박지성이 팀에서 아무런 활용가치가 없는 선수였다면 지난해 연말 클럽 월드컵 결승전 풀타임 출전 및 올 시즌 주전급 선수 반열에 오른 것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이는 퍼거슨 감독에게 확실하게 인정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욱이 박지성은 매 경기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좋은 경기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기복이 심한 나니보다 팀 내에서의 활용도가 더 높았습니다. 감독 입장에서는 개인 기량이기 이전에 꾸준한 선수를 좋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박지성이 중요한 경기에서 주로 선택되고 있는 겁니다.

이번 아스톤 빌라전 결장 같은 경우에는 나무만 바라보지 말고 숲까지 내다봐야 합니다. 맨유는 챔피언스리그와 FA컵에서 결승에 진출할 경우 5월말까지 최대 16경기(아스톤 빌라전 포함)를 50여일 동안 치러야 하는 빠듯한 일정에 시달려야 합니다. 1주일에 2경기를 치러야 하는 꼴이죠. 아스톤 빌라전 이후에는 FC포르투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경기가 있기 때문에 주전급 선수들을 골고루 배치할 수 밖에 없습니다. A매치 차출 및 장거리 이동 여파로 체력과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은 박지성을 무리하게 아스톤 빌라전에 투입시킬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결국 박지성은 아스톤 빌라전에서 쓸 수 있는 카드가 아닌 '다음에 써야 할 카드'였던 겁니다.

반면 나니는 이번 경기에서 극도의 부진한 활약을 펼쳐 1-2로 뒤진 후반 16분에 질책성 교체 되었습니다. 경기 내내 소극적인 움직임을 일관하며 팀 공격에 이렇다할 공헌을 하지 못했으며 20개의 패스 중에 7개나 미스를 범할 정도로 '기복이 심한 선수'라는 꼬릿표를 떼지 못했습니다. 이날 <스카이스포츠>로 부터 평점 4점을 부여 받으며 팀 내 최소 평점을 받았죠. 올 시즌 도중 방출설에 시달렸던 만큼 맨유에서의 행보가 밝지 않습니다. 현재 맨유가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박지성의 체력 안배 차원에서 적지 않은 경기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이대로는 어려울 듯 싶습니다.

개인 능력을 놓고 보면 박지성이 아닌 나니가 더 우세한 선수입니다. 하지만 맨유의 주전은 나니가 아닌 박지성입니다. 최근 팀의 부진 속에서도 제 몫을 다하며 '맨유 3월의 선수'에 오른 선수는 박지성입니다. 거의 매 경기에 선발 출전하지 못한다고 해서 박지성이 벤치성으로 불리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그리고 박지성은 거의 매 경기 선발 출전으로 인한 혹사에 시달리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일정 수준 이상의 꾸준한 경기력을 펼칠 것임에 분명합니다. 그래서 박지성의 입지는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박지성은 일부 국내팬들이 바라는 것 처럼 매 경기에 선발 출전해야만 하는 '기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 그를 아끼고 사랑하고 싶다면 때로는 결장도 이해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는 우리와 같은 '인간'일 뿐이며 축구 선수로서 보호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