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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허정무호, '21개 슈팅-1골' 답답하다


축구는 엄연한 단체 종목입니다. 축구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놀라운 기량도 중요하지만 11명의 선수를 하나로 묶으며 상대팀의 허를 찌르는 적절한 전술을 구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경기전에 선수들과 머리를 짜면서도 이에 대한 전술이 어긋나면 경기 상황에 맞게 다른 작전을 구사하여 상대방을 공략하기 위해 골을 넣어야 합니다. 문제는 전반전에 유기적인 전술 움직임을 나타냈으면서도 시간이 흘러 혼자가 되고마는 각개병사가 된다면 답답한 경기를 펼쳤다는 가혹한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안타까운것은 그동안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펄펄 날았던 한국 축구 대표팀이 이러한 무기력한 모습을 홈팬들에게 보여주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운이 좋았던 것은 후반전에 극적인 결승골을 넣었다는 점이죠.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그동안의 성과에 대한 값진 보상으로 비춰볼 수 있지만, 실제 경기 내용은 '긍정'과는 정반대로 흘렀습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1일 저녁 8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시아 최종예선 B조 5차전 북한전에서 1-0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대표팀은 87분까지 19개의 슈팅을 놓치는 불안한 골 결정력과 무기력한 경기 내용을 일관하는 졸전을 펼쳤지만 후반 42분 김치우의 천금같은 프리킥이 북한의 골망을 가르면서 가슴 졸이는 경기를 극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김치우가 골을 넣지 못했다면 B조 3위로 밀리며 남아공행이 멀어질 위기에 놓였던 만큼, 골 상황이 그야말로 기가 막혔습니다.

한국은 북한전 승리로 B조 1위에 오르며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8부 능선을 넘었습니다. 71-29(%)의 압도적인 볼 점유율 우세와 80-70(%)로 앞선 패스 성공률, 그리고 21개의 슈팅으로 9개의 북한보다 2배 더 많은 골을 시도하여 북한 문전을 사정없이 두드리는 모습이 많았던 경기였죠.하지만 허정무 감독이 경기 전 "북한전은 한골 승부가 될 것이다"는 말이 현실화가 된 듯, 후반 42분 김치우가 골을 넣기 이전까지 19개의 슈팅을 그대로 놓치는 불안한 경기력을 일관하며 많은 팬들에게 답답함을 안겨줬습니다. 비록 경기는 이겼지만 내용에서 만큼은 씁쓸함이 남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반전에는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북한이 극단적인 수비를 펼쳤습니다. '홍영조-정대세' 투톱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이 수비에 치중했고 '골 넣는 전략'보다 '실점하지 않는 전략'에 무게를 두는 수비 전술에 올인하여 우리에게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을 한 틈도 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한마디로 자기 진영에 틀여박혀 있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전반 중반에는 홍영조까지 미드필더진으로 들어가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면서 사실상 9백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북한 수비수 차정혁은 경기 내내 박주영을 쫓아다니며 밀착 마크를 하는데 주력했죠.

그러면서 한국이 공격할 수 있는 기회는 상대팀보다 많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반 30분까지 북한과의 슈팅 숫자에서 7-1의 우세를 점했고 볼 점유율에서 76-24(%)의 우세를 점할 정도로 상대팀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부지런히 뛰었습니다. 이는 지난해 북한과의 4경기에서 2골에 그친 '북한 징크스'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습니다. 축구는 상대팀 보다 더 많은 골을 넣어야 이기는 스포츠 종목인 만큼, '골'이 절실했던 우리 선수들에게는 경기를 확실하게 주도하지 않는 이상은 골을 넣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죠.

'과정이 좋아야 결과가 좋다'는 인생의 진리처럼, 골을 넣기 위한 한국의 공격 과정은 전반전까지만 하더라도 무난하게 진행 되었습니다. 전반 6분부터 하프라인 부근에서 좌우 측면을 넓게 활용하는 패스를 주고받으며 북한의 밀집 수비를 뚫을 공간을 찾는데 바빴습니다. 그러더니 수비-허리-공격진의 간격을 점점 좁히면서 평소보다 짧은 패스를 주고받는 효율적인 공격 시도를 노렸습니다. 또 하나의 이점이라면 상대에게 역습 기회를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패스미스를 허용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이죠.

하지만 '북한전 승리'를 바라는 모든 이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한국의 '골 마무리'는 수월치 않았습니다. 아무리 과정에 충실해도 골 결정력이 따르지 않으면 득점을 얻을 수 없는 만큼, 전반에만 시도했던 13번의 슈팅이 단 한 차례도 골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지난달 28일 이라크와의 평가전에서 무수히 많은 슈팅을 시도했던 이근호의 몸은 경직됐고 최전방에서 상대팀 마크를 따돌리기 위해 부지런히 뛰는 박주영의 모습이 외로워 보였습니다. 전반 35분과 43분 이영표와 오범석의 중거리슛을 비롯 여러 차례의 완벽한 득점 과정 속에서 빚은 슈팅 기회는 허공을 가르거나 골키퍼 품에 안기고 말았습니다.

후반 초반에는 북한의 압박 및 빠른 역습 공격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우리 선수들이 절호의 슈팅 기회를 잡는데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후반 1분에는 이근호가 문전 정면에서 날린 슈팅이 한 박자 늦게 이루어지면서 상대 수비수 3명의 밀착 견제에 활로를 찾지 못해 슈팅 자세가 흐트러지는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더니 후반 2분과 5분, 9분 상황에서 우리 미드필더진이 홍영조와 문인국의 빠르고 날카로운 역습을 대처하지 못하면서 실점 위기에 직면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1분과 12분에는 이근호가 오른쪽 전방에서 공을 잡아 상대 수비수를 등지기 위해 애썼지만 안타깝게도 두 개의 장면 모두 상대 밀착 수비에 일방적으로 밀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한국이 골을 넣기 위한 돌파구를 찾은 곳이 바로 '측면' 이었습니다. 중앙 공격으로는 더 이상 북한 밀집 수비를 뚫을 수 없기 때문에 별 수 없이 '한국이 전통적으로 강했던' 측면 공격에 역점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후반 15분에는 '후반들어 오버래핑이 주춤했던' 이영표를 빼고 김동진을 투입하면서 옆구리 공격에 치중하겠다는 의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죠. 그 이후 5분 동안 오른쪽 측면에서 2~3번씩이나 골을 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허정무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게 선수들은 오히려 무리한 전진 돌파를 시도하다 상대팀 선수에게 공을 차단당하는 위기 상황을 맞았습니다. 그 돌파 마저도 측면에서 중앙으로 쏠리는 루트를 고집했으니 상대에게 충분히 읽히기 쉬운 공격을 펼치고 말았죠. 더욱이 박지성-이영표, 박주영-이근호 라인 사이의 간격이 전반전보다 더 벌어지면서 북한 수비의 허를 찌르는 패스 연결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네 명의 선수는 상대의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공 받을 곳을 찾기 위해 앞선에서 받아주는 패스를 주고 받아야 하는데 자기 지역에만 머무는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골을 넣을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을 번번이 놓치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해답은 있는데 우리 선수들이 그것도 못찾은 꼴이죠.

결국 한국에게 운이 따랐던 것이 후반 33분 김치우의 교체 투입이었습니다. 경기 내내 세밀한 문전 플레이에 아쉬움을 남겼던 이근호를 빼면서 새로운 득점 루트를 찾는데 주력한 것이죠. 그것이 바로 세트 피스 였습니다. 김치우는 후반 42분 오른쪽 페널티박스 바깥에서 직접 프리킥으로 상대의 골망을 흔들며 답답한 경기를 펼친 그동안의 흐름을 끊는데 성공했습니다.
 
경기는 한국의 1-0 승리로 끝났지만 전반적으로는 한국에게 아쉬움이 많았던 경기였습니다. 90분 동안 21개의 슈팅을 시도했음에도 필드 골을 넣지 못한데다 후반 42분에 이르러 교체 멤버인 김치우가 프리킥으로 골망을 출렁인 것은 선수들의 공격력이 안이했다는 느낌을 짙게 합니다. 한국은 북한의 밀집 수비를 뚫지 못하는 고전속에 한 고비를 넘기며 월드컵 본선 진출의 밝은 가능성을 알렸지만 이대로는 앞으로의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가 어렵습니다.
 
이근호의 실전 감각 부족을 비롯하여 문전에만 머물려고 했던 투톱 공격수들의 2% 부족한 움직임, 공격진의 최전방 고립을 가중시켰던 미드필더들의 연계 플레이 부족,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되는 부정확한 롱패스, 그리고 골 결정력에 이르기까지 공격에서 여러가지 문제점을 남겼습니다. 비록 북한전에서 이겼지만 결과적으로는 공격력 및 골 결정력 강화라는 숙제만 남긴 경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