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예상과는 다릅니다. 불과 지난 12일 인터밀란전 2-0 승리까지만 하더라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리그 3연패 및 퀸투플(5관왕) 달성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4일 리버풀전 1-4 대패, 22일 풀럼전 0-2 완패를 당하면서 5관왕 전선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불과 리버풀전 패배까지만 하더라도 일시적인 고전으로 보는 외부의 견해가 많았지만 풀럼 원정에서 1964년 이후 45년 만에 무릎을 꿇으면서 앞날 일정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완전한 내림세에 빠진 것이죠.
지난 시즌 중반까지 리그 선두로 잘 나가던 아스날이 지난해 2월 22일 버밍엄 시티전 2-2 무승부 이후 끝없이 삐끗했던 것 처럼 맨유의 앞날 또한 '안갯속' 입니다. 오는 4~5월에 최대 16경기를 치르는 바쁜 일정에 시달리는데다 강팀과의 맞대결이 많기 때문에 중요한 고비를 넘지 못하고 무너질 가능성이 짙어졌습니다.
맨유는 5관왕 달성을 위해 리버풀전과 풀럼전 패배를 타산지석삼아 만반의 준비를 다해야 합니다. 지난 두 경기에서 드러난 단점을 통해 전력을 재정비하여 오름세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에이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4)의 부활이 절실하지만 문제는 호날두의 올 시즌 활약상이 저조한데다 잦은 경기 출장 때문에 컨디션까지 최상의 상태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 같은 '호날두 딜레마'는 향후 맨유 일정에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맨유가 더 이상 호날두의 팀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맨유, 더 이상 '호날두의 팀'이 아닌 이유
그동안 맨유가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절대적인 원동력에는 호날두의 가공할 파괴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맨유=호날두', '맨유는 호날두의, 호날두에 의한, 호날두를 위한 팀'이라는 수식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맨유는 호날두의 감각적인 개인기와 현란한 드리블 돌파를 중심으로 삼아 파상적인 공격을 펼쳤습니다.
맨유는 2006/07시즌 첼시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4시즌 만에 리그 1위 고지에 올랐습니다. 우승의 선두 주자였던 호날두는 리그 34경기에서 17골 14도움을 기록하며 2003/04시즌 프리미어리그 진출 이후 최고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런 호날두는 2007/08시즌 프리미어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각각 31골, 8골을 넣으며 동시 득점왕에 오르더니 팀의 더블 우승을 이끌며 국제축구연맹(FIFA)이 선정한 2008 올해의 선수에 올랐습니다. 이번 시즌에는 팀의 클럽 월드컵과 칼링컵 우승을 견인하는 등 팀 우승의 주역엔 항상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다릅니다. 호날두가 지난 시즌과 다르게 골이 부족한 것이죠. 호날두는 지난해 11월 15일 스토크 시티전 이후 상대팀들의 집중적인 견제 속에 리그 9경기 연속 무득점에 시달렸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7경기(560분 출전)에서 45개의 슈팅을 날렸음에도 단 1골에 그쳤습니다. 44번의 슈팅을 놓쳤으니 '슛의 달인'이라는 명성을 단단히 구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나마 맨유가 순항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각각 리그 13경기 연속, 1310분 연속 무실점 기록을 세웠던 포백과 골키퍼 에드윈 판 데 사르 같은 '수비'의 맹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팀의 수비 마저 균열이 벌어지면서 리버풀전과 풀럼전 패배를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맨유의 주 공격 패턴이었던 호날두의 드리블 돌파가 상대 수비에 자주 걸리면서 팀 공격까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단점이 나타난 것이죠. 호날두는 리버풀전과 풀럼전에서 90분 내내 상대 수비수들의 철저한 압박 수비에 막혀 고개를 떨궜으며 최근 동료 선수들의 패스를 통해 여러차례 공격 기회를 잡았음에도 상대 수비벽을 좀처럼 뚫지 못하는 문제점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호날두에 의존하는 맨유의 공격력이 더 이상 상대팀에 통하지 않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맨유와 상대했던 리버풀과 풀럼은 자기 진영에서 수비에 몰두하다 순간적인 역습을 감행하는 패턴을 즐겨 사용하는 '안정 지향적인' 팀들 입니다. 공격 보다는 수비에 초점을 맞추면서 호날두를 집중 견제하는데 주력했고 이것을 발판삼아 맨유 공략에 성공했던 것입니다. 이는 상대팀들이 '호날두를 꽁꽁 막으면 맨유를 이길 수 있다'는 공식이 통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죠. 향후 맨유와 상대하는 팀들은 이러한 특징을 간파하여 호날두를 집중 공략할 가능성이 크며 맨유의 5관왕 달성 또한 차질을 빚게 됩니다.
최근 맨유가 공격에서 결정적인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호날두의 부진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하지만 맨유의 더 큰 문제는 호날두가 극심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음에도 이렇다할 공격 변화가 없다는 것이죠. 호날두를 대신하여 꾸준하고 파괴적인 플레이메이킹을 할 수 있는 선수가 팀에 없다는 점도 있지만 호날두에 쏠리는 공격 루트를 분산시키지 못하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공격 전술이 한계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루니-베르바토프-테베즈-긱스-박지성의 활용도를 높이는 다채로운 공격을 펼치는 것이 해법이나 그동안 맨유가 호날두의 공격에 의존하는 패턴을 즐겨 사용했다는 점에서 약점을 극복하기가 어려운 모습입니다.
결국에는 호날두를 올 시즌 종료까지 믿고 가야 합니다. 하지만 호날두는 2006-07시즌부터 팀의 전술적 초점과 관심의 중심 역할을 맡다 보니 상대팀들의 집중 견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특히 올 시즌에는 상대 수비수들의 밀착 견제 과정에서 짜증을 부리는 일이 많아지면서 경기를 자신 뜻대로 풀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호날두에게 상대 수비진을 여유롭게 따돌릴 수 있는 ´기교´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문제는 그의 몸이 ´혹사´ 논란에 시달릴 정도로 많은 에너지와 체력을 소비한 상태입니다.
그동안 호날두는 체력이 월등한 선수로 평가 받았지만 '냉정히 말해' 다른 선수처럼 그저 인간일 뿐입니다. 자신의 출전 시간에 비해 경기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은 지나친 체력 소모로 고전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며 이는 곧 경기력 저하로 이어졌습니다. 맨유가 5관왕을 달성하려면 4~5월에 16경기에서 좋은 경기를 펼쳐야 하나, 그 중심이 되어야 할 호날두의 몸은 지쳐 쓰러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맨유의 5관왕을 위해 호날두에 의존하는 공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는 호날두를 대신할 적임자가 없는데다 그의 체력이 많이 소진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여전히 팀 공격의 중심이 그의 발에 쏠리고 있는 퍼거슨 감독의 공격 전술이며 이것은 결국 리버풀전과 풀럼전 패배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맨유가 슬럼프의 기로에서 벗어나려면 호날두를 위주로 하는 공격 패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맨유=호날두'의 흐름을 이제는 퍼거슨 감독이 깨뜨려야 합니다. 만약 퍼거슨 감독이 자신의 취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맨유는 앞으로의 경기에서 돌이킬 수 없는 화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호날두의 감각적이고 화려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공격을 펼친 퍼거슨 감독 그리고 맨유의 행보는 난국에 빠진 셈입니다. '맨유=호날두'의 공식은 더 이상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