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를 누른 팀을 이기면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다!'
징크스의 사전적 의미는 '불길한 일이나 재수 없는 일'을 말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징크스가 넓은 의미로 쓰이면서 '긍정' 요소까지 통용되는 모습입니다.
2002/03시즌 이후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던 팀들에게는 한 가지 재미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레알 징크스에 힘입어 빅 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컵)를 들어올린 것이죠. 레알 징크스가 줄곧 계속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챔피언스리그 최다 우승 횟수(9회)를 자랑하는 레알 마드리드가 아홉 수 저주에 단단히 걸렸기 때문입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2001/02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 이후 6시즌 동안 고배를 마셨으며 최근 5시즌 연속 16강에서 패해 우승팀들의 징크스 제물이 되는 굴욕을 당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올 시즌에도 16강 고지에서 하산하고 말았습니다.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리버풀에 0-1 완패를 당하더니 2차전 원정에서는 0-4 대패를 당하며 프리메라리가 명문 클럽의 자존심을 단단히 구겼습니다. 그런 레알 마드리드를 꺾은 리버풀도 대단한 팀임엔 분명합니다만 8강과 4강, 결승에서 패할 경우 레알 징크스의 또 다른 희생양이 됩니다.
그런 리버풀을 8강에서 상대하게 되는 팀이 바로 첼시입니다. 첼시와 리버풀은 다섯 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 대결을 벌이기 때문에 엎치락뒤치락 승부가 예상됩니다만, 만약 첼시가 리버풀을 꺾을 경우 레알 징크스에 힘입어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할 가능성이 큽니다. 최근 '히딩크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첼시로서는 운이 따르게 되는 셈이죠.
레알 징크스는 2002/03시즌 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이어졌습니다. 2002/03시즌 유벤투스는 4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으나 AC 밀란이 유벤투스를 꺾으면서 '레알 징크스'의 효과를 본 첫 번째 우승팀이 됐습니다. 2003/04시즌에는 AS모나코가 8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지만 결승전에서 FC 포르투에 덜미를 잡혔죠.
2004/05시즌에는 리버풀이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이긴 유벤투스를 8강에서 물리쳐 유럽 제패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다음 시즌인 2005/06시즌에는 FC 바르셀로나가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제압했던 아스날을 2-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죠. 2006/07시즌 우승팀인 AC밀란은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은 바이에른 뮌헨을 8강에서 제압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시즌 우승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시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물리친 AS로마를 8강에서 꺾었습니다.
그리고 올 시즌에는 첼시가 강력한 우승 후보로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최근 세 시즌 동안 레알 징크스 효과로 우승한 팀들이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물리친 팀들을 8강에서 물리쳤기 때문이죠. 만약 8강 상대인 리버풀을 꺾는다면 팀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 승부차기에서 존 테리의 실축으로 우승 실패의 아쉬움을 곱씹어야 했던 첼시로서는 그저 레알 징크스가 반갑기만 합니다. 지난달 첼시 감독 부임 이후 7경기 연속 무패(6승1무)를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이 1988년 PSV 에인트호벤 우승 이후 21년 만에 빅 이어를 들어올리는 마법을 일으킬지 주목됩니다.
하지만 축구는 각본없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첼시의 우승을 섣불리 예상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첼시에게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가로막는 '세 가지의 벽'이 있기 때문입니다. 히딩크 감독의 '4강 징크스'와 미하엘 발라크의 '준우승 징크스', 그리고 라파엘 베니테즈 리버풀 감독이 팀을 두 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2004/05시즌, 2006/07시즌)을 이끈 것이죠. 물론 히딩크 감독도 마법사이긴 합니다만 베니테즈 감독도 그에 못지 않은 마법의 기질을 자랑하는데다 '토너먼트의 귀재'라 불릴만큼 그동안 토너먼트에 강한 면모를 발휘했습니다.
만약 첼시가 리버풀에 패할 경우, 바르셀로나-바이에른 뮌헨 승자가 4강에서 리버풀과 맞붙어 레알 징크스 효과를 누리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세 시즌 연속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은 팀들이 8강에서 그 대회 우승팀들에게 무너졌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는 첼시의 우승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과연 첼시가 리버풀을 꺾고 레알 징크스 효과를 앞세워 런던 클럽 최초로 빅 이어의 주인공이 될지 주목됩니다.
[Bonus] 유럽 축구에서 레알 징크스가 있다면 국내 K리그에는 인천 징크스가 있습니다. 2004년 정규리그에서 우승했던 팀들이 흥미롭게도 정규리그 마지막 상대인 인천과 상대하여 우승컵을 들어올린 것이죠. 공교롭게도 인천은 2004년 부터 K리그에 참가했던 팀이죠.
수원(2004, 2008) 울산(2005) 성남(2006) 포항(2007)은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 혹은 챔피언결정전에서 인천과 맞붙어 정규리그 우승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올 시즌에는 하위권 전력으로 여겨지는 부산이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인천과 겨룹니다. 2005년 전기리그 우승으로 '하위권'을 예상하던 여론의 반응을 뒤엎은 것 처럼 4년만에 그 쾌거를 달성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