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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의 기동력, 맨유에서 최고였다

 

역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라이벌 대결은 짜릿 했습니다. '붉은 전쟁(레즈 더비)'으로 회자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리버풀의 라이벌전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명승부였습니다. 경기는 리버풀의 4-1 승리로 끝났지만 두 팀 선수들이 보여줬던 뜨거운 열정은 지구촌 축구팬들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습니다.

이날 경기에 출전했던 선수들이 보여준 패스와 몸싸움, 전술적인 움직임은 역시 세계 '톱 클래스' 였습니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 후보로 꼽히는 팀들끼리의 경기였기에 '너를 이겨야 내가 산다'는 선수들의 각오는 비장했고 올드 트래포드를 가득 메운 7만 팬들의 함성 또한 우렁찼습니다.

무엇보다 국내 팬들에게 가장 관심을 모은 것은 박지성의 활약 여부였습니다. 두 사람 이상의 몫을 능히 해내는 기동력과 부지런함, 악착같은 수비력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전술 운용 폭을 넓게했던 만큼 리버풀전에서 팀 승리를 이끄는 역할에 결정적 몫을 다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죠. 뚜껑을 열은 결과, 박지성의 주무기인 기동력은 리버풀전에서도 명불허전이었으며 자신이 '기동력 지존'임을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라이벌전에서 만천하에 과시했습니다. 이와 함께 전반 21분 페널티킥을 얻으면서 시즌 세번째 어시스트를 기록한 것은 마치 '보너스'와 같았습니다.

박지성, '기동력 지존' 위력 보여줬다

박지성이 이번 리버풀전에 선발 출장한 것은 올 시즌 팀의 확고한 주전 선수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아스날, 첼시, 아스톤 빌라, 에버튼 같은 프리미어리그 강적들을 상대로 골을 넣거나 팀 승리에 결정적 공헌을 하는 맹활약을 펼친 경험이 있지만 리버풀전 통산 출장 시간이 5분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2005/06시즌 리버풀과의 2경기 모두 후반 막판에 교체 투입되어 총 5분 출장한 것이 전부였고 나머지 경기에서는 부상과 로테이션 시스템 차원에서 결장했습니다. 그런 박지성이 선발 라인업에 포함된 것은 단순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박지성이 리버풀전에서 맡은 역할이 이전과 뚜렷한 차이를 나타냈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강팀과의 경기에서 '수비형 윙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만큼 수비적인 역할에 치중했지만 이번 리버풀전에서는 공격적인 역할에 무게를 두어 상대 수비진을 괴롭힌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전반 21분 상대 문전으로 빠르게 침투하는 과정에서 리버풀 골키퍼 호세 레이나를 상대로 페널티킥 및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선제골 및 자신의 시즌 세번째 어시스트로 이어지는 값진 결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날 리버풀전 선발 라인업을 보면, 퍼거슨 감독이 2007/08시즌에 큰 효과를 봤던 '무한 스위칭'으로 리버풀 수비진을 괴롭히겠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무한 스위칭은 공격 옵션들이 최전방 이곳 저곳을 빠르고 활발하게 휘저으며 상대 수비진을 뚫는 전술로서 기동력이 뛰어난 선수들의 활약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를 대신하여 카를로스 테베즈가 선발로 투입된 것, 올 시즌 로테이션 경쟁에서 밀렸던 안데르손이 선발로 나온 것은 기동력에 승부를 걸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맨유의 무한 스위칭에서 엄청난 활동량과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팀 공격을 주도한 선수는 단연 박지성이었습니다. 박지성은 경기 시작과 함께 왼쪽 측면에서 공격 기회를 잡은 뒤 전반 2분 문전 중앙에서 팀의 첫 슈팅을 날렸고 1분 뒤에는 오른쪽 하프라인에서 문전쪽으로 대각선 침투하는 역동적인 공격력을 과시했습니다. 루니-테베즈와 함께 좌우 측면과 중앙, 수비를 가릴 것 없이 활발히 스위칭을 하면서 리버풀의 기세를 잠재운 것이죠. 맨유가 전반 30분 이전까지 경기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박지성이 미드필더와 공격진 사이를 부지런히 넘나드는 움직임으로 여러 차례 문전을 두드렸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박지성의 기동력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동료 선수들의 공격력을 활용할 수 있는 '영리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반 39분 왼쪽 측면으로 돌파하는 과정에서 상대팀 선수 3명의 압박에 둘러쌓인 장면이 있었는데, 무리한 돌파를 시도하지 않고 자신의 뒷쪽에 있던 파트리스 에브라에게 패스를 연결하면서 팀 공격을 끊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전반 15분과 18분에는 디르크 카윗과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의 공을 빼앗아 재빠르게 역습을 전개하는 인터셉트 또한 빛났습니다.

맨유가 1-2로 뒤졌던 후반전에는 4-2-3-1 체제에서 오른쪽 공격에 전념하면서 간결한 움직임을 앞세운 한 박자 빠른 타이밍의 스루패스와 롱패스를 골고루 활용하며 동료 선수들에게 여러차례 골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호날두-루니-테베즈-안데르손의 기동력이 전반전 활약에 미치지 못하면서 경기를 제대로 풀어갈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박지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맨유의 공격이 박지성쪽으로 쉴세없이 이어졌던 것은, 그만큼 박지성의 기동력이 다른 누구보다 뛰어났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박지성의 가치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날 잉글랜드 현지에서 방송 중계를 했던 장지현 MBC ESPN 해설위원의 멘트였습니다. 장 해설위원은 "박지성은 오프 더 볼(Off the ball) 상황에서의 움직임이 대단하다"는 말을 여러차례 내뱉으며 박지성의 기동력과 공간 창출 능력을 칭찬한 것입니다. TV 보다는 경기장에서 직접 경기를 보는 것이 해당 선수의 특징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박지성의 기동력을 칭찬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박지성의 진가는 후반 27분 자신의 교체 이후에 또 한 번 증명 되었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자신을 빼면서 맨유의 공격이 이전보다 살아나지 못한 것입니다. 퍼거슨 감독은 자신을 비롯 안데르손과 마이클 캐릭을 빼고 긱스-스콜스-베르바토프를 한꺼번에 투입했지만 오히려 리버풀 미드필더진에게 경기 주도권에서 밀리는 문제점을 나타냈습니다. 네마냐 비디치의 퇴장으로 미드필더와 공격진의 활동 부담이 커진 점을 감안하더라도 세 명의 공격 성향의 선수들을 교체 투입시켰음에도 공격력에서 상대팀에 뒤졌다는 것은 박지성을 교체시킨 퍼거슨 감독의 판단이 틀렸음을 입증했습니다.

맨유를 4-1로 격파한 리버풀은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아무리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아직까지 단 한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더라도 올 시즌 맨유와의 2연전을 모두 승리한 것은 그들이 맨유 못지 않은 강한 상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리버풀 선수들을 상대로 뛰어난 기동력을 자랑한 박지성의 진가는 대단한 것입니다. 적절치 못한 교체 투입으로 '리버풀전 굴욕'을 자초한 퍼거슨 감독도 박지성을 교체시킨 것을 후회할지 모를 일이겠지요.

비록 맨유는 패했지만 다른 팀원보다 더 좋은 경기력을 펼친 박지성의 활약은 가히 눈부셨습니다. 올 시즌 5관왕 달성에 빨간불이 켜진 맨유 입장에서는 박지성의 진가가 더 없이 귀중하게 여겨질 것으로 보입니다. 리버풀전에서 '기동력 지존'임을 증명한 박지성의 밝은 미래가 기대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