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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EPL 1위 맨유가 무너지지 않는 이유

 

"맨유가 5개의 우승컵을 손에 쥐는 것을 막아버리고 싶다. 나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오름세를 멈추고 싶다. 물론 맨유는 강력한 선수단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나는 퍼거슨 감독이 두렵지 않다"

거스 히딩크 첼시 감독은 지난 2일 포츠머스전을 앞두고 잉글랜드 <더 선>과 인터뷰를 가지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5관왕 달성을 저지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이는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저지하여 첼시의 우승컵을 들어올리겠다는 의미였죠. 역시 히딩크 감독은 '심리전의 대가' 답게 리그 선두 맨유의 기세를 흔드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에 잉글랜드 언론들은 "1995/96시즌 맨유와 리그 선두 다툼을 펼친 캐빈 키건 전 뉴캐슬 감독의 사례를 히딩크가 재현했다"는 보도를 했습니다. 1995/96시즌 리그 선두 뉴캐슬을 추격하던 퍼거슨 감독은 역전 우승을 위해 키건 감독과 뉴캐슬을 공격하는 발언을 했고 이에 키건 감독이 심리전에 말려들면서 남은 11경기에서 단 4승에 그치고 맨유에 역전 우승을 허용했던 것이죠. 맨유는 한때 승점 12점까지 나던 승점차를 뒤집고 리그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1995/96시즌의 퍼거슨 감독이 되고 싶었던 겁니다.

공교롭게도, 포츠머스전을 앞두던 히딩크 감독에게 남은 리그 경기는 11번 있었습니다. 1995/96시즌의 퍼거슨 감독에게도 11번의 리그 경기가 남아있었던 것이죠. 히딩크 감독의 첼시는 4일 포츠머스전 승리로 승점 3점을 보태면서 맨유를 추격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반면 맨유는 5일 뉴캐슬 원정에서 2-1 역전승을 거두면서 '선두 굳히기 모드'에 힘을 보탰습니다.

올 시즌 28경기에서 17승7무4패(승점 58점)를 거둔 첼시가 27경기에서 20승5무2패(승점 65점)를 기록한 맨유를 따라 잡으려면 승점 7점이 더 필요합니다. 남은 10경기에서 모두 이기면 승점 88점이 되지만 맨유는 11경기 중에 8경기만 이겨도 승점 89점이 되므로 사실상 맨유가 리그 우승에 더 유리한 고지를 밟고 있습니다. 더욱이 순위 싸움이 치열한 프리미어리그에서 10경기를 모두 이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히딩크 감독이 바라는 목표는 현실적으로 꿈에 그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이 리그 역전 우승을 위해 넘어야 할 '맨유의 벽'이 막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승점 뿐만이 아닙니다. 전형적인 슬로우 스타터로 유명한 맨유의 벽이 시즌 후반에 이르러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죠. 시즌 초반 부진했던 맨유가 리그 선두에 올라선 것은 지난 1월 18일 볼튼전 이었으며 지금은 2위 첼시에 비해 한 경기를 덜 치렀음에도 승점 7점이나 앞선 상황입니다. 게다가 뉴캐슬까지 꺾으면서 리그 11연승을 달성했으니, 히딩크 감독이 바라던 '맨유 몰락 시나리오'가 이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게 했습니다.

맨유는 유럽 빅 리그 팀들 중에서 가장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는 팀입니다. 프리미어리그 특성상 다른 리그와 달리 겨울 휴식기가 없어 지난해 8월 리그 개막 이후 쉴틈 없이 경기를 계속 치렀습니다. 이에 지구촌 축구 전문가들과 국내외 여론에서는 맨유에 대한 위기론을 제시했지만 오히려 맨유는 리그 우승 및 5관왕을 앞두고 순항을 질주하고 있습니다. 시즌 후반에는 선수들의 체력이 지칠 법 하지만, '첼시의 공세 속에서도' 끄떡없이 바쁜 일정을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이는 퍼거슨 감독의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이 시즌 후반에 이르러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것은 20여명의 주요 선수들을 골고루 활용하여 상대팀과 경기 상황에 유기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시스템입니다. 선수들의 체력 안배와 경쟁 유발을 위한 장점이 있으며 그동안 많은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는 효과로 이어졌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그동안 튼튼한 스쿼드를 토대로 로테이션 시스템을 가동하여 주전 선수들의 체력 안배와 백업 선수들의 동기부여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지난 1일 토트넘과의 칼링컵 결승전에서는 웰백-깁슨-에반스 같은 신예 선수들과 나니-테베즈-오셰이-안데르손-포스터 같은 백업 선수들의 활약을 토대로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퍼거슨 감독이 추구했던 로테이션 시스템의 승리이며 프리미어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 FA컵에서 우승할 수 있는 자신감의 밑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지난해 연말 클럽 월드컵 우승 트로피까지, 맨유의 5관왕은 이렇게 완성되는 것입니다.

물론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의 리버풀도 로테이션 시스템을 쓰고 있지만 35년 노하우가 빚어낸 퍼거슨 감독의 로테이션 시스템을 따라잡기에는 항상 역부족 이었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오랫동안 풍부하게 쌓았던 감독 경험을 십분 발휘하며 빡빡한 일정과 줄부상이라는 악재 속에서 주요 선수들을 골고루 기용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 결과 오셰이와 테베즈, 에반스, 하파엘 같은 백업 및 영건 선수들이 실전에서 주전 선수 못지 않은 맹활약을 펼쳤으며 긱스-스콜스-네빌 같은 노장 선수들이 젊은 선수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한 회춘 모드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맨유가 11연승을 달성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원동력은 바로 수비입니다. 올 시즌 부상 없이 수비 라인을 버틴 네마냐 비디치가 중심이 되어 지난해 11월 8일 아스날전 부터 지난달 22일 블랙번전까지 13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펼쳤습니다. 비록 에브라와 퍼디난드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지만 오셰이와 에반스 같은 백업 멤버들이 주전 못지 않은 활약을 펼치면서 로테이션 시스템의 강력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오른쪽에서는 하파엘과 네빌이 주전을 위한 치열한 경합을 벌였고 최근에는 오셰이까지 가세하면서 오른쪽 수비라인이 강해졌습니다. 여기에 골키퍼 판 데르 사르의 1310분 무실점 기록까지 더해지면서 맨유의 수비는 더 강해졌고, 로테이션 시스템의 효과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이번 뉴캐슬전에서는 맨유의 시즌 후반이 더 강해질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이날 비디치와 오셰이가 주춤한 활약을 펼쳤고 판 데 사르가 자신의 실책으로 실점을 헌납했지만 루니와 베르바토프가 골을 넣으면서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그동안 맨유의 리그 11연승 및 1위를 이끈 주역이 수비였다면 앞으로 남은 11경기에서는 공격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 이유는 루니와 베르바토프의 킬러 본능이 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루니는 올 시즌 잦은 부상으로 팀에 이렇다할 공헌을 하지 못했지만 최근 리그 3경기 연속 골을 넣으며 맨유의 연승 행진을 이끌었습니다. 지난달 19일 풀럼전 결승골, 22일 블랙번전 선제골, 5일 뉴캐슬전 동점골로 팀의 승리를 견인한 것입니다. 베르바토프는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으로 '먹튀'라는 비아냥을 받았으나 지난달 30일 미들즈브러전 부터 뉴캐슬전까지 13경기(FA컵, 챔피언스리그 포함)에서 7골을 넣으며 명예회복에 성공했습니다. 토트넘 시절에도 슬로우 스타터였던 그였기에 시즌 후반 신들린 골 감각을 발휘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물론 두 선수 뿐만이 아닙니다. 호날두는 지난 시즌에 비해 많은 골을 넣지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측면에서 감각적인 개인기와 날카로운 패스로 팀의 공격을 조율하며 에이스의 면모를 내뿜고 있습니다. 스콜스-긱스-캐릭-플래처가 중심이 되는 중원은 여전히 견고하고 강하며 박지성은 미드필더진에서 궃은 역할을 다하며 항상 꾸준한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최근 리그 3경기에서는 2개의 도움을 기록하는 등 그동안 부족했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며 맨유 전력에 없어선 안될 선수임을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국내 팬들의 관심사인 '박지성의 골' 또한 시즌 후반에 빛을 발했습니다. 박지성은 지금까지 맨유에서 기록한 9골 중에 5골이 3~4월에만 기록한 것이며 특히 3월에는 4골을 넣었습니다. 그 중 2007년 3월 17일 볼튼전에서는 멀티골을 넣었고 지난 시즌의 유일한 골 또한 3월에 기록했던 것이어서(3월 1일 풀럼전) 유독 3월에 골을 넣는 장면이 많았죠. 더욱이 자신이 골을 넣은 8경기 중에서 7경기가 맨유의 승리로 이어진 것이어서, 최근 리그 3경기에서 2도움을 기록한 것과 맞물려 앞으로 더 많은 골과 도움을 기록하여 맨유의 5관왕을 이끌지 주목됩니다.

이처럼 맨유는 바쁜 일정과 첼시의 공세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꿋꿋히 승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거침없는 기세가 5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지구촌 축구팬들의 기대감이 한껏 고조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