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제패를 위해 UEFA 챔피언스리그에 발을 내딛었던 32개 팀 중에 절반이 지난해 가을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 고지에 올라섰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오는 25일과 26일에 걸쳐 열리는 16강 1차전을 시작으로 결승전에 이르기까지 토너먼트 형식으로 우승팀을 가리는 것만 남았습니다.
챔피언스리그의 최고 묘미는 단연 우승팀입니다. 유럽 축구 최고의 팀에 선정되는 프리미엄은 물론 그해 연말 일본에서 열리는 FIFA(국제축구연맹) 클럽 월드컵에 참가하는 특전이 주어지기 때문에 여러 팀들이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목이 말라있습니다. 특히 올 시즌에는 16강 토너먼트에 올라선 팀들의 전력이 엇비슷하기 때문에 어느 팀 전망이 밝은지 조차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입니다.
메시-제라드-클로제-벤제마, 챔피언스리그 우승 이끈다?!
그런 가운데, 최근 챔피언스리그 우승팀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새로운 패턴´에서 유럽 제패의 우열이 가려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두 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득점 1위자를 보유한 팀에서 우승팀이 배출되었던 것이죠. 2006-07시즌에는 카카가 10골을 넣으며 AC밀란의 우승을 이끌었으며 이듬해 시즌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8골을 꽂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빅 이어(챔스 우승컵)를 바쳤습니다.
사실, ´챔피언스리그 우승=득점 1위´는 지금까지 축구팬들에게 낯설었던 챔피언스리그 우승 공식입니다. 1990년대 이후 호마리우(1992-93시즌, FC 바르셀로나) 야리 리트마넨(1995-96시즌, 아약스) 라울 곤잘레스(1999-00시즌, 레알 마드리드) 카카, 호날두가 득점 1위에 힘입어 팀의 우승을 이끌었을 뿐 나머지 시즌에서는 팀 우승과 득점 1위의 인연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라울부터 카카까지는 6시즌 동안 공식이 성립되지 못해 ´징크스´로 굳어졌을 정도죠.
이 같은 침묵을 깬 것이 바로 카카와 호날두의 신들린 득점포입니다. 이들은 2006-07시즌과 2007-08시즌 대회 득점 1위로 팀의 우승을 이끌며 두 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우승=득점 1위´ 공식을 성립시켰죠. 축구가 많은 골을 넣어야 이기는 스포츠 종목임을 감안할때, 올 시즌에도 득점 1위의 활약에 따라 우승팀 여부가 가려질 가능성이 높은 것은 자명한 사실일지 모릅니다.
올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득점 공동 선두를 달리는 네 명의 선수가 득점 1위와 소속팀 우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선두 주자로 나섰습니다.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 스티븐 제라드(리버풀) 미로슬라프 클로제(바이예른 뮌헨) 카림 벤제마(리옹)는 지난해 가을 32강 조별예선에서 5골을 넣으며 팀의 16강 진출을 견인한 상황입니다.
특히 카카, 호날두와 더불어 ´세계 3대 축구 천재´로 불리는 메시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메시는 챔피언스리그 32강 5경기에서 5골 3도움을 기록한 것을 비롯 프리메라리가 21경기 16골 10도움, 코파 델 레이 6경기 4골을 기록하는 가공할만한 화력을 뽐냈습니다. 유럽 3대 빅리그 선수 중에서 가장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것이어서 벌써부터 2009 발롱도르-FIFA 올해의 선수로 거론되는 분위기입니다. 물론 두 개의 개인 타이틀을 얻으려면 소속팀의 성적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것은 챔피언스리그 우승 여부에 달린 일입니다.
공교롭게도 메시가 속한 바르셀로나는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 후보 1순위로 꼽히는 팀입니다. 프리메라리가에서 몇달째 독주행진을 거듭하면서 승점 100점이라는 꿈의 점수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죠. 영국의 유명 베팅업체인 ´윌리엄 힐´이 최근 발표한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배당률에서는 바르셀로나가 10/3으로 1위에 올라있습니다. 리옹 관계자가 지난해 연말 16강 조추첨식에서 바르셀로나와의 대진이 확정되자 울쌍을 지었을 만큼, 현 시점에서는 메시의 바르셀로나가 단연 우세입니다.
반면 메시와 16강에서 대결하는 벤제마의 입장은 억울할지 모릅니다. 레알 마드리드와 맨유의 러브콜을 받을 만큼 괴물 킬러 본능을 자랑하고 있지만 소속팀이 최근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항상 8강과 16강 길목에서 무너졌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큰 경기에서 내뿜을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본선 3차전 카메룬전에서 5골 몰아치고 대회 득점왕에 오른 살렌코(러시아)처럼 16강 1,2차전에서의 몰아치기 골로 득점왕에 오르는 방법이 있지만 바르셀로나의 수비 라인이 굳건하다는 점에서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메시의 강력한 도전자로는 제라드와 클로제로 꼽힙니다. 제라드는 2004/05시즌과 2006/07시즌에 보여준 자신의 과감한 ´한 방´으로 리버풀의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준우승을 이끌며 캡틴의 진면목을 발휘했습니다.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32강에서는 리버풀이 넣은 11골 중에 5골을 도맡으며 팀의 D조 1위(4승2무)와 함께 16강 진출을 이끄는 일등 공신 역할을 해냈습니다. 최근 자신의 ´죽마고우´인 페르난도 토레스가 부상 복귀 후 골을 터뜨리며 승승장구하고 있어 토너먼트에서의 콤비 플레이가 기대 됩니다.
클로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득점 2위, 2006년 독일 월드컵 득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국제 대회에서 자신의 킬러 본능을 검증 받았습니다. 지난 시즌 루카 토니와 최상의 득점력을 자랑하며 팀의 더블 우승(분데스리가, DFB-포칼)을 이끌었던 그의 올 시즌 목표는 챔피언스리그 득점 1위 및 팀의 우승으로 새롭게 설정 됐습니다. 자신과 16강에서 맞붙는 스포르팅 리스본이 유독 뮌헨에 약했기 때문에 그의 고공행진이 기대될 수 밖에 없습니다. F조 1위(4승2무)였던 뮌헨이 다른 강호들에 비해 과소평가 받고 있다는 점은 오히려 우승 행보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네 선수 이외에도 대회 4골로 팀의 16강 진출을 견인한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맨유) 알렉산드로 델 피에로(유벤투스) 리산드로 로페스(FC 포르투)도 주목할 선수들 입니다. 과연 어느 선수가 챔피언스리그 득점 1위로 팀의 우승을 이끌지 아니면 1위 임에도 팀의 탈락을 지켜봐야 하는 불운의 쓴맛을 봐야할지, 토너먼트 대결의 첫 시작인 16강이 벌써부터 흥미진진하게 기다려질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