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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 경쟁자' 나니, 너의 정체는 뭐야?


'나니, 너의 정체는 뭐야?'란 말이 나올 법 합니다.

우리에게 박지성 경쟁자로 유명한 포르투갈 출신 윙어 루이스 나니(2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기복이 심한 선수로 유명합니다. 평소 부진한 활약으로 팬들의 끊임없는 비아냥을 받으면서도 어떤 날에는 '호날두급'의 활약을 펼쳐 팀 승리를 공헌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나니의 팀 내 입지는 좋지 않습니다. 지난 시즌에는 자국 출신인 카를로스 퀘이로스 수석코치(현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의 도움속에 팀에서 무리없이 적응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 올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선발 출장 3회에 그치는 등 중요한 경기때마다 결장을 거듭하며 위상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자신과 포지션이 똑같은 조란 토시치의 등장으로 방출 위기까지 몰렸죠. 불과 토시치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니의 입지는 점점 바닥을 기어가는 듯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니는 자신의 위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신들린 골 감각을 자랑하며 로테이션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불태웠습니다. '이제 정신 차렸나?'라는 팬들의 반응을 유도할 정도로 말이죠.

공교롭게도 나니는 더비 카운티를 상대로 두번씩이나 선제골을 터뜨리며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심어줬습니다. 지난달 21일 새벽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칼링컵 4강 2차전에서 전반 16분 벼락같은 중거리슛으로 선제골을 뽑으며 팀의 4-2 승리를 이끌더니, 16일 새벽 프라이드 파크에서 열린 FA컵 5라운드(16강)에서 전반 29분 문전으로 치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오른발 강슛으로 선제골을 뽑으며 팀의 4-1 대승을 이끌었습니다. 맨유에게 두 번이나 패한 더비 카운티는 나니의 슬럼프 탈출을 도와준 격이 되고 말았죠.

두 번의 더비 카운티전에서 펼친 나니의 활약상은 눈부셨습니다. 칼링컵 4강 2차전에서는 현란한 개인기와 빠른 돌파로 상대 수비벽을 여유있게 허물고 최전방에 포진한 공격수에게 정확한 패스 연결을 하는 등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번 FA컵 5라운드에서는 전반 초반부터 박지성과 정확한 패스를 주고 받으며 골 기회를 만들어내는 척척 맞는 호흡을 과시하며 상대 오른쪽 수비망을 뚫었습니다. 특히 전반 14분에는 페널티 박스 왼쪽에서 공을 잡은 상황에서 박지성이 문전으로 치고들어가는 장면을 보며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리는 등, 오랜만에 박지성과 기가 막힌 호흡을 펼쳤습니다. 아쉬운 것은 나니의 공을 받은 박지성의 다이렉트 발리슛이 상대 골키퍼를 맞고 골대 바깥으로 빗나간 것인데 '박지성 골-나니 도움'의 작품이 나올 뻔했습니다.

그동안 나니의 행보가 불안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2007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1400만 파운드(약 280억원)의 거액 이적료로 맨유에 입성하여 '긱스 후계자', '맨유의 미래를 빛낼 선수'로 주목 받았지만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기력이 아쉬웠습니다. 공을 무리하게 끌고 다니는 드리블 돌파로 팀 공격 템포를 끊은것은 물론 상대 수비수에게 자주 공을 빼앗겨 역습을 허용하는 모습, 지나친 슈팅 난사와 무리한 개인기를 구사하며 팬들의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지난해 2월 아스날과의 FA컵 5라운드에서는 상대팀 선수와 공 경합 과정에서 물개 드리블을 구사하여 아스날팬들의 엄청난 원성을 샀었죠.

하지만 나니는 어디까지나 '미완의 대기'였을 뿐입니다. 미완의 대기란 큰 그릇이 늦게 만들어져 능력이 천천히 발휘되는 스타일을 말하는 것인데요. 아무리 기복이 심한 경기력으로 비아냥을 받고 있음에도 꾸준히 공격 포인트를 쌓을 수 있었기 때문에 맨유의 미래를 빛낼 원석으로 주목 받을 수 있었던 겁니다.지난 시즌 4골 11도움을 기록하여 팀내 도움 2위에 오르는 활약을 펼치더니 올 시즌에는 6골 2도움을 기록하여 지난 시즌보다 더 많은 골을 넣었습니다. 아직 시즌 종료가 3개월 남았다는 점에서 더 많은 골을 터뜨릴 것으로 보이죠.

이처럼, 나니는 자신의 강력한 무기인 꾸준한 공격 포인트로 존재감을 알리며 퍼거슨 감독의 확실한 눈도장을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비록 칼링컵, FA컵에서 약팀을 상대로 많은 공격 포인트를 쌓고 있지만, 경기 내용 부진 속에서도 자신의 공격 기회를 단 한번 이라도 충분히 살리며 골과 도움을 기록했던 것은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나니의 잠재력이 여전히 높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특히 토시치의 합류는 나니에게 엄청난 자극제가 되었음에 분명합니다. 더비 카운티와의 두 번의 경기에서 모두 골을 넣으며 팀의 승리를 이끄는 등, 해결사의 기질을 발휘하며 '이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실력으로 확인시켜줬죠. 현재 토시치가 팀 적응 단계라는 점에서 나니의 출장 기회는 계속 주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그가 그동안 불안했던 모습을 떨치고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면 퍼거슨 감독의 신뢰를 다시 한번 한 몸에 받을 것임에 분명합니다.

이러한 나니의 면모는 자신과 절친한 호날두와 비슷합니다. 호날두도 맨유 입단 초기 ´혼자우도(호날두가 원래 국내에서 호나우두(도)로 불렸죠.)'라는 비아냥을 받을 만큼 지금의 나니처럼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다만 호날두는 매 시즌마다 발전된 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할 수 있었지만 나니는 불과 더비 카운티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그와 반대되는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두 번의 더비 카운티전을 터닝 포인트의 계기로 삼아 팀에 없어선 안될 공격 옵션으로 자리잡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니는 여전한 미완의 대기입니다. 아무리 더비 카운티전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할지라도 프리미어리그에서 이렇다할 출장 기회를 얻지 못한데다 그동안 들쭉날쭉한 경기를 펼쳤기 때문에, 앞으로의 행보를 좀 더 두고봐야 할듯 합니다. 시즌 후반에 어떤 활약을 펼치느냐에 따라 자신의 앞날이 가려질 듯 합니다.

다만 두 번의 더비 카운티전에서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슬럼프를 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시즌 후반 맹활약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 것 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포스트 긱스로 주목받는 나니가 영원히 미완의 대기에 그칠지 아니면 맨유 공격에 없어선 안 될 중심 선수로 발돋움할지 앞으로의 활약이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