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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이정협, 아시안컵 맹활약 반짝 아니기를

이제는 이정협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자신이 아시안컵 단 1경기도 시청하지 않았음에도 미디어 및 인터넷 등을 통해서 이정협 이름 세 글자를 들어볼 수 밖에 없었을 것임에 틀림 없다. 비록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이 아시안컵 결승을 앞둔 때지만 이정협은 이번 대회가 낳은 최고의 스타중에 한 명임에 틀림 없다. UAE 테크니션 오마르 압둘라흐만이 아시아 축구팬들에게 멋진 기량을 선사했다면 한국에는 이정협이 있다.

 

이정협은 아시안컵 4강 이라크전까지 2골 기록했다. 대회 득점 랭킹 상위권에 있는 선수가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많은 축구팬들이 그의 활약을 인정하는 것은 단순한 골 기록보다는 K리그 클래식에서 철저한 무명이었던 그의 '인생 반전' 스토리에 감명을 느꼈다. 그는 불과 1달 전까지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

 

[사진=호주전에서 결승골 넣은 뒤 아시안컵 홈페이지 메인에 등극했던 이정협 (C) 아시안컵 홈페이지(afcasiancup.com)]

 

당초 한국 축구 대표팀의 최대 약점은 원톱으로 꼽혔다. 그때까지 한국 원톱 BEST 3로 꼽혔던 박주영, 이동국, 김신욱이 부진 및 부상으로 아시안컵 참여가 불발되면서(이 글에서 말하는 BEST 3는 대표팀 발탁 및 경험, 활약도를 뜻한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 원톱 BEST 3 개념이 사라졌다. 이정협이라는 새로운 스타가 탄생했다.) 이근호, 조영철 같은 2선 미드필더들이 아시안컵 한국 대표팀 명단에 공격수로 분류됐다. 두 선수를 제로톱으로 활용하겠다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의도가 드러났으며 실제로 제로톱을 가동했다. 한국의 유일한 전문 공격수는 상주 상무의 로테이션 멤버 혹은 후보 선수였던 이정협 뿐이다.

 

이정협 첫 번째 A매치였던 지난 4일 사우디와의 평가전 후반 28분 교체 출전을 놓고 보면 그의 아시안컵 역할은 한국이 승부처에 접어드는 상황에서 교체 투입하는 쪽이 될 것으로 보였다. 교체 출전 이전까지 이근호와 조영철이 제로톱을 번갈아 맡았던 것을 보면 당시 슈틸리케 감독의 아시안컵 전략은 플랜A가 제로톱, 플랜B가 이정협 원톱 교체 투입일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예상과는 반대로 이정협은 아시안컵에서 한국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중이다. A조 3차전 호주전, 4강 이라크전에서 모두 결승골을 넣으며 한국의 승리를 이끈 것을 비롯하여 최근 3경기 연속 선발 출전하며 팀에서의 위상이 커졌다. A매치 6경기 출전에 불과했던 그가 이제는 한국 대표팀 전력에 꼭 필요한 선수로 부각됐다.

 

과장된 표현일지 몰라도 이정협 골 장면들을 보면 필리포 인자기 떠올리게 된다. 위치선정의 달인으로 유명했던 이탈리아 축구 스타 인자기처럼 골을 넣을 수 있는 위치를 잘 포착했다. 물론 인자기와 비견하기에는 무리수인 느낌이 없지 않다. 이정협은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보여줘야 할 것이 더 많다. 하지만 근래 한국 대표팀 선수로 뛰었던 공격수중에서 탁월한 위치선정에 의한 득점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던 인물은 흔치 않았다. 여기에 이정협은 이번 아시안컵에서 골 결정력에 눈을 뜬 것처럼 보인다. 국제 무대에서 잘할 수 있는 자신감이 A매치에서 귀중한 골을 넣는 효과로 이어졌고 더 나아가 한국 대표팀 주전 공격수가 됐다.

 

앞으로의 관건은 이정협을 앞으로 대표팀 주전을 지키느냐, 대표팀에서 계속 볼 수 있느냐 없느냐 여부일 것이다. 아시안컵 이후에는 이동국과 김신욱이 부상 회복 후 평소의 기량을 되찾을 경우 다시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다. 아니면 이정협이 그랬던 것처럼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눈여겨봤던 인지도 낮은 공격수 또는 대중들에게 잊혀진 그 누군가가 대표팀에 깜짝 발탁되거나 오랜만에 복귀할 가능성이 결코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정협은 아시안컵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이 풍부한 선수임을 경기력으로 보여줬으나 그 이후에는 다른 전문 공격수와의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 싸움에서 밀리면 이정협 아시안컵 맹활약은 끝내 반짝이 된다.

 

이정협은 슈틸리케호 황태자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에서는 '한 번 주전은 영원한 주전'이라는 수식어가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인물이라도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이정협이 대표팀 입지를 확고하게 다지려면 아시안컵 맹활약에 너무 취해서는 안된다. 아시안컵 이후에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열심히 분발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가치를 크게 키울 수 있다. 훗날 이정협 연봉 대박났다는 소식이 여론의 긍정적인 화제를 끌기 바라며 오랫동안 한국 축구를 화려하게 빛내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