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축구 대표팀의 오만전 승리 원인중에 하나는 후반 47분 김진현 슈퍼세이브 장면이었다. 한국 골키퍼 김진현은 오만의 오른쪽 코너킥을 문전에서 머리로 슈팅을 연결했던 에마드 알 호사니 헤더슛을 손으로 쳐내며 한국의 실점 위기를 막았다. 볼은 김진현 손을 맞고 크로스바를 강타한 뒤 한국 골망 바깥으로 향하면서 김진현 슈퍼세이브 선방이 한국의 위기를 구했다. 슈틸리케호는 오만을 1-0으로 이겼다.
한국 오만 경기에서 가장 잘한 선수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기성용과 조영철을 꼽을 것이다. AFC(아시아축구연맹)는 이날 경기 최우수 선수(MOM)로 구자철을 선정했다. 하지만 오만전 무실점 주인공 김진현도 이들 못지 않게 맹활약 펼쳤다. 김진현 슈퍼세이브 활약은 한국이 승점 3점 획득을 굳혔던 또 다른 결정타가 됐다.
[사진 = 김진현 (C) 세레소 오사카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cerezo.co.jp)]
오만전은 친선전이 아니다. 한국의 2015 호주 아시안컵 A조 1차전이다. 일반적으로 큰 대회를 치르는 팀들은 주전 골키퍼를 잘 바꾸지 않는다. 이 경기가 친선전 2연전 중에 하나였다면 골키퍼끼리 서로 번갈아 가면서 경기에 나섰을 수도 있으나 큰 대회는 그렇지 않다. 주전 골키퍼로 낙점 받은 선수가 팀의 대회 일정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팀의 골문을 계속 책임진다. 한국이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했을 때는 대회 이전까지 이운재와 김병지가 치열한 주전 경합을 벌였으나 대회에서 전 경기 주전으로 나섰던 골키퍼는 이운재가 됐다.
하지만 모든 팀이 큰 대회에서 매 경기마다 같은 골키퍼를 기용하는 편은 아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한국의 정성룡이 러시아전과 알제리전에서 주전 골키퍼로 나섰으나 벨기에전에서는 김승규로 교체됐다. 월드컵 본선 일정 치르는 도중에 주전 골키퍼가 바뀐 이유는 정성룡의 알제리전 4실점 부진이 컸다. 당시 한국의 불안 요소였던 골키퍼 문제가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서 이어진 것은 정성룡을 믿었던 한국 코칭스태프 선택이 틀렸음을 드러냈다. 알제리전을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은 브라질 월드컵 이후부터 아시안컵을 치르기 전까지 총 7번의 A매치를 치렀다. 골키퍼 선발로 나섰던 선수의 순서는 김진현-이범영-김진현-김승규-정성룡-김진현-김진현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한국의 주전 골키퍼로 나섰던 정성룡이 감독 교체 이후 A매치 7경기 중에 1경기에서만 선발로 뛰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선택은 정성룡과 김승규가 아닌 김진현이었다. 공교롭게도 김진현은 브라질 월드컵 최종 엔트리 23인에 합류하지 못했다. 최종 엔트리에 포함됐던 한국 골키퍼는 정성룡, 김승규, 이범영이었다. 하지만 2015년 1월이 되면서 한국의 주전 골키퍼는 김진현으로 바뀌었다. 몇 개월전 같았으면 예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정성룡 이후 한국의 차기 골키퍼는 김승규가 될 것으로 보였다. 정성룡 경쟁자이자 정성룡이 브라질 월드컵 본선 1~2차전에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면서 김승규가 브라질 월드컵 이후 한국 대표팀 골키퍼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할 것으로 보였다. 지난해 9월 인천 아시안게임때는 한국의 금메달 획득을 공헌하며 자신의 가치를 끌어 올렸다. 하지만 김승규는 아시안컵 본선 1차전 오만전에서 김진현이 한국 골키퍼로 활약하는 모습을 그라운드 바깥에서 바라봐야만 했다. 김승규와 김진현 운명이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역전되고 말았다.
오만전 김진현 슈퍼세이브 모습은 슈틸리케 감독이 그를 선발로 낙점했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했던 장면이 됐다. 이 모습을 계기로 김진현은 아시안컵에서 한국의 붙박이 선발 골키퍼로 나설 명분을 얻었으며 서브 골키퍼가 된 김승규 정성룡 출전 여부가 불투명하게 됐다. 본선 2차전이나 3차전, '그럴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3~4위전에서 김승규 또는 정성룡이 선발로 나설 수도 있으나 슈틸리케 감독이 아시안컵 본선 첫 경기에서 김진현을 선발로 기용한 것은 그를 한국의 주전 골키퍼로 바라보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김진현 슈퍼세이브 장면은 그가 슈틸리케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던 결정타가 됐다.
김진현 슈퍼세이브 보면서 김승규 정성룡 떠올렸던 것은 어느 팀이든 주전 경쟁은 필수라는 점이다. 축구에서는 한 번 주전은 영원한 주전이 될 수 없다. 무언가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구성원과의 경쟁은 필수다. 아무리 주전이었던 선수도 어느 순간에 도태되면 다른 경쟁자에게 선발 자리를 내주기 쉽다. 그런데 그 경쟁자 보다 더 잘하거나 또는 주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가 자신에게 주어진 팀 내 입지 향상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면 어느 순간에 팀의 주전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선수가 김진현이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오만전에서 값진 선방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