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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전북 이동국, 오뚝이처럼 일어서라


K리그 13경기 2골 2도움(PK 1골 포함).

'사자왕' 이동국(30, 전북)의 2008시즌 K리그 후반기 성적표 입니다. 한때 한국 축구 최고의 골잡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거로 명성을 떨쳤던 시절을 무색케 하는 초라한 결과라 할 수 있죠. 결국 이동국은 극심한 부진으로 성남에서 퇴출되는 치욕스런 나날을 보냈습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이동국은 지난해 소속팀에서 2번이나 해고 당했습니다. 지난해 5월 미들즈브러에서 방출 통보 받더니 그 해 연말에 성남에서도 쫓겨난 것이죠.

프리미어리그 실패 원인은 실력 부족이 가장 크겠지만 성남에서도 방출된 것은 이동국 본인에게 엄청난 타격이 돌아갔습니다. 왜냐하면 이동국은 1998년 K리그 신인 시절부터 2006년까지 포항과 광주의 에이스로 이름을 떨쳤던 K리그의 정상급 스트라이커 출신이었으니까요. 그는 성남에서의 부진으로 예전의 위용을 잃고 말았습니다.

K리그 축구팬들은 지난해 여름 이동국이 성남에 입단하면서 그가 부활하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이동국의 부활은 당시 '축구장에 물채워라'는 말이 유명했던 한국 축구의 침체된 열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10년전 K리그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주역 중 한 명이었으니까요.

이동국 본인도 성남에서 자신의 부활을 위해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그동안 프로팀과 대표팀에서 수많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맛봤기 때문에 재기에 성공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을 겁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실패로 쓸쓸히 귀국길에 올랐기 때문에 그것을 만회하기 위한 자신만의 각오도 있었을 것이고요.

그러나 이동국은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성남에서 뼈 아픈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실패했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한데다 모따-두두-아르체 같은 성남 외국인 공격수와의 호흡에서 문제점을 나타냈죠. 더욱이 문전에서의 민첩한 움직임과 전성기 시절 전매특허였던 골 감각은 예전보다 눈에 띄게 약해지면서 팀 성적 부진의 장본인으로 낙인 찍히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한국 최고의 공격수로 명성 떨쳤던 이동국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이동국은 2년 전 자신과 함께 음주파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이운재를 반면교사 삼아야 합니다.

'이동국이 벤치 마킹해야 할' 이운재는 3년전 자신의 백업이었던 박호진에 의해 주전에서 밀려 어려운 나날을 보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방 구단 이적설과 차범근 감독과의 불화설까지 시달리는 시련에 빠졌지만 10kg 체중 감량한 끝에 2007시즌 다시 주전 자리를 되찾았고 지난해 시즌 수원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어 골키퍼로는 최초로 정규리그 MVP(최우수 선수)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2007년 한국 축구 최악의 선수로 낙인찍혔던 것을 실력으로 반전하여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골키퍼 자리를 되찾은 것이죠.

이운재 뿐만이 아닙니다. 한때 이동국과 함께 K리그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안정환과 고종수도 부활에 성공했던 케이스죠. 안정환은 2007시즌 수원에서 2군으로 추락하는 등 실력 저조로 마음 고생이 심했지만 지난해 부산의 에이스로 자리잡으면서 '테리우스'의 위상을 다시 한번 떨쳤습니다.

고종수는 수원-교토-전남에서 방출되거나 임의탈퇴 처분 받았던 시련을 무릅쓰고 2007시즌 대전의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의 주역으로 활약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대전과의 갈등으로 순탄치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십자인대 파열과 잦은 방출, 무적 선수로 온갖 어려움을 겪었지만 대전에서 재기 성공의 빛을 봤던 것은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광래 경남 감독이 "고종수가 다시 뛰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치켜 세울 만큼 고종수의 부활은 성공적이었습니다.

프로야구로 눈을 돌리자면 LG 트윈스의 에이스 봉중근이 이동국과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케이스에 속할 것입니다. 해외리그에서 활약한 뒤, 국내에서 보낸 첫 시즌에 부진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죠.

봉중근은 1998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 메이져리그와 마이너리그에서 활동한 뒤 2007년부터 LG 투수로 활약했습니다. 그러나 봉중근의 첫 시즌은 야구팬들의 기대와 정반대의 행보를 그렸습니다. 두산 베어스 '왕고' 안경현(현 SK)과 빈볼 시비를 벌이더니 2군 추락에 24경기에서 6승7패 평균 자책점 5.32에 그쳐 '봉미미'라는 불명예 별명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봉중근은 지난해 시즌 절치부심한 끝에 28경기에서 11승8패 평균 자책점 2.66을 기록하며 부동의 LG 1선발로 거듭났고 베이징 올림픽에서 눈부신 피칭을 발휘하며 한국의 금메달 획득을 공헌했습니다.

이들처럼 이동국이 다시 일어설 희망과 가능성은 아직 충분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경기 경험을 쌓으면서 성공과 실패를 수없이 거듭했기 때문에 K리그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도약할 수 있는 저력이 남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슬럼프가 앞으로도 걷잡을 수 없이 계속된다면 여론으로부터 오랫동안 '실패한 공격수'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전성기였던 2000년대 중반의 면모를 되찾으려 노력할 것입니다.

이동국은 2001년 독일 베르더 브레멘에서의 부진한 활약과 이듬해 한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 합류 실패 및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실패로 깊은 좌절에 빠졌습니다. 그는 2003년 초 상무 입대를 결심하여 재기에 구슬땀을 흘린 끝에 다시 국가대표팀에 합류하여 거의 매 경기마다 골을 터뜨리는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특히 이동국은 불과 3년 전 국가대표팀, 즉 아드보카트호에 없어선 안 될 에이스였습니다. 2006년 4월 어느날 부터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십자인대 부상만 없었더라면 한국은 독일 월드컵에서 값진 결과를 거뒀을지 모르죠. 당시 월드컵 기간에 모 핸드폰 업체가 이동국 관련 광고를 내보냈던 것은 그만큼 이동국의 존재감이 크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이동국이 한국 축구에서 촉망받는 보물이자 자랑이었던 셈이죠. 연이은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저력이 있었기 때문에 국민적인 주목을 끌었던 겁니다.

그런 이동국이 또 한번의 재기 성공을 위해 최근 전북과 2년 계약을 맺었습니다. 전북은 조윤환 감독 시절부터 지금까지 미드필더진의 정확한 패싱력을 중심으로 날카로운 공격 기회를 만드는 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마무리 역할을 이동국이 맡게 되었는데 재기를 위해 몸부림을 칠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전북에서도 실패하면 자신의 축구 인생에 더 커다란 오점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부활하고 싶다'는 절박함이 강하다고 봐야겠죠. 재기에 대한 열망이 꺾이지 않는다면 그라운드에서 멋진 골 장면을 펑펑 연출할 가능성이 큽니다. 

오뚝이 인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광 뒤에 시련이 교차하는 좌절에 빠졌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절치부심하여 성공한 사람의 인생사를 가리키는 뜻이죠. 이동국을 진심으로 아끼는 팬들은 한때 한국 최고의 공격수로 활약하던 그의 거듭된 실패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동국은 자신의 부활을 바라는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오뚝이 같이 다시 일어서서 화려하게 부활해야 합니다. 드라마보다 감동적인 오뚝이 인생이 무엇인지, 그리고 축구가 왜 아름다운 스포츠인지를 이동국 그가 실력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By. 효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