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전 3시(이하 한국시간) 스타드 아베 데샹에서 열렸던 2008/09시즌 프랑스 르샹피오네 16라운드 옥세르전에 선발 출장했던 박주영(23. AS 모나코). 그는 이 경기에서 알렉산드레 리카타와 투톱을 형성하여 풀타임 출장했고 팀은 전반 20분 터진 포크리바치의 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했다.
박주영은 이날 경기에서 상대 수비진을 흔드는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전반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정확한 패스를 통해 팀 공격을 주도하는 듯 했지만 이후 상대 수비진의 협력 수비에 밀려 이렇다할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는 상대팀들이 AS모나코를 공략하기 위해 '쉐도우 스트라이커' 임무를 맡는 박주영을 막아야 승산있다는 작전, 즉 박주영의 특성을 '읽었다'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는 박주영의 패스 정확도에서 파악할 수 있다. 박주영은 전반 16분까지 횡패스 4회, 전진패스 3회, 백패스 1회를 동료 선수에게 정확하게 연결하며 팀 공격의 활로를 열어줬다. 특히 8분과 11분에는 미드필더진으로 내려와 횡패스 4회를 통해 전방으로 침투하는 움직임이 돋보였다. 리카타와의 호흡까지 잘 맞았다. 전반 2분 문전 정면에서 리카타에게 백패스를 이어준 뒤 1분 뒤에도 같은 지점에서 전진패스를 연결하며 그의 슈팅 기회를 열어줬던 것.
문제는 전반 중반부터였다. 전반 24분 페널티 박스 왼쪽 바깥에서 리카타에게 전진패스하는 과정에서 옥세르 선수 2명에게 애워 쌓이며 공을 빼앗겼던 것. 상대팀이 전반 20분 실점을 허용하자 '전반 초반까지 모나코 공격을 주도한' 박주영에 대한 집중 견제에 들어간 것이다. 이후 박주영은 2~3차례의 패스가 번번이 무위로 돌아갔고 움직임까지 무뎌지면서 경기 종료까지 조용한 활약에 그쳤다. 특히 후반 34분에는 골키퍼 맞고 굴절된 공을 슈팅하려는 순간 헛발질을 범하여 시즌 3호골 달성에 실패하는 아쉬움까지 남겼다.
옥세르전에서 나타난 박주영의 경기력은 전 소속팀인 FC서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데뷔 시즌이었던 2005년 전기리그에서 9골로 득점 1위를 기록했지만 후기리그에서 3골에 그쳐 '골 논란'에 시달렸던 것이다. 이후 박주영은 2006년 K리그에서 이렇다할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서울의 벤치 멤버로 밀렸다. 여기에 2년간 잦은 부상으로 신음하여 경기 감각이 무뎌졌고 킬러 본능을 뽐내지 못해 올해 5~6월 A매치 4경기와 8월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서 상대 수비진의 철저한 견제를 받는 어려움에 시달렸다.
박주영의 부진이 처음으로 시작된 것은 2005년 후기리그였다. 자신과 공을 다루는 상대팀 수비수들이 그의 움직임을 읽으면서 집중 견제를 가하더니 후기리그 3골에 그치는 미비한 활약으로 이어졌다. 2006~2007년에도 이 같은 면모가 이어지자 올해 K리그 상반기에서는 몇 경기 동안 왼쪽 윙어로 뛰기도 했다. '공격수 박주영'의 움직임이 다른 팀 수비수들에게 완전히 파악되었기 때문에 미드필더로 내려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박주영이 K리그 중앙 수비수 중에서 발 빠르기로 소문난 이정수를 제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지난해 3월 21일 수원전에서 이싸빅과 최성환, 마토 -세 명 모두 발이 느리다.- 의 압박을 뚫으며 해트트릭들 달성했지만 4월 8일 수원전에서는 '3월 21일 경기에 결장했던' 이정수의 밀착 견제에 힘을 쓰지 못했다. 이후에도 이정수를 공략하는데 고전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한국 수비수들의 발이 전체적으로 느리기 때문에 박주영이 데뷔 초기에는 펄펄 날았을지 모른다. 언젠가 박주영이 프랑스리그 수비가 강하다고 말한적이 있는데, K리그와 프랑스리그의 수비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그 결과 박주영의 움직임이 'K리그 시절보다' 빨리 읽힌 것이다.)
그동안 축구 전문가들은 박주영의 움직임이 좋지 않다는 평가를 내렸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2006년 초 국가대표팀이 가진 미국 전지훈련 경기에서 나타난 박주영의 골 침묵에 대해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가졌던 A매치에서 기록한 두 골은 정지 상태에서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전지훈련 기간 동안 박주영의 움직임은 좋지 않았다"고 답했으며 박종환 전 대구 감독은 2006년 4월 5일 서울과의 경기 전 "박주영의 움직임은 다 파악됐다. 오늘 박주영의 득점은 없을 것이다"고 예고했더니 이날 박주영은 풀타임 출장하고도 2개의 슈팅만 날렸을 뿐 골을 기록하지 못했다.
박주영 본인도 자신의 움직임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2006년 5월 23일 세네갈과의 A매치 평가전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하고도 "내 플레이에 만족하지 못한다. 수비에 막힌 것이 많았으며 내 스스로의 움직임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박주영은 자신의 빠른 발과 절묘한 위치선정, 부드러운 발재간을 앞세워 부지런히 움직이는 스타일. 문제는 공의 방향이 쏠리는 곳을 위주로 전방 침투하려는 움직임이 많았다는 점이다. 상대 수비수들도 공의 방향을 읽어가면서 공격수들을 견제하기 때문에 박주영이 그들과 맞닥드리는 장면이 많았는데 문제는 박주영이 몸싸움에 약해 공을 따내지 못하거나 집중 견제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로는 상대 수비수들보다 순발력이 빠른 상황에서 가볍게 제치는 경우가 있었지만 '촘촘한 수비를 자랑하는' 프랑스 리그에서는 이러한 경우가 K리그보다 많지 않았다.
현재 박주영은 모나코에서 연이은 선발 출장을 거듭하고도 2골에 그쳤다. 롱패스 위주의 팀 공격과 미드필더진의 부자연스런 공격 전개속에 골이 많지 않았다고 볼 수 있지만 전방에서 공을 기다리려는 움직임 역시 아쉬웠던 것은 사실. 빈 공간에 자리잡아 상대팀 수비진을 뚫는 움직임이 많지 않아 공격 패턴이 다양하지 않았던 것이다.
박주영은 K리그에서의 뼈아픈 경험이 프랑스리그에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사실 프랑스리그는 서정원과 이상윤, 안정환이 실패했던 곳이어서(비록 서정원은 감독 불화 직전까지 맹활약 펼쳤지만) 한국 선수가 성공한 전례가 없는 불안 요소가 있다. 안정환이 2000년 이탈리아 페루자 진출 시절 '볼 트래핑에 문제 있다'는 코칭 스태프의 지적을 받아 기초부터 연마하여 기량 업그레이드에 성공한 것 처럼 박주영도 이 같은 면모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박주영의 대표팀 선배'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부지런한 움직임을 앞세운 공간 창출 능력.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지난해 FA컵 결승전 오피셜 책자를 통해 "박지성은 팀에 다양한 공격 옵션을 제공할 수 있다"고 칭찬한 것 처럼 움직임의 패턴이 다양하다. 박주영이 유럽 무대에서 가치를 빛낸 한국 선수로 발전하려면 박지성의 '장점'을 빼닮을 필요가 있다.
물론 박주영의 플레이 스타일이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박주영은 박지성처럼 부지런히 움직이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자신의 패턴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과 자질이 충분하다. 자신의 영리함을 앞세워 프랑스 수비수들의 약점을 간파하는 지혜 역시 박주영에게 필요하다. 공이 향하는 곳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자신의 기존 패턴에 때로는 빈 공간으로 움직이며 팀 공격의 활로를 찾는다면 상대 수비진을 궤멸시킬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것임에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