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샜던 보람을 느꼈습니다. 김연아 쇼트프로그램 경기가 우리나라 시간으로 오전 2시 20여분에 펼쳐졌는데 한국인 입장에서는 난감한 시간대였습니다. 그녀의 연기를 보고 싶어도 그 시간까지 버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도 2시 기상은 무리였죠. 저의 선택은 전자였습니다. 이제 앞으로 김연아 경기를 볼 날이 별로 없으니까요. 쇼트프로그램의 경우 이번이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김연아가 2014 소치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개인전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를 달성했습니다. 기술점수 39.03점, 예술점수 35.89점을 포함하여 총 74.92점으로 1위에 올랐습니다. 그 점수는 지난해 3월 세계선수권대회 69.97점, 지난해 12월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 73.37점보다 더 높았습니다. 프리스케이팅에서 많은 점수를 획득하면 올림픽 2연패에 성공할 것입니다.
[사진=소치 올림픽 쇼트프로그램을 앞두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공식 홈페이지 메인에 등장했던 김연아 (C) IOC 홈페이지 메인(olympic.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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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연아의 74.92점은 생각보다 낮았던 점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대로 가산점이 문제였습니다. 김연아에 이어 2위를 기록한 선수는 아델리나 소토니코바(러시아, 74.64점)입니다. 이 선수의 7가지 수행 요소 총합 가산점은 8.66점이며 7.6점이었던 김연아를 능가합니다. 이번 올림픽이 러시아에서 펼쳐지기 때문인지 개최국 선수들의 점수가 생각보다 높게 나왔습니다.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던 율리아 리프니츠카야(러시아, 쇼트프로그램 65.23점, 5위)도 그 당시에는 예상보다 높은 점수를 얻으면서 논란이 제기됐습니다.
김연아를 향한 악조건은 충분히 예견됐습니다. 이미 단체전에서 개최국 선수에게 유리하게 판정되었던 전례가 나왔으니까요. 리프니츠카야가 16세 나이에 비해서 기량이 대단한 것은 분명하나 실제 연기에 비해서 점수가 높게 나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개인전 쇼트프로그램에서는 리프니츠카야가 아닌 소토니코바가 김연아 최대 경쟁자로 떠올랐으나 이 선수도 러시아 국적입니다. 김연아는 올림픽 개최국 출전에 힘을 얻은 러시아 선수 2명과 금메달 다툼을 펼치는 중이죠.
쇼트프로그램을 앞둔 김연아에게는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가 찾아왔습니다. 김연아는 연기를 마친 뒤 인터뷰를 통해 웜업 당시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연습했을 때 점프가 잘 안되었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었죠. 연기를 마치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던 것도 긴장을 많이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행히 실전에서 좋은 경기력을 발휘했으나 자칫 잘못하면 심사 채점에 치명타가 되는 실수를 범했을지 모를 일이었죠. 무사히 쇼트프로그램을 마쳐서 다행이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심판 판정이 한마디로 박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와 유사합니다.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에서 좋은 연기력을 펼쳤음에도 69.97점을 받았습니다. 70점을 못넘겼죠. 다행히 프리스케이팅에서 148.34점 얻으며 총 218.31점으로 우승했습니다. 148.34점은 2010 벤쿠버 올림픽 금메달 당시에 세웠던 150.06점에 근접했던 기록입니다. 1년 뒤 소치 올림픽에서도 김연아의 쇼트프로그램 점수는 생각보다 높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소토니코바, 카롤리나 코스트너(이탈리아, 74.12점)와 같은 74점대가 됐습니다.
따라서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에서 최상의 연기력을 발휘하면 금메달을 따낼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지금까지 고득점을 올렸던 원동력은 프리스케이팅에서 강한 면모를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대회 정상에 등극하기 위해 남들보다 우아하고 완벽한 기술을 선보이며 자신의 매력을 높였습니다. 그동안 많은 국제 경기를 치렀던 경험 때문인지 힘든 여건을 잘 이겨냈습니다. 이번 쇼트프로그램에서는 악조건 속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대단했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김연아를 '피겨 여왕'이라고 극찬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김연아의 프리스케이팅 경기는 현역 선수로서 마지막 무대 입니다. 소치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며 우리들은 여왕의 마지막 경기를 보게 되었네요. 김연아의 화려한 유종의 미를 기대하며 한국의 소치 올림픽 세 번째 금메달 소식을 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