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가 2년 전 기자회견에서 현역 복귀를 선언했을 때 저는 마음속으로 '2014 소치 올림픽 금메달 도전은 힘겹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동안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던 여파가 올림픽 2연패 도전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죠. 제가 축구를 좋아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축구 선수는 실전 감각이 떨어지면 제 기량을 발휘하기 힘드니까요. 어느 종목이든 실전 감각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예전 지론이었죠.
또한 기자회견 이전에는 CF 및 교생실습 논란에 시달렸던 때였습니다. 스포츠 외적인 활동이 여론에서 문제가 되면서 마음고생을 하지 않았을까 염려되었죠. 이 때는 앞으로의 진로가 불투명했던 상황이라 현역 복귀를 할지 아니면 은퇴를 선택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자회견 이름이 '진로 표명 기자회견'이 되었죠. 결과론적 관점이지만 김연아가 현역 복귀를 결심한 것은 옳았습니다. 그것도 매우 옳았어요.
[사진=국제올림픽위원회(IOC) 공식 홈페이지 메인에 등장했던 김연아 (C) olympic.org]
김연아는 현역 복귀 이후 여러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소치 올림픽 금메달 및 올림픽 2연패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얼마전에 막을 내렸던 제68회 전국 남녀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이하 종합선수권)를 포함하여 5개 대회 연속 200점 이상의 성적을 올렸습니다. 종합선수권에서는 쇼트프로그램에서 80.6점, 프리스케이팅에서 147.26점 기록하며 종합 227.86점으로 여자 싱글부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80.6점은 비공인 세계신기록이며 227.86점은 자신이 2010년 벤쿠버 올림픽에서 세웠던 세계신기록(228.56점)에 근접한 점수입니다. 현재 기세라면 소치 올림픽 시상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설 것입니다.
흔히 '1등이 되는 것보다 1등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정상을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스포츠 선수는 세계의 수많은 선수들과 경쟁하니까요. 축구와 야구 같은 구기 종목은 팀 스포츠로서 개인의 역량보다는 팀의 단결력이 더 중요합니다. 반면 피겨스케이팅 같은 개인 종목은 다릅니다. 자신의 실수가 자칫 잘못하면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표를 받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피겨스케이팅은 기록에 의해 순위가 결정되는 스포츠로서 실수가 치명적입니다.
그런데 김연아 경기를 보면 실수를 하면서도 200점 이상의 성적을 냅니다. 종합선수권 프리스케이팅에서 두 번의 점프 실수를 했었고 그 이전이었던 2013 골드 스핀 오브 자그레브에서도 실수했던 장면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세계신기록에 근접한 결과를 나타냅니다. 그녀가 연기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항상 1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려운 난이도의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하거나 가산점을 많이 받아내면서 1등을 합니다. 김연아 같은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피겨스케이팅 인재가 우리나라 선수인 것이 정말 좋습니다.
그녀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전까지 피겨스케이팅은 외국 선수들만의 스포츠라고 생각했습니다. 동계 올림픽에서는 벤쿠버 대회 이전까지 쇼트트랙을 제외한 나머지 종목에서 한국의 금메달 리스트가 배출되지 않았죠. 벤쿠버 대회에서는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던 한국인 선수들이 있었으나 저의 시선에서는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이 서로 비슷한 종목이라고 인식했습니다. 누가 얼마나 빨리 질주하는지 여부를 가리는 종목이죠. 반면 피겨스케이팅은 다릅니다. 고난이도 연기를 능숙하게 소화하며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합니다. 한국인 선수의 올림픽 입상 사례가 없었죠.
이제는 피겨스케이팅에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하는 한국인 선수가 등장하는 날이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종목에서 두 번 연속 우승했던 여자 선수는 2명 뿐입니다. 노르웨이의 소냐 헤니(1928, 1932, 1936년 대회 우승, 3연패) 독일의 카타리나 비트(1984, 1988년 대회 우승, 2연패)가 2연패를 이루었죠. 김연아가 벤쿠버에 이어 소치 올림픽을 석권하면 2000년대 이후 최고의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등극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세계 신기록 보유자라는 점을 놓고 보면 역대 최고의 선수일지 몰라요. 피겨스케이팅이 비인기 종목으로 꼽혔던 한국에서 이런 선수가 배출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지금까지 김연아를 능가하거나 거의 따라잡은 여자 선수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김연아의 올림픽 2연패는 꿈이 아닌 현실입니다. 앞으로 한 달 뒤에 펼쳐질 소치 올림픽에서 김연아의 어떤 연기로 우리들을 감동시킬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